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선우, 강력한 라이벌 등장이 승부욕 더 자극
  • 김양희 한겨레신문 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6.26 13:00
  • 호수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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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환 이후 세계 수영 정상 향해 역영하는 황선우, 루마니아의 수영천재 포포비치와 파리올림픽 자유형 200m 金 다툴 듯

한국 수영은 ‘마린보이’ 박태환 이전과 그 이후로 나뉜다. 그리고 그 ‘이후’를 책임질 한 선수가 10여 년 만에 등장했다. 당당히 성적으로 보여주며 한국 수영의 현재와 미래를 바꿔놓고 있다. 황선우(19)가 그 주인공이다. 

황선우는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두나 아레나에서 열린 2022 국제수영연맹(FINA) 세계선수권대회 남자 자유형 200m에서 은메달을 따냈다. 한국 선수가 수영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시상대에 오른 것은 2011년 박태환 이후 11년 만이다. 자유형 200m 종목만 놓고 보면 역대 최고 성적을 냈다. 박태환은 2007년 대회 때 200m에서 동메달을 딴 바 있다. 그의 주종목은 400m였다. 같은 자유형 종목이지만 박태환이 중장거리인 400m와 200m를 주로 뛰었다면, 황선우는 중단거리인 200m와 100m를 역영한다. 둘은 결이 많이 다르다. 황선우를 박태환과 단순 비교할 수 없는 이유다.

6월19일(현지시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세계수선수권대회 남자 200m 자유형에 참가한 황선우가 물살을 가르고 있다.ⓒAFP 연합
6월19일(현지시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세계수선수권대회 남자 200m 자유형에 참가한 황선우가 물살을 가르고 있다.ⓒAFP 연합

박태환 이후 11년 만에 세계선수권 첫 메달

황선우는 200m 결선이 끝나고 반나절 후에 치러진 100m 예선에서는 다소 부진했다. 체력적으로 회복이 덜 된 탓인지 전체 17위에 머물렀다. 준결승에 오른 다른 선수가 기권하면서 준결승 출전 기회가 생겼으나, 역시 11위를 기록하며 결선에 오르지는 못했다. 자유형 100m는 황선우가 도쿄올림픽 때 아시아신기록을 세웠던 종목이다. 예선 성적만 놓고 보면, 개인 최고 기록에 1초 남짓 뒤졌다.   

100m 성적이 기대에 못 미쳤으나 서울체고 시절 황선우를 지도했던 이병호 감독은 황선우의 신체능력이 100m에 더 적합하다고 평가한다. 이 감독은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100m는 순발력, 근력, 파워 요인이 많이 작용한다. 반면 200m는 심폐지구력과 수영을 지속하는 능력, 즉 지구력 요인이 많은 영향을 끼친다. 황선우는 100m에 더 최적화된 선수”라고 했다. 더불어 “영법 구사 능력으로는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이다. 잠영에서의 파워나 스타트를 폭발하는 능력을 보강한다면 (국제대회에서) 더욱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4월말부터 6월초까지 6주 동안 호주에서 황선우를 가르친 이언 포프 감독의 말도 다르지 않다. 포프 감독은 황선우에게 “내가 본 선수 중 가장 스킬이 좋다”는 칭찬과 함께 “기술적인 부분은 뛰어난데 잠영 동작, 돌핀킥을 보완해야 한다. 돌핀킥을 보완하면 기록을 더 단축할 수 있다”는 조언을 건넸다. 포프 감독은 마이클 클림, 그랜트 해켓 등을 키워낸 세계적인 수영 지도자다. 해켓은 박태환의 우상이자 맞수였다. 

황선우는 중학교 3학년 때 ‘로핑 영법’(loping stroke)을 구사하기 시작하면서 2년 사이 자유형 100m 기록을 3초 넘게 단축했다. 로핑 영법은 엇박자 수영이라고도 하는데, 오른팔을 뻗을 때 70%의 힘을 실으면서 추진력을 얻음과 동시에 물의 저항력을 줄여줘 단거리에 적합하다. ‘수영황제‘ 마이클 펠프스(미국)가 이 영법을 구사했다. 반면 박태환은 은퇴 전까지 좌우 밸런스를 중요시하는 기본 영법을 구사했다.

호주 전지훈련의 성과 덕분인지 황선우는 도쿄올림픽 이후 점점 성숙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도쿄올림픽 자유형 200m 결선 때는 170m 지점까지 1위를 달리다가 막판 체력이 고갈되며 7위로 미끄러졌다. 하지만 개인 종목에 처음 참가한 이번 세계선수권대회 때는 폭발적 끝내기 능력을 뽐냈다. 경기 운용능력이 생긴 것이다.

황선우 또한 200m 경기가 끝난 뒤 소속사인 올댓스포츠를 통해 “도쿄올림픽에선 경험이 부족해 초반 오버페이스로 후반에 페이스가 많이 떨어졌는데 이번에는 후반에 스퍼트를 올리는 전략으로 값진 결과를 얻은 것 같다”고 밝혔다. 

사실 지난해 도쿄올림픽 내내 경기 경험 부족이 단점으로 지적되던 그였다. 코로나19 때문에 2년 가까이 국제대회에 참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박태환의 경우 같은 나잇대에 활발하게 국제대회에 출전하면서 경기 경험을 쌓았다. 하지만 황선우는 팬데믹 아래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황선우는 ’도쿄올림픽‘이라는 생애 첫 시험이 끝난 뒤 무섭게 치고 올라갔다. 지난해 10월 FINA 경영 월드컵 3차 대회(쇼트 코스)에서는 금메달 1개(자유형 200m), 동메달 2개(자유형 100m, 개인혼영 100m)를 따냈고, 12월 열린 쇼트 코스(25m)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기어이 자유형 200m 금메달을 거머쥐면서 롱 코스(50m) 세계선수권대회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왔다.

황선우가 6월20일(현지시간) 세계선수권대회 남자 자유형 200m 결승전에서 2위로 들어왔다. 왼쪽은 1위로 들어온 루마니아의 포포비치ⓒ연합뉴스
황선우가 6월20일(현지시간) 세계선수권대회 남자 자유형 200m 결승전에서 2위로 들어왔다. 왼쪽은 1위로 들어온 루마니아의 포포비치 ⓒ연합뉴스

“자기 단점 분석해 나날이 업그레이드하는 게 최대 강점”

박태환에게 해켓과 쑨양(중국)이라는 맞수가 있었듯이 황선우는 ‘루마니아의 박태환’으로 불리는 다비드 포포비치(18)와 향후 챔피언 대결을 펼치게 될 전망이다. 포포비치는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선수”라는 평가를 들으며 루마니아 수영 역사를 바꾸고 있는 수영 천재다. 너무 활동적인 그를 빨리 재우기 위해 그의 부모는 4세 때부터 포포비치에게 수영을 가르쳤고 그는 10세 때 이미 국가기록을 갈아치우는 등 승승장구해 왔다. 오죽하면 스스로 “시상대에 오르는 게 중독됐다”라고까지 말할까.

황선우와 마찬가지로 포포비치 또한 나날이 성장 중인데, 그는 처음 참가한 이번 세계선수권 자유형 200m 금메달에 이어 100m에서도 금메달을 따내며 이번 대회 최고의 스타로 등극했다. 키 190㎝의 마른 체형인 포포비치는 체력까지 보완하면 더욱 무서운 선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황선우는 “포포비치가 비슷한 나이여서 라이벌 구도로 많이 언급해 주시는데, 이번 자유형 200m에서 포포비치가 1분43초대라는 대단한 기록을 냈다. 저도 열심히 훈련해 1분43초대에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고 말했다.

황선우는 지금껏 스스로 다짐했던 바를 현실로 구현해 왔다. 쇼트 코스 세계선수권 금메달을 땄을 때는 “쇼트 코스 세계선수권에서 단상에 오른 기분을 롱 코스 세계선수권에서도 느껴보고 싶다”고 했는데 결국 이뤄냈다. 황선우의 승부욕을 고려하면 그가 다짐하는 ‘자유형 200m 1분43초대 돌파’ 또한 조만간 이뤄낼 것으로 보인다. “황선우의 최대 장점은 자기 단점을 분석해 나날이 업그레이드한다는 것”(이병호 감독)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황선우 자신이 쉬는 날에도 수영 영상을 찾아볼 정도로 수영에 푹 빠져있다는 점이 브레이크 없는 그의 미래 질주를 예감케 한다. 

‘로드 투 파리’. 황선우는 지금껏 2024 파리올림픽 입상을 향한 여정을 이어왔다. 세계선수권도, 항저우아시안게임(내년 연기)도 그저 파리의 영광을 위한 경험 쌓기다. 박태환이 한국에 올림픽 첫 수영 금메달을 안겨줬던 2008년, 부모님 권유로 수영을 시작했던 황선우다. 그런 그가 나날이 물살을 가르며 한국 수영사의 새 이정표를 만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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