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현지 방문에 냉담한 홍콩인들, 왜?
  • 모종혁 중국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7.01 12:00
  • 호수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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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1일 홍콩 반환 25주년 기념식 참석
충성과 애국 강요받는 중국화에 반발…아시아의 금융허브 위상도 허물어져

6월28일 홍콩 경찰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이번 주 홍콩을 방문한다”고 발표했다. 시 주석은 30일 전격적으로 홍콩에 도착했다. 7월1일 1997년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된 지 25주년 되는 날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1860년 중국은 제2차 아편전쟁에서 영국에 패배한 뒤 구룡반도를 할양해 주었다. 1898년에는 영국이 청나라와 99년의 임차계약을 맺어 신계까지 빼앗으면서 홍콩 전체를 식민지로 삼았다. 이런 치욕의 역사를 가진 홍콩이 중국의 품으로 돌아온 지 사반세기가 됐다. 게다가 향후 5년 동안 홍콩을 이끌 행정수반으로 존 리(李家超)가 취임하는 날이기도 하다.

따라서 시 주석의 홍콩 방문은 수개월 동안 중화권에서 초미의 관심사였다. 왜냐하면 2020년 1월 코로나19 사태가 벌어진 이래 시 주석이 단 한 번도 중국 본토를 벗어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홍콩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뜻깊은 날이기에 시 주석의 방문에 설왕설래가 많았다. 하지만 날마다 수백 명에 달하는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오는 홍콩의 현실로 인해, 시 주석이 화상으로 존 리의 취임식에 참석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다. 이런 가운데 시진핑의 홍콩 방문이 30일 확인된 것이다. 

ⓒEPA 연합
 5월19일 홍콩 거래소 광장의 전광판에는 홍콩 증시가 가장 큰 폭으로 하락하고 있는 현황이 표시되어 있다.ⓒEPA 연합

홍콩 부자들 이어 중산층도 해외 이주 행렬

이렇듯 시 주석까지 참석해 홍콩 반환 25주년 기념식과 신임 행정장관 취임식을 동시에 열지만, 홍콩은 축제 분위기보다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일부 시민단체와 학생운동단체가 7월1일 산발적인 시위를 계획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6월27일에는 홍콩 경찰이 모조 총기류와 칼, 막대기 등을 소지한 3명을 체포했다. 이들은 총 38개의 반정부 물건을 갖고 있었다. 특히 17세의 고등학생 집에서는 ‘광복홍콩 시대혁명’ 깃발과 반정부 신문도 발견됐다. 26일에는 시내 곳곳에 내걸린 중국 국기와 홍콩특별행정구 깃발이 훼손되는 일이 발생했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홍콩인들의 냉담한 무관심이다. 홍콩의 TV·라디오 등 방송과 ‘문회보’ ‘대공보’ 등 친중(親中) 신문이 앞장서 각종 특집 보도와 기사로 축제 분위기를 고조시키려 했다. 그러나 홍콩인들은 중국 본토식 방역정책으로 인해 추락한 경제 상황에 더욱 관심을 나타냈다. 변호사인 마이클 차우는 필자에게 “지난해 홍콩 경제가 반등하는 기미가 보였지만, 올해 들어 더욱 강력해진 (중국 본토의) 제로 코로나 정책으로 비즈니스 환경과 일상생활이 너무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이를 보여주듯, 홍콩의 1분기 국내총생산(GDP)은 전년 동기보다 4%나 감소했다.

홍콩의 분기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떨어진 것은 2020년 4분기의 -3.6% 이후 5분기 만이다. 고정자산투자(-8.3%), 민간 소비(-5.4%), 수출(-4.5%) 등 모든 지표가 악화됐다. 이런 결과에 대해 홍콩 통계처조차 러시아ㆍ우크라이나 전쟁, 오미크론 변이 확산 등 내ㆍ외부 요인과 함께 중국과 홍콩의 방역정책을 지적할 정도다. 지난 4월까지 홍콩당국은 백신 접종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입국자를 지정된 호텔에서 최대 21일간 격리시켰다. 또한 코로나19 확진자는 최소 한 달간 지정시설에서 격리되어야 했다. 확진자가 나온 아파트는 단지 전체가 봉쇄됐다.

이렇게 중국에 버금가는 제로 코로나 정책과 그에 따른 경제 침체로 홍콩을 떠나는 사람이 늘어났다. 특히 부동산을 제외한 금융자산을 100만 달러 이상 보유한 부자들의 탈(脫)홍콩이 가속화되었다. 6월13일 글로벌 이주 중개업체인 헨리&파트너스가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된 이래 홍콩을 떠난 백만장자는 4200명에 달했다. 게다가 “올해는 3000명의 부자가 홍콩을 떠났거나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물론 1997년 홍콩의 중국 반환을 앞두고 적지 않은 홍콩의 부자들과 중산층이 홍콩을 떠났었다.

그러나 최근 상황은 그때보다 더욱 심각하다. 헨리&파트너스는 “2019년 반정부 시위 사태에도 해외로 이민 가는 홍콩 부자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면서 “지금은 당국의 계속되는 격리정책에 지친 데다 격리시설 수용이라는 위험 탓에 홍콩을 떠나려 한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중산층도 해외 이주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마이클 차우는 “내 주변에서만 10여 명이 해외로 영구 이주했다”며 “이제는 홍콩인의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랐다”고 말했다. 최근 1년여 동안 홍콩 중산층이 주로 이주한 나라는 영국이다. 홍콩인에 대한 영국의 이민정책이 주효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1월 영국 정부는 영국해외시민(BNO) 여권을 발급받은 홍콩인이 자국 시민권을 획득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현재 BNO 여권을 발급받은 홍콩인은 54만1873명에 달한다. 이들 중 수만 명이 홍콩을 떠나 영국으로 이주했다. 이러한 부자들과 중산층의 탈홍콩으로 인해 홍콩은 심각한 인재 유출 상황을 맞게 됐다. 이와 더불어 아시아 금융허브로서의 위상도 흔들리고 있다. 강력한 방역을 견디다 못한 외국계 기업들이 홍콩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글로벌 금융계에서는 각종 국제행사를 홍콩이 아닌 싱가포르에서 개최하고 있다.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가 무너진 현실은 홍콩인들을 더욱 불안케 하고 있다. 2020년 7월 중국은 홍콩국가보안법을 제정하면서 반환 당시 약속했던 일국양제를 사실상 무력화시켰다. 그 뒤 홍콩 당국은 홍콩보안법을 전가의 보도처럼 앞세워 민주화 세력을 탄압했다. 또한 ‘빈과일보’ ‘입장신문’ ‘시티즌뉴스’ 등 반중(反中) 언론을 압박해 폐간시켰다. 그로 인해 대륙에서 유일하게 언론의 자유를 누렸던 홍콩은 ‘2022 세계 언론자유 지수’에서 전 세계 180개국 중 148위를 기록했다. 이는 전년보다 무려 68계단이나 하락한 수치다.

여기에 홍콩인들은 충성과 애국을 강요당하고 있다.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이는 홍콩인이든 외국인이든 충성서약에 서명해야 한다. 충성서약은 홍콩기본법의 준수, 홍콩 당국에 대한 충성과 임무에 대한 헌신 등을 담고 있다. 충성서약 위반 여부를 당국이 자의적으로 판단할 수 있어 사회적 활동에 족쇄로 작용한다. 지난해 학교에서는 교과 과정을 전면 개편해 국가안보, 준법정신, 애국심 교육이 강화됐다. 또한 학생들의 중국 본토 수학여행이 의무화됐다. 올해 새로 개정된 시사교양 교과서에서는 중국의 관점에 따라 영국의 식민지배 역사마저 부정됐다.

ⓒEPA 연합
5월8일 홍콩에서 열린 차기 행정장관 선출 반대 시위 도중 한 경찰관이 민주화 시위대의 가방을 검사하고 있다.ⓒREUTERS

홍콩 젊은 층의 2%만 “나는 중국인”

그렇다면 향후 홍콩의 미래는 어떻게 전개될까? 홍콩인과 외국 기업의 탈홍콩 흐름이 일시적인 타격을 주어도 장기적으로는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할 전망이다. 그들의 빈자리를 중국인과 중국 기업이 메우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25년 동안 중국은 홍콩 경제를 장악해 왔다. 홍콩 증시에 상장한 중국 기업은 1999년 44개에서 2021년 1370개로 폭증해, 전체 시가총액의 80%를 차지하고 있다. 홍콩에서 규모가 큰 건설공사는 중국 국영기업이 싹쓸이해 수주하고 있다. 소매업도 중국 기업의 지배력이 확대되고 있다. 그 속에서 일하는 중추 인력 대부분이 중국인이다.

이런 추세로 볼 때 홍콩의 중국화는 더욱 거세질 수밖에 없다. 장기집권의 안정화를 위해 홍콩을 장악하려는 시진핑 국가주석의 의지가 확고하기 때문이다. 경찰 출신인 친중 강경파 존 리가 행정장관으로 낙점된 것은 그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중국이 홍콩인들의 마음을 잡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중국에 대한 민심 이반은 오히려 거세지고 있다. 6월초 홍콩 주민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여론조사에서 18~29세의 76%가 자신의 정체성을 ‘홍콩인’이라고 응답했다. ‘중국인’이라고 답한 비율은 2%에 불과했는데, 역대 여론조사 결과 중 최저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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