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도 못 비껴간 ‘사과의 정치학’
  • 조문희 기자 (moonh@sisajournal.com)
  • 승인 2021.12.27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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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 부풀리기 의혹에 4차례 사과했지만 ‘반쪽 사과’ vs ‘진심 사과’ 평가 엇갈려
반복되는 정치인들의 ‘부적절 사과’ 논란…김건희 사과, 尹에 미칠 영향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배우자 김건희씨가 자신을 둘러싼 경력 부풀리기 의혹에 직접 사과했지만 후폭풍에 휩싸였다. 김씨의 사과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면서다. 야당은 “진심이 담긴 사과”라고 옹호했지만 여당은 “반쪽 사과”라며 평가 절하했다. 정치권은 김씨의 사과가 민심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윤 후보 측이 경력 부풀리기 의혹에 직접 사과한 것은 이번이 4번째다. 지난 15일 윤 후보와 김씨가 각각 고개를 숙인 데 이어, 이틀이 지난 17일 윤 후보가 “아내와 관련된 국민의 비판을 겸허히 달게 받겠다”고 사과했다. 세 차례 사과 이후에도 논란이 진화되지 않자, 김씨는 26일 기자회견을 열어 “모든 게 제 잘못과 불찰”이라고 했다. 김씨가 공식적으로 언론 앞에 서서 목소리를 낸 것은 이날이 처음이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부인 김건희 코바나컨텐츠 대표가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자신의 허위 이력 의혹과 관련해 입장문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부인 김건희 코바나컨텐츠 대표가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자신의 허위 이력 의혹과 관련해 입장문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尹, 연이은 사과 ‘미스’…4번 고개 숙여도 비판은 여전

문제는 4번의 사과가 모두 일각에서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았다는 점이다. 윤 후보의 첫 번째 사과에서는 “아무리 우리 가족이 그렇게 생각한다 해도 국민 전체가 보셨을 때 미흡한 점이 있다면 그 부분에 대해서는 사과한다”고 한 표현이 문제가 됐고, 김씨의 첫 번째 사과에서는 “사과할 의향이 있다”고 한 표현이 도마에 올랐다. ‘국민이 그렇게 느꼈다면 사과할 의향이 있다’고 단서를 달아, 사과의 기본 문법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이번에는 김씨가 “모든 것이 제 잘못이고 불찰”이라고 한껏 몸을 낮췄지만, 경력 부풀리기에 대한 해명 내용은 담기지 않은 데다 사과문의 상당부분을 윤 후보와의 개인사에 할애해 ‘부적절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여권에서는 “신파 코미디(안민석 의원)”, “악어의 콧물(장경태 의원)”, “국민이 아닌 남편에 대한 사과(김용민 의원)”라고 쏘아붙였다.

윤 후보 측이 부적절한 사과로 여론의 뭇매를 맞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윤 후보는 지난 10월에도 전두환 옹호 논란을 일으킨 발언에 대해 사과하면서 소셜미디어에 반려견에 사과를 주는 사진을 올려 홍역을 치른 바 있다. 이번 김건희씨 사과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계속된다면 윤 후보 측이 연달아 ‘부적절 사과’ 논란에 휩싸이게 되는 터라, 더 치명적일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17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배우자 김건희씨를 둘러싼 각종 논란과 관련해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서 죄송하다”고 사과한 뒤 고개숙여 인사하고 있다. ⓒ 국회사진기자단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17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배우자 김건희씨를 둘러싼 각종 논란과 관련해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서 죄송하다”고 사과한 뒤 고개숙여 인사하고 있다. ⓒ 국회사진기자단

잘못된 사과로 홍역 치른 정치인들…尹은?

통상 사과의 기본 문법은 △구체적으로 △진정성 있게 △적기에 하는 것이 정석으로 꼽힌다. 정치인들에게 사과는 숙명이지만 실패한 사과는 해를 낳는다. 2016년 국정농단 사건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가 대표적이다. 박 전 대통령은 당시 최순실씨(현 최서원)와 관련된 의혹을 구체적으로 해명하지 않은 채 “이러려고 대통령 됐나 자괴감 든다”고 했다. 대통령이 국민 앞에 머리 숙여 사죄했는데도 분노한 민심은 마음을 돌리지 않았다.

또 1997년과 2002년 대선 당시 이회창 후보의 아들 병역비리 의혹에 대한 태도 역시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대표적 사례 중 하나로 꼽힌다. 이 후보는 ‘대쪽 검사’ ‘강골 검사’ 이미지로 유리한 판세를 점하다, 아들 의혹에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고 해명과 반박으로 일관하다 여론의 외면을 샀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후보 본인도 “정치적으로 너무 미숙했다”고 회고한 바 있다.

2016년 11월4일 서울 용산구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관련 '대국민담화 발표' 생중계를 지켜보고 있는 모습 ⓒ 시사저널 박정훈
2016년 11월4일 서울 용산구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관련 '대국민담화 발표' 생중계를 지켜보고 있는 모습 ⓒ 시사저널 박정훈

이 때문에 야권에선 김건희씨 사과의 진정성을 부각시키려 노력하는 분위기다. 이수정 국민의힘 공동선대위원장은 27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사과문은 김건희씨가 직접 썼기에 감성적인 부분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고 두둔했다. 사과의 문법에 비춰볼 때 부족한 점이 있더라도, 다른 정치인의 도움 없이 김씨 본인이 직접 사과문을 작성했기에 진심을 전달하기엔 손색없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김근식 선대위 정세분석실장도 같은 방송에서 “포괄적으로 제기된 의혹에 일일이 해명을 하는 것도 변명으로 느껴질 수 있다”며 “진정성이 전달됐다는 측면에서는 상당히 괜찮았다”고 옹호했다.

다만 김씨의 사과가 여론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미지수다. 김씨의 사과가 사전 예고 없이 26일 갑자기 이뤄져, 해당 사건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는 아직 발표되지 않았다. 현재까지 여론조사 판세는 윤 후보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엎치락뒤치락을 반복하는 모습이다. 이날(27일) 발표된 리얼미터-오마이뉴스(19~24일, 3090명)에서는 두 사람 간 격차가 6.4%포인트에서 0.7%포인트로 크게 줄어들었고(윤석열 40.4%, 이재명 39.7%), KSOI-TBS(24~25일, 1000명) 조사에서는 격차가 20.9%포인트에서 1.8%포인트로 소폭 줄었다(이재명 37.6%, 윤석열 35.8%).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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