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라는 옷을 입은 기업은행 배구단의 아마추어 행정
  • 김양희 한겨레신문 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12.03 11:00
  • 호수 1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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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송화 무단이탈로 터진 수면 아래의 불화설
이해 못 할 구단 조치에 여론 악화…사태는 일파만파
김사니 감독대행 결국 자진해서 사퇴

‘하나의 팀, 하나의 정신(One team, one spirit)’. IBK기업은행 알토스 여자배구단 공식 누리집에 있는 문구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하나의 팀’도 ‘하나의 정신’도 없다. 제각각 동상이몽을 꿈꿨고, 결국 파국으로 치달았다. 도쿄올림픽 4강의 기적으로 프로야구 인기까지 넘어서던 여자배구에 흙탕물을 제대로 튀기고 있다. 

시작은 주장이자 세터인 조송화의 시즌 중 팀 무단이탈이었다. 조송화는 11월12일 KGC인삼공사전 이후 숙소를 나갔다. 구단 관계자가 겨우 설득해 팀에 다시 합류시켰지만 나흘 뒤 페퍼저축은행과의 경기 뒤 다시 짐을 쌌다. 2020~21 시즌 전에 FA로 흥국생명에서 기업은행으로 이적해 주장까지 맡은 선수가 1년 반 만에 팀을 등진 것이다. 

더군다나 기업은행이 개막 이후 7연패에 시달리다가 신생팀을 상대로 겨우겨우 시즌 첫 승리를 거둔 직후의 일이었다. 구단은 조송화의 이탈을 감추려 급급하다가 소문이 퍼지자 “조송화가 운동 자체를 포기하고 싶어 한다”고 했다. 

사건은 일파만파 확대됐다. 조송화에 이어 김사니 코치까지 팀을 이탈한 정황이 포착됐다. 기업은행 구단은 “휴가를 낸 것”이라고 했으나 시즌 중 선수, 코치가 동시에 짐을 싼 것은 팀 내부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것이었다. 가뜩이나 세터 출신의 김 코치는 조송화를 지도할 책임이 있었다.

이후 김 코치가 팀에 복귀한 뒤에도 서남원 감독과의 불화설 등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구단 내 문제가 몇 년째 이어졌고 이 과정에서 지난 시즌 플레이오프 때 마음에 들지 않는 사령탑 교체(김우재 감독)를 위해 선수들이 고의로 태업을 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배구 레전드 코치에 스타급 선수가 즐비한 팀이었으나 안으로는 곪아 있던 모래알 군단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와중에 구단은 전격적으로 서 감독을 비롯해 윤재섭 단장을 경질했다. 팀 운영에 불만을 품고 팀을 이탈했던 코치와 선수는 놔두고 부임한 지 겨우 반년밖에 안 되는 감독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아주 이례적인 결정이었다. 더군다나 구단은 공석이 된 감독직을 “팀 정상화에 힘써 달라”는 격려와 함께 임시로 김 코치에게 맡겼다.

11월23일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여자프로배구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와 화성 IBK 기업은행 알토스의 경기. 1세트에 김사니 IBK 감독대행이 선수들에게 작전을 지시하고 있다.ⓒ연합뉴스
11월23일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여자프로배구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와 화성 IBK 기업은행 알토스의 경기. 1세트에 김사니 IBK 감독대행이 선수들에게 작전을 지시하고 있다.ⓒ연합뉴스

상식을 벗어난 기업은행의 결정

누가 봐도 비상식적인 선택이었다. 보통의 프로팀이라면 팀 내분을 일으킨 코치를 내보내고 사령탑에 힘을 실어준다. 하지만 일부 고참급 스타 선수의 지지를 받는 코치라는 이유로 구단은 하극상을 보인 이의 손을 들어줬다. 사실 김 코치는 지난 시즌 직후 새로운 기업은행 배구 사령탑 후보에 올라 있었다. 선수들 의견 취합 결과 차기 감독으로 가장 많은 지지를 받는 코치이기도 했으나 구단의 최종 선택은 서 감독이었다. 

서남원 감독은 남자배구단 코치에 이어 2013년부터 2015년까지 한국도로공사, 2016년부터 2019년까지 KGC인삼공사를 이끄는 등 경력이 풍부한 지도자다. 하지만 50대 감독의 배구 스타일에 대한 호불호는 갈릴 수밖에 없었다. 배구의 인기와 함께 올라간 선수, 코치의 지위에 맞지 않는 ‘올드 스쿨’ 스타일의 지도 방법이 일부 선수의 반감을 샀을 수도 있다. 가뜩이나 팀 성적까지 하위권을 맴돌고 있던 터. 그러나 겨우 1라운드(6경기)를 치렀을 뿐이었다. 후에 밝혀진 사실은 선수단 미팅 때 조송화 및 김 코치의 경우 서 감독의 질의에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서남원 감독 경질 외에도 조송화 신변 처리 과정이 매끄럽지 못했다. 기업은행이 조송화와 계약을 해지하려면 선수 동의 서명이 있어야만 하는데 서 감독이 경질되자 조송화가 은퇴를 번복했다. 기업은행은 올해 바뀐 규정을 숙지하지 못한 채 조송화의 임의해지를 발표했다가 망신만 톡톡히 당했다. “선수로부터 구두 확인을 받았다”고 주장했으나 조송화의 마음은 그새 180도 달라져 있었다.

기업은행은 임의해지 대신 조송화를 방출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경우 조송화에게 1억원 안팎의 잔여 연봉을 지급해야만 한다. 팀을 쑥대밭으로 만든 장본인에게 돈뭉치까지 쥐여줄 수 없는 기업은행은 계약에 대한 법률 검토에 들어갔다. 배구위(KOVO) 상벌위 소집도 요청했으나 배구위는 난감할 따름이다. 팀 이탈 등은 구단 내부 문제이기 때문이다. 

기업은행을 제외한 나머지 6개 구단 사령탑은 김 감독대행을 경기 파트너로 인정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한 현역 감독은 “문제를 일으킨 당사자가 감독대행을 하는 게 말이 되느냐”면서 “한 팀에 감독이 있으면 그 방식이 좋든 싫든 일단 코치가 따라야 한다. 자기 스타일에 맞지 않는다고 불만을 품고 그렇게 행동하면 되느냐”고 했다. 그는 이어 “누구 한 명의 잘못이라기보다는 구단, 코치, 선수 전부 잘못했다. 기업은행 차기 감독으로 누가 부임할지 모르겠지만 앞으로 어떤 선수가 감독 말을 듣겠느냐”면서 “김 코치의 행동은 향후 감독이 되려는 후배들 앞길도 어둡게 했다. 기업은행 사례가 있는데 어떤 구단이 여자 코치를 쓰려고 하겠느냐”고 쓴소리도 했다. 

ⓒ뉴시스
2월13일 경기 화성실내체육관에서 열린 현대건설과 기업은행의 경기에서 기업은행 조송 화가 토스하고 있다.ⓒ뉴시스

넘지 말아야 할 선은 있다

배구 외 다른 프로 스포츠에서도 내부 정치 싸움은 끊이지 않는다. 팀 성적이 안 좋을 때는 흑심을 품은 코치가 노골적으로 야심을 드러내며 감독과 선수 사이를 이간질하기도 한다. 실제로 이런 과정을 통해 권력을 잡은 이도 있었으나 그 끝은 안 좋았고 결국 다시는 현장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다른 이에게 칼을 꽂은 이는 고스란히 그 칼을 되받는다. 

팀 내부 갈등이 심할 때 중심을 잡아야 할 책임은 전적으로 구단에 있다. 이때 구단은 코치가 아닌 현역 감독에게 힘을 실어주면서 팀의 안정을 도모해야 한다. 해당 감독을 영입한 최종 책임은 어찌 됐든 구단 수뇌부에 있기 때문이다. 선수단과도 적당히 거리를 둬야 한다. 구단, 감독, 코치, 선수 간 서로 넘지 말아야 할 선은 분명히 존재한다. 

결국 김 감독대행은 12월2일 자진 사퇴했다. 기업은행 배구단은 ‘프로’라는 간판을 달기는 했으나 아마추어적인 행정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그 파장은 여자배구 전체를 흔들어 놓았다. 또 다른 여자배구 신생팀 얘기가 막 나오고 있던 터라 더욱 곤혹스럽다. 원팀, 기적, 희망 등의 긍정적 단어가 있던 곳에서 태업, 무단이탈, 항명 등의 부정적 단어가 쏟아져 나오며 팬들의 실망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공정이란 잣대가 더욱 깐깐해진 시대. 기업은행은 은행 경영도 과연 배구단처럼 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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