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조 대출 연장 종료 임박…‘자영업 대란’ 현실화하나
  • 유길연 시사저널e. 기자 (gilyeonyoo@sisajournal-e.com)
  • 승인 2022.02.16 07:30
  • 호수 16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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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당국 “질서 있는 정상화” vs 자영업자 “이러다 다 죽는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대출 만기 연장 및 원리금 상환 유예 정책이 올해 3월 종료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경영 상태가 크게 악화된 자영업자의 부담 역시 커질 것이란 우려가 크다. 자영업자 대출은 매번 대규모 부실 사태의 ‘뇌관’으로 꼽혀왔다. 정치권에선 “자영업 대란을 막기 위해서는 정책을 추가 연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실제로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코로나19 금융지원 실적’ 자료에 따르면 올해 1월말까지 만기가 연장되고 원금·이자 상환이 미뤄진 대출 총액은 140조5067억원이다. 만기가 연장된 대출(재약정 포함) 잔액은 총 129조6943억원이다. 원금을 분할 납부하던 것을 미뤄준 규모는 9조6887억원이고, 이자 유예 대출은 1조573억원으로 집계됐다.

ⓒ연합뉴스
국내에서 코로나19가 발생한 지 2년이 되면서 소상공인들은 거듭된 대출에 이자·원금 상환까지 부담이 커지며 대부분 한계상황에 다다르고 있다. 사진은 1월20일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 모습ⓒ연합뉴스

대출 급증·매출 하락·금리 상승 ‘3중고’

정부와 금융 당국은 지난 2020년 4월부터 중소기업·소상공인을 대상으로 대출 만기를 연장해 주고 원금과 이자 상환을 미뤄줬다. 당초 6개월간 실시될 예정이었지만 세 번 연장되면서 올해 3월말까지 정책이 이어지게 됐다. 정부는 코로나19 방역 상황과 자영업자의 어려움을 보고 재연장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월8일 국회 예결위 종합정책질의에서 “2월말이나 3월초에 연장 여부를 결정해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금융권에선 금융 당국이 추가 연장 없이 오는 3월말에 예정대로 정책을 종료할 것으로 전망한다.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질서 있는 정상화’를 여러 번 강조한 바 있다. 1월19일엔 “만기 연장·상환 유예 조치는 3월말 종료를 원칙으로 하되 종료 시점까지 코로나 방역 상황, 금융권 건전성 모니터링 결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주요 은행들은 이미 정책 종료 후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는 데 분주하다. 유예 종료일과 납입일을 미리 안내하고 대출자들과 상담을 통해 가장 적절한 상환 계획을 마련하기로 했다. 상환 능력이 부족하다고 판단된 차주에 대해선 장기분할상환 대출로 전환하는 등 별도의 지원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문제는 자영업자들의 매출이 회복되지 않아 대출 상환 능력이 크게 떨어졌다는 점이다. 지난해 10월 숙박·음식업 생산은 2019년 12월(서비스업 생산지수 계절조정지수 기준)의 89.8%, 여가서비스업 생산은 72.8% 수준에 머물렀다. 영업 실적이 회복되지 않다 보니 자영업자의 소득도 코로나19 이후 큰 폭으로 감소했다. 소득 감소는 자영업자의 가계대출 급증으로 이어졌다. 작년 9월말 기준 전체 자영업자 대출 가운데 개인사업자 대출은 304조원으로 약 3분의 1을 차지했다.

무엇보다 여러 기관에서 대출을 끌어쓴 다중채무자가 급증해 부실 가능성이 커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용평가기관 나이스(NICE)평가정보에 따르면 작년 11월말 기준으로 다중채무자 수는 27만2308명으로 코로나 사태 전인 지난 2019년 말과 비교해 두 배 넘게 늘었다. 이들의 채무액도 같은 기간 101조원에서 157조원으로 증가했다. 전체 기업대출 잔액(632조원)의 24.8%에 달하는 규모다.

자영업자들이 영업 부진으로 신용도가 하락하자 대출금리가 더 높은 제2금융권에서 생활자금을 구한 점도 위험을 키우는 대목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작년 8월 기준 금융권별 전년 동기 대비 개인사업자의 가계대출 증가율은 은행 6.5%, 보험·상호금융조합 8.4%, 캐피털·카드 9.6%, 저축은행 15.5% 등이다. 빚을 갚을 능력이 떨어진 상황에서 대출금리 상승은 자영업자에게 큰 부담이 될 전망이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기준금리를 지난해 8월, 11월 각각 올리더니 새해가 되자 추가로 인상했다. 기준금리는 종전 0.5%에서 1.25%로 올라섰다.

 

정치권에서도 ‘추가 연장’ 목소리 커져

윤두현 국민의힘 의원이 한국은행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대출금리가 1%포인트 오르면 이자 부담은 5조8000억원 증가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0.5%포인트 오를 때 이자 부담 증가 규모는 2조9000억원, 0.25%포인트 상승이면 1조5000억원 늘어날 것으로 예측됐다.

자영업자들은 정책 연장이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소상공인연합회 관계자는 “아직 코로나 사태가 지속되면서 소상공인들의 어려움도 계속되고 있다”면서 “대출금리 상승도 큰 부담이니만큼 대출 연장 및 이자 유예 정책은 어떤 정부가 들어서든 계속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최근 오미크론의 급격한 확산으로 사회적 거리 두기가 연장되면서 자영업자들의 고통은 더욱 커지고 있다. 한국외식업중앙회 등 10개 소상공인 단체로 구성된 ‘코로나 피해 자영업 총연대’(코자총)는 2월15일 광화문 인근에서 정부를 규탄하는 ‘릴레이 삭발식’과 ‘청와대 시가행진’ 등을 예고했다. 코자총은 1월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자영업자 299명이 삭발을 진행하는 집회를 개최한 바 있다.

유력 대통령 후보들 역시 대출 지원 정책을 추가 연장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2월8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2년 전 코로나로 시작된 소상공인, 중소기업의 대출금 상당수는 이번 3월 만기가 도래한다고 한다”며 “그분들이 한계에 몰리면 우리 경제 전체가 흔들린다. 당장 만기 연장과 상환 유예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도 최근 “금융 당국과 금융권의 결단을 통해 대출 만기 연장과 상환 유예 조치를 취해 달라”고 촉구했다.

금융권 일각에선 정책이 추가로 연장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대선이 3월에 예정돼 있는 만큼 새로 들어서는 정권이 정책 연장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오미크론 확산으로 자영업자들의 매출 회복이 더딘 상태에서 대출 연장 정책을 종료하면 자영업자들의 불만이 커질 것”이라며 “새 정부가 들어서면 이러한 정치적 부담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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