‘포스트 스가’ 차기 日 총리에도 아베의 입김 이어질까
  • 박대원 일본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9.17 10:00
  • 호수 16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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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자신의 스캔들 거론한 기시다 견제 위해 다카이치 공개적 지지
일본 국민 여론조사에선 고노 다로 1위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돌연 자민당 차기 총재 선거에 나서지 않겠다고 밝히면서 일본이 크게 들썩이고 있다. 아베와 스가의 뒤를 이을 새 총리가 누가 될 것인지를 놓고 연일 의견이 분분하다. 그동안 계속되는 지지율 하락에도 스가 총리 자신이 수차례 연임 의사를 밝혀왔던 만큼 이번의 사퇴 의사 표명은 놀라운 일이었다. 그러나 스가의 연임 포기 선언 직후 실시된 교도통신의 전국 긴급 여론조사(9월4~5일)에서 응답자의 절반 이상(56.7%)이 “퇴진은 당연하다”고 답해 새로운 기대감을 반영했다. 스가 총리의 퇴진이 확정된 가운데, 일본 사회는 ‘포스트 스가’를 결정짓는 9월29일 자민당 총재선거에 크게 주목하고 있다.

자민당 총재 선거는 복수 후보가 경합하는 치열한 선거전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언급된 교도통신 여론조사에 따르면, 일본 국민들은 차기 총리로 가장 적합한 인물로 고노 다로(31.9%)를 꼽았다. 이시바 시게루(26.6%), 기시다 후미오(18.8%), 노다 세이코(4.4%), 다카이치 사나에(4.0%)가 뒤를 이었다. 2위의 이시바 전 자민당 간사장은 지난해 아베 총리의 사임 표명 이후 실시된 총재 선거에서 스가와 1·2위를 겨뤘던 인물이다. 마이니치신문의 지난 8월28일 여론조사에서 자민당 총재로 적합한 인물에 이시바가 1위, 고노가 2위로 뽑혔던 것을 감안하면, 스가의 불출마 선언 이후 고노 행정개혁담당상의 지지율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아베 전 일본 총리가 지난 2014년 도쿄 총리 공관에서 열린 제1차 각료회의 단체사진 촬영 중 다카이치 전 총무상(오른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다.ⓒAP 연합

자민당 주요 7대 파벌의 지지 동향 주목

단 이시바와 고노는 총재 선거 입후보 여부를 9월8일 현재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다. 3위의 기시다 전 자민당 정조회장은 지난 아베 내각 시절 발표된 한·일 위안부 합의를 주도했던 인물이다.

자민당 총재 선거에 공식 입후보하기 위해서는 소속 의원 20명의 추천이 필요한데, 기시다의 경우 46명으로 구성된 ‘기시다파’를 이끄는 수장으로서 거론되는 5명의 후보 가운데 가장 빨리 정식 출마선언을 했다. 4·5위인 노다 자민당 간사장 대행과 다카이치 전 총무상은 지난 아베 내각에서 장관을 역임한 여성 의원들이다. 두 사람 모두 소속 파벌이 없어 추천인을 확보하는 것이 과제로 지적돼 왔다.

그중에서도 관심을 끄는 인물은 다카이치 전 총무상이다. 스가 총리 불출마 선언 이후 아베 전 총리가 “정책 신조가 가깝다”는 이유로 공개적인 지원사격에 나서면서 추천인 문제가 해결된 것으로 보인다. 스가를 자신의 뒤를 이을 차기 총리로 옹립했던 아베의 영향력이 차차기까지 미칠지 관심이 집중되는 탓이다. 반면 노다는 스가 총리의 지지를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나 추천인 확보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5명의 후보에 대한 관심이 높은 가운데, 이번 선거에서 자민당 내 파벌이 어느 후보를 지지할지가 주요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현재 자민당에는 최대 파벌인 호소다파(96명)에 이어 아소파(53명), 다케시타파(52명), 니카이파(47명), 기시다파(46명), 이시바파(17명), 이시하라파(10명) 등 7개 파벌이 존재한다. 호소다파의 수장은 호소다 히로유키 전 간사장이지만, 사실상 계파 내 최대 영향력을 발휘하는 인물은 아베 전 총리다. 최대 파벌을 움직이는 셈이다. 아소파는 현직 부총리인 아소 다로 재무상이 이끌고 있다. 제3 파벌인 다케시타파는 모테기 도시미쓰 외무상이 회장 대행을 맡고 있다. 니카이파는 아베 내각과 스가 내각에서 계속 자민당 간사장직을 수행하고 있는 니카이 도시히로가 이끄는 파벌이다.

호소다파를 포함해 상위 4개 파벌은 총재 선거와 관련해 파벌 차원의 집단행동 여부를 협의 중인 것으로 알려져 이들의 지지 동향이 주목된다. 니혼게이자이신문(9월3일자)에 따르면 고노 다로가 속한 아소파의 수장 아소 다로는 선거 출마 여부를 상담하러 온 고노에게 “찬성도 반대도 하지 않겠다”고 답한 것으로 전해진다. 여성 천황 인정 및 탈원전 정책 등을 주장하는 고노에 대해 파벌 내 의견이 갈리고 있기 때문이다.

차기 일본 총리 지지율 1위인 고노 다로ⓒ
차기 일본 총리 지지율 1위인 고노 다로ⓒEPA 연합

젊은 의원 모임은 파벌의 집단행동 거부

기시다파는 기시다 후미오가 이끄는 파벌로, 선거에서 기시다를 공식적으로 지원한다는 방침을 밝히고 있다. 이시바파의 경우 수장인 이시바 시게루의 출마 여부가 불확실한 가운데, 9월7일 열린 이시바파 모임에서는 “힘을 합쳐 고노를 지원하자”는 의견이 나온 것으로 전해진다. 이시바파의 숫적 열세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실제 TBS 뉴스와의 인터뷰(9월7일)에서 이시바파의 한 간부는 “고노와 이시바가 팀을 꾸려 압도적인 여론 지지를 얻어 한 번에 세대교체를 추진하는 게 좋다”는 입장을 밝혔다. 마지막으로 이시하라파는 도쿄도 지사를 역임한 극우 정치인 이시하라 신타로가 이끄는 파벌로, 총재 선거에 대해 구체적인 대응방침을 밝히지 않고 있다.

파벌 차원의 집단행동을 거부하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현재 자민당 소속 중의원 의원(276명) 중 당선 횟수 3회 이하 의원은 126명으로 거의 절반에 가깝다. 이른바 ‘젊은 의원’으로 불리는 이들은 9월7일 모임을 갖고 소속 파벌의 의향에 따라 투표하는 것이 아니라 의원 개개인의 의사대로 투표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자민당 총재 선거 이후 중의원 선거가 예정돼 있는 만큼 젊은 의원들 사이에서는 ‘선거의 얼굴’이 될 수 있는 고노 다로에 대한 지지가 높은 것으로 전해진다.

‘포스트 스가’를 둘러싸고 아베 전 총리가 다카이치 전 총무상을 지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스가의 불출마 선언 이전, 아베는 차기 총재 후보로 스가와 기시다 사이에서 저울질하고 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스가의 퇴진이 확실해진 현재 아베는 기시다가 아닌 다카이치 지원 의사를 명확히 밝히고 있다. 지지통신(9월7일자)은 지난 아베 내각 때 불거졌던 사학비리와 벚꽃 스캔들 이슈와 관련해 최근 기시다가 “국민이 납득할 때까지 설명을 계속하는 것이 정부의 자세로서 중요하다”는 입장을 밝힌 것을 그 이유로 분석하고 있다.

아베는 기시다가 당 총재로 발탁돼 자신을 둘러싼 여러 스캔들이 다시금 주목받는 것을 막기 위해, 기시다 견제 차원에서 다카이치를 지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베의 지지에 보답이라도 하듯, 다카이치는 아베 내각에서 마무리하지 못한 아베노믹스 및 황실의 왕위 계승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밝히는 등, 아베 내각 계승 의지를 강력히 표명하고 있다. 9월3일에 출연한 BS후지 방송에서는 “총리가 되더라도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계속하겠다”고 밝혀 일본 극우세력에 지지를 호소하는 모습도 보였다. 아베의 지지를 등에 업고 다카이치가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할 경우 일본 최초의 여성 총리가 탄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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