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은 왜 국회법사위원장을 줬다 뺏으려 하나 [쓴소리 곧은 소리]
  •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 (ccw7370@hanmail.net)
  • 승인 2022.06.03 14:00
  • 호수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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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동훈 장관을 탄핵할 경우 필요한 무기가 법사위원장 자리
 박홍근 원내대표, 전직 원내대표들 간 합의 헌신짝처럼 취급
[채진원 경희대 교수 기고]

21대 국회 전반기 임기가 5월29일 종료됐지만, 하반기 원(院) 구성은 난항이다. 법제사법위원장을 어느 당이 차지하느냐를 놓고 여야가 대치 중이다. 30일 허은아 국민의힘 대변인은 “지난해 7월 ‘윤호중-김기현 합의안’대로 21대 전반기 상임위는 11대 7로 나누고 후반기 상임위 배분은 교섭단체 의석수에 따르되 법사위원장은 국민의힘이 맡는다는 원칙을 지키지 않았다”며 민주당을 비판했다. 하지만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지금 새로 뽑는 법사위원장은 향후 2년을 이끌 법사위원장인데, 그 협상의 주체는 현재 원내대표다. 전직 원내대표들이 합의한 것은 법적으로 무효다”라고 반박했다.

결국 원 구성이 늦어지면 시급히 처리되어야 할 민생법안과 개혁과제도 늑장처리가 되거나 충분한 숙의 없이 졸속처리가 될 것이다. 그러면 여기서 초래되는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전가될 것이 뻔하다. 이런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원인 진단에 따른 해법 마련이 필요하다.

시사저널 박은숙
박병석 국회의장(가운데) 주재로 권성동 국민의힘(왼쪽)·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5월26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장실에서 ‘검수완박’ 중재안 파행 위기에 따른 해법을 논의하기 위한 회동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시사저널 박은숙

이재명이 수사받으면 방탄용으로 꺼낼 탄핵카드?

그렇다면 민주당은 왜 당초 ‘윤호중-김기현 합의안’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돌연 입장을 바꿔 후반기에도 법사위원장을 자기 당이 맡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일까? 그 배경에는 ‘검수완박’ 법안의 완벽한 후속 처리를 위한 ‘중대범죄수사청 입법독주설’과 ‘한동훈 법무장관 탄핵설’과 같은 판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법사위원장을 국민의힘에 내주면 ‘검수완박’을 매듭짓는 중수청 입법이 차질을 빚을 수 있고, 그럴 경우 민주당은 과반수 의석의 힘으로 장관 탄핵을 밀어붙일 장치를 가져야 할 필요가 생긴다는 분석이다.

민주당 지도부의 시나리오는 다음과 같다. 국민의힘이 법사위원장을 갖게 되면 민주당이 추진하는 중수청 입법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 중수청 법안을 강행 처리하면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게 뻔하다. 그럴 경우 민주당은 탄핵안으로 맞선다는 것이다.

물론 대통령 탄핵은 힘들더라도 국무총리·장관·검찰총장·경찰청장·검사 등에 대한 탄핵은 재적 과반만 넘기면 되기에 167석을 가진 거대 야당 민주당은 언제든지 법무장관 등 주요 공직자들을 탄핵할 수 있다. 특히 대장동·백현동 사건 등에서 이재명 전 경기지사가 수사 대상이 될 경우 방탄용으로 민주당 강경그룹에서 곧바로 한동훈 법무장관이나 수사팀 검사들에 대한 탄핵론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탄핵소추에선 법사위원장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법사위원장은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에서 검사 역할인 ‘소추위원’을 맡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시나리오들은 여러모로 문제점이 많다. ‘자코뱅식 개혁논리의 역설’처럼 정치에 대한 잘못된 가정에 따른 논리적 귀결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이런 시나리오를 상정하지 않는 것이 상식일 것이다.

민주당 지도부가 ‘자코뱅식 개혁논리의 역설’에서 벗어나서 ‘숙의민주주의’로 돌아가는 게 필요하다. 민주당은 ‘윤호중-김기현 합의안’의 파기가 숙의민주주의를 지향하는 국회선진화법의 취지에 맞는 것인지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민주당 지도부는 프랑스 혁명을 주도했지만 극단적인 개혁 추진에 따른 역풍으로 등장한 온건파 바라스와 나폴레옹에 의해 몰락의 길을 간 자코뱅당 로베스피에르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

로베스피에르는 분별 없는 열정으로 ‘개인의 자유’보다는 ‘평등사회’의 급진적 실현을 위해 국민적 동의와 지지 없는 ‘도덕적 이상주의’를 명분으로 내걸고 ‘공안위원회’라는 억압기구를 사용해 혁명적 독재와 공포정치를 자행했다. 로베스피에르의 리더십은 어떻게 ‘도덕적 이상주의’가 ‘나쁜 정치의 역설’을 낳았는지를 비극적으로 보여주었다. ‘자코뱅식 개혁논리의 역설’은 도덕적 이상주의자들이 분별 없는 열정으로 ‘불가능한 목표’를 세워놓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국민 전체적인 동의 없이 ‘자신은 정의, 상대는 부정의’로 몰아세우는 극단적 다수결주의를 전개시킬 경우에 나올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결과다.

 

극단적 다수결주의가 ‘자코뱅 공포정치’ 낳아

‘윤호중-김기현 합의안’은 2020년 총선에서 압도적 과반 의석을 차지한 민주당의 1년2개월 상임위원장 독식 체제를 끝내고 여야 협치를 도모하자는 취지에서 국회의장 중재로 어렵게 도출됐다. 양당은 민주당 측의 요구에 따라 법사위의 기능을 체계·자구 심사에 국한하고 심사 기간을 기존 120일에서 60일로 단축하는 내용으로 국회법까지 개정해 정치적 합의를 법제화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민주당이 약속을 지키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정치적 도의나 신뢰를 내팽개치고 오직 자당의 이익만 챙기겠다는 몰염치한 행태다. 여야 원내대표와 국회의장이 합의하고 발표한 내용을 손바닥 뒤집듯 번복하는 것은 공당이 취할 자세가 아니다. 국회의장과 법사위원장의 소속 정당을 다르게 해서 견제와 균형을 통해 공공선을 추구하는 것은 숙의민주주의를 달성하기 위한 기초적인 장치다.

법안 의결의 최종 관문을 지키는 국회의장이 민주당 몫이어서 법사위원장을 넘겨주더라도 정부와 여당의 월권에 대한 견제가 얼마든지 가능하다. 숙의민주주의가 제대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미국처럼 충분한 토론과 숙의에 기초한 ‘자유투표제’나 ‘여야교차투표제’가 보장돼야 한다. 현재 우리는 ‘유럽식 강제당론제’에 의해 의원들의 자율성이 떨어지고 있다. 쟁점법안일수록 강제당론제 없이 자유투표제에 맡기는 게 적절하다.

‘입법 폭주’와 ‘탄핵소추’를 저지할 수 있는 자리다. 민주적 국회 운영의 원리인 견제와 균형을 위해 국회의장과 법사위원장을 1, 2당이 나눠 맡는 것은 국회선진화법 취지에도 맞고 상식과 공정에 부합한다. 입법의 양대 관문인 국회의장과 법사위원장을 여야가 나눠 갖는 관행은 노무현 정부 때인 17대 국회로 거슬러 올라가서 18대, 19대 국회까지 지속되었다. “법사위원장은 국민의힘이 맡는다”는 약속을 이행하는 것이 정치선진화법의 취지이기에 꼭 지켜지길 바란다. 지난 대선과 이번 지방선거에서 드러난 민의가 “서로 견제하되, 타협하고 협치하라”는 것에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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