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중국 축구 미스터리
  • 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12.29 11:00
  • 호수 16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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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의 축구몽, 일장춘몽으로 끝나나
경제위기에 슈퍼리그는 휘청…월드컵 본선 진출 가능성 ‘제로’

‘중국 선수 중 유일하게 유럽(스페인)에서 뛰고 있는 우레이는 “해외에서 뛰니 우리(중국)가 왜 한국이나 일본을 이기기 어려웠던 건지 알게 됐다. (월드컵) 최종예선 상대 중에서도 팀 전체 자신감과 퀄리티가 다르다”고 한국과 일본이 탈아시아임을 강조했다.’

‘중국 대표팀 귀화 트리오가 전원 브라질로 귀국했다. 이에 중국 현지에서는 2022년 1월 열리는 (월드컵 최종예선) 일본전이 더욱 힘들어지게 됐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12월18일과 20일 일본 축구 전문매체 ‘사커 다이제스트웹’이 연이어 중국 축구의 위기에 대한 분석 기사를 내놓았다. 사실 중국 축구는 세계 축구의 새로운 발전소로 주목받았다. ‘현대판 시황제’로 불리는 절대권력자 시진핑 주석은 치우미(逑迷·축구광)로 유명하다. 취임 후 모든 분야에서 세계 정상에 우뚝 서겠다는 의지를 보인 그는 축구에도 같은 목표를 투영했다. 이른바 축구굴기(蹴球崛起)로 불리는 초대형 축구 부흥 프로젝트였다.

공산당 체제에서 최고 권력자의 관심사는 곧 기업이 투자해야 할 명분이다. 시장경제 체제 아래서도 여전히 토지를 국가에서 불하받아야 하는 부동산업체와 건설업체를 중심으로 슈퍼리그(중국 프로축구리그)에 막대한 투자가 시작됐다. 이른바 황사머니의 유혹을 쫓아 세계적인 선수와 지도자들이 중국으로 향했다. 이렇듯 막대한 돈을 쏟아 붓는데도 중국 축구는 왜 아시아의 벽을 넘지 못하는 것일까.

2016년 전 세계 겨울 이적시장에서 발생한 가장 비싼 거래 6건 중 5건이 중국 슈퍼리그의 선수 영입이었다. 광저우 헝다, 장쑤 쑤닝, 허베이 화샤싱푸, 상하이 상강, 상하이 선화, 베이징 궈안, 산둥 루넝 등이 모두 연간 1200억원이 넘는 예산을 썼다. 특히 광저우와 장쑤는 2000억원을 넘게 쓰기도 했다. 이는 유럽 빅리그에서도 중상위권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Xinhua 연합
9월7일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월드컵 최종예선 일본과의 경기에서 패한 중국 선수들이 침울한 표정을 짓고 있다.ⓒXinhua 연합

유럽 유명 선수들 영입 위해 실속 없이 돈만 써

상하이 상강은 2016년 러시아의 제니트로부터 브라질 국가대표 공격수 헐크를 영입했다. 연봉만 250억원으로 당시 세계 축구 최고 급여 4위에 해당했다. 상하이 선화는 이에 뒤질세라 아르헨티나 국가대표 공격수 카를로스 테베스를 1년 뒤 당시 세계 최고 연봉인 350억원을 주고 데려왔다.

화려한 씀씀이의 최고는 단연 광저우 헝다였다. 2010년 2부 리그에 있던 팀이 헝다그룹에 인수됐다. 쉬자인 회장은 새로운 권력자로 급부상하던 시진핑 당시 부주석의 취향을 잘 파악했다. 팀을 인수한 지 1년 만에 1부 리그로 승격했고, 이듬해 슈퍼리그 정상에 올랐다. 자국 선수들을 쓸어담으며 사실상 국가대표 1.5군에 해당하는 스쿼드를 구축했다. 여기에 그룹명 헝다(恒大)처럼 ‘항상 큰’ 영입을 해내며 세계적 선수를 합류시켰다. 다리오 콘카, 파울리뉴, 질라르디노, 호비뉴, 잭슨 마르티네스, 탈리스카 등 유럽에서도 A급으로 평가받던 선수들을 데려왔다.

인프라 차원에서도 헝다그룹은 막대한 투자를 하며 권력자의 마음을 샀다. 10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초대형 축구전용경기장을 비롯해 축구전문학교 등에도 수천억원을 쏟아 부었다. 중국의 월드컵 본선 진출이 계속 좌절되자 이탈리아 출신 명장인 리피 감독을 국가대표팀 사령탑에 보내고, 연봉까지 지원했다. 엘케손, 알란, 굴라트 등 브라질 국적 선수들은 막대한 연봉을 주고 귀화시켜 중국 대표팀에 합류시키는 등 중국축구협회의 실질적인 후견인 역할을 했다.

하지만 2020년 초 코로나 팬데믹이 몰고 온 유동성 문제로 인한 경제위기는 오버페이로 전 세계의 축구 인력을 빨아들이던 중국 축구에도 심각한 동맥경화를 일으켰다. 2020년 슈퍼리그를 제패한 장쑤 쑤닝은 우승 직후 팀이 해체됐다. 전자제품 유통업체인 쑤닝그룹이 휘청거리자 첫 우승의 영광을 누릴 새도 없이 증발했다. 허베이 화샤싱푸 역시 부동산으로 재벌이 된 싱푸그룹이 디폴트(채무 불이행)를 선언했다. 충칭 당다이는 식비마저 지급되지 않아 선수들이 십시일반으로 해결 중이다.

슈퍼리그의 최대 문제는 인건비에 지나친 거품이 껴있다는 점이다. 평균 선수 연봉이 일본 J리그의 5.9배, 한국 K리그의 11.7배에 이른다. 유명 외국인 선수를 동아시아 무대로 데려오려다 보니 유럽보다 2~3배 많은 연봉을 제시해야 했다. 자국 선수 이적료마저 100억원을 넘는 사례가 나왔다. 뒤늦게 중국 정부와 축구협회가 연봉 상한선(샐러리캡)을 두고, 외국인 선수 영입 시 일정 금액을 넘으면 사치세를 매겼지만 이미 버블이 터진 상태였다.

슈퍼리그의 아이콘이나 다름없던 광저우 헝다도 최근 그룹 부채가 300조원을 넘어 부도 위기에 몰리자 백기를 들었다. 지난 10월 칸나바로 감독이 계약을 해지하고 팀을 떠나 주장인 정즈가 감독대행이 됐다. 200억원이 넘는 연봉을 지급하기로 했던 귀화 선수들도 잡지 못하게 됐다. 현재 슈퍼리그 내부에서 임금 체불이 없는 팀은 산둥 루넝, 상하이 상강 두 팀 정도로 알려졌다.

이번 시즌이 끝나면 다수 구단의 연쇄 부도가 예상되는 가운데 이제 그 부담은 고스란히 중국 정부가 짊어질 수밖에 없다. 현재와 같은 추세로 기업들이 손을 뗄 경우 지자체에 해당하는 각급 성과 특별시 체육국이 인수해 운영해야 한다. 2023년 아시안컵을 개최하는 중국은 대형 경기장도 새로 건설 중이다. 광저우 헝다가 건설비 2조원을 투입해 짓고 있는 축구전용구장이 대회 기간 내 메인 스타디움이 될 예정인데, 결국 중국 정부가 최근 인수해 완공하기로 했다.

 

무늬만 중국 국가대표인 브라질 선수로는 한계

총체적 개혁이 필요하지만 시진핑 주석은 여전히 ‘축구몽’에 머물러 있다. 11월25일 중국 국가체육총국(우리의 문체부에 해당)은 ‘14차 5개년 체육발전 계획’을 통해 축구를 비롯한 구기 종목의 목표와 실현 방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현장의 반응은 냉소적이다. 목표로 제시한 5만 개 축구클럽을 이끌 지도자가 일단 현저히 부족하다. 지도자 라이선스를 보유한 인력이 모자라다 보니 지난 수년간 한국의 아마추어 지도자가 대거 중국으로 건너가 취업하기도 했다.

개인 종목과 달리 단체 종목에서는, 특히 축구는 조직력이 중요한데 중국의 오랜 1가구 1자녀 정책 속에서 선수들의 개인주의 성향이 짙게 깔려 있다 보니 팀플레이가 전무하다. 외국인 선수를 대거 활용할 수 있는 클럽팀에서는 극복 가능하지만 대표팀은 다른 문제다. 결국 거액의 연봉을 조건으로 귀화시킨 선수를 대표팀에서도 활용하기로 했지만, 애국심에서 나오는 헌신과 희생이 필요한 상황에서 무늬만 중국 국가대표인 브라질 선수로는 한계가 있다. 그 결과 현재 중국은 2022 FIFA 카타르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 B조에서 1승2무3패로 6개 팀 중 5위를 기록 중이다. 사실상 월드컵 본선 진출 가능성이 ‘제로’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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