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위기 ‘태풍’에 K반도체 신화마저 ‘흔들’
  • 이석 기자 (ls@sisajournal.com)
  • 승인 2022.06.15 10:00
  • 호수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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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금리·환율 등 ‘3고(高)’ 현상에 무역수지도 적자
반도체 패권경쟁에서 한국 반도체 위상 재건이 관건

“경제위기를 비롯한 태풍 권역에 우리 마당이 들어와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최근 한 말이다. 윤 대통령이 ‘태풍’이라는 단어까지 써가며 경제위기를 강조한 데는 이유가 있다. 고물가와 고금리, 고환율 등 이른바 ‘3고(高)’ 현상이 지속되고, 무역수지마저 올해 적자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이대로 가면 한국 경제가 일본처럼 장기침체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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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위기, 태풍 권역에 들어가”

현장 상황은 더 열악하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 4월 4%를 찍은 지 한 달여 만에 5%대를 돌파했다. 올해 7월에는 물가상승률이 6%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전 세계적인 원자재 대란이 계속되면서 밀가루나 식용유 가격은 연초 대비 30%나 상승했다. 동네 빵집이나 중국집, 국숫집 등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은 절박한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다녀가 언론의 주목을 받은 용산 옛집국수집 역시 치솟는 밀가루 값을 견디지 못하고 일찍 문을 닫는다고 한다. 정부는 조만간 올해 물가상승률 전망치를 11년 만에 4%대로 수정 발표할 예정이다.

물가가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기준금리 역시 치솟고 있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5월26일 기준금리를 기존 1.5%에서 1.75%로 전격 인상했다. 올해에만 벌써 세 번째 인상이다. 무엇보다 금통위가 두 달 연속 기준금리를 올린 것은 15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기준금리 상승으로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이나 신용대출 금리 상단이 7%대에 바짝 다가섰다.

문제는 올해 말까지 몇 차례 더 금리 인상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지난 5월 기준금리를 0.25~0.50%에서 0.75~1.00%로 올렸다. 한 번에 0.5%를 올리는 ‘빅스텝’을 단행했다. 전문가들은 연준이 올해 6월과 7월에도 빅스텝에 나설 것으로 예상한다. 이 경우 미국과 한국의 기준금리 역전 현상이 발생하고, 외국인 자금의 이탈이 발생할 수 있다.

때문에 한국은행도 6월 이후 두 번에서 세 번의 추가 금리 인상을 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이 경우 가계가 추가로 부담해야 할 이자 규모만 20조~30조원에 이른다. 특히 주담대는 신용대출보다 규모가 크고, 이자에 더해 원금까지 상환해야 한다. ‘영끌’ 등을 통해 부동산에 투자한 사람들의 부담 역시 시간이 갈수록 늘어날 것으로 전문가들은 우려하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원-달러 환율까지 최근 오름세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5월 중순에는 원-달러 환율이 1300선을 위협하기도 했다. 원화 가치가 하락하면서 무역수지 적자는 지난 5월 기준으로 78억4000만 달러까지 확대됐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 기관들은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경쟁적으로 낮추고 있다. 산업연구원은 올해 무역적자가 158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1997년 한국을 강타한 IMF 외환위기 때(92억6000만 달러)보다 많은 액수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그동안 한국 경제를 떠받치고 있던 반도체 신화마저 흔들릴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수출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20%에 이른다. 반도체 산업이 기침을 하면 한국 경제는 몸살을 앓을 수도 있다. 전 세계적인 영향력도 크다. 2021년 말 기준으로 5837억 달러 규모의 반도체 시장 중 20%인 1151억 달러를 한국이 차지하고 있다. 특히 메모리 반도체인 D램의 경우 한국 업체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70%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반도체 산업이 흔들릴 경우 관련 기업뿐 아니라 한국 경제가 뿌리부터 흔들릴 수 있는 것이다.

반도체 산업 흔들릴 경우 한국 경제 큰 타격

최근 미국이 전략자산인 반도체 공급망 재편 작업에 나서면서 이 판이 흔들리고 있다. 현재 12% 수준인 자국 내 반도체 생산량을 24%로 늘린다는 것이 목표다. 다분히 중국을 겨냥한 조치였다. 미국은 물론이고 EU, 일본, 중국, 대만 등은 반도체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시간과 돈을 쏟아붓고 있다. 인력 확보는 기본이다. 대규모 세금 감면과 전기 및 용수 제공 등 정부 차원의 지원을 통해 반도체 기업의 공장을 경쟁적으로 유치하고 있다. 한국은 규제에 발이 묶이면서 정부 차원의 투자도, 공장 유치도 못 하고 있는 실정이다.

세계적인 반도체 기업인 ‘삼성 리스크’도 터져 나오고 있다. “‘반도체 대전’에서 살아남기 위한 제대로 된 전략이 있는지 모르겠다”는 말이 삼성 내부에서 들려올 정도다. 특히 오너인 이재용 부회장을 두고 말이 많다. 이 부회장은 최근 450조원 규모의 반도체 투자계획을 발표하면서 “목숨 걸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해외 현지 사업 점검을 위한 출장과 미팅이 잇따르면서 “글로벌 경영에 본격 시동을 건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시사저널 취재 결과 삼성 임원진 사이에선 “VIP(이 부회장)가 결정을 하지 않는다” “의중을 좀체 모르겠다”는 하소연이 흘러나오고 있다. 말 그대로 총체적인 위기 상황이다. 언제나처럼 한국 경제가, 특히 반도체 산업이 이런 위기를 딛고 도약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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