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남의 얘기가 아니다 [전영기의 과유불급]
  • 전영기 편집인 (chunyg@sisajournal.com)
  • 승인 2022.02.25 09:25
  • 호수 16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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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평화유지군이라는 이름의 침략군을 파병했다. 그의 2월21일자(현지시간) 선전포고를 듣고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억장이 무너졌을 것이다. 푸틴은 “우크라이나는 고대 러시아 땅으로 항상 러시아의 일부였다”고 주장했다. “현대 우크라이나는 1922년 볼셰비키 공산주의 러시아에 의해 만들어졌다. 우크라이나에는 진정한 국가의 전통이 없다”고 했다. 구소련 시절을 경험하고 한국에 체류 중인 우크라이나인 올레나 쉐겔 교수(한국외국어대)는 언론 인터뷰에서 “전면전이 일어나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민족을 말살할 수 있다”고 괴로워했다. 우크라이나가 약소국이긴 하나 독립정신만은 강렬한 민족성을 지니고 있어 양국이 정면으로 붙으면 5만 명 정도 사망자가 나올 수 있다고 예측하는 전문가가 많다.

22일(현지 시각) 우크라이나 동부의 분쟁 지역인 루간스크주 샤스티아 외곽의 발전소가 포격을 받은 뒤 연기가 치솟는 모습 ⓒAFP연합뉴스
22일(현지 시각) 우크라이나 동부의 분쟁 지역인 루간스크주 샤스티아 외곽의 발전소가 포격을 받은 뒤 연기가 치솟는 모습 ⓒAFP연합뉴스

양대 세력 사이에 낀 ‘완충국’ 우크라이나의 비극

고대부터 고유의 전통과 문화를 간직해온 우크라이나인들은 1922년 공산주의 러시아에 강제 병합돼 겪었던 공포와 기근을 1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기억하고 있다. 당시 공산 독재자 스탈린은 농업집단화를 밀어붙여 농촌의 생산량이 격감했다. 공산 당국은 집집마다 찾아가 감춰둔 식량과 씨앗을 싹싹 긁어갈 뿐 아니라 가난을 피해 달아나는 주민들을 쫓아가 처형했다. 우크라이나에서 폴란드와 루마니아로 넘어가는 국경엔 도망치다 소련군에 살해된 농민들의 시체가 산을 이룰 정도였다고 한다. 1932~33년 대기근·대학살 시대의 처참한 민족 상황은 스탄코비치라는 작곡가가 만든 《굶어 죽은 사람들을 위한 진혼곡》이란 노래에서 애절하게 표현되고 있다. 그 가사의 일부가 “내 형제자매를 버리지 마세요. 하나님이 우리를 모두 데려가진 않을 거예요”이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일부’라는 푸틴의 거짓말은 인접 완충국이 다른 동맹 진영(나토·NATO)으로 넘어가지 못하게 하려는 협박의 언어에 불과하다. 지난해 여론조사에서 우크라이나 국민 80% 이상이 러시아로부터 완전 독립을, 50% 이상이 나토 동맹 가입을 희망했다.

이쯤에서 우리는 시진핑 주석의 등장 이후 한·중 관계의 불편한 진실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시진핑의 중국은 한국을 인접 완충국 혹은 주변국으로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온 것 같다. 단적인 사례가 2017년 4월 미국을 방문한 시진핑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했던 말이다. 시 주석은 “수천 년 역사에서 한국은 사실상 중국의 일부”라고 주장해 한국인에게 모욕과 충격을 안겨줬다.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했던 발언과 놀랍도록 일치한다.

 

한국, 왜 동맹국 멀리하고 완충국 되려 하나

더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그해 12월 중국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베이징대학에서 했던 연설이다. 그는 “시진핑 주석에게서 중국의 통 큰 꿈을 보았다. 한국은 작은 나라지만 그 꿈에 함께할 것”이라고 해 중국 대학생들의 박수를 받았다. 한국이 중국의 완충국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을까. 그로부터 5년이 지난 2022년, 한국은 외교적으로 동맹국 미국과 거리가 멀어졌다. 동맹국과 거리가 멀어진 만큼 지정학적으로 중국의 완충국에 가까워진 듯하다.

완충국, 주변국일수록 전쟁의 참상이 크고 동맹국, 중심국일수록 전쟁의 피해가 적다는 건 동서고금 나라 간 관계의 진실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한국의 동맹 관계는 약화되고 완충지대 색깔이 짙어졌다. 큰 세력들이 충돌할 때 가장 먼저 당하는 곳은 완충국이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잘 보여주는 바다.

전영기 편집인
전영기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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