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오랜 평화의 미몽에서 깨워 놓았다”
  • 조철 북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8.07 11:00
  • 호수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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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과 이후의 세계 성찰한 《전쟁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착각》

지난 2월 발발한 우크라이나 전쟁이 반년이 다 되도록 멈출 기세를 보이지 않는다. 방송사들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전쟁의 참상을 담은 영상을 내보내고 있다. 한 방송에서 폭격으로 불에 탄 들판을 배경으로 해 우크라이나 시골 농부의 목소리를 전한다. “나쁜 평화가 좋은 전쟁보다 낫다. 나쁜 평화, 설령 경계선에 있는 평화라 해도 적어도 폭격은 없으니까.” 평화롭던 지난해만 해도 땀 흘리며 수확에 열중했을 그에게 전쟁은 평화가 당연하지 않은 미래를 바라보게 할 뿐이다. 도대체 이토록 참혹한 전쟁이 왜 발발했는가? 우크라이나 전쟁은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30여 년 동안 정치철학을 연구해온 철학자 이진우씨가 지정학, 국제정치학, 사회학, 역사학 등을 아우르는 넓고 깊은 시선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을 분석한 《전쟁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착각》을 펴냈다.

전쟁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착각│이진우 지음│휴머니스트 펴냄│208쪽│1만5000원

“평화 패러다임을 깨고 세계 지정학적 대분기가 시작됐다”

“러시아는 정당한 이유 없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함으로써 ‘강자의 권리’가 국제정치의 핵심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드러냈다. 우리는 이제 국가 이익을 위해서는 명분보다 실리, 대화보다 갈등, 평화보다 전쟁이 선호되는 새로운 시대로 진입한 것이다.” 현실정치에도 끊임없이 관심을 기울여온 이씨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종래의 전쟁과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닌다는 점을 파악할 수 있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국가 간 전쟁이나 지역 분쟁을 넘어 앞으로 전개될 새로운 세계 질서를 만들 중대한 사건이라는.

“지정학적 요충지를 차지하기 위한 싸움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전쟁으로 인해 동과 서의 분열이 명확히 가시화됐다. 실제로 전쟁 발발 이후 평화주의에 취해 있던 유럽은 전쟁 확산을 경계하고 있으며, 러시아와 중국은 서방과 새로운 패권 경쟁을 예고했다. 우크라이나전쟁으로 인해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한 자유민주 세력과 중국과 러시아의 권위주의 세력이 극명하게 갈리는 ‘지정학적 대분기’가 시작된 것이다.”

이씨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전 세계인을 ‘전쟁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착각’에서 벗어나게 했다고 주장한다. 이씨는 냉전 이후 자리 잡은 평화 패러다임에서 그 답을 찾는다. “1989년 베를린장벽 붕괴와 1990년 독일 통일 이후 사람들은 전 세계를 잠식했던 냉전체제가 종식되고 새로운 평화의 시기가 도래했다고 믿었다. 실제로 냉전 이후 지금까지 강대국 간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으며, 대량 학살이나 테러리즘 또한 감소했다. 하지만 우리는 평화의 시기를 만든 것은 전쟁이라는 사실을, 평화를 유지한 것은 전쟁이 가져온 공포라는 사실을 잊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이를 망각한 채 모든 갈등을 무력 없이도 해결할 수 있다는 평화의 패러다임이 지배한 시기에 발발했다.”

이씨는 ‘전쟁은 냉혹한 스승’이라는 고대 그리스 역사학자 투키디데스의 말을 인용해,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철저한 예측과 대비를 할 것을 권고한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고 제3차 세계대전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있다. 우리나라가 자유주의 세력과 권위주의 세력의 또 다른 경계인 유라시아 동쪽에 자리한 만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부터 교훈을 얻는 일은 매우 긴요하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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