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인터뷰] 위성락 “우리에게 미국은 동맹이고, 중국은 동반자다”
  • 김종일·이원석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21.11.30 10:00
  • 호수 16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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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독트린’ 만들 위성락 실용외교委 위원장
“‘한국형 좌표’ 제시해 외교의 일관성·예측 가능성 높여야”
비핵화·평화 협상 방법론으로 ‘인센티브와 디스 인센티브’+‘단계적 접근’ 제시

‘이재명 외교’는 한 마디로 하면 ‘실용’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선거대책위원회 조직 중 후보 직속기구로 ‘실용외교위원회’를 뒀다. 특별한 관심의 표현이자, ‘이재명 독트린’의 철학이 ‘실용외교’라는 열쇳말에 담길 것이라는 대외적 천명이다. 

이 후보는 실용외교위원회 위원장으로 위성락 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주러시아 대사를 선임했다. 위 위원장은 외교부에서 36년간 북방외교·북핵 등 굵직한 사안들을 다루며 정세 판단과 전략 수립 능력을 쌓은 대표적 북핵·북미통으로 ‘베테랑 프로 외교관’이란 표현이 딱 어울린다. 이념과 진영에 휘둘리지 않고 냉정한 판단을 무기로 전략적 외교를 펼치기 때문이다.

그는 시사저널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흔들리지 않을 ‘한국형 좌표’를 제시해 우리의 외교에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고 밝혔다. 북한과의 비핵화·평화 협상 과정에서는 인센티브(이익)와 디스인센티브(불이익), 비핵과 평화 조치를 적절하게 배합하는 ‘정책 믹스’가 중요하다고도 했다. 그는 인터뷰 내내 ‘실용’과 ‘현실’ 그리고 ‘국익’을 말했다. 

ⓒ시사저널 임준선

이재명 후보가 캠프 영입을 위해 삼고초려 했다고 들었다.

“삼고초려라는 말은 부담스럽다. 이 후보가 처음부터 실용외교를 외교관계의 기본개념으로 마음먹고 현장 경험 있고 현실을 아는 참모를 둬야겠다는 생각을 하신 것 같다. 이게 출발점이다. 그래서 연락이 왔다. 처음 만나 뵙고 여러 차례 대화를 나눴다.”

합류의 결정적 계기는 무엇이었나.

“이 후보와 꽤 긴 시간 대화를 나눴는데 매우 인상적이었다. 현실 감각이 굉장히 날카로웠다. 시대의 흐름도 정확히 이해했다. 메시지도 명료했다. 무엇보다 외교 분야에 있어 실용 외교를 중시했다. 이 후보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사고를 한다. 지도자로서 높이 평가할 부분이다. 제가 보좌를 하면 실용외교에 있어 성과를 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에 대통령을 지칭하는 ‘치프 디플로맷(chief diplomat·최고 외교관)’이라는 용어가 있다. 이런 말을 적용할 만했다. 지금처럼 어려운 국제 환경에서 파고를 넘길 수 있는 여러 준비가 되어 계시다는 판단이 들어서 외교팀을 맡아 보좌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위원장의 평소 소신이 민주당의 기존 노선과 충돌할 수도 있다.

“저는 출발점이 현장 외교관(practitioner)이다. 학자나 이론가가 아닌 외교관으로 출발했기에 외교를 늘 현실 속에서 접근해왔다. 그런 관점에서 글도 쓰고 강의도 했다. 그동안 제가 해왔던 일의 목적은 정부나 민주당을 비판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목표를 향해 가는 더 좋은 방법을 제시하려고 했던 거다. 전 언제나 정책 대안을 내려 했다. 이제 제 목적은 이재명 후보의 당선이다. 그래서 제 주장만을 관철시키려고 하지 않을 거다. 의견을 내고 후보가 더 나은 판단을 할 수 있게 다양한 옵션을 드릴 거다. 지금껏 정부에게 정책 대안을 제시한 것처럼 말이다. 더 좋은 안이 있으면 받아들일 것이다. 그게 실용 정신이다.”

그동안 보수적 성향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굳이 설명하자면 전 진보성향이다. 사람이 진보인지 아닌지는 사회경제적 이슈와 정치적 이슈에서 결정된다고 본다. 그러나 외교에 대해선 그보다는 덜 진보적이다. 제가 현장 외교관으로 겪어본 바에 따르면 외교엔 나라의 명운이 달려 있다. 혁신적 실험을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신중하게 대처해야 한다. 그러니 정치권 등에서 볼 때는 자신들보다 덜 진보적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북핵과 북·미 관계 등 외교 업무를 다루는 관료 출신 중에서는 저보다 진보적인 사람은 거의 없다고 본다.”

‘실용외교’가 무엇인가. 왜 ‘실용외교’를 말하나.

“왜 실용외교냐. 실용외교가 더 국익을 지키고, 국익을 극대화하는데 더 나은 선택이기 때문이다. 이념과 당파에 얽매이면 실용적일 수 없다. 이념과 당파에서 벗어나 실용외교를 하면 정책 옵션이 훨씬 다양해지고 수준도 높아진다. 지금 우리나라가 처한 상황도 실용외교를 요구한다.”

그간 진영논리를 뛰어넘는 외교가 필요하다고 강조해 왔다.

“우리가 처한 상황을 보자. 분단됐고, 미·중·일·러 4강에 둘러싸여 있다. 북핵 위기도 있다. 미·중 경쟁으로 촉발된 역학 구도는 과거 냉전만큼의 강도로 한반도 상황을 규정한다. 이 틀 속에 통일과 북핵, 번영 문제가 다 들어있다. 아주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런데 우린 무역으로 먹고 산다. 대외의존도가 매우 높다. 대외관계에, 외교에 한국의 사활이 달려 있다. 이념과 당파에 얽매이면 정책 옵션이 한쪽에 치우치게 된다. 우리처럼 긴박한 상황에 처한 나라의 외교는 진영을 뛰어넘어 정책을 다양하게 섞어야 한다.”

외교에서의 ‘정책 믹스’가 중요하다는 지적인가.

“그렇다. 진보정부는 진보 일색, 보수정부는 보수 일색 정책만 취하는 건 한국적 현실에 효율적이지 않다. 우리가 처한 상황은 복합적이다. 복합적 문제는 복합적 방식으로 대처해야 한다. 구체적 예를 들면, 북한과 협상을 할 때도 대화와 교류협력 같은 ‘인센티브 방식’도 중요하지만 ‘디스 인센티브 방식’의 태도도 취해야 한다는 얘기다. 남북공조만으로는 문제 해결이 안 된다. 국제공조도 필요하다. 평화프로세스와 비핵화 프로세스도 마찬가지다. 융합이 중요하다. 여러 차원에서 복합적 접근방식이 필요하다.”

이 후보의 생각도 같은가.

“이 후보는 북핵 문제의 발단을 들여다보면 원인과 경과가 아주 복합적이라고 자주 이야기한다. ‘북한이 두려워서’ ‘상대를 위협하려고’ ‘협상의 지렛대로 삼으려고’ 등 원인이 다양하고 섞인 것으로 보는 것이다. 그러니 대처하는 방법도 복합적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전 이게 굉장히 중요한 외교 철학이라고 본다. 이 후보는 북한은 물론 중국과도 잘 지내겠지만 문제가 있으면 말하겠다는 실용적 접근을 한다. 중국 대사와 만났을 때 이 후보가 우리의 반중감정이 격화되는 이유로 중국 어선들의 불법조업을 꼽았다. ‘이게 우리 국민에게 굉장히 부정적 인식을 준다’고 말 하시더라. 굉장히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북한과의 협상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후보는 ‘북한이 잘못한 것은 잘못했다고 말하고 가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최근 토론회에서 현 정부 정책을 평가하며 ‘외교는 지금보다 약간 터프하게, 국방은 조금 덜 터프하게 해야 한다’고 했다. 무슨 맥락인가. 

“지략가로 알려진 제임스 매티스 전 미국 국방장관은 ‘외교가 국가를 지키는 제1방어선이라면 국방은 최후의 방어선이기에 외교가 국방보다 우선해야 하고 중요하다’고 했다. 심지어 국방부 예산을 떼서 국무부 예산을 늘려야 한다는 아주 유명한 얘기를 했다. 저도 비슷한 생각이다.” 

자세히 설명해 달라.

“지금 정부는 대북관계에 있어 외교는 굉장히 유연하게 한 반면 국방은 의외로 터프하게 했다. 이전 정부에선 4%선이었던 국방비를 7%까지 늘렸다. 북한은 이를 두고 ‘앞에선 웃고 뒤에선 칼을 간다’는 식으로 비판한다. 이러니 군비경쟁 조짐도 나타난다. 외교를 좀 더 단단하게 하면 국방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주변 4강, 특히 한·미동맹으로부터 확보할 수 있는 정치·군사·경제적 에너지를 많이 확보해 이걸 기초로 북한과 협상을 진행하면 군비 부분에 있어 운신의 폭이 넓어지지 않겠냐는 취지였다. 당시 토론회에서도 이 얘기에 국회 국방위원장을 지낸 분이 큰 공감을 표했다.”

미·중 사이에서 한국 외교가 큰 시험대에 올랐다. 

“맞다. 일부에서는 한국 외교의 중대 현안으로 북핵 문제를 꼽는데, 전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의 우리의 처신이 더 시급하고 중요하 다고 본다. 왜냐하면 북핵 문제는 병으로 치면 고질병과 같다. 위험하지만 당장 오늘내일 일이 나는 건 아니다. 반면 미·중 사이에서의 우리의 운신은 벼랑 끝을 걷는 것과 같다. 한 걸음만 잘못 삐끗해도 크게 다친다. 그런 면에서 이 문제가 훨씬 심각하고 급한 문제라고 본다. 그런데 우리는 미·중 사이에서 큰 고민 아래 전략적 행보를 보이기보단 관성적으로 사안이 생기면 그때그때 대응하는 태도를 보여왔다. 그 결과가 미·중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상황을 가져왔다. 양쪽에서 우리를 잡아당기는 힘은 점점 세지는데 우리의 입지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대안이 있나. 

“미·중 사이에서 누굴 선택하느냐가 아니라 미·중 사이에서 한국이 나아가야할 방향, 그 외교적 좌표를 미리 설정해서 제시하고 일관성 있게 그 길로 나아가자는 제안을 하고 싶다. 그러면 미국과 중국 등 주변국들도 알게 된다. 한국의 정책에 일관성과 일체성, 예측 가능성이 생기고, 상대국은 이 좌표에 따라 외교적 기대치를 조정하게 된다. 이른바 ‘한국형 외교 좌표’를 만들자는 것이다. 방향성을 가지고 운신하면 큰 문제를 피할 수 있다.”

흥미로운 제안이다. ‘한국형 좌표’의 방향은 무엇인가.

“대선 캠프에서 후보를 보좌하는 위치에 있는 만큼 아직 세부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 큰 방향만 말해보겠다. 우리에게 미국은 동맹이고, 중국은 전략적 동반자다. 미국은 우리와 가치가 같고 중국은 다르다. 그러나 중국은 우리와 지리적으로 인접하고 경제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종합적으로 볼 때 우리의 방향은 미국과는 좀 더 깊은 동맹으로 가면서, 중국과는 크게 멀지 않은 방향을 향해 일관되게 가야 한다고 본다. 즉 미국과는 동맹, 중국과는 동반자라는 좌표 아래 꾸준히 움직이면 모두가 우리의 외교 방향을 인지하고 인정하게 된다는 얘기다.”

그럼 쿼드(미국·일본·인도·호주 안보 협의체) 참여 문제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나.

“다시 돌아가 보자. 미·중 사이에서 미국은 동맹이고 중국은 동반자다. 쿼드도 그 연장선에서 판단해야 한다. 쿼드는 미국이 주도해서 인도·태평양지역에서 중요한 네 나라가 모여 기후변화와 팬데믹, 기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을 넓혀나가는 협의체다. 이 세 영역은 우리가 협력을 못할 분야가 아니다. 전 어떤 형태로든 쿼드와 협력관계를 갖는 게 좋다고 본다. 그 방식은 주제별 협력일 수도 있고, 다른 형태의 협력일 수도 있다. 인도는 미국과 동맹도 아닌데 하고 있다. 우리의 공간도 있을 거다.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후보도 ‘쿼드와는 어떻게든 협력하면 좋겠다’고 하셨다.”

중국의 반발이 있을 것이란 우려도 있는데.

“꼭 그렇지 않을 거다. 오히려 ‘계속 중국이 보복할 것’이라고 말하는 게 자기예언적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우린 미국의 동맹이기에 미국에 일정 부분 협력하겠다고 하는 건 문제가 안 된다. 그런데 우리가 ‘안 하겠다’는 입장을 계속 피력하다가 갑자기 방향을 선회하면 문제가 생긴다. 사드 배치 때 그랬다. 우리가 안 할 것처럼 하다가 배치 결정을 하니까 중국은 ‘우리가 신의를 저버린 행동을 했다’고 했다. 그럴 필요 없다. 초기에 판단을 해야 하는데, 그 판단을 위해서는 기준점이 되는 좌표가 필요하다. 그게 없으면 우리도, 그들도 혼란스럽다.”

 

“‘종전선언=주한미군 철수’는 과도한 불안 조성”

이재명 정부에서 사드를 뺄 것이란 일각의 주장이 있다.

“이 후보가 이미 명료하게 입장을 밝혔다. ‘상황이 변했고, 여건이 변하면 그에 맞춰야 한다. 맞추지 못하고 고집하는 걸 벽창호라 한다’고 했다. 자신은 벽창호가 아니라는, 실용적 입장을 밝힌 거다. 사드는 이미 배치됐고, 그 후과도 겪었다. 사드 철수는 논의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종전선언이 뜨거운 감자가 됐다. 어떻게 보나.

“우리가 주도해서 미국과 문안 협의를 하고 있고, 그 문안 협의에 약간 진전이 있어 보인다. 미국은 종전선언은 비핵화의 맥락에서 검토하고, 종전선언이 야기할 수 있는 부수적 문제들에도 대처해야 한다는 입장을 문안 협의에서 반영하려 하는 듯 하다. 중요한 것은 북한의 반응이다. 그동안 북한은 종전선언에 엄청난 조건을 붙여 왔다. 현 정부의 임기가 얼마 안 남았다는 점 등을 감안하면 전 낙관하긴 어렵다는 쪽이다. 종전선언은 실질적으로 평화를 증진하고, 비핵화를 추동하는 쪽으로 가야 하는데 그러려면 남북·미 사이에 더 많은 논의가 있어야 할 거다.”

윤석열 후보는 종전선언이 주한미군 철수와 연결돼있다는 식의 논리를 편다.

“객관적 진단은 아니라고 본다. 우려를 증폭시키는 과도한 불안 조성이다. 종전선언이 주한미군 철수로 바로 이어지지 않는다. 상황을 도식화해서 이분법적으로 가두는 것은 외교에서 효율적 방법이 아니다. 거듭 강조하지만 현실은 훨씬 복합적이고, 훨씬 더 복합적인 대응을 요구한다. 우리가 하기에 따라 그럴 가능성을 줄이고, 막을 수 있는 여러 장치들을 만들 수 있다. 현실을 단순화해서 단순화된 대응을 내놓으면 오히려 상황은 악화되고 문제는 해결이 안 된다.”

북한과의 비핵화와 평화 협상에 대한 방법론은.

“앞서 말한 대로 복합적 접근이 필요하다. 인센티브와 디스 인센티브를 섞고, 비핵화 조치와 평화 조치를 배합하며, 국제공조와 남북 공조를 융합해야한다. 핵이 생존 수단인 북한에 북핵 문제의 일괄 타결을 적용하기는 어렵다. 단계적 접근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협상을 슬라이스(조각)로 나누는 단계적 접근을 용인하더라도 조각을 가급적 큰 덩어리로 만들어야 한다. 너무 얇은 살라미 합의는 득실에 따라 버릴 수 있다. 덩어리로 협상을 해야 협상이 무너지지 않을 수 있다.”

내년 베이징 올림픽을 ‘어게인 평창’으로 만들 수 있을까.

“현 정부의 노력은 평가하고 싶다. 하지만 전망이 좋진 않다. 미국 정부가 베이징 올림픽에 참여하지 않을 가능성도 나오고, 북한은 현재 선수단 공식 참여가 어렵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썩 유리하지는 않다.”

일본과의 관계는 어떻게 해야 할까.

“개선돼야 하고, 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김대중-오부치 선언’은 우리가 지향해야 할 정말 좋은 모델이다. 그 정신으로 돌아가서 서로 풀어야 한다. 정부가 바로 나서기 어렵다면 초당적으로 접근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본다. 한·일 관계를 개선하면 한·미 관계를 강화하고 서로의 신뢰를 높이는데 득이 된다. 인도·태평양지역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응도 쉬워진다. 한국은 지정학적·지경학적 여건을 볼 때 주변국과 척을 지면 안 된다. 이견이 있어서 논쟁을 할 수는 있지만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그게 실용주의다. 지금 상태가 좋다는 건 비현실적 사고다. 일본과 손을 잡으면 문제 해결이 쉽다는 걸 북핵 문제 등을 다룰 때 경험했다. 미국 설득에도 우리 혼자보다는 양국이 함께 하는 게 유리하다. 한·일 관계가 좋으면 우리의 운신의 폭이 넓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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