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민 “내가 살던 동굴에서 벗어나게 해준 기적 같은 작품”
  • 하은정 우먼센스 대중문화 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9.15 14:00
  • 호수 16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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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적》에서 고등학생 역할 맡아 열연한 배우 박정민

영화 《동주》 《그것만이 내 세상》 《사바하》 《타짜: 원 아이드 잭》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등에 출연하며 어느새 충무로 원톱 주연으로 자리 잡은 박정민이 올 추석 극장가 출격을 앞두고 있다. 영화 《기적》은 오갈 수 있는 길은 기찻길밖에 없지만 정작 기차역이 없는 마을에 간이역 하나 생기는 게 유일한 인생 목표인 고등학생 ‘준경’(박정민 분)과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박정민은 극 중 4차원 수학 천재 준경으로 열연해 몰입도를 높인다. 극 중 준경은 언제 기차가 올지 모르는 위험천만한 상황에도 다른 길이 없어 철로로 오갈 수밖에 없는 마을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기차역을 세우려고 하는 인물이다.

애초 박정민은 고등학생을 연기해야 하는 부분에서 출연을 망설였지만 연출을 맡은 이장훈 감독과 미팅 후 출연을 결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감독은 소지섭, 손예진 주연의 《지금 만나러 갑니다》(2018)를 연출한 바 있다. 《기적》에는 박정민 외에도 이성민과 임윤아가 출연한다. 화상 인터뷰를 통해 박정민을 만났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시나리오를 처음 보고 많이 울었다고 들었다.

“극 중 준경이 처해 있는 상황이 많은 분들께 공감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저는 기차역을 세우려고 노력한 적은 없지만 꿈을 이루려고 노력하고 있지 않나. 그 길에는 항상 장애물이 있다. 그걸 고민하는 부분에서 마음이 움직였다.”

앞서 언급한 ‘꿈’은 무엇인가.

“애초엔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다. 한데 영화감독이 아니라 배우가 되고 싶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배우가 되는 게 유일한 꿈이 됐다. 배우가 되는 게 쉽지 않지 않나. 내가 배우라고 해도 남들이 인정해 줘야 배우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배우가 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그 고민은 현재까지도 진행형이다. 아직도 나는 누가 시키지 않는 이상 ‘배우 박정민입니다’라는 말을 못 하겠다. 언젠가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싶다. 그렇게 되기를 꿈꾼다.”

극 중에서 고등학생 역을 연기했는데 부담은 없었나.

“할 수 있겠다고 생각은 했는데 보시는 분들께서 나를 인정해 주실까 하는 걱정이 들더라. 그 과정을 지나고 내가 준경을 연기하는 것을 넘어 나 스스로 준경이와 만나는 지점부터는 의심 없이 연기했던 것 같다. 외적으로는 체중감량에 힘썼다.”

실제 고등학생 박정민은 어떤 학생이었는지 궁금하다.

“사춘기가 늦게 와서 과도기를 겪었다. 중학생 때까진 존재감 없는 조용한 학생이었는데 언젠가부터 나도 인기 있는 학생이고 싶었다. 그래서 고등학교에 입학한 뒤에 외향적으로 바뀌었다. 축제 무대에 올라 노래하고, 춤추고, 랩도 했으며, 영화를 찍어 상영도 했다. 공부 빼고 학교의 모든 일을 다 챙기는 학생이었다. 하하.”

간이역을 만든 준경처럼, 간절해서 이뤄진 기적 같은 일이 있나.

“지금까지 살아온 과정이 다 기적이었다. 중간중간 작은 기적들이 일어나서 행복할 때도 많았다. 그런 기적들이 일어나길 바라면서 지내고 있다. 대학에 합격했을 때, 배우로 데뷔했을 때, 그 과정에서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난 것도 모두 기적이다.”

스스로 생각하는 준경 캐릭터와 실제 모습의 싱크로율도 궁금하다.

“성격적인 부분에선 싱크로율이 있다. 고집도 어느 정도 있고, 무모한 면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준경보다는 순한 편이다(웃음).”

극 중 준경은 이사 가기 싫어서 혼자 집을 지킨다. 살면서 고집스럽게 행동했던 적이 있나.

“부모님과 같이 살기 싫어서 고집스럽게 행동했던 적이 있었다. 결국 나와서 살고 있다. 제 성격이 하나에 꽂히면 해보긴 해봐야 하는 성격인 것 같다.”

《기적》의 촬영 현장이 아주 훈훈했다고 들었다.

“큰 소리 한 번 나지 않은 촬영장이었다. 여러 사람이 있으면 한 번쯤은 큰 소리가 날 법도 한데, 얼굴을 붉히는 일 없이 서로 존중하며 재미있게 촬영했다. 함께 출연한 이성민 선배가 권위 있는 모습이 아니어서 덕분에 모두가 편했다. 좋은 추억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다.”

《기적》에는 추억에 빠질 법한 레트로 소품들이 종종 등장한다. 기억에 남는 아이템이 있나.

“예전에 정수기처럼 누르면 쌀이 1인분씩 나오는 쌀통이 있었는데, 그게 촬영장에 있더라. 엄청 반갑더라. 또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나 비디오 플레이어 등도 반가운 아이템이었다.”

극에서 경북 사투리를 쓴다.

“사투리 선생님이 현장에 상주했고, 수시로 전수받았다. 준비단계 때 영주에 있는 문화원에 가서 잘못된 단어나 억양을 코칭받았고, 안동 사투리 대회에서 1등 하신 분을 소개받아 전수받기도 했다. 여러 사람을 만났고, 그분들이 추천해 주시는 영상들을 돌려 보면서 연습했다.”

평소 좌절할 일이 있을 때는 마인드컨트롤을 어떻게 하는지 궁금하다. 자포자기 혹은 심기일전?

“둘 중 고르자면 자포자기에 가깝다. ‘할 수 있어’라는 마음보다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힘들어하다 후회한들 변하는 것은 없으니까 하던 일을 계속하는 스타일이다.”

극에서 준경은 아버지에게 속마음을 표현하지 못해 사이가 서먹했는데, 실제로는 어떤 아들인지 궁금하다.

“굉장히 무뚝뚝한 아버지와 무뚝뚝한 아들이다. 대화다운 대화를 거의 나누지 못했다. 마음은 안 그런데 서로가 서로에게 꽂혀서 많이 부딪쳤던 것 같다. 뒤돌아서면 후회하지만 실천하는 게 쉽지 않다. 살가운 아들이 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내가 갑자기 변하면 아버지가 걱정하실까봐 천천히 예전보다 잦게 안부전화를 드리는 정도다(웃음).”

함께 출연한 ‘소녀시대’ 출신 배우 윤아씨의 엄청난 팬이라고 들었다.

“제 나이 또래 남자들은 모두 ‘소녀시대’ 팬이었다. 저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윤아씨를 만났을 때 어색하진 않았다. 윤아씨가 워낙 성격이 좋아 급속도로 친해졌다. 덧붙이자면, 예전부터 윤아씨에 대한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좋은 얘기가 대부분이었다. 실제로 만나보니 환상이 아니고 진짜였다. 인간적인 사람이어서 다가가기 쉬웠다.”

《기적》은 극중 인물들에게 각자의 기적을 선사한다. 이 작품을 만나 일어난 변화라든지 기적이 있나.

“이 영화 만나고 크게 변했다. 저는 늘 무언가를 혼자 해내야 하는 성격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남의 도움을 받는 방법을 몰랐다. ‘내가 잘해야지, 남이 도와줘서 잘하면 무슨 소용이야’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이 영화를 만나고 내가 사는 동굴에서 한 발짝 빠져나왔다. 저는 제 세계가 깊은 사람인데, 그걸 벗어나게 해준 이 영화가 고맙고 사랑스럽다. 그래서인지 현장에서 고맙다는 말을 참 많이 했던 것 같다. 그게 기적이다.”

영화 한 편으로 자신만의 깊은 세계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는 건가.

“감독님의 영향이 컸다. 감독님과 전 비슷한 면도 있지만 다른 면도 많다. 감독님이 해주시는 말씀이 되게 멋진 어른이 해주시는 말씀같이 딱딱 꽂혔다. 35세밖에 안 된 배우가 영화 한 편을 책임지겠다고 땅굴 파고 들어가서 스트레스 받고, 또 정답을 찾으려고 하는 모습이 속상하셨는지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다. 결론적으로 이 영화를 만나고 유쾌해졌다. 그리고 다음 현장에선 더 유쾌해질 수 있을 것 같다. 영화는 나 혼자 만드는 게 아니라는 걸 다시 느꼈다. 당연한 사실인데 잊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추석에 《기적》을 봐야 하는 이유는 뭔가.

“저는 가족과 영화를 보러 간 적이 없어 그 마음을 잘 모르지만 제가 만약 가족이랑 영화를 보러 간다면 《기적》 같은 영화를 보고 싶을 것 같다. 서로가 서로에게 하지 못했던 말들을 영화가 대신해 준다. 말하지 못한 그 감정을 공유해 주는 순간을 선물해 드릴 수 있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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