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사적이기에 그토록 위험한 교제살인 [쓴소리 곧은 소리]
  • 이윤진 서원대 사회복지학부 교수 (lolly0901@naver.com)
  • 승인 2021.11.26 11:00
  • 호수 16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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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혜영·이준석이 비극적 죽음 놓고 벌인 페미니즘 공방
교제살인의 속성상 과도한 한쪽 처방만으론 해결 못 해

죽고 나서야 비로소 헤어질 수 있는 관계. 한때는 둘만의 사랑을 속삭이며 세상 그 누구보다 친밀하게 지냈던 그들이 죽음이라는 결과물을 앞에 둔 채 가해자와 피해자로 나뉜다. 성폭력, 스토킹 범죄, 데이트 폭력이라는 단어에서 나아가 ‘교제살인’ 으로 불리는 이러한 일들이 최근 들어 빈번하게 보도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이 사건을 두고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장혜영 정의당 의원의 ‘페미니즘 공방전’이 SNS에서 벌어지기도 했다. 여성의 안전 보장을 페미니즘의 정당성으로 이야기한 장 의원과 범죄를 페미니즘과 엮지 말라는 이 대표의 논쟁을 보며 여러 생각이 스쳤다. 과연 누가, 왜 젠더 갈등을 조장하는 것이며 가슴 저린 죽음 앞에서 페미니즘이 왜 논쟁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가.

ⓒ연합뉴스
데이트 폭력 피해로 경찰의 신변보호를 받던 여성을 살해하고 도주했다가 검거된 30대 피의자 김병찬이 11월22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 심사를 마치고 나오고 있다. 작은 사진은 스토킹 살해범 김병찬ⓒ연합뉴스

관계가 종료되면 위험해지는 연인 관계의 은밀성

교제살인은 ‘법적으로 결혼한 상황이 아닌 연인 관계에서 서로 사귀다가 상대를 죽이는 것을 일컫는 것’으로 형법상 ‘살인죄’ 등의 유사 범죄에 해당한다. 하지만 평범한 살인죄에 해당하기 이전에 ‘남성에 의한 여성 살해’가 사건 중 다수의 비율을 차지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원인에 대한 논란 역시 가중되고 있다.

연인 관계는 인간사 수많은 관계 맺음 중 하나다. 법적으로 이루어진 부부라는 관계와는 달리 아무런 법적 구속 없이 일상의 행복을 나누고, 본인의 꿈과 생각을 공유하는, 세상에서 제일 친밀한 관계가 연인 관계다. 자신의 의지로 상대방을 선택해 소통하고 의지하며 비밀을 공유하면서 그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은 많은 것을 몸소 체험하고 느낄 수 있는 세상 유일한 관계 맺음이 연인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연애를 하는 모든 사람은 기쁨, 사랑, 설렘, 두근거림, 질투, 분노 등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모든 감정을 ‘연애’ 하는 과정에서 경험한다. 이러한 이유로 연인 관계는 제3자가 침범할 수 없는 매우 은밀하고도 사적인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그동안 연인 간의 살인 사건, 폭력 사건의 사회적 심각성이 사람들의 머릿속에 ‘중범죄’ 로 각인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역시 연인 관계의 특별한 속성 때문일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상반될 수 있으나 맞닿아 있는 두 가지 지점을 고민해 보아야 한다. 첫째, 여러 살인 사건 중에서도 우리가, 누군가에게는 그 명칭도 낯설 수 있는 교제살인이라는 것에 특별히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교제살인이라는 용어 자체는 매우 중립적이다. 하지만 이와 유사한 데이트 폭력, 가정폭력, 성폭력이라는 단어를 떠올려볼 때 어떠한 상황을 머릿속에 그리게 되는가. 남성에게 신변의 안전을 위협받는 여성의 모습이 그려지지 않는가? 여성의 지위가 향상되었다고 하는 요즘에도 고정관념으로 자리 잡혀 있는 남성과 여성의 생물학적 차이에서 오는 힘의 불균형, 양성평등을 외치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안전 영역’에서 여성의 취약함을 우리는 아직 해결하지 못했다. 일반적으로 연인 관계는 서로 사랑을 속삭이며 나의 은밀함을 공유하는, 나의 모든 것을 함께할 수 있는 세상 가장 친밀한 관계다. 그러나 관계의 종료 시점에는 이 모든 것이 나에게 약점으로 되돌아온다.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그리고 피가 섞이지 않은 관계이기에 더욱 법에 의한 보호가 절실한 이유다. 데이트 폭력에서 나아가 교제살인이라는 단어가 세상에 나오게 된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발의된 지 20여 년이 지나 최근에야 통과된 일명 ‘스토킹 방지법’의 내용보다도 더욱 강력한 법제도적 보완을 통해 선제적으로 살인에 이르는 결과를 차단해야 한다. 성별을 불문하고 가해자를 향해서는 사랑이라는 달콤함으로부터 시작된 관계를 염두에 둔 그 어떤 배려도, 이해도 필요 없다. 그리고 가해자 중 아직까지 남성이 많다는 통계적 사실을 애써 부인할 필요도 없다.

둘째, 이러한 교제살인 사건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의 문제다. 최근 연이어 발생한 사건들을 포함한 교제살인 피해자 중 여성이 다수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팩트다. 하지만 이러한 통계만을 근거로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라고 여기는 것 역시 집단에게 가해지는 폭력이라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목숨을 담보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가해를 하는 것은 가해자의 성별 여부에 중점을 두기 전에 말 그대로 ‘생명을 담보로 한 범죄’라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사람의 생명을 앞에 둔 논의에서 페미니즘 논쟁, 여야 정치권의 날 선 공방이 웬 말인가.

 

‘연애 권력’이 특정 성별에 점령되지 않게 해야

가해자는 엄중히 법에 의해 처벌받을 수 있도록, 그리고 연인 관계에서 권력자의 지위를 한쪽 성별이 점령하지 않도록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데 중지를 모아야 한다. 당연히 여성이든 남성이든 살인을 저지른 자는 똑같이 비난받고 처벌받아야 한다. 교제살인의 가해자가 통계상 남성이 대다수인 것을 부인하지도 말아야 함과 동시에 잔혹한 죽음 앞에서 세상을 갈라치기 하지도 말아야 한다. 팩트풀니스의 저자 한스 로슬링이 말한 바와 같이 세상은 수치(數値) 없이 이해할 수도, 수치만으로 이해할 수도 없다.

젠더 중립, 젠더 편향, 젠더 갈등 모두 틀렸다. 최근 일어난 일련의 교제살인 사건들은 여성이 남성에 비해 신체적으로, 물리적으로 약한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회적 의제이며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은 뿌리 깊은 우리 사회의 성차별적 문화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사랑을 빙자한 사람의 목숨값에 대한 사회적 인식, 생명 존중 문화 등을 되돌아보아야 한다.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보는 인식도, 여성의 안전 보장에 대한 당연한 요구를 과도한 페미니즘이라고 말하는 것도 현실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목숨을 잃어간 사람들 앞에서 불필요한 젠더 갈등을 부추기지 말자. 혹여라도 정치적 이슈로, 그리고 표를 얻기 위해, 한순간 관심을 끌고자 하는 정치인이 있다면 정치든 권력이든 고귀한 생명 앞에 성실하고 겸손하길 바란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윤진은 누구

정부출연기관인 육아정책연구소에서 아동돌봄정책, 일·가정 양립, 저출산정책 등의 연구를 수행했다. 현재는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수요자가 체감할 수 있는 정책 만들기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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