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앞두고 ‘추경’만 외치는 여야 [김상철의 경제 톺아보기]
  • 김상철 경제 칼럼니스트(전 MBC 논설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2.10 10:00
  • 호수 16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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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정부 추경 합친 것보다 많아…구체적인 재원 조달 방안 없어 우려

정부가 14조원 규모의 올해 첫 추가경정예산안을 확정했다. 추가경정예산은 한 해 예산안이 국회를 통과해 확정된 이후 변경할 필요가 있을 때 다시 추가 편성하는 예산이다. 국회가 올해 예산 607조7000억원을 확정한 것이 지난해 12월3일이었다. 물론 여당과 야당의 합의를 거쳤다. 당시 국회는 기획재정부가 제시했던 정부 예산안 604조4000억원보다 무려 3조3000억원을 늘려 잡았다. 기껏 여야가 의견을 모아 예산을 확정하고 단 두 달 만에 다시 예산을 짜려 한 것이다.

상식적인 일은 아니다. 1월 추경은 6·25 전쟁 때인 1951년 1월 이후 71년 만이다. 14조원 중 80.7%인 11조3000억원은 적자 국채를 발행해 충당한다. 나머지 2조7000억원은 공공자금관리기금 여유자금을 활용한다. 현 정권 5년간 총 추경 규모는 151조3000억원을 기록하게 됐다. 횟수로는 10번째 추경이다. 노무현 정부의 5회, 17조1000억원과 이명박 정부의 2회, 33조원 및 박근혜 정부의 3회, 39조9000억원을 모두 합친 것보다 61조원 이상 많다.

ⓒ시사저널 이종현
2021년 7월24일 국회에서 열린 제389회 국회(임시회) 제3차 본회의에서 2021년도 제2회 추가경정예산안이 재석 237인, 찬성 208인, 반대 17인, 기권 12인으로 가결되고 있다.ⓒ시사저널 이종현

총선·보선·대선 등 선거 때만 되면 편성

이번 추경은 코로나 재확산으로 피해가 큰 소상공인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다. 물론 취지야 바람직하다고 하겠지만, 추경의 법적 요건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국가재정법 제89조는 추경 편성 요건을 3가지 정도로 규정하고 있다. 우선, 전쟁이나 대규모 재해가 발생한 경우이고, 그다음으로 경기침체와 대량실업, 남북관계 변화와 경제협력 같은 대내외 여건의 중대한 변화나 변화가 예상되는 경우, 끝으로 법령에 따라 국가가 지급해야 하는 지출이 발생하거나 증가할 경우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이미 확정된 예산에 변경을 가할 필요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한 소상공인 피해 지원은 여섯 차례 추경에 더해 올해 예산에도 이미 반영돼 있다. 손실 보상에 대한 선지급금 지원과 대상 확대가 지난해 말부터 시작됐고, 정해진 예산이 아직 집행되지도 않은 상태다. 예비비 등의 재원도 남아있다. 사실은 예상보다 늘어난 수입에 대해서도 사용처가 이미 규정돼 있기는 하다. 지방교부금, 공적자금상환기금 상환, 국가채무 상환에 먼저 쓰라는 것이 국가재정법의 규정이다.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돈이 아니다.

정부가 이번 추경으로 쓰겠다는 ‘14조원’이라는 숫자는 어디서 나왔을까. 지난해 11월말 기준으로 초과 세수는 9조1000억원이었다. 아직 12월 국세 수입이 발표되지 않았지만, 과거의 경우를 보면 연간 초과 세수는 26조원 이상 될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약 40%가 지방교부세와 지방 교육교부금 등으로 먼저 나가야 한다. 그러면 정부가 추경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재원은 15조원쯤 된다. 14조원은 사실상 예상되는 초과 세수만큼을 잡아놓은 숫자다.

초과 세수라는 말에서 오해가 일어나기 쉽겠다. 남는 돈이라는 말은 아니다. 우리나라 재정은 지난해에도, 올해도 수입이 지출보다 100조원 정도 모자란다. 늘 적자여서 부족한 돈을 국채로 메워야 한다. ‘초과 세수’의 비교 기준은 예측 세수다. 정부의 당초 예측치보다 결과치가 많으면 초과 세수가 생긴다. 쓰고 남았다는 게 아니라 들어올 것으로 예상한 세금보다 더 많이 걷혔다는 뜻에 불과하다. 그래서 산정 기준시점에 따라 다르기도 하다. 지난해 예산을 확정했던 2020년 말 기준으로 계산하면 초과 세수는 무려 59조원이다. 기획재정부가 잘못된 예측으로 추경의 명분을 만들어놓은 셈이다. 당장 국채를 발행하는 이유는 원래 초과 세수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오는 4월까지 기다렸다가 2021회계연도 결산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쓸 돈은 없으니 일단 빚을 내는 것이 불가피하다.

재정의 역할을 부정할 수는 없다. 코로나19 확산이 여전한 상황에서 정부의 방역정책으로 피해를 본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를 도와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은 물론이다. 물가와 자산 가격 때문에 통화정책으로 경기를 부양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재정정책은 가장 확실한 경기부양책이다. 추경에 따른 경기부양 효과는 과거 사례가 뒷받침한다. 우리나라 재정지출 승수는 0.5 전후로 추정된다. 정부 지출을 100원 늘리면 국민소득이 50원 내외 증가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추경이 기대하는 효과를 거두려면 시기와 구체적인 지출 계획이 중요하다. 무조건 아무 데나 퍼붓는다고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다. 현 정부는 출범 이후 지난해까지 9차례 추경을 하면서 225조7000억원의 적자 국채를 발행했다. 이번 10차 추경에서 11조3000억원이 추가되면 총 적자 국채 규모는 237조원으로 늘어난다. 이로 인해 국가채무 규모는 사상 처음으로 1000조원을 돌파해 1076조원 정도로 불어나게 됐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본예산 기준 50%에서 50.5%까지 오를 전망이다. 국민 1인당 국가채무도 최초로 2000만원을 넘게 된다.

재정 건전성은 국회 논의 과정에서 더 악화할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정부의 2차 방역지원금(1인당 300만원, 총 9조6000억원) 등을 포함한 소상공인 지원이 턱없이 부족하다며 추경 규모를 35조원에서 45조원 수준으로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와 국회의원 83명은 100조원 추경 편성을 촉구하는 대정부 결의안을 내놓기도 했다. 증액에 대해 여야가 같은 목소리를 내는 것은 지금까지는 보지 못했던 모습이다. 보통 추경 편성이 언급될 때면 여당이 증액을 요구하고 야당은 반대로 감액을 주장해 왔다. 문재인 대통령도 야당 시절에는 항상 여당이 추경을 요구하면 재정 건전성 회복을 위한 세입 확충 방안을 함께 가져와야 한다는 주문을 했었다. 이번에는 여야가 오로지 한마음이다.

권칠승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2021년 7월26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중 기부 4년 성과 및 2021년 2차 추가경정예산 집행계획을 발표하고 있다.ⓒ연합뉴스

GDP 대비 국가채무 50.5%까지 상향 전망

물론 구체적인 재원 조달 방안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2020년부터 이번 추경까지 7차례에 걸친 추경 중 여섯 번이 국채를 재원으로 삼았다. 상습적인 국채 발행으로 물량이 시장에 과도하게 풀리면 채권 가격이 하락하고, 장기금리가 올라간다. 그렇다고 국채 발행 대신 세출 구조조정으로 재원을 마련하자고 주장하는 것도 현실적이지는 않다. 세출 구조조정은 실효성이 낮은 사업의 규모를 줄이거나 폐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당연히 본예산이 어느 정도 집행된 시기가 돼야 사업별 구조조정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 예산을 집행한 지 겨우 한 달이 지난 지금은 가능한 논의가 아니다.

현 정부와 여당이 선거를 앞두고 추경을 편성한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 재난지원금 14조3000억원을 나눠준 2020년 총선 무렵의 추경과 나랏빚을 10조원까지 내가며 15조원 규모로 편성한 지난해 서울과 부산시장 보궐선거 직전 추경, 그리고 대통령선거를 앞둔 이번 추경이다. 이번 추경이 올해 마지막은 아닐 것이다. 차기 정부가 출범하면 경기 활성화를 이유로 추경에 또 나설 가능성이 크다. 6월에는 지방선거가 예정돼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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