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상풍력발전, 자칫 계륵 신세로 전락할 수 있다
  • 박치현 영남본부 기자 (sisa518@sisajournal.com)
  • 승인 2021.09.26 15:00
  • 호수 1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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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길 바쁜 정부의 밀어붙이기 행정으로 곳곳에서 꼬여
반대 어민들 “삶의 터전 지키기 위해 싸우겠다”

태양열과 지구 자전은 바람을 일으킨다. 바람은 기압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이동한다. 바람이 지닌 힘, 풍력은 친환경 에너지다. 특히 바다는 육지와의 온도 차이가 커 강한 바람이 불어 풍력발전에 유리하다. 탄소중립과 그린뉴딜을 적극 추진 중인 현 정부는 그래서 해상풍력발전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현재 125MW 수준인 해상풍력발전 규모를 2030년까지 12GW로 100배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해상풍력발전에 투입되는 예산은 민간투자를 포함해 63조원, 우선 올해 제3차 추가경정예산에서 해상풍력 부문에만 당초 예산의 6배가 넘는 4639억원을 편성했다. 

울산 앞바다에 6GW 규모 부유식 해상풍력발전단지 건설이 추진되고 있다. 부산·울산·경남 지역 570만 가구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규모다. 우선 2025년까지 1.4GW 규모 발전소를 짓고, 2030년까지 4.6GW를 구축할 계획이다. 총사업비는 36조원 정도로 예상된다. 1단계 사업은 울산항에서 동쪽으로 60km 떨어진 동해가스전 인근 공유수면 해상에 추진된다. 그린인베스트먼트그룹(GIG)과 토탈에너지스가 지난 7월말 전기위원회로부터 국내 최초로 발전사업 허가를 획득하고, 인·허가 절차에 들어갔다. 아직은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환경영향평가와 해역영향평가, 사전재해영향성 검토, 전파영향평가, 연안관리계획 협의, 송전설비이용신청 등 20여 가지 인·허가 절차를 거쳐야 한다. 소요 기간은 2~6년 정도로 보고 있다. 

ⓒGIG 제공
ⓒGIG 제공

“조업구역 축소, 해양생물 서식지 파괴 등 피해”

그런데 시작도 하기 전에 제동이 걸렸다. 울산시 어선·어업인연합회는 8월30일 청와대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민간사업자가 주민공청회를 제대로 열지 않고 일부 어민단체와의 협의만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며, 국민청원을 통해 진상 규명을 촉구했다. 이들은 “민간개발사들이 803척의 허가 어선 중 100여 척으로 구성된 어민대책위원회를 상생지원금 70억원으로 매수한 뒤 산업부에 상생협약서를 제출해 사업허가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울산해경은 압수수색 등을 통해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울산수협도 결사항전 태세다. 어업 생존권 박탈을 지켜만 보지 않겠다는 각오다. 한국법제연구원이 지난해 발표한 ‘발전사업이 해양환경 및 수산자원에 미치는 영향 분석 연구’를 근거로 “조업구역 축소와 해양생물 서식지 파괴, 화학물질 누출, 소음·진동, 전자기장으로 인한 피해가 있다”는 내용을 정부가 수용하라는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부산·울산·경남 수산단체가 대거 참여하는 범추진대책위를 결성해 해상풍력단지 조성을 저지하겠다고 밝혔다. 공유수면 관리법에 따르면, 어민들이 반대하면 해상풍력 계측기 설치 및 발전허가를 위한 점용·사용 허가와 승인을 할 수 없다. 이상일 울산시 에너지산업과 주무관은 “주민 수용성을 제고할 수 있도록 ‘민관협의체’ 구성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한국에너지공단이 지난 7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1년 2분기 재생 에너지 신규 보급용량은 2396MW로 나타났다. 이 중 태양광이 2264MW로 대부분을 차지했고, 풍력은 25MW에 불과했다. 정부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태양광의 대체재로 해상풍력발전 확대를 선택했다.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전국에 풍력발전 바람이 불고 있다. 경남도는 남해권 해상풍력단지 조성, 전남도는 8.2GW 대규모 해상풍력단지, 전북도는 1.2GW 규모의 서남권 해상풍력 집적화단지, 인천시는 3.7GW 규모의 해상풍력발전단지를 조성 중이다. 정부는 해상풍력 규모를 2030년까지 12GW로 늘린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곳곳에서 어민들의 반발에 부닥치고 있다. 경남 통영에선 황금어장으로 손꼽히는 욕지도 인근에 3건의 대규모 해상풍력발전소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계획 면적만 150㎢로 서울 여의도의 50배가 넘는다. 사업자인 한국남동발전(주)은 풍황계측기(직경 13m, 높이 110m, 무게 1050톤) 설치를 일방적으로 추진하다 어민들의 거센 반발에 부닥쳤다. 통영시도 문제가 있다고 보고 공사 중지 명령을 내렸다. 남동발전은 부당한 결정이라며 행정심판을 제기했고, 지난 6월 인용 판정을 받아 최근 공사를 재개했다. 어민들은 “처음 공사를 시작할 때도 그랬고, 이번에도 어민들은 완전히 배제됐다”며 단단히 뿔이 났다. 이들은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필사즉생의 각오로 맞서겠다”며 집단 해상시위에 나서 물리적 충돌이 우려된다. 인천에서도 덕적·자월 해역 어촌 주민들이 최근 “어민들의 동의 없이 풍황계측기 설치 허가를 고시한 것은 적법하지 않다. 공익감사나 고발 절차를 밟겠다“는 내용의 입장문을 해양수산부에 보냈다. 이들은 정부의 밀어붙이기식 해상풍력 정책이 문제를 키웠다고 주장했다.  

울산 앞바다에 국내 최초로 설치한 부유식 라이다(풍황계측장비)ⓒGIG·토탈에너지스 제공
2030년까지 원자력발전소 6기와 맞먹는 규모(6GW)의 세계 최대 부유식 해상풍력발전단지가 조성될 울산 앞바다. 붉은색으로 표시된 구역에 해외 민간투자 컨소시엄 5개사가 부유식 해상풍력발전단지를 조성할 계획이다.ⓒ울산시 제공

유럽에 적합…태풍 많은 동아시아는 위험

부산 해운대 청사포에 조성 중인 해상풍력단지(39MW급)는 경제성 논란에 휩싸였다. 기상청 조사 결과, 이 일대 상공 80m의 바람은 초속 3.88m/s로 풍력발전기 가동에는 낙제점으로 확인됐다. 산업부에 따르면, 풍력발전은 바람날개(블레이드)가 위치한 평균고도 50~100m 이상 지점에서 7m/s 이상의 균질한 바람이 불어야 경제성이 있다. 하지만 사업자인  지윈드스카이 측은 인·허가를 받은 상태라며 사업 강행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해상풍력발전은 바람이 약하거나 강한 태풍에는 불리하다. 그래서 태풍이 없고 연중 적당한 바람이 균일하게 부는 유럽연합(EU)에 해상풍력발전소가 많다. 상대적으로 태풍이 많은 일본에는 해상풍력발전소가 별로 없다. 안전사고를 우려해서다. 울산 부유식 해상풍력단지가 조성 중인 동해가스전 주변은 대마난류(구로시오해류)가 지나가는 해역으로 여름철 초대형 태풍이 통과하는 곳이다. 지난해 9월 울산을 강타한 태풍 ‘마이삭’과 ‘하이선’으로 이곳에 설치된 풍황계측기가 부서졌다. 바람이 너무 강해 부유식 해상풍력발전소가 견딜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해운대 청사포도 여름철 태풍이 지나는 길목이다. 순간 최대 풍속이 54m/s를 넘나드는 ‘초강력 태풍’이 불기도 한다. 풍력발전기는 25m/s 이상의 ‘중급(normal) 태풍’ 정도의 바람만 불어도 가동을 중단한다. 이곳에도 대규모 해상풍력단지가 조성 중이다. 전문가들은 안전사고 위험을 배제할 수 없다며 위치 선정의 적합성을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국내 풍력발전기 날개와 기둥이 태풍에 부러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2020년 9월 경남 양산의 풍력발전기 1기가 태풍 ‘마이삭’의 영향으로 두 동강이 나 도로로 떨어지는 아찔한 사고가 있었다. 앞서 2016년에도 제주도 구좌읍의 김녕 풍력실증단지에 있던 풍력발전기 1기가 태풍 ‘차바’가 몰고 온 비바람에 날개가 파손되기도 했다. 당시도 순간 최대 47~56m/s의 돌풍이 풍력발전기를 넘어뜨렸다. 문일주 제주대 교수(태풍연구센터장)는 “유럽에 적합한 해상풍력발전을 우리나라에 적용할 때는 가보지 않는 길을 갈 때처럼 신중을 기해야 한다. 태풍 경로와 세기, 풍황 등을 정확하게 측정해 분석하지 않고 경제성만 고려해 해상풍력발전을 추진한다면 곳곳에서 중대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해상풍력발전을 둘러싼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하지만 정부와 여당은 풍력발전 업무의 신속한 일괄처리를 위한 ‘원스톱숍(One-Stop Shop)’ 특별법안까지 마련 중이다. 정부가 에너지 전환 정책으로 해상풍력발전을 너무 밀어붙여 일을 꼬이게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전국적으로 40여 개 해상풍력발전단지가 추진 중이지만, 대부분 난항을 겪고 있다. 주민 반대와 해양환경 훼손, 경제성·안전성 등 다양한 문제점이 제기되며 ‘표류 중’에 있다. 해상풍력사업이 새만금사업처럼 ‘계륵’으로 돌아올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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