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 한국은 정확히 합법이야, 불법이야?” [남인숙의 귀여겨 듣기]
  • 남인숙 작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7.02 14:00
  • 호수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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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신히 불법이 아닌’ 한국 여성들, 미국보다 나은 처지
그렇다고 한국 여성들의 자기결정권이 더 낫다고 볼 순 없어

미 대법원의 낙태 합법화 판결 공식 폐기 이후 미국이 둘로 쪼개졌다며 개탄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낙태죄 부활과 관련해 이를 지지하는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이 뚜렷이 갈려 대립각을 세우는 모양새다. 이 뉴스를 접한 네티즌들의 반응을 살펴보니 다양한 의견이 있었다. ‘미국도 이제 국운이 다해 간다. 이런 퇴보라니!’ ‘이게 이전에 집권했던 보수당의 유산이다’ ‘어차피 되어야 할 일이 된 것이다. 생명을 죽이는 것이 합법이라니, 너무 끔찍하지 않은가’ 등등.

그러나 일상으로 돌아온 필자와 실제로 만난 주변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 이런 질문을 할 수밖에 없었다. “가만, 그렇다면 한국은 어땠더라? 한국은 낙태가 합법이야, 불법이야?”

ⓒ연합뉴스
정부가 형법상 낙태죄를 유지하되 임신 초기인 14주까지 낙태를 허용하는 내용의 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2020년 10월7일 서울 국회 앞에서 낙태죄 전면 폐지를 주장하는 시민들이 시위를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법원의 ‘낙태죄 판결’로 양분된 미국

결론부터 말하면 현재 한국에서는 낙태가 불법은 아니지만 딱히 합법도 아니다. 2019년 낙태죄 위헌 판결이 난 후 해당 조항이 삭제되었지만, 관련 법안은 아직도 국회에 계류 중이다. 그렇다면 그 이전에는 불법이었다는 이야기인데, 이전까지 여러 경로로 목격해온 상황은 전혀 달랐다. 1980년대 중반 기술적으로 초음파 감별이 가능해지면서 아들을 골라 낳는 경우를 한 번씩은 보았고, 그 결과가 셋째 이상 자녀의 전국 평균 성비가 207.3에 달하는 부정할 수 없는 수치(1993년 국가통계자료 출생아 자료 기준)로 드러나기도 했다. 통계청에서 보는 자연성비는 103에서 107 정도다.

온갖 출생의 비밀이 얽히기 마련인 일일 드라마에서조차 ‘불법이라서’ 낙태를 하지 못했다는 설정은 볼 수 없었다. 그러니까 한국에서의 낙태는 공식적으로는 불법이지만, 암암리에 필요하면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는 것이었다. 2019년 낙태죄 위헌 판결 덕에 이제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여성들은 산부인과 순례를 하는 대신 인터넷에서 병원을 물색할 수 있게 되었다. 최소한 현재로서는 낙태가 ‘간신히 불법이 아닌’ 한국 여성들이 미국의 텍사스나 오클라호마 여성들보다 훨씬 처지가 나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것이 한국 여성들의 자기결정권이 그쪽보다 낫다는 증거는 아니다.

애초 1980~90년대의 선택 출산 붐은 당시 정부의 산아제한 정책과 일반의 남아 선호가 이해관계에서 맞아떨어져 나온 결과였다. 이후 태아 성감별을 위한 의료행위 처벌이 강화되면서 선택 출산은 줄어들었지만, 낙태 시술은 관행으로 남았다. 단, 이 은밀하면서도 공공연한 불법이 배우자나 남자친구의 고소·고발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병원에서는 ‘배우자의 동행과 동의’를 조건으로 내걸었다.

해외에도 이와 비슷한 사례가 있다. 비(非)이슬람권에서는 유일한 일본을 포함해 적도기니·예멘 등 10여 개국에서는 낙태가 합법이지만 배우자 동의가 필수다. 낙태 합법 여부가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는 것과 연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방증이다. 실제로 과거 고대 로마에서는 낙태가 공공연하게 이루어졌지만 그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여성 자신이 아닌 가부장 남성이었다.

여성은 임신을 유지하고 싶어도 남성이 명령하면 낙태해야만 했다. 치사량 이하로 희석된 독을 마시거나 물리적인 방법으로 직접 제거하는 시술 등이 성행했는데, 그 과정에서 산모와 태아가 모두 목숨을 잃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현재 낙태죄 지지의 주축인 기독교의 초기 교리는 당시 자기결정권 없이 낙태를 당하던 모성, 그리고 태어난 이후에도 필요에 따라 쉽게 버려지곤 했던 영아들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사실 ‘낙태죄 폐지’라는 것은 어감처럼 낙태 프리패스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고통을 느끼고 모체를 벗어나서도 생존이 가능할 만큼 성숙하기 이전에 임신을 중단하는 것만을 허용하는 것이다. 결국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단지 세포분열 중인 배아로 보는가, 인간으로 보는가가 관건인 셈이다. 두 입장 모두가 초기 기독교 발생 이후 피어난 생명 존중 사상에서 각도를 달리하고 있을 뿐이다.

ⓒ연합뉴스
2019년 4월11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심판정에서 열린 낙태죄 처벌 위헌 여부를 밝히는 재판에 재판관들이 입장하고 있다. ⓒ시사저널 포토

낙태, 합법화됐다고 더 늘어나는 것은 아냐

한국에서 낙태가 불법이면서 동시에 합법인 유구한 관행은 임신이라는 상태에 대한 차별적인 시선에 뿌리가 있다. 성행위가 전제되는 일이고 그것은 남성과 여성이 동시에 연관되는 일인데 낙태라는 단어 언저리에는 언제나 여성만 존재한다. ‘자기의 몸은 자기가 알아서 지켰어야지’라는 비난을 피할 수는 없지만 자신의 몸과 인생을 지키기 위해 선택하는 임신중단은 또다시 무책임하다는 꼬리표로 남는다. 필자는 모든 인식이 부족했던 시절, 종종 ‘저 아이는 낙태했다’는 소문이 따라붙는 이들에 대한 수군거림을 무심히 넘기곤 했다. 나중에야 그 일방적인 폭력성을 깨닫고 목덜미가 서늘해졌다. 두 사람 사이에 있었던 일이어도 꼬리표는 여성에게만 붙었다.

합법화된다고 해서 여성들이 낙태를 더 많이 할 가능성은 별로 없다. 그 자체로 모체에 적지 않은 타격을 주는 일이어서 합병증이나 후유증을 남기고, 영구 불임 위험성도 높으며 심리적 상처도 받는다. 때문에 낙태를 경험하고 우울증을 앓거나 임신 공포로 성생활을 즐기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출산지원금 때문에 아이를 낳기로 결정하는 사람들이 없듯, 낙태 합법화 때문에 낙태할 만한 상황을 만들 이들도 없다. 그것은 큰 부작용을 감수하면서까지 인생을 되돌려야만 하는 선택지일 뿐이다.

불법이었던 시기에도 OECD 국가 중 낙태율 1위였던(2017년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발표 기준) 한국에서 그 비율을 줄일 방법은 따로 있다. 15.1%로 OECD 꼴찌인 피임기구 사용률을 높이고 제대로 된 성교육이 공교육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한국인들의 피임 지식은 정말 처참하다. 지금 허공에 떠있는 낙태 관련법이 태평양 건너에서 일어나고 있는 희한한 일들에 영향을 받지 않고 안착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나저나 필자가 궁금한 점이 하나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학교 총기난사 사건으로 아이들을 잃는 텍사스는 정말 총기 규제보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들에게 더 관심을 가지는 일에 모순을 느끼지 않는 것일까.

남인숙 작가
남인숙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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