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100’이 대체 뭐길래? [최준영의 경제 바로읽기]
  •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2.13 10:00
  • 호수 16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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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후보 토론회에서 뜬금없이 등장한 용어 싸고 논란 가열
재생에너지 체계 다시 바라보는 기회 삼아야

대통령 후보 토론회에서 등장한 ‘RE100(Renewable Energy 100%)’이라는 단어가 뜬금없이 화제가 되고 있다. RE100은 기업 소비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조달한다는 민간 차원의 운동이다. 비영리단체인 기후그룹(The Climate Group)과 CDP(Carbon Disclose Project)가 공동으로 추진하고 있으며 2014년 9월 유엔 기후정상회의에서 공식적으로 도입됐다. RE100에 참가하는 기업들은 2050년까지 사용전력 전부를 친환경 발전원에서 조달할 것을 공개적으로 선언하고, 이행 실적을 매년 공개해야 한다. RE100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매년 사용한 전력량을 집계하고, 친환경 발전원을 통해 생산되고 소비한 전력량을 산정해 인증받아야 한다. RE100에서 인정하는 친환경 발전원은 태양광, 태양열, 풍력, 수력, 지열, 바이오매스, 및 그린수소를 활용한 연료전지로 정해져 있다.

ⓒ시사저널 최준필
제20대 대통령선거가 34일 앞으로 다가온 시점에서 주요 후보 4인이 참여한 첫 TV토론이 열린 2월3일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TV로 방송을 시청하고 있다.ⓒ시사저널 최준필

‘소비전력 100%를 재생에너지로 조달’ 목표

RE100 참여 기업들은 친환경 전력을 자체 설비에서 조달하거나 외부로부터 구매해야 한다. 구매 방안은 녹색프리미엄, 공급인증서 구매, 전력구매계약(PPA) 등 3가지로 구분된다. 기업이 자체적으로 재생에너지를 조달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지만 현실적 여건을 고려해 대안을 허용하고 있는 것이며, 해외 기업들 역시 자체 조달보다는 외부 구매 비중이 훨씬 높다.

RE100에 동참하고 있는 기업은 2021년 12월말 기준, 세계적으로 총 349개에 이른다. 2021년 1월 기준으로 RE100 참여 기업 중 미국 기업의 재생에너지 사용비율은 57%, 영국 기업의 경우 57%지만 중국 29.8%, 일본 10.1%로 상대적으로 아시아 국가는 낮은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특히 출발이 늦은 우리나라 기업들은 2040년 이후를 RE100 달성 시점으로 설정한 상태다.

자체 조달을 제외하고 RE100을 달성할 수 있는 수단으로는 크게 녹색프리미엄 지불, 재생에너지공급인정서(REC) 구매, PPA가 있다. 녹색프리미엄의 경우 기존 전기요금과 별도로 녹색프리미엄을 발전사업자에게 납부하는 방식이며 입찰을 통해 가격을 결정한다. REC 구매란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가 판매하는 REC를 친환경 전력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PPA의 경우 발전사업자와 전기소비자가 PPA를 체결하고, 구매계약의 양만큼 친환경 전력으로 인정하는 방식이다. 인증서 구매와 녹색프리미엄의 경우 RE100이 달성하고자 하는, 기업을 통한 재생에너지 설비투자 확대에 직접적으로 기여하지 못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실효성이 낮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반면 PPA는 초기 자금 조달이 상대적으로 용이하고 비용 및 수익의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어 신규 재생에너지 설비 증가에 효과적이다. PPA는 장기계약으로 체결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구매자와 발전사업자가 모두 재무적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 연료비 부담이 없는 친환경 전원 특성상 구매자는 연료 가격 변동 없이 장기간 고정가격으로 전력을 구매할 수 있어 미래 발생 비용을 예측하기 쉬우며 중장기적으로는 전력 비용 절감도 가능하다. 발전사업자는 신용도 높은 기업 구매자에 의해 장기간 안정적인 전력 판매 수입이 보장되기 때문에 자금 조달이 용이하며 사업의 안정성 확보가 가능하다.

국내 기업의 RE100 참여가 다른 나라에 비해 여러 가지로 부족한 이유가 우리나라의 경직된 전력거래 제도에 있다는 지적이 많다. 우리나라는 전기사업법 및 전력시장운영규칙에 따라 전기소비자가 발전사업자로부터 직접 전력을 구매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경우 2019년부터 미국, 유럽, 중국 사업장에서는 사용전력의 92%를 친환경 발전원으로 충당하고 있으나 국내에서는 그 비중이 극히 낮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PPA가 활성화된 해외의 경우 수십 MW 이상 대규모 재생에너지 건설 프로젝트와 연계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론적으로 복수의 PPA 사업자가 존재할 경우 비용을 낮추기 위해 대규모 재생에너지 발전원 확보에 나설 것이며, 이를 통해 기업은 저렴한 재생에너지 전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되고, 다시 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를 확대함으로써 RE100이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송·배전망에 대한 망중립성 확보, 적정 망이용료 산정, 이용요금 부과 및 부담 주체 등이 정해져야 하지만 구체적인 방안은 물론 이에 대한 논의도 진행되지 않고 있다. 기존의 전력공급 및 운영체계 전반에 대한 대폭적인 변화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제도가 제3자 PPA다. 발전사업자-한전, 한전-전기소비기업의 2단계 계약으로 직접구매 금지를 우회하는 것이다. 전력 판매와 송·배전을 한전의 독점 영역으로 유지하면서 재생에너지 판매 확대라는 모순된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한국적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연합뉴스
박기영 산업통상자원부 2차관이 2021년 10월 서울 대한 상공회의소에서 열린 ‘RE100 참여 기업 및 관계기관 간 담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경직된 전력거래 제도로 RE100 지지부진

우리나라 기업의 RE100 참여 확대의 또 다른 어려움은 다른 국가에 비해 높은 재생에너지 가격이다. 미국, 독일 등의 2020년 상반기 기준 태양광과 육상풍력의 균등화발전가격(LCOE)은 MWh당 50달러 이하로 산업용 전력요금의 44~97% 수준이다. 하지만 국내 재생에너지의 경우 태양광 106달러, 육상풍력 105달러로 국제 가격의 2배 수준이다. 산업용 전기요금과 비교했을 경우에도 9~10% 정도 비싸기 때문에 RE100 추진 속도는 늦춰질 수밖에 없다. 국내 주요 제조업종의 평균 연간 이익률이 5%대 중반인 점을 감안하면 이와 같은 차이를 감내하기는 쉽지 않다. 또한 기업이 비용부담을 감내하더라도 대규모 사업장에 필요한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대규모 재생발전원이 부족하고 송전망 추가 설치 등이 해결돼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대통령 후보 토론회에서 뜬금없이 불거진 RE100 논란은 어쩌면 우리 사회가 재생에너지에 대한 체계 전반을 다시 한번 검토하고 새로운 도전을 시도할 수 있는 기회일지도 모른다. 재생에너지 확대는 필수적이지만 단순한 의욕과 목표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지난 5년의 경험을 통해 우리는 알게 됐다. 대통령선거에서 어느 쪽이 승리하더라도 가야 할 길은 명백하다. 기존의 장점을 살리면서 미래의 변화를 촉진할 수 있는 방안을 진지하게 고민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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