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부 또는 강원도 춘천 사람 권독서 [최보기의 책보기]
  •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9.27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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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현식이 형 (100억을 말아 잡수신)》ㅣ박제영 지음ㅣ달아실 펴냄ㅣ140쪽ㅣ12,000원
《우리 동네 현식이 형 (100억을 말아 잡수신)》ㅣ박제영 지음ㅣ달아실 펴냄ㅣ140쪽ㅣ12,000원
《우리 동네 현식이 형 (100억을 말아 잡수신)》ㅣ박제영 지음ㅣ달아실 펴냄ㅣ140쪽ㅣ12,000원

산문집 《우리 동네 현식이 형 (100억을 말아 잡수신)》을 쓴 저자 박제영은 시인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생계를 위해 서울 대기업 홍보실에서 샐러리맨으로 근무할 때도 그는 시를 놓지 않아 《푸르른 소멸》(2004, 문학과 경계), 《뜻밖에》(2008, 애지), 《식구》(2013, 북인), 《그런 저녁》(2017, 솔) 등 시집을 꾸준히 발표했다. 그러다가 고향(?) 춘천으로 귀향해 강원도 사투리가 능청스럽게 흐르는 해학산문집 《사는 게 참 꽃 같아야》(2018, 늘봄)도 펴냈으나 시로만 밥 먹기는 그 역시 힘들어 월간 ‘태백’ 편집장을 하다 지금은 달아실 출판사 편집장을 하고 있다. 이 출판사는 특이하게도 잘 안 팔리는 시집을 꾸준히 낸다.

잘 안 팔리는 시집을 꾸준히 내는데도 달아실 출판사는 꾸역꾸역 굴러간다. 알고봤더니 그건 순전히 ‘우리 동네 현식이 형’ 집에 있는 롤렉스 시계 덕분이다. 그런 ‘현식이 형’은 누구일까? 그는 땅 파면 돈이 나오는 사람일까? 아니다. 그는 춘천에서 옥(玉) 파서 돈을 버는 기업 옥산가 대표김현식이다. ‘100억을 말아 잡수실’ 만큼 갑부다. 그는 대체 어디다 100억을 말아 잡수셨을까?

김현식은 기업가이면서 한편으로는 1982년 ‘소설문학’으로 등단한 소설가다. 장편소설 《북에서 왔시다》, 《1907》(1권, 네 개의 손. 2권, 일몰)을 냈고 국민대 정선태 교수와 《’삐라’로 듣는 해방 직후의 목소리》(소명출판, 2011)도 냈다. 필명으로 몇 권의 소설이 더 있다. 그는 일주일 열 권 정도 책을 읽고, B급 잡지나 장난감, 골동품도 부지런히 모은다. 주머니 가벼운 동네 문인들에게 술밥도 그가 맨날 댄다. 그러니까 그가 말아 잡수신 100억은 흔히 말하는 노블리스 오블리제, 주로 가난한 ‘문학과 예술’을 위해 쓰인 것으로 추정된다. 저자 박제영 시인이 편집장이었던 월간 《태백》의 발행인이 김현식이었음을 볼 때 대충 그림이 나온다.

《우리동네 현식이 형 (100억을 말아 잡수신)》에는 그러한 시인과 기업가이자 소설가가 낮에는 글, 밤에는 술, 가끔은 낮에도 술로 어울리며 나눈 ‘해학 속 삶의 기술’이 들어있다. 돈이 있을 만큼 있어보고, 쓸 만큼 써본 장년 남성의 돈과 삶, 사람에 관한 촌철살인 같은 통찰이 녹아있다. ‘짜장면 정도라면 얻어먹되 소고기는 살 줄 아는’ 관용과 한량의 철학이 있다.

“동서고금 최첨단 무기는 말이라는 거야. 추진체도 필요 없고 장전도 무제한이고 사정거리가 없어 그야말로 시공을 초월해 적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있거든. 칼로 입은 상처는 꿰매면 되지만 말로 입은 상처는 꿰맬 수도 없고 아물지도 않아. 그래서 말이 무서운 거야. 문제는 적보다 자신을 해치는 경우가 더 많아서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는 거야. 말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무기지.”

이는 《(100억을 말아 잡수신) 우리동네 현식이 형》의 어록(?) 중 하나다. 코로나19로 격리가 길어지고 있다. 재미와 익살이 흐르는 책 반나절 가볍게 가볍게 읽고 싶거나, 강원도 춘천에 사는 사람, 돈을 좀 멋지게 쓰고 싶은 갑부라면 일독을 권할 만하다.

▲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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