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낡은 아파트는 ‘시한폭탄’이다
  • 이진우 MBC 《손에 잡히는 경제》 앵커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9.24 17:00
  • 호수 1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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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수도권 집값 상승이 전 국민의 골칫거리가 되고 있지만 우리나라 주택 문제의 가장 심각한 고민거리는 사실 다른 데 있다. 낡은 주택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데, 이런 주택들을 어떻게 재건축할지에 대한 장기 플랜이 없다는 게 큰 문제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당선된 후로 서울 아파트값이 들썩이고 있다. 재건축 규제가 풀릴 것이라는 기대감에 재건축 단지를 중심으로 아파트 가격 상승폭이 커졌다. 사진은 4월18일 서울 여의도 재건축 추진 아파트 ⓒ연합뉴스
사진은 4월18일 서울 여의도 재건축 추진 아파트 ⓒ연합뉴스

세계의 모든 주택은 다 조금씩 낡아가는 게 일반적이다. 낡은 주택은 다시 지어야 하는데 왜 낡은 주택의 재건축이 우리나라에서만 문제일까. 우리나라 수도권 주택은 다른 나라의 주택과는 다른 특징이 있는데 수명이 짧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아파트는 교체수명이 27년이다. 영국의 아파트는 128년, 독일 121년, 프랑스 80년, 미국은 72년이다.

우리나라 주택의 수명이 유독 짧은 이유는 아파트의 하중을 받는 구조물이 기둥이 아니라 벽인 벽식 아파트이기 때문이다. 기둥식 구조는 기둥이 무게를 지탱하니 벽은 그냥 폼으로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벽이 텅 빈 공간으로 되어 있어 상하수도관이나 난방 배관 등을 벽에 설치할 수 있고 나중에 그 배관이 문제가 되면 그 벽만 살짝 헐고 배관을 손볼 수 있었다. 그러나 벽식 아파트는 모든 벽과 바닥이 콘크리트다. 상하수도관이나 배관들을 벽과 바닥에 묻고 콘트리트를 부을 수밖에 없다. 그럴 경우 30~40년 후 배관에 문제가 생기고 녹이 슬면 그 집 전체를 철거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나라 아파트들은 수명이 길어야 30~40년이다.

이렇게 집의 수명이 짧다보니 생기는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현상이 있는데, 그건 집을 계속 더 많이 열심히 짓지 않으면 금방 수요가 부족해진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집의 수명이 100년인 나라에 집이 100채 있다면, 이 나라의 집은 1년에 한 채씩 낡아서 무너진다. 그러니 1년에 한 채만 지으면 최소한 집의 숫자를 유지할 수 있다. 그런데 집의 수명이 10년인 나라에 집이 100채 있다면 그 나라의 집은 1년에 10채씩 무너지고 사라진다. 똑같은 나라인데 1년에 집을 다른 나라보다 10배 더 많이 지어야 한다는 의미다. 아파트의 수명이 27년인 우리나라는 아파트 수명이 128년인 영국보다 집을 5배 더 많이 지어야 한다는 뜻이다.

주택의 수명이 100년이라서 집을 매년 1% 정도만 더 지으면 되는 나라에서는 집을 새로 짓는 일을 게을리해도 얼른 다시 많이 지으면 실수를 곧 만회할 수 있다. 그러나 주택의 수명이 30년으로 짧아 매년 집을 3%씩 더 짓지 않으면 집이 모자라는 나라에서 일을 잠시 게을리하면 그 실수를 만회하기가 쉽지 않다.

그럼 이렇게 낡은 아파트들을 다시 천천히 하나하나 재건축하면 되지 않을까. 그런데 문제가 있다. 서울은 이제 빈 땅이 없어 기존의 낡은 아파트나 주택을 허물고 다시 지어야 되는데 허물고 다시 지으면 허물어지는 집들 때문에 전체 주택이 늘어나는 폭이 크지 않다. 지금까지는 아파트도 용적률에 여유가 있는 낮은 아파트가 많아 아파트 한 채를 허물면 아파트 두 채를 지을 수 있었는데 이제는 아파트 2채를 허물어야 3채를 겨우 지을 수 있다. 정말 열심히 집을 새로 짓지 않으면 서울의 낡아가는 아파트를 새 아파트로 바꾸기가 쉽지 않다.

우리나라의 아파트는 1990년대에 집중적으로 많이 지어졌다. 1980년대에 100만 호 남짓 지어진 아파트가 1990년대에는 350만 호가 지어졌다. 그 아파트들이 이제 나이가 30년에 접어들고 있으니 본격적으로 낡은 아파트 다시 짓기가 시작될 시점이다.

낡은 아파트가 대규모로 쏟아지면 한꺼번에 재건축을 하기가 어렵다. 잠시 이사해 살 집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리 계획을 세워 차근차근 재건축을 해야 한다. 재건축을 규제의 대상으로 생각하다가 시간이 흘러버리면 계획을 세울 시간조차 없어진다. 큰 그림을 봐야 할 때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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