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구름관중’은 여자골프에만 몰릴까
  • 안성찬 골프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6.12 12:00
  • 호수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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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스타 부재로 인해 인기 시들한 남자골프, 대회 수 및 상금 규모 늘리려 안간힘

6월5일 KLPGA 롯데 오픈이 열린 인천 베어즈베스트 청라CC에 구름처럼 몰려다니는 갤러리들의 환호와 박수 소리가 가득했다. 같은 날 KPGA SK텔레콤 오픈이 열린 제주 핀크스CC에서는 드문드문 보이는 갤러리들이 응원을 펼쳤다. 국내 여자골프와 남자골프 인기의 현주소가 극명하게 대비되는 모습이다. 

ⓒKLPGA 제공
4월24일 경남 김해 가야CC에서 열린 KLPGA ‘넥센 세인트나인 마스터즈 2022’ 경기에 관중들이 몰려있다. 대회 조직위에 따르면 이날 1만여 명이 넘는 관중이 대회장을 찾았다.ⓒKLPGA 제공

KPGA 상금 규모, KLPGA의 절반 수준에 불과

골프 강국인 한국에서 불가사의한 일이 하나 있다. 남자 프로골프의 오랜 역사와 전통과 달리 여자 프로골프가 대회 수, 상금, 스폰서, 인기도 등 모든 면에서 단연 앞서 있다는 점이다. 미국이나 유럽, 그리고 일본의 골프계와는 전혀 딴판이다. 여자와 남자 프로골프 인기의 ‘간극’이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여자가 더 강세를 나타내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이유가 뭘까. 

여자 프로골프는 ‘레전드’ 박세리가 닦아놓은 실크로드를 후배들이 뒤따르며 세계 그린을 평정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이다. 이는 국내 KLPGA에서 활약하는 굵직한 스타들이 매년 배출되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활약을 이어가고 있다는 이야기다. 반면 남자는 스타 부재로 인해 세계적인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대형 선수가 좀처럼 나오지 않고 있다. 

국내 여자프로들의 원론적인 인기를 살펴보자. 무엇보다 경기력이 뛰어나다. 특히 연령대가 낮다. 대부분 국가대표나 국가상비군을 거친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선수들이 그린을 휩쓸고 있다. 선수층이 두터워 거의 매주 치열한 샷 대결을 벌이고 있다. 한 시즌 대회를 휩쓰는 ‘대세’ 선수가 나타나는 경우도 있지만, 여기저기서 루키들이 생애 첫 우승을 하며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선수들은 대회 때마다 만나기 때문에 겉으로는 웃으며 연대감이 형성돼 있는 듯하지만, 속으로는 경쟁상대로 생각하며 치열한 샷 대결을 펼치고 있다. 기량은 스코어로 연결되고 이는 곧 상금이 된다. 

여기에 스폰서도 선수들의 경기력에 불을 댕기고 있다. 선수들은 기량이 뛰어난 만큼 보상이 금방 뒤따라온다. 선수들은 골프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스폰서가 붙는다. 선순환이 이뤄지는 셈이다. 이 때문에 주니어 시절부터 ‘스파르타식 골프교육’으로 프로골퍼 뺨치는 훈련과 멘털 강화에 남다른 특질을 발휘한다. 골프 미디어도 여자프로들의 흥행몰이에 가세하고 있다. 선수들은 보다 화려하고 엘레강스한 패션으로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유현주를 비롯해 안신애, 김자영 등 미모와 섹시함을 갖춘 많은 선수가 팬들을 유혹하고 있다. 

 프로 세계는 ‘쩐(錢)의 전쟁’이다. 이는 미국이나 일본, 유럽도 마찬가지다. 세계 최고의 무대인 미국 PGA(남자)와 LPGA(여자)의 차이가 크다. 미국의 골프 전문 채널은 PGA투어 위주로 방송이 편성돼 있다. 그다음이 남자 시니어 대회인 챔피언스 투어다. LPGA투어는 그 뒤로 밀린다. 올해 LPGA투어는 총 34개 대회에 총상금 8570만 달러(약 1061억3945만원)다. PGA투어는 47개 대회에 총상금 4억 달러(약 4954억원)다.

LPGA투어 일반 대회 상금은 200만 달러 안팎이고, 메이저대회는 450만 달러에서 680만 달러다. 올해 처음 US여자오픈이 1000만 달러로 증액했다. PGA투어는 일반 대회는 1000만 달러 내외이고, 마스터스 등 메이저대회는 1500만 달러,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은 2000만 달러를 돌파했다. 페덱스컵 플레이오프 투어챔피언십 우승자는 보너스가 1500만 달러에 이른다. 단순 비교해도 엄청난 상금 차이를 보이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은 어떨까. 2022 시즌 KLPGA투어는 총 34개 대회, 총상금 약 309억원 규모로 모두 역대 최대 규모다. 총상금은 지난해보다 40억원 늘어나 사상 최초로 300억원을 돌파했다. KLPGA는 정규투어 외에 2부인 드림투어 20개, 3부인 점프투어 16개, 그리고 시니어 투어도 개최하고 있다. 정규투어에서 활약하는 선수는 150명 내외다. 올해 KPGA투어는 22개 대회 총상금 160억5000만원으로 진행 중이다. 이조차도 협회 창립 65년 만에 대회 수와 상금액에서 최고 기록이다. KPGA는 1, 2부 투어 선수가 함께 뛰는 스릭스 투어 20개 대회가 있고, 시니어 대회인 챔피언스 투어도 열고 있다.

ⓒ연합뉴스
6월2일 제주도에 위치한 핀크스골프클럽에서 열린 SK텔레콤 오픈 2022 1라운드 1번홀에서 최경주가 세컨드 샷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최경주 같은 대형 선수 여럿 나와야

단순 수치만 봐도 KPGA는 KLPGA에 밀린다. 절치부심 중인 남자골프는 최근 대기업 총수를 협회장으로 영입하며 흥행과 인기를 동시에 잡으려고 골몰하고 있다. KPGA 코리안투어도 나름대로 다양한 골프팬들을 형성하고 있다. 매년 5만여 명이 찾는 KPGA투어 겸 아시안투어 GS칼텍스 매경오픈도 코로나19의 거리 두기 해제로 올해는 갤러리가 넘쳐났다. 5월8일 남서울컨트리클럽에서 끝난 이 대회는 첫날부터 ‘구름 관중’이 몰렸다. 5000여 명이 골프장을 찾은 첫날 허인회와 이태희, 그리고 박상현이 티오프할 때 1번홀 티박스에 1000여 명이 운집해 티샷할 때마다 박수갈채와 열렬한 환호성을 보냈다. 

KPGA 코리안투어와 KLPGA투어는 팬 사이에 ‘호불호’가 갈린다. 시원한 장타를 선호하는 팬들은 남자대회를, 아기자기한 플레이를 좋아하는 팬들은 여자대회를 즐겨 찾는다. 그럼에도 국내 골프산업계나 골프 마니아들은 여전히 여자대회에 더 관심이 많다. 팬들의 ‘눈높이’가 변한 것이다. 세계적인 기량으로 중무장한 선수들이 출전하는 PGA투어를 보다가 국내 KPGA 경기를 시청하면 ‘마이너리그’를 보는 것처럼 조금은 흥미가 반감될 수 있다. 하지만 LPGA투어에서는 세계랭킹 1위가 고진영인 데다 틈만 나면 한국 선수 및 한국계 선수가 우승하면서 관심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골프계의 중론이다. 

국내 남자대회도 KLPGA처럼 인기를 얻으려면 최경주 같은 선수가 여럿 나와야 한다. PGA투어에서는 1승만 해도 대단한 스타플레이어다. 그러나 한국 선수는 여러 가지 골프 환경이 걸림돌로 작용한다. 언어뿐만 아니라 체력, 경제력 등에서 불리하다. 무엇보다 군 문제가 가장 큰 장벽이다. 기량이 최고조에 이를 때쯤 군에 입대해야 한다. 골프선수는 하루만 클럽을 손에서 놓아도 금방 표시가 나는데 2~3년 동안 코스를 떠나면, 이전 기량을 되찾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데다 스폰서 찾기도 쉽지 않아 경기에만 집중하는 것이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이 때문에 최경주를 이을 대형 스타들이 더디게 나타난다. 

이런 문제점을 잘 알고 있기에 협회는 선수들이 대회에 출전해 상금만으로도 생활할 수 있도록 대회 수 및 상금을 대폭 늘리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스폰서 기업이 많이 나서려면 무엇보다 팬들이 구름처럼 뒤를 쫓는 인기가 뒷받침돼야 한다. 인기 스타들이 쏟아져 나와야 한다. 주니어 시절에는 별로 차이를 보이지 않다가 프로에 들어서면 상황이 급변하는 국내 남녀 프로골프의 세계, 남자 프로골프 발전의 묘약을 찾는 KPGA에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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