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입추에 물난리…속수무책의 정치
  • 최영미 시인/이미출판사 대표 (chunyg@sisajournal.com)
  • 승인 2022.08.12 17:00
  • 호수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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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21세기 대한민국이 맞나? 기습 폭우로 아파트 주차장이 물에 잠기고, 서울이 자랑하는 강남이 물바다가 되었다. 심지어 대통령이 거주하는 서초동 자택 주변도 침수되어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와 수해 현장에 가려고 해도 자택 주변 도로가 막혀 갈 수 없었다고 한다. 폭우로 인한 침수 피해로 9명이 사망하고 6명이 실종되었고, 관악구 신림동 반(半)지하 주택에 살던 발달장애 가족이 문을 열지 못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40대의 여성이 빗물이 들이닥치자 지인에게 침수 신고를 요청했고, 지인이 경찰에 신고했지만 경찰 대응이 늦어 배수 작업이 지체됐고 소중한 생명을 잃었다.

건축법을 개정해 앞으로 짓는 건물들은 지하나 반지하에 주거용 방을 만들지 못하게 해야 한다. 지금 있는 건물들도 반지하나 지하 방을 주거용으로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반지하에 세를 못 주게 하고, 지하 공간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실태를 파악해 전부 지상으로 옮기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지난 8일 오후 9시 7분께 서울 관악구 부근 한 빌라 반지하에 폭우로 침수된 일가족 3명이 갇혀 신고했지만 결국 사망했다. 주민들에 따르면 사고가 난 빌라 바로 앞 싱크홀이 발생해 물이 급격하게 흘러들었고, 일가족이 고립돼 구조되지 못했다. 사진은 침수된 빌라 배수작업 Ⓒ연합뉴스
지난 8일 오후 9시 7분께 서울 관악구 부근 한 빌라 반지하에 폭우로 침수된 일가족 3명이 갇혀 신고했지만 결국 사망했다. 주민들에 따르면 사고가 난 빌라 바로 앞 싱크홀이 발생해 물이 급격하게 흘러들었고, 일가족이 고립돼 구조되지 못했다. 사진은 침수된 빌라 배수작업ⓒ연합뉴스

“아무리 가난해도 태양 빛을 쬘 권리는 있다”

아무리 가난해도 태양 빛을 쬘 권리가 있다. 청와대 그 넓고 해 잘 드는 곳에 장애인 가족을 위한 빌라와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노인요양시설을 짓기 바란다.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으로 옮기며 청와대 활용 방안을 논할 때부터 든 생각인데, 푸른 기와의 집을 누구를 기념하는 문화시설로 개조하지 말고, 죽음으로 내몰리는 취약계층을 위한 거주지로 만들기를 제안한다. 대통령들이 살던 집을 소파 선전장으로 만들지 말고, 서울의 심각한 주거 복지 문제를 해결하는 데 청와대 부지를 활용하라. IT 강국 대한민국에서 소외되었던 이들에게 햇볕을 쬐게 하고, 서러운 지하 생활자들에게도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라. 정치가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정책 입안자들이 정책 우선순위를 조금 바꾸기만 해도 보통사람들 삶의 질이 달라진다.

사고가 터진 뒤에 말로만 수습책을 지시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이런 재난을 피할 수 있는지, 인재를 최소화할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입으로만 취약계층을 돌본다고 생색내지 말고 공무원들이 일을 제대로 하기 바란다.

그들이 정글에 사는 동물이었다면 사나운 비를 피해 어디론가 내달려 나무 밑이나 동굴에 숨어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을 텐데, 비가 들이닥쳐 문을 열지 못해 모녀가 죽었다니. 자연의 변화 앞에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지. 유럽은 펄펄 끓고 있고, 산불과 폭염·폭우로 전 세계가 비상사태다. 코로나바이러스나 전쟁보다 기후변화가 나는 더 무섭다.

영국이 섭씨 40도라고! 150년 만의 폭염과 100년 만의 폭우. 이상기후가 어느새 일상이 되었다. 한반도뿐만 아니라 전 지구가 올해처럼 기후변화로 몸살을 앓은 해도 없었던 것 같다. 코로나에 가려졌지만, 지금 우리를 가장 위협하는 위기는 기후변화다. 지금 인류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대재앙을 막기 위해 과감하고 선제적인 조치들을 취하지 않는다면, 맑고 푸른 가을 하늘은 우리 세대에서 끝날지도 모른다. 가을을 잃어버리면 가을을 노래하는 시들도 사라지겠지.

기후변화를 전담하는 ‘기후 에너지’ 장관직을 신설해 미래의 재앙에 대비해야 한다. 가을이 지나 겨울이 오면 식량, 에너지 위기가 현실화할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코로나로 심화된 식량 위기, 에너지 위기를 극복하고 식량과 에너지를 자급하는 선진국가로 가기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최영미 시인/이미출판 대표<br>
최영미 시인/이미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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