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즈베키스탄에서의 ‘한국어 교육 30년’을 담다
  • 조창완 북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6.05 11:00
  • 호수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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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 딛고 제자 8000명 길러낸 《허선행의 한글아리랑》
허선행의 한글아리랑│조철현 지음│라운더바우트 펴냄│492쪽│2만원
허선행의 한글아리랑│조철현 지음│라운더바우트 펴냄│492쪽│2만원

이 책의 저자인 조철현은 한국 출판계에 배달이라는 개념을 처음 도입했다. 1995년 경복궁 동편에 책 릴리즈 서비스 회사인 여산통신을 만든 후, 우편 등기 가격에 출판사들의 책을 출판 담당 기자들 앞에 놓아주었다. 이후 책 전문방송 콘텐츠인 온북TV를 만들었고, 남북을 오가며 겨레말큰사전을 기록하는 작업도 같이 했다. 하지만 시운은 그를 외면했고, 그는 출판계와 거리를 두고 우즈베키스탄으로 떠났다. 이후 우즈베키스탄의 새 대통령 샤브카트 미르지요예프에 관한 책을 출간하는 등 우즈베키스탄 전문가로 거듭났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곳에서 만난 아름다운 사람 허선행 타슈켄트1 세종학당 학당장을 다룬 두터운 책으로 독자들을 찾았다. 어떤 계기로 자신보다 나이가 적은 허선행 학당장을 기록했고, 5년의 만남 그리고 3년의 긴 작업 끝에 책을 출간했을까. 그를 이끈 힘은 진솔함이다. 가장 객관적인 지표는 30년이란 시간이다. 30년은 한 사람 인생의 전부다. 젊을 때라면 더더욱 그렇다.

주인공 허 학당장은 1992년 2월 전남대 사범대를 졸업했다. 교사라는 정해진 길이 있었다. 그런데 그는 프로스트의 시 속에나 나올 듯한 ‘가지 않은 길’을 선택했다. 나주의 농촌에서 그를 바라보던 어머니나 남매들이 있었지만 그는 27세의 나이에 우즈베키스탄으로 향했다. 그가 도착한 타슈켄트에는 광주·전남 지역이 역사적 인연으로 만든 ‘광주한글학교’가 있었다. 그가 받은 미션은 제대로 나오지 않는 월급 100달러를 받고, 고려인이나 우즈베키스탄인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일이었다. 험난한 흐름 속에 다른 지역의 한글학교는 좌초했지만 그는 그곳을 지켰을 뿐만 아니라 더 굳건하게 만들었다.

심각한 생활고는 번역 일과 교민신문 편집국장, 대학 출강, 현지 기업체 한국어 연수 등을 통해 해결했다. 한글의 스승인 세종대왕의 뜻을 기리기 위해 학교 이름을 ‘세종학당’으로 바꿨다. 기업의 우즈베키스탄 진출과 한국 인력 파견 등 수많은 비즈니스 기회가 있었지만 좌고우면하지 않고 한글학교를 지켰다. 30년 동안 8000명의 제자를 배출했고, 그들은 한-우즈벡 교류의 최전선에서 뛰고 있다. 중앙아시아 지역 첫 러시아어판 한국어 교재 개발자로도 활동했고, 고려인들의 역사 찾기에도 가장 앞장서 활동했다.

한글도 중요하지만 한국 문화를 아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한국 문화를 향유하는 행사도 열었다. 한복체험 및 떡국체험(1월 설날), 한국문화 축제(6월), 세종문화아카데미(7월), 추석 민속축제(9월), 중앙아시아 한국어백일장(10월), 세종학당 한마음 체육대회(10월), 김치축제(11월), 세종문화의 밤(12월) 행사 등이다. K팝 등 한류가 확산하는 상황에서, 한글을 아는 우주베키스탄인들이 늘어난다는 것은 한국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키우는 데도 도움이 된다. 곧 환갑을 바라보는 허선행 학당장의 역할은 그래서 더욱 빛날 수밖에 없다.

우즈베키스탄을 주된 생활터로 하는 허선행 학당장과 조철현 작가는 지난달 광주 고려인마을과 서울 종로구 천도교 중앙대교당에서 많은 제자와 함께 스승의 날 행사를 겸한 북콘서트를 열었다. 많은 우즈베키스탄 제자는 한글로 노래했다.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우러러 볼수록 높아만 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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