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서진 “대본에 없던 민머리 분장, 내가 제안했다”
  • 하은정 우먼센스 대중문화 전문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2.19 12:00
  • 호수 16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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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에 진심인 남자 이서진,
《내과 박원장》에서 인생 최초 코믹 연기 도전

이서진이 인생 최초 코믹 연기에 도전했다. 민머리 분장에 여장, 코믹 패러디까지 전에 없는 파격 변신으로 연일 화제다. 까칠하고 스마트한 이미지의 이서진으로서는 도전을 넘어 파격과 도발이 아닐 수 없다. 티빙 《내과 박원장》은 동명의 네이버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드라마다. 1도(하나도) 슬기롭지 못한 초짜 개원의의 ‘웃픈’ 현실을 그려냈다. 진정한 의사를 꿈꿨으나 오늘도 파리 날리는 진료실에서 의술과 상술 사이를 고민하는 박 원장의 적자 탈출 생존기를 그린다.

이서진은 극 중 《내과 박원장》의 타이틀롤인 박 원장을 연기한다. 40대 박원장에게는 사랑하는 아내 사모림(라미란)과 돌도 씹어먹을 것 같은 큰아들 박민구(주우연), 인기 유튜버를 꿈꾸는 둘째 아들 박동구(김강훈)가 있다. 이서진은 두 아들과도 전혀 어색함 없는, 짠한 아빠다. 예능과 드라마를 넘나들며 꾸준히 사랑을 받고 있는 그가 오랜만에 인터뷰 자리를 가졌다. 특유의 쿨내 진동하는 답변으로 좌중을 압도했다.

ⓒTVING 제공

《내과 박원장》을 통해 첫 코믹 연기에 도전했다.

“그간 코믹 연기를 일부러 안 한 것은 아니었다. B급 감성을 정말 좋아한다. 하지만 그동안 그런 대본이 잘 들어오지 않았고, 들어오더라도 만족스러운 작품이 없었다. 사실 《내과 박원장》의 대본을 읽고 바로 확신이 서지는 않았다. 한데 주변 젊은 친구들에게 모니터링했을 때 대본이 재미있다는 얘기를 많이 하더라. 내 감성보다는 젊은 감성에 의존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선택하게 됐다.”

코믹물, 해보니 어땠나.

“촬영 과정이 너무 재미있었다. 물론 결과물은 시청자들이 판단할 문제지만 개인적으로는 만족스럽다. 코미디에 자신 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다시 코미디가 들어온다면 할 생각은 있다. 나름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는데 주변에서 알아주니 감사하다.”

어떤 역할인가.

“박원장이 양심 있는 의사는 아닌 것 같다. 극 중에서 양심에 어긋나는 일을 많이 한다. 《내과 박원장》은 의술을 보여주는 드라마는 아니다. 의사 역할이라기보다는 힘들게 살아가는 한 중년 남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래서 의술보다는 이 사회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40대 중년 남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에 중점을 뒀다.”

무엇보다도 파격적인 민머리 분장으로 화제를 모았다.

“막상 민머리 분장을 하고 나니 웃겨야 하는데 너무 잘 어울려서 실망했다. 사실 웹툰 원작은 대머리인데, 대본에는 없었다. 감독과의 미팅에서 대머리를 하자고 내가 제안했다. 포스터도 제안했더니 감독이 신나서 대본을 수정하고 대머리 장면을 계속 넣더라. 사람들이 좋아하고 웃을 수 있다면 도전하고 싶었다.”

ⓒTVING 제공
티빙 웹 드라마 《내과 박원장》의 포스터ⓒTVING 제공

진짜 충격을 준 건 여장이었다(웃음).

“더 웃기게 나왔으면 했는데 생각보다 덜 웃긴 것 같다. 민머리보다는 여장이 더 어렵더라. 20대나 30대에 했으면 봐줄 만했을 텐데 나이 들어서 하니 꼴 보기가 싫더라. 그 와중에 분장팀은 신이 나서 아이섀도와 립스틱을 더 칠하겠다고 해서 버럭 짜증을 좀 내기도 했다. 재미있는 에피소드다.”

나영석 PD가 촬영장을 방문해 뒤집어질 정도로 웃었다고 들었다.

“내 모습을 보고 거의 뒤집어지다시피 했다. 그는 내가 망가지는 걸 좋아한다(웃음). 주변에서 네티즌들의 반응을 전해 주기도 하는데, 좋은 댓글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전 재산 탕진한 것이 아니냐’ ‘이서진이 이렇게까지 하면 봐줘야 한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재밌는 댓글이라 좋게 생각한다.”

실제로는 풍성한 머리숱과 피부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한 올 한 올 아끼고 있다(웃음). 사실 모발은 타고나서 숱이 많지만 중년 남자라면 탈모 고민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탈모가 언제, 어디서 올지 모른다. 모발이나 피부가 좋은 건 부양가족이 없다 보니 스트레스를 덜 받아서 그런 것 같다. 하지만 50대는 분명히 신체 변화기가 있더라. 건강에 대한 고민이 많다. 병원에 자주 간다.”

박원장의 모습 중 어떤 부분이 공감이 됐나.

“나도 박원장처럼 중년을 지나가고 있기 때문에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다. 금전적인 여유가 있고 없고를 떠나 중년이 갖고 있는 심적인 부분들에 공감이 됐다. 만약 나도 부양하는 가족이 있다면 박원장처럼 짠내 나는 사람이 됐을 거다. 평소에도 절약을 많이 하는 편이다. 집에서 전기를 낭비하는 걸 싫어한다. 음식을 버리는 것도 싫다. 어쩌면 박원장보다 더 짠내 날 수도 있다. 지금도 월세에 굉장히 민감한 편이다(웃음).”

평소 모습은 어떤가.

“기본적으로 진지한 것을 싫어한다. 무조건 재미를 추구하는 사람이다. 연기를 할 때는 재미와 감동을 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라미란과의 부부 호흡은 어땠나(극 중 박원장 아내 사모림(라미란 분)은 특이하면서도 사랑스러운 인물이다).

“원픽이었다. 독보적이다. 제 캐릭터는 그 누구라도 할 수 있지만 라미란이 연기한 사모림은 라미란이 아니면 못 한다. 코미디만 잘하는 게 아니라 정극에서도 너무 좋은 배우다. 이번엔 코미디를 했지만, 다음엔 정극도 함께 해보고 싶고 스릴러도 해보고 싶다.”

OTT 플랫폼에 처음 도전한 것으로 안다.

“OTT 플랫폼을 이용하기는 하지만 연기를 한 것은 처음이다. 《내과 박원장》을 하면서 느낀 것이 있다. OTT에서는 편하게 욕도 하고 PPL을 해도 되더라. 이런 것들이 새롭고, 너무 재미있었다.”

티빙 웹 드라마 《내과 박원장》의 한 장면ⓒTVING 제공

작품을 선택할 때 기준이 있나.

“새롭거나 재미있거나, 두 가지다. 장르물을 선호하는 편이다. 새로운 장르나 역할을 계속 해보고 싶다. 선과 악을 넘나드는 양면성 있는 캐릭터의 연기를 하고 싶다. 대신 피하는 역할이 있는데, 가정이 있는 역이나 뜨거운 부성애 역할, 홈드라마는 미혼이라 피한다. 나이가 있다 보니 멜로를 하면 역겨워할까봐 선호하지 않는다. 멜로를 하려면 가슴에 뜨거운 것들이 있어야 하는데 너무 식었다.”

새로운 장르, 새로운 도전이 즐거운 이유는 뭔가.

“젊을 때는 제가 하고 싶은 것보다는 흥행에 성공할 것 같은 작품을 위주로 했다. 한데 어느 순간 그런 걸 내려놓으니 고민이 사라졌다. 이제는 내가 즐거운 작품을 선택하게 된다. 작품이 잘 안돼도 내가 재미있게 일했으니까 스트레스를 덜 받더라.”

1999년에 데뷔해 어느덧 배우 활동 20년을 훌쩍 넘겼다.

“시간이 금세 지나갔다. 개인적으로 일을 많이 하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20년을 넘긴 배우가 됐다는 말이 민망스럽다. 젊은 배우들을 만나면 일을 좀 줄이고 현재의 삶도 누리라고 말해 준다. 가까운 배우인 박서준에게도 그런 얘기를 했다. 잘하고 열심히 하는 건 좋지만 일을 너무 많이 한다고. 그때 즐기는 것과 지금 즐기는 것이 다르지 않나.”

배우로서 목표가 있다면.

“큰 목표는 가지고 있지 않다. 개인으로서는 감사할 정도로 성취가 된 것 같다. 얼마나 오랫동안 배우로서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앞으로도 더욱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할 것이다. 코미디든 정극이든 또 어떤 역할이든 재미있는 것을 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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