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트롤타워 기능 상실…대통령실 폭우 대처 ‘우왕좌왕’
  • 김종일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22.08.12 10:00
  • 호수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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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대통령, “불편 겪은 국민께 죄송” 취임 후 첫 사과
‘반지하 참변’ 현장 홍보 활용에 시민들 “경악” 비판

기록적 폭우에 대한 대통령실의 부실 대응이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정부의 미흡한 대처와 위기 대응 능력, 폭우 참사 피해 현장을 국정 홍보물로 활용하는 등 부적절한 대응이 이어지면서다. 

윤석열 대통령이 115년 만의 폭우에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상황실이나 피해 현장을 방문하지 않고 서울 서초구 사저에 머무르며 상황 대응을 지시했다는 사실도 논란이 됐다. 긴급한 재난 상황에서 대통령이 컨트롤타워로서 상황 전반을 통제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지적도 잇따랐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에 따른 출퇴근 리스크가 현실화되었다는 비판도 있다.

정치권에서는 이번 폭우 사태가 윤석열 정부의 위기 예방과 대비에 여러 가지 돌아볼 점을 던져 준다고 지적한다. 기상 관측 이래 최대 폭우라고는 하지만, 재난 예방과 대처에서 문제점을 상당 부분 노출했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8월9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침수 피해 현장을 방문했다.ⓒ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8월9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침수 피해 현장을 방문했다.ⓒ연합뉴스

예고된 폭우, 뒤늦은 대처, 구조적 문제

우선 사전 준비 부족을 짚어야 한다. 이번 ‘비 폭탄’은 이미 기상청 등에서 예고했던 일이다. 집중호우가 예보됐는데도 사전 경고나 위험 관리 조처가 부족했다. 행정안전부는 대규모 피해가 발생한 뒤인 8월9일 새벽 1시에야 풍수해 위기 경보를 ‘경계’에서 최고 단계인 ‘심각’으로 올렸다. 

비상시 대통령의 주거 공간과 집무실이 달라 빚어질 수 있는 문제점이 드러났다고 우려하는 소리도 높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전날 수도권 호우 상황에서 서초동 사저에 머무르며 한덕수 국무총리,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오세훈 서울시장과 통화하며 피해 상황을 보고받고,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브리핑에서 “윤 대통령은 전날 오후 9시부터 (이날) 새벽 3시까지 실시간으로 보고받고, 지침을 내렸다”면서 “현장의 모든 인력이 상황 대처에 매진해야 하는 상황에서 대통령이 현장이나 상황실로 이동하게 되면 대처 인력들이 보고나 의전에 신경 쓸 수밖에 없고, 대처 역량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퇴근한 뒤 집에 머무르며 전화로 상황을 파악하고 지시를 내리고, 오세훈 서울시장이 밤 10시가 다 돼서야 시청에 복귀했다는 사실이 입방아에 오른 것은 정부의 대처가 시민들의 눈높이에 미치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구조적 문제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번 폭우로 인해 피해가 집중된 서울 남부는 유사한 물난리를 겪은 적이 있다. 2010년과 2011년 집중호우로 강남역 일대가 물에 잠기고 2011년 서초구 우면산 산사태로 대규모 인명 피해까지 입었다. 이후 배수 시스템 개선 사업 등 수해 방지 대책을 세웠지만, 이번에 전혀 실효성을 발휘하지 못했다. 최근 장마 기간이 대폭 늘어나고 여름철 강수 패턴이 급변하는데도 근본적인 집중호우 대비책을 세우지 않았던 것이다. 

윤 대통령은 8월10일 수도권 집중호우 피해와 관련해 “희생자의 명복을 빌며 불편을 겪은 국민께 정부를 대표해 죄송한 마음”이라고 밝혔다. 호우 피해에 대한 사과이자 취임 후 첫 대국민 사과 메시지다. 윤 대통령은 정부서울청사에서 ‘폭우 피해상황 점검회의’와 ‘하천홍수 및 도심침수 대책회의’를 잇따라 주재했다. 아파트 옹벽 붕괴 현장도 방문했다. ‘재택 지시’ 논란 이후 자세를 낮춰 폭우 피해 대책 마련에 부심하는 모양새다.

대통령실은 윤석열 대통령의 신림동 호우 참사 현장 방문 사진을 국정 홍보물로 활용해 큰 비판을 샀다.

“집무실 리스크 현실화됐다” 지적

하지만 대통령실의 호우 대응은 다시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윤 대통령의 신림동 호우 참사 현장 방문 사진을 국정 홍보물로 활용한 것이 문제가 됐다. 대통령실은 참변 현장 사진을 카드뉴스 배경으로 사용했다. 당장 일가족 3명이 수해로 사망한 사건 현장을 국정 홍보 목적에 이용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참사 현장이라 불편하게 생각하는 분이 많았다”면서 “부족한 점이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담당팀에 연락해 내리도록 요청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해당 카드뉴스는 이후 대통령실 홈페이지에서 삭제됐다.

윤 대통령의 사과 메시지를 두고서도 대통령실 내부에서 혼선이 빚어졌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윤 대통령 발언을 취임 후 첫 사과로 볼 수 있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굳이 사과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국민 목소리를 듣겠다’는 말씀 중 하나”라고 했다. 하지만 답변을 명확히 해달라고 하자 “사과다. 첫 번째라는 것에 너무 의미를 크게 두셔서 말씀드린 것”이라고 정리했다.

참모들의 대응도 구설에 올랐다. 강승규 시민사회수석 발언이 논란이 됐다. 강 수석은 8월10일 KBS 라디오에서 “컨트롤타워가 부재했다고 야권이 프레임을 씌우는 것은 무책임한 공격”이라며 “대통령이 계신 곳이 곧 상황실”이라고 말했다. 호우가 계속되는데 퇴근길에라도 차를 돌렸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비가 온다고 대통령이 퇴근을 안 하느냐. 상황이 왔을 때 그 상황에 대처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이와 같은 답변은 국가의 컨트롤타워로서 대통령의 완벽한 역할을 기대하는 국민 눈높이에는 맞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았다. 

민주당은 당장 공세에 나섰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자택 지시가 문제가 없다는 대통령실 인식이 심각하다. 아크로비스타가 국가위기관리센터냐”고 비판했다. 조오섭 민주당 대변인은 논평에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위협받고 있을 때 보이지 않는 대통령을 국민이 신뢰할 수 있을지 윤 대통령은 자문자답하기 바란다”고 했다. 

강인선 대통령실 대변인은 민주당 논평에 반박 성명을 내고 “대통령 집무실 이전을 정치적으로 공격하기 위해 허위사실을 주장하는 것은 국민의 고통을 외면한 무책임한 행태”라며 “재난 상황마저 정쟁 도구화를 시도하는 논평에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이어 “대통령이 자택에 고립됐다는 주장도, 집에 갇혀 아무것도 못 했다는 주장도 터무니없는 거짓”이라고 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도 브리핑을 통해 “전날 대응은 사전 매뉴얼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5월 대통령실 국정상황실, 소방청, 산림청 등 재난 관리부처에서 재난 상황 발생 초기부터 대통령실이 직접 지휘에 나서면 현장에 혼란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상황 초기에는 관계기관이 적극적으로 총력 대응하라는 지시를 신속하게 내리는 것을 우선으로 하고 어느 정도 상황이 마무리된 다음 현장을 방문하는 것이 맞는다는 원칙을 세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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