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딩크호’보다 훨씬 더 화려한 ‘벤투호’의 미리보는 베스트11
  • 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2.14 11:00
  • 호수 16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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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강 넘어 8강으로, 축구 대표팀 새 역사 쓸 수 있을까
미리 보는 카타르월드컵 ‘베스트11’의 면면

파울루 벤투 감독은 2018년 선임 당시 대한축구협회로부터 3가지 목표를 부여받았다. 그를 데려온 김판곤 전력강화위원장(현 말레이시아 국가대표 감독)은 “아시안컵 우승, 월드컵 10회 연속 본선 진출, 그리고 월드컵 8강을 제시했다. 벤투 감독은 충분히 매력적인 도전이라고 했다. 자신에게 시간만 준다면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내겠다고 약속했다”고 말했다.

벤투 감독은 부임 후 6개월 만에 치른 2019 UAE 아시안컵에서는 카타르에 일격을 맞고 8강에서 멈춰야 했다. 하지만 두 번째 평가 잣대였던 월드컵 본선행은 조기 통과로 가볍게 달성했다. 이제 9개월 앞으로 다가온 카타르월드컵 본선에서의 성적이 대한축구협회와 국민이 긴 시간 투자한 비용과 관심으로 받게 될 최종 선물이다.

2002 한·일월드컵 4강 신화 이후 이제 월드컵의 기본 목표는 ‘16강’이 됐다. 그런데 벤투 감독에게는 왜 8강일까? 현 대표팀의 인적 구성과 전력 면에서 역대 최고라는 평이 붙기 때문이다. 한국과 아시아 역대 최고를 넘어 월드클래스 반열에 오른 공격수 손흥민(토트넘)이 주장으로 팀을 이끌고 있다. 그렇다고 손흥민 원맨팀도 아니다. 황의조(보르도)·황희찬(울버햄튼)·이재성(마인츠)·황인범(루빈 카잔)·김민재(페네르바체) 등 유럽파 전원이 경쟁력 높은 리그에서 주전으로 활약 중이다. 김영권(울산)·정우영(알사드)·이용(전북) 등 경험이 충분히 쌓인 베테랑과 송민규(전북)·조규성(김천)·이동준(헤르타BSC) 등 젊은 피의 신구 조화도 지난 4년간 벤투 감독이 잘 끌어냈다.

왼쪽부터 토트넘 홋스퍼 손흥민, 지롱댕 보르도 황의조, 울버햄튼 원더러스 황희찬, 페네르바체 김민재ⓒ연합뉴스

빅리그 주전 공격수 손흥민·황의조·황희찬 조합 ‘역대 최강’

포지션별로 살피면 공격진은 역대 최강의 원투펀치를 보유했다. 세 번째 월드컵을 준비 중인 손흥민은 A매치를 96경기나 소화한 팀의 확고부동한 리더다. 최근 A매치에서 필드골을 넣지 못하는 긴 침묵으로 우려를 샀지만 최종예선 들어 시리아·이란·이라크를 상대로 중요한 득점을 해내며 에이스다운 면모를 보였다. 소속팀 토트넘에서도 맹활약하며 유럽에서도 최고 레벨로 평가받는다.

문제는 손흥민이 막힐 경우다. 지난 2018 러시아월드컵 당시에도 손흥민이 멕시코와 독일을 상대로 득점을 올렸지만 경기 내내 붙는 2~3명의 수비수를 뚫기 위해 홀로 안간힘을 써야 했다. 그러나 4년 전과는 상황이 달라졌다. 황의조가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 리그1의 보르도에서 주전 공격수로 활약 중인 황의조는 지난 시즌 12골을 기록한 데 이어 올 시즌도 9골(2월6일 기준)을 기록하며 유럽 빅리그에서 두 자릿수 득점을 해내는 골잡이임을 입증했다. 이미 2018년 아시안게임 당시에도 손흥민이 막히면 황의조가 득점을 책임지는 패턴을 보여주며 둘의 공존 효과를 선보인 바 있다.

프리미어리그로 건너와 황소의 위력을 제대로 발휘, 임대 생활 반년 만에 울버햄튼으로 완전 이적한 황희찬도 자신의 두 번째 월드컵에선 달라진 모습을 예고하고 있다. 4년 전 만 22세였던 황희찬은 무리한 공격 시도로 턴오버를 남발하고, 전술적 역할을 수행하지 못해 독일전에서 투입 23분 만에 재교체된 적도 있었다. 이제는 훨씬 성숙해진 플레이와 특유의 파괴력 있는 돌파를 살려 손흥민·황의조와 함께 상대 수비를 압박한다. 여기에 최종예선을 통해 새로운 최전방 공격 옵션으로 급부상한 조규성, 벤투 감독이 요구하는 플레이 스타일에 부합하는 김건희(수원)가 월드컵으로 가기 위한 치열한 경쟁을 예고 중이다. 측면에도 이동준·송민규·정우영(프라이부르크)이 손흥민·황희찬과 함께 상대 수비진을 부술 자원들이다. 각자의 개성과 퀄리티 모두 황선홍·안정환·최용수·박지성·설기현·이천수 등이 있던 2002년 못지않다는 평가를 받는다.

벤투호의 허리는 지난 10년 가까이 중원을 이끈 기성용과 구자철이 아시안컵을 끝으로 국가대표 동반 은퇴를 선언한 뒤 긴 시간 물음표가 달렸다. 존재감이 확실한 선수가 없다는 지적이 이어졌지만, 벤투 감독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포스트 기성용’으로 정우영(알사드)에게 절대적 신뢰를 보냈다. 186cm, 78kg으로 센터백에 가까운 신체 조건을 갖춘 정우영은 1차 수비저지선 역할을 하는 동시에 프리킥까지 소화할 수 있는 정교한 킥 능력으로 빌드업과 좌우 전환을 책임졌다. 여기에 ‘벤투의 황태자’ 황인범이 러시아 무대 진출 후 한층 안정적인 플레이를 펼치고 있다. 최종예선에서 도전적인 패스, 과감한 슈팅으로 공격을 지원하는 사령관 역할을 했다. 정우영과 황인범은 벤투 감독이 아시안컵 이후 외부의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기회를 준 선수들이다.

두 선수가 중원에서 밸런스를 잡으면 공격으로의 연결 고리는 두 왼발잡이 미드필더 이재성과 권창훈(김천)이 맡는다. 개성이 각자 다른데, 이재성은 엄청난 활동량으로 공수를 오가며 동료들이 활용할 공간을 열어준다. 순간적으로 공격에 가담해 직접 공격포인트를 올린다. 정교한 왼발 슈팅과 유연한 돌파가 강점인 권창훈은 선발 혹은 슈퍼서브로 나설 수 있다. 여기에 백승호(전북)·김진규(부산)가 최근 기회를 받으며 상대적으로 얇은 미드필드의 두께를 채워주는 중이다.

기본적으로 헌신적이고, 밸런스를 잡아주는 선수를 선호하는 벤투 감독의 성향상 화려함은 부족하다. 하지만 2002년의 유상철·김남일 조합의 성공에서 보듯 객관적으로 강팀이 아닌 한국이 경쟁력을 가지려면 허리에서는 엄청난 기동력과 수비 안정감이 1번이다. 이강인(마요르카)이 최종예선에 한 번도 소집되지 못한 이유도 이런 맥락과 닿아있다. 특유의 날카로움을 앞세워 스페인 무대에서 성장하고 있지만, 대표팀 중원을 이끌어줄 세기와 조율이 더해져야 하는 상황이다.

 

유럽파 대형 수비수 김민재의 존재감 압도적

수비라인에서는 김민재의 존재감이 손흥민만큼 돋보인다. 중국 무대에서부터 쟁쟁한 외국인 공격수들을 압도했던 그는 유럽에 진출한 지 반년도 안 돼 기량을 증명하며 빅리그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 이런 상승세로 베테랑 김영권·권경원(감바 오사카)을 넘어 수비의 확실한 리더가 됐다. 부상으로 지난 러시아월드컵 출전이 좌절됐던 김민재는 자신의 첫 월드컵에 대한 의욕이 넘치는 상태다. 벤투 감독은 센터백에는 새 얼굴 없이 김민재·김영권·권경원에 박지수·정승현(이상 김천)까지 5인 체제를 긴 시간 유지 중이다. 오른발잡이 3명(김민재·박지수·정승현)과 왼발잡이 2명(김영권·권경원)으로 구성한 것은 빌드업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서다.

양 측면 수비도 마찬가지다. 오른쪽에는 이용과 김태환(울산), 왼쪽에는 김진수(전북)와 홍철(대구)이 있다. 모두 만 30세를 넘긴 베테랑이다. 여기에 양 측면을 모두 소화할 수 있는 멀티플레이어 강상우(포항)를 대기시킨다. 최종예선 내내 선택지는 동일했다. 수비라인에는 새로운 얼굴보다는 월드컵을 비롯한 큰 무대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이 주는 안정감에 더 신뢰를 보내는 것이 벤투 감독의 확실한 성향이다.

골키퍼 포지션도 역대 최고였던 2002년에 준한다. 당시 이운재와 김병지가 본선 직전까지 치열한 주전 경쟁을 펼쳤다. 현재 벤투호도 전성기에 이른 김승규(가시와)와 조현우(울산)가 주전 경쟁 중이다. 김승규가 최종예선에서는 한발 앞서가는 모양새지만 러시아월드컵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친 조현우도 본선에서의 흐름에 따라 다시 나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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