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권센터 “7년전 간부 폭언으로 병사 극단선택…중대장 은폐 지시”
  • 박선우 객원기자 (capote1992@naver.com)
  • 승인 2022.06.07 13:4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15년 故(고) 고동영 일병 사망사건 제보 기자회견
군인권센터 “중대장, ‘산 사람 살아야지’라며 은폐 지시”

 

7일 마포구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이 서울 마포구 사무실에서 육군 11사단 故(고) 고동영 일병 사망사건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7일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이 서울 마포구 사무실에서 육군 11사단 故(고) 고동영 일병 사망사건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과거 육군 일병이 소속 부대 간부의 폭언으로 극단 선택을 했으나 부대 지휘관이 사건 진실 규명을 방해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7일 군인권센터는 서울 마포구 노고산동 사무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육군 제11사단 소속 故(고) 고동영 일병 사망사건과 관련해 해당 부대에서 근무했던 부사관으로부터 은폐 정황을 제보 받았다고 밝혔다. 고 일병 사망 직후 중대장 등에 의해 사건 은폐 시도가 있었다는 주장이다.

군인권센터 측에 따르면 2015년 5월27일 육군 제11사단 전차대대 정비반 소속이던 고 일병은 휴가 도중 극단적 선택을 했다. 당시 고 일병이 남긴 유서에는 “1년이 다 돼가는데 심적으로 너무 힘들다” “어리바리해서 욕도 많이 먹었다” “정비관의 변덕스러운 성격도 싫고 다른 간부들에게 피해주는 것도 싫다” 등의 심경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제보자는 중대장에 의한 사건 은폐 시도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사망 사건에 대해 헌병대에서 조사가 나오자 A 중대장은 휘하 간부들에게 ‘죽은 사람은 죽었지만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 헌병대 조사를 받게 되면 이상한 소리 말고 모른다고 해라’라는 지침을 내렸다”고 주장했다.

또한 제보자는 당시 정비반 간부였던 B 정비관에 대해 “고 일병이 실수를 하면 심하게 야단을 치거나 전차안에 가둔 뒤 못나오게 했다는 소문도 있었다”면서 “간부들 사이에서도 폭언이 있었고 B 정비관이 몽키스패너로 머리를 툭툭 치는 행위도 있었다”고 증언했다.

고 일병이 고통을 호소하는 걸 의도적으로 막았다는 주장도 내놨다. 제보자는 “고 일병이 휴가 전 중대장에게 ‘마음의 편지’를 제출한 바 있는데 중대장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대대에서 마음의 편지를 받기 위해 중대에 방문한 날 고 일병을 영외 대민지원으로 차출해 ‘마음의 편지’를 쓰지 못하게 했다”고 주장했다.

군인권센터는 고 일병 사망사건의 진상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데는 헌병대도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고 일병의 사망 이후 11사단 헌병대가 부대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최근 고 일병 사망과 관련해 중대장·행보관(행정보급관) 등 간부들로부터 부대 문제점 등을 발설하지 말라는 교육을 받은 바 있느냐’고 물었고 ‘교육 받았다’는 답변이 나왔음에도 진상을 파악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국가보훈처 측은 고 일병의 죽음이 개인적 스트레스에 의한 것이라고 판단, 재해사망군경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5년간의 법정 다툼 끝에 2020년 대법원이 업무상 스트레스와 사망의 인과성을 인정하면서 뒤늦게 보훈대상자로 지정됐다.

뒤늦게 제보를 접한 유족은 지난달 17일 A 중대장을 육군 군검찰에 직권남용 혐의로 고소했다. 군검찰은 지난달 25일 A 중대장을 재판에 넘겼다. 공소시효 만료 이틀 전이었다.

이날 고 일병 유족은 ‘아들이 두 번 죽었다’며 울먹였다. 고 일병의 어머니 C씨는 기자회견에서 “군이 제 아들을 두 번 죽였다”면서 “제 아들을 두 번 죽인 관계자들을 처벌하고 자식 지키지 못한 엄마의 노력이 헛되지 않게 힘이 돼달라”고 호소했다.

군인권센터 측은 이번 사건에 대해 “중대장 선에서 사망 사건 은폐를 결심하고 지휘한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면서 “사건 은폐 정황에 대한 전반적 조사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부대에서 사건·사고가 발생하면 입을 맞춰 사실을 은폐하고 수사기관이 묵인하거나 동조하는 일은 우리 군의 고질적 병폐”라면서 “계속되는 죽음과 고질적 은폐, 무마 시도를 막을 수 있는 제도적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