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창선·우오현·김상열…호남 기업인 3대장의 ‘평행이론’
  • 박창민 기자 (pcm@sisajournal.com)
  • 승인 2022.01.05 10:00
  • 호수 16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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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통 키워드는 흙수저·광주 건설사·M&A·언론사 사주
문재인 정부 출범 후 고속성장해 ‘뒷말’도

광주에 기반을 둔 중흥·SM·호반그룹의 성장세가 거세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들 세 기업은 이름조차 생소한 변방의 향토기업에 불과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출범 전후로 공격적인 사업 확장에 나서면서 대기업 반열에 올랐다. 재계에도 ‘호남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는 것이다.

그 배경에는 정창선 중흥그룹 회장과 우오현 SM그룹 회장, 김상열 호반그룹 회장 등 총수의 강력한 리더십과 사업 수완이 자리하고 있다. 시사저널이 이들 세 기업인의 성장 과정을 분석한 결과 흙수저, 광주 건설사, 인수·합병(M&A), 언론사 사주, 문재인 정부라는 공통된 키워드가 나타났다. 세 사람의 행적은 ‘평행이론’이라고 불릴 정도로 여러 면에서 겹치는 부분이 많았다.

ⓒ일러스트 김세중
ⓒ일러스트 김세중

# 가난한 집안 출신 자수성가형 기업인

먼저 정창선·우오현·김상열 회장은 어렸을 때 찢어지게 가난했다. 정창선 중흥그룹 회장은 1942년 광주 북구에서 가난한 농부의 3남 5녀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당시 많은 사람이 그랬듯 가난의 서러움을 톡톡히 겪으며 자랐다. 정 회장은 중학교를 졸업하고, 가족 생계와 형제자매의 교육을 위해 19세 어린 나이에 목수로 건설 현장에 뛰어들었다.

우오현 SM그룹 회장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1953년 전라남도 고흥에서 8남매 중 일곱째로 태어났다. 우 회장은 당시 지역 명문이었던 광주상업고등학교를 다녔지만, 등록금이 없어 대학 진학을 포기할 정도로 집안 형편이 어려웠다. 이 때문에 그는 고 3때부터 생활비를 벌기 위해 양계장을 운영했다. 당시 병아리 10여 마리로 시작해 닭 2만 마리를 키워 양계장 사업을 일궈냈다는 건 우 회장의 유명한 일화 중 하나다.

김상열 호반그룹 회장도 어렸을 때 가난에 허덕였다. 1961년 전라남도 보성에서 태어난 그는 어려운 가정 형편 탓에 학업을 제대로 마치지 못했다. 어린 나이에 일과 공부를 병행하면서 6년 만에 야간으로 광주고등학교 부설 방송통신고를 졸업했을 정도다.

이 때문에 재계에서는 이 세 사람을 대표적인 자수성가형 기업인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어려운 가정 환경으로 제때 학업을 마치지 못했지만, 누구보다 일찍 생업에 뛰어들어 세상을 보는 남다른 안목과 사업적 기반을 다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연합뉴스·뉴시스

# ‘신화의 시작’이 모두 광주인 건설사

세 기업인은 주택시장의 호황기였던 1980년대에 건설업에 뛰어들어 성장을 이어갔다는 점도 비슷하다. 정 회장은 건설 현장에서 알게 된 인연들과 의기투합해 1983년 중흥건설의 전신인 금남주택을 세웠다. 단독주택과 연립주택 사업 등으로 성장한 그는 1989년 광주 북구 중흥동에서 중흥건설로 상호를 변경하면서, 본격적인 아파트 건설 사업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광주·전남 등을 기반으로 주택 건설 및 분양 사업을 펼치며 성장했다. 2000년대 중흥건설은 아파트 브랜드 ‘중흥 S-클래스’를 내놓으면서 전국구 건설사로의 도약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당시 광주에 지어졌던 중흥 S-클래스는 지역에서 ‘귀족 아파트’로 꼽힐 정도로 잘나갔다. 이 외에 신도시와 대규모 택지지구의 아파트 사업에 진출하면서 전국구 건설사로 몸집을 키워갔다.

우 회장은 1988년 광주에서 SM그룹의 모태인 삼라건설을 창업했다. 건설 사업은 빠르게 자리를 잡아갔다. 광주에서 아파트 ‘삼라마이다스’로 큰 성공을 거뒀다. 당시 분양만 하면 다 팔린다는 말이 나와 삼라건설은 ‘마이다스의 손’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후 우 회장은 1996년 건설사 삼라마이다스를 설립했다. 처음엔 광주에서만 볼 수 있었던 삼라마이다스 아파트는 점차 영역을 넓혀 전국적으로 뻗어나갔다. 우 회장은 1990년대 중반에 불어닥친 IMF 한파로 경영위기에 처한 건설사들이 헐값에 내놓은 택지들을 매입하면서, 수도권 진출을 위한 교두보를 마련했다. 삼라마이다스(SM)는 우 회장이 2007년 그룹명으로 사용할 정도로 SM그룹의 정체성을 상징한다.

김 회장은 광주 중소 건설사에서 일하다가 1989년 호반을 창업했다. 1990년대에는 광주에서 아파트 건설 사업을 했으며, 2000년대 들어 아파트 브랜드 ‘호반리젠시빌’로 민간임대 아파트를 호남 일대에 공급하면서 몸집을 키웠다. 2005년에는 ‘호반베르디움’ 브랜드로 수도권에 진출해 본격적인 아파트 자체 시행·시공 사업으로 시장 영역 확장과 함께 기업의 입지를 넓혔다.

 

# 공격적인 M&A로 대기업 반열에 올라

이들 기업 성장 과정에서 M&A는 빼놓을 수 없는 핵심 요소다. 중흥·SM·호반그룹은 모두 공격적인 인수·합병을 통해 성장했다. 세 기업 총수는 모두 대우건설·아시아나항공·쌍용차 등 각종 굵직한 M&A에 이름을 올리면서 주목을 받기도 했다.

정 회장은 이번에 대우건설을 인수하면서, 대기업 재계 서열의 판도를 뒤흔들었다. 중흥그룹의 자산총액은 9조2070억원으로 재계 순위 47위에 머물러 있다. 대우건설 자산총액 9조8470억원을 합칠 경우 총 19조540억원으로 재계 서열 21위까지로 치솟는다. 19조원대 기업인 카카오(19조9520억원·18위), DL(19조6270억원·19위), 미래에셋(19조3330억원·20위)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다.

재계에서 M&A 하면 우 회장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모태인 삼라와 삼라마이다스를 제외한 모든 계열사를 인수·합병을 통해 얻어 SM그룹을 일궜다. SM그룹은 2004년부터 우방산업의 전신인 진덕산업 인수를 시작으로 벡셀(2005), 경남모직(2006), 남선알미늄(2007), 티케이케미칼(2008), C&우방(2010), 대한해운(2010) 신창건설(2011) 등을 연달아 인수했다.

이 때문에 우 회장은 재계에서 ‘M&A의 귀재’라고 불린다. 그는 주로 법정관리 기업들을 인수해 정상화시키면서 M&A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건설사인 모기업을 시작으로 제조·해운·서비스·레저 부문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SM그룹의 2021년 계열사 수는 58개로 재계 순위 38위에 올랐다.

김 회장도 새로운 성장동력 발굴을 M&A를 통해 꾀하고 있는 모습이다. 지난해 기준으로 호반건설의 시공능력평가 순위는 13위로 대형 건설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으며, 호반그룹은 재계 순위 44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부동산 시장의 불안정성 등을 감안해 김 회장은 건설뿐만 아니라 레저·금융·유통·언론 등 다양한 영역에서 사업 확장을 본격화하고 있다.

2016년 토목 사업 진출을 위해 울트라건설을 인수했으며, 2019년도에는 법정관리를 받던 리솜리조트를 비롯해 골프장들을 인수했다. 이 외에 삼성금거래소, 대아청과 등을 인수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국내 케이블 업계 2위인 대한전선까지 삼켰다. 아울러 호반그룹은 서울신문 등 다수의 언론사까지 잇따라 인수하면서 큰 주목을 받았다.

# 언론사 사주로 또 한번 이미지 변신

우연의 일치일까. 정 회장과 우 회장, 김 회장은 ‘대기업 총수’라는 직함뿐만 아니라 ‘언론사 사주’라는 타이틀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정 회장은 2017년 광주 지역 일간지인 남도일보를 인수하면서 언론사 사주가 됐다. 그러다 2019년 중흥그룹이 홍정욱 헤럴드 회장에게서 헤럴드 지분 47%를 매입해 최대주주가 됐다. 업계에 따르면 중흥그룹이 헤럴드를 인수하기 위해 약 750억원의 자금을 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헤럴드는 헤럴드경제와 코리아헤럴드를 발간하고 있다.

우 회장은 현재 울산 지역 민방인 UBC울산방송을 소유하고 있다. SM그룹은 2019년 5월 한국프랜지공업으로부터 200억원에 UBC울산방송 지분 30%를 인수했다. 하지만 SM그룹이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대기업집단)이 되면서 UBC울산방송 지분을 매각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방송법은 자산 10조원이 넘는 대기업이 지상파 방송사 지분을 10% 초과해 보유할 수 없도록 정하고 있다. SM그룹은 2021년 기준으로 자산이 10조4289억원을 기록해 올해 처음으로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정하는 대기업(상호출자제기업집단)이 됐다. 

김 회장은 최근 서울신문을 비롯해 여러 언론사를 무더기 인수하면서 미디어 제국을 꿈꾸고 있다. 호반그룹은 지난해 KBC광주방송을 매각하고 전자신문과 온라인 경제 매체인 EBN을 차례로 사들였다. 아울러 호반건설은 2019년 포스코의 서울신문 지분을 인수한 뒤 2년 만에 서울신문 인수를 완료했다. 호반그룹은 언론사들을 아우르는 서울미디어홀딩스까지 출범시켰다. 김 회장은 서울미디어홀딩스 대표이사 회장을 맡아 미디어 부문을 총괄하고 있다.

그동안 지역을 근거지로 삼는 건설사들의 경우 해당 지역 언론사를 소유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중흥·SM·호반그룹이 성장해 전국 단위로 사업을 하게 되면서 인지도가 높은 언론사 등을 선호하게 된 것으로 풀이된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건설사들이 지역 언론사를 통해 인허가 문제 등을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며 “리스크나 평판, 대관 (對官) 관리 등에 언론사가 도움이 되기 때문에 건설사 기업인들이 언론사 사주가 되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1월15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기업인과의 대화에서 기업인들 의 질문을 듣고 있다. 이날 행사에는 정창선 중흥그룹 회장(오른쪽)과 우오현 SM그룹 회장 (왼쪽)도 참석했다.ⓒ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1월15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기업인과의 대화에서 기업인들 의 질문을 듣고 있다. 이날 행사에는 정창선 중흥그룹 회장(오른쪽)과 우오현 SM그룹 회장 (왼쪽)도 참석했다.ⓒ연합뉴스

# ‘문재인 정부’ 최대 수혜 기업이었나

이들 세 기업은 문재인 정부에서 특히 고속성장했다는 공통점도 갖고 있다. SM·호반그룹은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 처음으로 자산총액 5조원을 넘기면서 처음으로 공정거래위원회 공시대상기업집단(준대기업)으로 지정됐다. 앞서 중흥그룹은 박근혜 정부인 2015년 공시대상기업집단에 지정돼 문재인 정부에서 대기업 반열에 올랐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중흥·SM·호반그룹이 문재인 정부의 최대 수혜 기업이라는 말도 나온다.

세 회사가 모두 이번 정부에서 급성장한 탓에 각종 특혜 논란도 따라다녔다.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은 대우건설을 중흥그룹에 매각하는 과정에서 인수 가격 인하와 재입찰 등 석연치 않은 절차로 국회와 시민단체로부터 특혜 의혹이 불거졌다. 서울신문의 1대 주주인 기획재정부는 호반그룹의 서울신문 지분 매입에 동의하면서 사실상 문재인 정부가 서울신문 경영권을 호반그룹에 넘겼다는 뒷말도 많았다. 아울러 우 회장은 이낙연 전 국무총리 친동생과 문재인 대통령의 친동생을 잇달아 SM그룹에 영입하면서, 정치권의 정권 특혜 의혹 비판의 단초를 제공하기도 했다.

반면 민주당 정부에서 호남 기업들이 어깨를 펴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 재계 관계자는 “한동안 호남 기업들은 좀처럼 기를 펴지 못했지만, 이번 정부가 들어서면서 승승장구하고 있다”며 “그동안 수많은 기업이 정권에 따라 흥망성쇠가 갈렸다. 특히 호남 기업들은 이런 양상이 더욱 두드러졌다”고 말했다.

이어 재계 관계자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는 호남 기업인 팬택·대주·프라임그룹 등이 잘나갔지만,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는 이들 기업이 모두 각종 부패 사건으로 검찰 수사를 받으면서 무너졌다”며 “기업이 크기 위해, 혹은 커질수록 정치권의 입김이 필연적으로 작용한다. 그러다 보면 온갖 특혜 의혹과 구설에 휘말릴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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