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다 더 좋을 순 없는 푸틴과 시진핑의 밀월관계
  • 모종혁 중국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2.15 07:30
  • 호수 16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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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사태·베이징 올림픽 외교적 보이콧 등으로 ‘反美’ ‘反서방’ 이해관계 맞아떨어져

2월5일 중국 SNS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관한 동영상으로 뜨거웠다. 전날 오후 베이징에 도착해 동계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한 푸틴이 자신을 향해 손을 흔드는 중국 여기자에게 맞인사하는 장면이었다. 동영상을 직접 보면, 여기자는 VIP석에 서있는 푸틴 대통령 방향으로 영상을 촬영하면서 계속 손을 흔들었다. 처음에 이를 눈치채지 못한 푸틴은 여기자와 눈이 마주치자, 두 손을 들어 흔든 뒤 엄지 척까지 했다. 그런데 이 순간을 중국 관영 신화통신이 촬영해 전 세계로 타전했다.

다음 날 신화통신의 보도를 본 여기자는 자신의 SNS에 동영상을 공개하며, 사진이 찍힌 전후 사정을 알렸다. 동영상을 본 중국 네티즌의 반응은 푸틴 대통령에 대한 찬양 일색이었다. “푸틴이 참석했으니 이미 충분해. 서구의 마귀 같은 지도자들은 오든 안 오든 상관없어” “칠십이 넘은 할아버지답지 않게 정말 기골이 장대하네” “나는 러시아의 물건이라면 무엇이든 구매할 거야” 등 온갖 호감을 드러냈다. 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도 러시아 선수단이 입장할 때 수만 명의 중국 관중은 마치 자국 선수단을 맞이하듯 열렬한 박수를 보냈다.

ⓒAP 연합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월4일 베이징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베이징동계올림픽 개막과 시 주석과의 정상회담을 위해 이날 베이징에 도착했다ⓒAP 연합

‘반나절 지각’ 외교적 결례에도 극진히 대접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을 맞아 중국과 러시아의 밀착이 그 어느 때보다 두드러지고 있다. 개막식에 직접 참석했던 푸틴 대통령의 행보부터 남다르다. 이번 동계올림픽에는 20여 명의 국가 정상급 지도자가 중국을 방문했다. 중국 언론은 “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도 적지 않은 인사가 참석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2008년 베이징하계올림픽 때는 68개국 정상이 중국을 찾았다. 게다가 이번에 참석한 지도자의 절반은 권위주의 국가에서 왔다. 민주주의로 분류될 수 있는 나라는 8개국뿐이다. 또한 전 세계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국가가 적었다. 대부분이 중앙아시아와 아프리카·중남미 국가들이었다.

이렇듯 14년 전과 판이한 상황은 미국·영국·캐나다·일본 등 서방국가들이 중국의 인권 문제를 지적하며 외교적으로 보이콧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참석했던 일부 국가의 정상은 노골적으로 중국의 투자와 지원을 노렸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해외순방을 전혀 하지 않았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이런 와중에 푸틴 대통령의 방중은 그 어느 때보다 무게감을 주었다.

국제 정치외교 무대에서 러시아의 비중이 큰 데다, 푸틴 대통령이 보기 힘든 진기록을 세웠기 때문이다. 푸틴은 2008 베이징하계올림픽에도 참석했었다. 그는 베이징에서 열린 두 차례 올림픽 개막식에 다 참석한 유일한 정상이 됐다. 이런 ‘특별한 손님’ 맞이에 중국이 쏟은 정성도 남달랐다. 방중 하루 전인 2월3일에는 신화통신이 푸틴 대통령의 기고를 보도했다. 기고문 제목부터가 의미심장하게 ‘러시아와 중국, 미래를 내다보는 전략적 동반자’였다.

이 글에서 푸틴 대통령은 중국과 러시아가 “새 시대로 접어들면서 포괄적 동반자 관계와 전략적 협력 관계로 전례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평가했다. 또한 “시진핑 주석과 양자, 지역, 국제 어젠다에 대해 포괄적인 논의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당일 저녁에는 중국 국영 CCTV가 종합뉴스 프로그램에서 푸틴 대통령과의 서면 인터뷰를 보도했다. 푸틴은 “국제 어젠다의 대다수 문제에서 러시아의 입장은 중국과 일치하거나 매우 가깝다”고 밝혔다. 게다가 “스포츠를 정치화하는 데 반대한다”며, 외교적 보이콧을 한 서방국가들을 비판했다.

이렇게 떠들썩하게 판을 깔아준 중국은 푸틴 대통령의 접대에도 극진했다. 개막식 전에 시진핑 주석과의 단독 오찬을 마련했던 것이다. 그에 반해 다른 국가의 정상들은 2월5일 시 주석 주최의 단체오찬만 참석할 수 있었다. 더욱 놀라운 일은 4일 벌어졌다. 푸틴 대통령이 예정 시간보다 반나절 늦게 베이징에 도착하는 외교적 결례를 범했다. 하지만 중국은 항의 없이 오찬을 만찬으로 대체했다. 시 주석과 푸틴 대통령은 만찬 직전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는 팬데믹 이후 대면 외교활동을 중단했던 시 주석이 2년 만에 외국 정상을 처음 만난 것이다.

만찬까지 끝마친 뒤 양국 정상은 ‘새 시대 국제관계와 글로벌 지속적 발전에 관한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공동성명은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의 추가 확장에 반대하고 나토가 냉전 시절의 이념화된 접근법을 포기하길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중국은 러시아가 제기한 장기적이고 법률적 구속력이 있는 유럽 안전보장 제안을 지지한다”고 덧붙였다. 지난 수년 동안 ‘반미(反美)’를 고리로 밀월관계를 유지했던 두 정상이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미국에 대한 전선을 공고히 한 것이다. 사실 두 정상이 만나 반미 공조를 보일 것이라는 전망은 일찍부터 나왔다.

그러나 양국의 밀착은 예상을 뛰어넘었다. 실제로 두 나라는 푸틴 대통령의 방중에 맞춰 경제적 유착까지 강화했다. 2월4일 러시아 국영 가스기업인 가스프롬은 “중국석유천연가스공사(CNPC)와 연 100억㎥의 천연가스를 극동 가스관을 통해 중국에 공급하기 위한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이는 양사가 2014년 연 380억㎥의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30년 동안 중국에 공급하는 계약을 맺은 뒤 2번째다. 당시 계약액은 무려 4000억 달러에 달했다. 러시아는 동부 시베리아부터 2000km의 가스관을 건설해 2019년 12월부터 천연가스를 중국에 공급했다.

그런데 이번에 극동 가스관으로 연해주와 사할린에서 생산되는 천연가스를 중국에 공급하면서 수출 규모가 연 480억㎥로 늘어났다. 게다가 가스프롬과 CNPC는 서부 시베리아에서 몽골을 경유해 중국으로 들어가는 가스관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같은 날, 러시아 국영 석유회사인 로스네프티도 “CNPC와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을 통해 10년 동안 1억 톤의 원유를 중국에 추가로 공급하는 협정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로스네프티는 지난 2005년부터 지금까지 모두 4억4200만 톤의 원유를 중국에 수출한 바 있다.

 

중국이 러시아에 안겨준 특별한 선물

이러한 중국의 러시아산 천연가스와 석유 수입은 단순한 경제적 협력에 그치지 않는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대유럽 에너지 수출이 막혔을 때를 대비해 전략적인 대체지를 확보한 셈이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처음 불어졌을 때부터 미국은 유력한 대러시아 제재 수단으로 노르트스트림2 천연가스관을 꼽아왔기 때문이다. 노르트스트림2는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독일로 보내는 대규모 가스관이다. 지난해 9월 시설은 완공됐으나, 미국의 압력으로 가동되지 못하고 있다. 2월7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에 대한 명확한 경고장을 날렸다.

워싱턴에서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와 정상회담을 가진 뒤 “러시아가 국경을 넘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다면 노르트스트림2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미국의 입장에 따라 숄츠 총리는 러시아산 천연가스 수입을 줄이겠다고 밝혔다. 독일은 가스 수요의 55%를 러시아에서 충당한다. 이에 맞서 중국과 러시아는 지난해 12월 국제 금융 시스템에서 달러화의 영향을 낮추고자 양국 간 폐쇄 무역 네트워크까지 구축한다는 데 합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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