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단일화 제안한 安…‘철수 정치’의 손익계산서
  • 박성의 기자 (sos@sisajournal.com)
  • 승인 2022.02.14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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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박빙 경쟁에…安, 당선가능성 낮아지만 ‘협상력’ 커져
4번째 단일화 시도에 “제3지대 지지기반 크게 잃어” 비판도

“후보 단일화는 절대 없을 것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지난 1월4일 70분간 진행된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거대 기득권 양당 후보 중 누가 당선돼도 시대교체와 국민통합은 물 건너간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그러면서 “3강 체제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이길 사람은 저 안철수뿐”이라고 했다. 그러나 40일 뒤 안 후보가 말을 뒤집었다. 돌연 윤 후보에게 야권후보 단일화를 먼저 제안하면서다.

선거 때면 반복되는 안 후보의 단일화 수순에 정치권 일각에선 ‘철수 정치’라는 비아냥도 나온다. 안 후보가 표의 유불리에 따라 말을 쉽게 바꾼다는 비판이다. 안 후보 측도 이 같은 시선을 인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안 후보가 단일화를 먼저 입에 올린 이유는 무엇일까.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11일 오후 서울 중구 매경미디어센터에서 열린 한국기자협회 주최·방송 6개사 공동 주관 '2022 대선후보 초청 토론'에서 인사를 마친 뒤 이동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11일 오후 서울 중구 매경미디어센터에서 열린 한국기자협회 주최·방송 6개사 공동 주관 '2022 대선후보 초청 토론'에서 인사를 마친 뒤 이동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제20대 대통령 후보자 등록 첫날인 지난 13일, 안 후보는 윤 후보를 향해 ‘여론조사 국민경선’ 방식을 통한 야권후보 단일화를 제안했다. 안 후보는 이날 온라인으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이번 대선은 구체제 종식과 정권교체라는 두 개의 대의가 있고 이는 압도적 승리가 뒷받침돼야 가능하지만 한 사람의 힘만으로 실현하기 힘들다”며 단일화 제안 배경을 밝혔다.

안 후보는 야권후보 단일화 방식으로 지난 4·7 서울시장 재보궐선거 당시의 여론조사 방식을 제시했다. 국민경선 방식의 여론조사를 통해 단일화 후보를 정하자는 설명이다. 안 후보는 “압도적 승리를 위한 단일화 방식은 지지자는 물론 후보를 정하지 못한 국민들도 동의할 합리적 방식이어야한다”며 “누가 더 적임자인지는 오롯이 국민 판단에 맡기면 경선은 복잡할 일도 시간끌 일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민의힘의 반응은 차갑다. 안 후보의 최근 지지율이 두 자릿수대 밑으로 내려온 상황에서 윤 후보와의 ‘1:1 담판’은 불합리한 주장이란 게 야권 수뇌부의 반응이다. 이양수 국민의힘 선거대책본부 수석대변인은 13일 입장문을 통해 “윤 후보와 안 후보 간 지지율 격차가 큰 상태에서 정권교체를 바라지 않는 민주당과 이재명 후보의 농간에 넘어가 야권 분열책으로 악용될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2011년 9월6일 당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서울시장 보궐 선거 후보 단일화 관련 기자회견을 마치고 박경철 안동신세계연합병원장(왼쪽)과 포옹을 하고 있다. ⓒ시사저널 윤성호
2011년 9월6일 당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서울시장 보궐 선거 후보 단일화 관련 기자회견을 마치고 박경철 안동신세계연합병원장(왼쪽)과 포옹을 하고 있다. ⓒ시사저널 윤성호

尹-李 초접전 상황에서 安 캐스팅보트 쥐어

윤 후보 측의 반응은 예견돼 왔다.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1, 2위를 달리는 윤 후보가 3위 후보인 안 후보의 제안을 받는다면 경우에 따라 대선을 코앞에 두고 야인(野人)으로 되돌아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안 후보 측도 이 같은 상황을 계산했을 것이란 게 정치권 관측이다. 그럼에도 안 후보가 대선이 한 달도 안 남은 이 ‘타이밍’에 단일화 카드를 던진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생각보다 윤 후보의 상황이 녹록지 않다. 이른바 ‘적폐 수사’ 발언 파장이 생각보다 큰 모습이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14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윤 후보는 43.5%, 이 후보는 40.4%를 각각 기록했다. 직전 조사에서의 두 후보 간 격차는 6.2%포인트였다. 한 주 만에 격차가 3.1%포인트 좁혀졌다. 이 후보는 2% 포인트 상승한 반면 윤 후보는 1.1% 포인트 하락했다. 여권 지지층이 결집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에 안 후보의 ‘정치적 몸값’이 치솟게 될 것이란 전망에 힘이 실린다. 안 후보의 선택에 따라 대통령이 바뀔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유창선 시사평론가는 “안 후보가 ‘당선 가능한 후보’ 반열에서는 멀어지고 있지만, 대선의 승부를 좌우할 캐스팅보트로서의 존재감은 분명해졌다”며 “안 후보의 지지율은 한풀 꺾여 하락세를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그의 주가는 오히려 연일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요약하면 안 후보가 대통령이 될 가능성은 지난 연말보다 낮아졌다. 그러나 ‘협상력’이 커졌다. 이에 본인이 설계한 정책을 윤 후보를 통해 실현할 기회를 잡은 셈이다. 당선을 확답할 수 없는 윤 후보 측으로서는 안 후보의 요구를 최대한 수용하면서, 안 후보의 지지세를 흡수하는 게 최상의 시나리오다. 만약 안 후보와 윤 후보가 ‘동맹’ 혹은 ‘단일화’ 후 정권을 잡는다면 안 후보의 정치 생명도 연장될 가능성이 있다.

다만 정치권 일각에선 안 후보가 이번 단일화 제안으로 지지기반을 크게 잃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안철수를 지지하면 사표(死票)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화했기 때문이다. 앞서 안 후보는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2012년 대선, 지난해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단일를 시도했고 결국 아무런 ‘자리’를 맡지 못한 채 정치권에서 멀어져야 했다. 향후 안 후보가 ‘양당체제 타파’ 혹은 ‘제3지대 정치’를 내세울 명분이 점차 희미해지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현재 윤 후보를 돕고 있다는 전 바른미래당 당직자는 “양당 구도를 깨뜨릴 방법이 단일화뿐이라면 그건 제3지대 정치라고 볼 수 없다. 그간 안 후보를 지지했던 유권자들을 어떤 명분으로 설득할 것인가”라고 반문한 뒤 “이번(단일화 제안) 선택의 결과와 상관없이 이후 안 후보가 선거에 임할 때마다 ‘결국 철수할 것’이란 오명이 따라붙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기사에서 인용된 KSOI 조사는 TBS 의뢰로 지난 11∼12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5명을 대상으로 차기 대선 후보 지지율을 조사한 결과다. 휴대전화 가상번호를 활용한 전화 면접조사(무선 100%)로 진행됐다. 응답률은 8.5%였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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