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지붕 尹-李 갈등 왜 반복되나
  • 이원석 기자 (lws@sisajournal.com)
  • 승인 2021.12.03 14:00
  • 호수 1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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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와 차차기의 불가피한 투쟁” 
이준석 측 “그냥은 안 돌아간다”… 윤석열 측도 불만 커

“오랫동안 속에서 곪을 대로 곪은 상처가 드디어 터졌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11월29일 “그렇다면 여기까지입니다”라는 SNS 글을 남긴 채 홀연히 잠행한 것을 두고 당 관계자는 사석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대표는 자신의 행보에 대해 어떤 설명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정치권과 언론은 단번에 이 대표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의 갈등이 폭발한 것에서 원인을 찾았다. 당 관계자가 표현한 것처럼 두 사람의 갈등은 꽤 오래전부터, 특히 속에서부터 곪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사저널 박은숙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와 이준석 당 대표가 11월25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시사저널 박은숙

“이준석, ‘이대론 안 되겠다’ 마음먹어”

두 사람의 신경전이 포착되기 시작한 건 지난 7월말 윤 후보의 국민의힘 입당 당시다. 이 대표가 지역 일정으로 부재중이던 때 윤 후보가 전격 입당하면서 이른바 ‘이준석 패싱’ 논란이 일었다. 이 대표에게 윤 후보의 경선 경쟁자였던 ‘유승민계’라는 꼬리표가 있었기에 분위기는 더 묘했다. 양측은 이후 경선 과정에서 사사건건 부딪쳤다. 경선 룰 등을 놓고 이견을 보이는 과정에서 윤 후보 측에서 “당 대표 탄핵” 이야기까지 흘러나오자 분위기는 점점 더 아슬아슬해졌다.

경선 과정에서의 갈등은 잠시 봉합되는 듯했으나 본선에 들어서면서 신경전은 한층 더 격해졌다. 선대위 구성에서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 원톱 체제를 강력하게 주장한 이 대표와 윤 후보 측의 물밑 신경전이 거셌다. 이른바 ‘파리떼’ 정리 등 김 전 위원장의 요구를 이 대표가 재차 대변했고, 윤 후보 측에선 이를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 분위기가 강했다. 선대위 구성은 결국 김 전 위원장 영입 무산 등 이 대표가 주장한 방향과는 다르게 이뤄져 갔고, 이 대표는 직간접적으로 답답함을 토로해 왔다. ‘이준석 패싱’ 이야기도 계속 나왔다. 특히 최근엔 이 대표가 강하게 반대한 여성·아동인권 보호 전문가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의 공동선대위원장 영입이 결국 성사되기도 했다.

이 대표가 11월29일 SNS 글을 올릴 당시 그는 초선의원 5명과 폭탄주를 곁들인 만찬을 하던 중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다음 날 이 대표는 휴대전화를 끈 채 돌연 지방행을 택했다. 이 대표의 심기를 건드린 건 뭐였을까. 다양한 추측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먼저 선대위 홍보미디어총괄본부장을 맡고 있는 이 대표에게 윤 후보 측에서 홍보 업무를 넘기라고 통보해 이 대표가 분노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 대표 측 관계자는 “홍보본부의 업무 분담 및 인사와 관련해 시중에 떠도는 루머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며 “관련 논의나 의견 교환 자체가 없었다”고 했다. 이 대표가 술에 취해 홧김에 글을 올렸다가 이를 수습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잠행을 택한 것이란 추측도 있다. 이 대표와 가까운 당 관계자는 “정치가 장난도 아니고 그런 무모한 일을 벌이겠나. 술에 취해 실수로 글을 올렸다는 이야기들은 다 거짓말”이라고 부인했다.

현재로선 이 대표가 선대위 구성 등을 포함한 본선 전략 전반이 자신의 생각과 다르게 흘러가자 제동을 거는 승부수를 던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국민의힘 핵심 관계자는 “최근 김종인 전 위원장 영입 포기부터 이수정 교수 영입 등을 놓고 이 대표가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마음을 먹은 것 같다. 쉽사리 돌아오진 않을 것 같은데 윤 후보 측에서 함께 가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으면 상황이 더 심각해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내다봤다.

이 대표는 일정을 전면 취소한 직후 부산과 순천, 여수를 거쳐 제주로 내려갔다. 그는 12월2일 잠행 사흘 만에 언론 앞에 서 윤 후보에 대한 전반적 불만과 함께 특히 ‘윤핵관(윤 후보 측 핵심 관계자)’에 대해 “그 핵심관계자 발로 언급되는 여러 가지 저에 대한 모욕적인 발언들을 상황을 악화시키는 것이다. 특히 윤 후보가 배석하는 자리에서 ‘이준석이 홍보비를 해 먹으려고 한다’는 취지의 발언한 인사는 후보가 누군지 알 것이다. 모른다면 계속 가고 안다면 인사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라고 쏟아냈다. JTBC 인터뷰에선 “당 대표는 적어도 후보의 부하가 아니”라며 “지금까지 대통령 후보 또는 대통령이 당을 수직적 질서로 관리하는 모습이 관례였다면, 그것을 깨는 것부터가 신선함의 시작이라 생각한다”고 윤 후보를 직격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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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12월1일 장제원 의원 지역구인 부산 사상구 당원협의회 사무실을 방문하고 있다.ⓒ연합뉴스

“尹 측, 마이크 안 놓는 李에 불만 상당”

양측의 갈등 상황이 쉽게 풀릴지는 미지수다. 사실 부정적인 전망에 더 힘이 실린다. 윤 후보 측 역시 이 대표의 잠행에 대해 불만이 큰 분위기다. 윤 후보 측 사정을 잘 아는 한 정치권 관계자는 “윤 후보 측은 입당 과정부터 최근까지 이 대표가 윤 후보를 ‘정치 초짜’ 취급을 하며 계속 깎아내리고, 훈수를 두고, 힘을 빼려고 한 것에 대해 불만이 크다”며 “본선은 사실 후보가 주도권을 갖는 게 당연한데 후보는 이 대표에게 많은 양보를 해왔다. 그럼에도 선대위 구성 과정에서 압박이 끊이지 않고, 본인이 마이크를 계속 쥐고 가려는 태도에 대해 윤 후보 측이 큰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윤 후보 측에선 이번에도 이 대표에게 굽혔다간 후보의 권위와 힘이 빠질 것이라는 의견이 상당하다”며 “윤 후보가 이 대표를 직접 찾아 나서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고 전망했다.

윤 후보 경선 캠프에서 청년 특보를 맡았던 장예찬 시사평론가가 12월2일 편지 형식으로 이 대표를 향해 남긴 SNS 글에서도 이러한 분위기가 그대로 드러났다. 장 평론가는 “당초 형(이 대표)이 구상했던 그림과 다른 방향으로 대선이 흘러가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후보의 뜻을 존중하며 정권교체의 밀알이 되어야 할 조연입니다. 이번 한 번만 형의 정치에서 주인공 자리를 후보에게 양보할 수 없나요? 준석이 형, 후보께서 출구 전략을 열어주길 기다리고 있죠? 그런데 아닙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대한민국의 미래와 비전을 설파하며 일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후보가 당내 갈등 때문에 형을 찾아 부산, 순천, 여수, 다음 어딘가를 찾는 게 말이 안 됩니다”라고 했다. 

다만 최근 당내 원로 등이 윤 후보에게 ‘이 대표와 함께 가야 한다. 꼭 모셔와야 한다’는 조언을 다수 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의 잠행에 대해 처음엔 “(이 대표가) 돌아오면 보겠다”며 덤덤한 태도를 보였던 윤 후보도 이 대표를 직접 찾아 설득하는 방안도 검토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윤 후보의 방향성과 전략 전반에 강한 불만을 갖고 있는 이 대표가 단순 설득 정도로 서울로 발길을 옮길지 불확실하다. 12월3일 윤 후보가 제주행을 계획했다는 이야기가 나왔으나 무산된 것도 부정적 전망에 더 힘을 싣는다. 

“자리 다툼 아닌 보수 헤게모니 싸움”

이렇게 서로 물러나지 않는 신경전을 벌이는 두 사람의 갈등에 대해 정치권에선 단순한 알력 다툼 이상의 구도로 바라보기도 한다. 단순히 이번 대선에서의 주도권만을 놓고 벌이는 다툼이 아니라는 분석이다. 일종의 ‘구(舊)보수 대 신(新)보수의 헤게모니 다툼’이란 설명이다. 보수가 앞으로 어떻게 선거를 치러야 할지에 대한 노선 투쟁이기도 하다. 지난 6월 이 대표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당 대표에 선출됐다. 이 대표의 승리 방정식은 전통적인 보수 지지층이 아닌 2030세대와 수도권을 겨냥한 것이었다. 조직과 당심이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 당 대표 선거인데, 이 대표는 이 공식을 깼다. 이 대표가 선출된 이후 2030 당원이 크게 증가했다. 보수의 세대교체라는 평가가 나왔다.

이러한 경험이 있는 이 대표 측에선 윤 후보의 선거 전략과 유세 방식은 ‘과거로의 회귀’다. 선대위 구성과 인선 방식이 모두 과거 정치 스타일이라고 지적한다. 신인규 국민의힘 상근부대변인은 “‘김종인 역할론’과 ‘이준석 패싱’ 등으로 요약되는 논란을 잘 분석해 보면, 결국 보수 내에서 헤게모니 싸움이 벌어지는 거다. 자리 다툼이 아니다. ‘보수가 과연 어떤 비전과 철학으로 국민 앞에 나설 것이냐’를 두고 가치 충돌을 하고 있다. ‘이준석 중심으로 변해야 한다’는 흐름과 ‘이준석 내려와라’라는 과거지향적 보수라는 두 흐름이 있다”며 “보수가 변하지 않으면 이길 수 없다는 점을 이제 인정해야 한다. 탄핵 이후 네 번의 대형 선거에서 진 후 이 대표가 새로운 보수의 모습으로 끌고 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특히 스윙보터라는 중도와 청년 표심은 이미 이쪽으로 가있다. 이를 부정하는 것은 보수의 변화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헤게모니 다툼에서의 패배는 설 자리의 소멸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 대표는 차차기 대선주자로 거론되는 인사다. 따라서 일각에선 두 사람의 갈등을 차기 주자와 차차기 주자의 갈등으로도 본다. 정치권에선 윤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해 정권교체가 이뤄진다고 해도 여소야대 상황 등으로 인해 정계개편 등 정치권에 상당한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 대표 입장에선 그런 불안정한 상황에서 주도권 혹은 정치적 영향력이 없다면 차차기 주자로 설 자리가 사라지게 된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이 대표가 주도권을 지키기 위한 승부수를 최근 던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 분석에 의하면 두 사람의 갈등은 불가피하다.

반면 윤 후보 측 관계자는 “윤 후보가 구보수라는 말에 동의하기 어렵다. 윤 후보는 오히려 기존 보수를 변화시키는 것에 대해 큰 사명감을 갖고 있다”며 “작은 그림이 아닌 큰 그림을 봐야 한다. 윤 후보의 선대위 구성의 큰 그림을 보면 보수 스펙트럼을 키우고 세대를 교체하는 것에 지향점을 두고 있다”고 반박했다.

두 사람의 갈등을 바라보는 당 안팎에선 우려가 상당하다. 국민의힘 내에서 선대위 구성 등을 놓고 잡음이 끊이지 않는 와중에 큰 격차로 앞서던 여론조사 지지율도 거의 좁혀진 결과들이 속속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당의 중진이자 경선에서 윤 후보 캠프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았던 김태호 의원은 “이기는 선거도 끝까지 겸손해야 한다. 하물며 이번 대선은 결코 녹록한 선거가 아니다. 차, 포 다 떼고 이길 수 있는 판이 아니다”며 두 사람을 싸잡아 질타했다. 김 의원은 “당 대표까지 설 자리를 잃으면 대선을 어떻게 치르려는 건가. 누구든 말을 삼가고 자중하길 바란다”며 “후보가 리더십을 발휘할 때다. 후보의 눈과 귀를 가려선 안 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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