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보다 회사가 더 많은 나라가 있다?
  • 공성윤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21.12.02 07:30
  • 호수 16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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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인 50만 개 설립된 세계 최대 조세회피처 英 버진아일랜드…
美 델라웨어는 대장동 자금줄

대형 역외탈세 사건이 불거질 때 자주 등장하는 나라가 있다. 조세회피처다. 국제 비정부기구 조세정의네트워크(TJN)가 발간한 ‘기업 조세회피 지표 2021’에 따르면, 한 해 글로벌 기업들이 빼돌리는 세금 규모는 총 2450억 달러(약 290조원)에 달한다. 이 가운데 미국, 영국, 네덜란드 등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과 그 관할국에서 새어나간 세금이 68%를 차지한다. 대다수는 조세회피처로 악명 높은 곳들이다.

OECD는 조세회피처의 기준에 대해 몇 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금융서비스 등에서 발생하는 소득에 대해 면세하거나 명목적 면세를 하는 곳 △세금 및 세금 집행에 관한 투명성이 결여된 곳 △금융서비스 제공 기업에 대해 자국 내 실질적 활동을 요구하지 않는 곳 등이다.

조세정의네트워크가 조세 투명성과 세금 감면율 등을 고려해 뽑은 세계 최대 조세회피처는 영국령 버진아일랜드(BVI)다. 버진아일랜드란 중앙아메리카 동쪽 서인도제도의 약 80개 작은 섬을 총칭하는 단어다. 이 중 카리브제도에 있는 36개 섬이 영국령이고 나머지는 미국령이다. 주로 관광산업과 사탕수수 수출로 먹고사는 이 작은 섬나라에 설립된 법인은 50만 개가 넘는다. 인구수(3만 명)의 16배가 넘는다. 목적을 불문하고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들락거리는 자금 규모는 연간 총 2조1995억 달러(2609조원)에 육박한다. 이곳은 법인세는 물론 소득세, 상속세, 증여세가 없다.

ⓒfreepik

年 2600조원 오가는 BVI… 이재용도 법인 설립

지난 2013년 뉴스타파는 조세회피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한국인이 모두 245명이라고 밝혔다.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와 공동 취재한 결과다. 이 가운데 고(故) 이수영 OCI 회장 부부와 조중건 대한항공 고문의 부인 이영학씨, 조욱래 DSDL 회장(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의 동생)과 장남 조현강씨 등 5명이 버진아일랜드에 페이퍼컴퍼니를 세운 것으로 나타났다. 올 10월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그중 한 명이란 사실이 드러났다.

버진아일랜드 외에 영국령 케이맨제도와 버뮤다, 네덜란드, 스위스, 룩셈부르크, 홍콩 등도 조세회피처 순위 상위권에 이름이 올랐다. 미국 델라웨어주(州)도 주요 조세회피처 중 하나다. 이곳은 미국 내에서 가장 조세 부담이 적은 주다. 델라웨어주는 최근 대장동 민간개발업체 화천대유의 자금줄로 지목된 바 있다.

권영세 국민의힘 의원실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리딩투자증권의 한 사모펀드는 화천대유에 2018년 4월 180억원을 빌려줬다. 이 중 152억원이 델라웨어주에 있는 ‘어니언 그랜드 애비뉴 파트너스(ONION GRAND AVENUE PARTNERS)’라는 법인에서 나왔다. 그해 1월 설립된 이 회사는 2년도 안 돼 해산됐다. 이 때문에 ‘대장동 투자 목적으로 만들어진 유령회사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다.

조세회피처는 단지 탈세 때문에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다.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는 조세회피처가 테러나 대량살상무기 확산을 위한 자금세탁의 거점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미국 하원은 올 3월 법안을 발의해 조세회피처를 통한 자금세탁을 막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한국 정부는 7월 발표한 세법개정안을 통해 조세회피 방지책을 공개했다. 해외 부동산 보유내역 신고를 의무화한 게 그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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