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탑건’이 말하는 아찔한 비행세계
  • 김현지 기자 (metaxy@sisajournal.com)
  • 승인 2022.08.21 10:00
  • 호수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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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군 조종사 최초 전술무기 교관’ 타이틀 거머쥔 김선옥 소령
“적 전투기와의 가상 교전 어려워… 응원해 준 사람들 덕분”

전설적인 조종사가 교관으로 돌아왔다. 영화 《탑건: 매버릭》 이야기다. 미국 해군 전투기 조종사인 매버릭(톰 크루즈 역)은 특수 임무에 투입될 조종사들의 훈련을 맡는다. 테러지원국의 우라늄 농축시설을 파괴하는 임무였다. 매버릭을 비롯한 조종사들은 적의 레이더망을 피하기 위해 구불구불한 협곡에서 낮은 고도로, 하지만 초고속으로 전투기를 비행해야 했다. 협곡을 지나 농축시설에 미사일을 명중시킨 뒤에는 전투기를 직각으로 몰아야 한다. 그래야 적의 탄도미사일 등 공격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임무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러나 《탑건: 매버릭》 속 조종사들은 한계를 뛰어넘었다. 이들은 우라늄 농축시설을 명중시켰고, 매버릭은 4세대 전투기 F-14를 몰면서 적의 5세대 전투기를 따돌리고 귀환했다. 영화는 이들의 활약상, 무엇보다 최고의 조종사들을 ‘하나의 팀’으로 만든 교관 매버릭을 그렸다. 지난 6월22일 개봉한 《탑건: 매버릭》의 흥행은 현재진행형이다. 8월18일 기준 누적 관객수는 775만1000명을 넘었다. 한계 이상의 가능성을 보여준 전설적인 교관 매버릭에게 관객들은 열광했다.

여성 최초 전술무기 교관인 김선옥 소령ⓒ공군 제공
여성 최초 전술무기 교관인 김선옥 소령ⓒ공군 제공

국내 첫 女 전술무기 교관으로 활약

한국에는 ‘여성 불모지’라는 한계를 뛰어넘어 전술무기 교관이 된 조종사가 있다. 김선옥 소령(33·공사60기)이 그 주인공이다. 김 소령은 지난해 여군 조종사 최초로 전술무기 교관(FWIC, Fighter Weapons Instructor Course) 자격을 얻었다. 전투기 조종사들에게 항공전술과 무기운용을 가르치는 전술무기 교관이 되려면 박사과정에 준하는 방대한 학업량이 필수다. 수준급의 조종사 자질도 갖춰야 한다. 전술무기 교관 과정과 관련해 ‘조종사 교육에서 가장 어려운 최상위 과정’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도 그래서다. 여군 최초의 전술무기 교관이 나온 건 2002년 첫 여군 조종사 배출 이후 19년 만이다.

김 소령을 비롯해 7명의 전투기 조종사들은 지난해 1월 전술무기 교관 자격을 취득했다. 공군은 1년에 두 번, 반기별로 전술무기 교관 과정을 운영한다. 매년 10여 명의 전투조종사들만 교관 자격을 얻었다는 게 공군의 설명이다. 그만큼 교관이 되는 과정은 어렵다. 우선 교관 자격이 되기 위한 조건도 까다롭다. 조종사들은 F-15K, F-16, FA-50, F-5를 주 기종으로 한 4기 이상의 전투기를 지휘할 수 있는 비행 자격(4기 리더)을 취득해야 한다. 일정 비행시간도 있어야 한다. 이를 충족한 전투조종사들은 비행단별로 선발된다. 이들은 이후 전술과 무기체계에 정통한 교관으로 양성하는 전문가 과정에 임하게 된다.

김 소령이 모는 주 기종은 F-16이다. 비행시간은 약 1100시간이다. 김 소령은 지난 8월17일 시사저널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전술무기 교관 과정은 간단히 말해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활용할 수 있는 무장(武裝)을 연구하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공대공(空對空) 임무에서는 항공기 성능과 공중에서 항공기끼리 교전 시 사용할 수 있는 무장을 공부한다”면서 “공대지(空對地) 임무에서는 정밀 무장부터 재래식 무장까지 항공기가 사용할 수 있는 무장을 연구하고, 실제 지상 표적을 맞히는 훈련을 한다”고 설명했다.

전술무기 교관 과정은 쉽지 않다. 매년 10여 명의 조종사만이 교관 자격을 얻을 만큼 관문이 좁은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최초로 여자 조종사가 교관 자격을 취득한 게 화제가 될 정도였다. 적이 탄 가상의 전투기와 교전 상황을 가정한 훈련도 해야 한다. 김 소령에게도 난관은 있었다. 그는 “모든 임무가 쉽지 않았지만 가상의 적기와 근접교전 상황을 가정한 훈련을 할 때가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다.

비행 중인 매버릭 역의 톰 크루즈. 영화 《탑건: 매버릭》의 한 장면ⓒ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비행 중인 매버릭 역의 톰 크루즈. 영화 《탑건: 매버릭》의 한 장면ⓒ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가상의 적 전투기와 교전 상황’ 힘들었다”

중력가속도(G) 역시 김 소령이 넘어야 할 산이었다. 비행 중에는 중력의 작용으로 생기는 가속도가 올라간다. 이로 인해 압력이 생기면서 조종사의 시력이 변하고 의식을 잃을 수도 있다. 보통 전투기를 타려면 중력의 6배, 즉 6G를 버텨야 한다. 영화 《탑건: 매버릭》에서는 매버릭이 한계를 넘어 중력가속도 10을 버틴다. 특수 임무에 투입된 매버릭의 후배 조종사가 이러한 중력가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잠시 기절하는 장면도 영화에 나온다. 기절한 뒤 깨어나지 못하면 사망에 이를 수 있다. 중력가속도는 조종사들에게 숙명이다.

김 소령은 “임무 중 상당히 많은 중력가속도를 받게 된다”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또한 공중 상황이 지속적으로 변하기 때문에 가상의 적기들을 발견하지 못하거나 시야에서 놓치면 전술적으로 불리한 상황이 된다”면서 “그뿐 아니라 항공기끼리 공중 충돌과 같은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이처럼 고난도의 임무를 통과한 김 소령에게도 비행 중 아찔했던 순간은 있었다. 조종사들이 비행 중 가장 많이 경험한다는 비행착각(SD, Spatial Disorientation)이었다.

비행착각은 기상이 좋지 않아 구름 속에서 장시간 비행할 때 경험할 수 있다. 야간비행을 하는 경우에도 마주칠 수 있는 상황이다. 이때 조종사가 느끼는 비행 기동과 실제 기동이 다른 것이 ‘비행착각’이라고 김 소령은 설명했다. “예를 들면 실제로는 지면으로 강하하는 위험한 상황인데, 수평비행을 하고 있다고 여기는 착각이 드는 것”이라고 전한 그는 “특히 야간비행 시 월광(月光)이 낮으면 하늘의 별과 바다에 있는 배의 불빛이 같게 보이는 경우가 있는데 실제로 이로 인해 바다에 추락한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김 소령은 실제로 비행착각을 경험했다. “저도 야간 해상 임무나 기상이 좋지 않았을 때 실제로 지면으로 강하하고 있었는데, 수평비행을 유지하고 있다는 비행착각을 경험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상황이 지속될 경우 자신도 모르게 지면에 충돌할 위험이 있기 때문에 절차에 따라 제 감각이 아닌 비행계기에 나타나는 고도계와 속도계 등을 믿고 비행해 다행히 위험한 상황에서 벗어난 적이 있습니다.” 비행착각은 중력가속도만큼 조종사들을 위험한 순간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

한미 연합항공훈련이 실시된 5월9일 경기도 평택시 주한 미공군 오산기지에서 F-16 전투기가 착륙하고 있다. 오늘부터 2주간 시행되는 이번 공군 연합훈련에는 한미 전투기 등 공군 전력 수십 대가 참가한다.ⓒ뉴시스

“응원한 사람들 생각하며 힘든 상황 극복”

고비는 매 순간 있었다. 김 소령은 그러나 여러 관문을 거쳐 ‘여군 최초 전술무기 교관’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그 과정에는 김 소령의 남편이 있었다. 김 소령은 “남편이 조종사로서 발전한 모습을 보고 그러한 결정을 했고, 그 과정에서 많이 응원해 줬다”고 전했다. 그는 지난해 전술무기 교관 수료식에서도 “이번에 교관 자격을 획득할 수 있었던 건 먼저 교관이 된 남편의 아낌 없는 성원과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했었다.

김 소령은 결국 꿈을 이뤘다. 고등학교 때 처음 조종사를 꿈꿨다는 그는 “하늘을 나는 조종사라는 직업이 자유로워 보였다”고 회상했다. 2012년 공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소위로 임관해 비행훈련 과정을 거쳐 전투조종사가 됐다. 공군은 지난해 “김 소령은 뛰어난 비행 기량과 특유의 성실함으로 어려운 훈련들을 무리 없이 소화했다”며 “그뿐 아니라 대규모 편대군 훈련에서 임무편대장(MC, Mission Commander) 역할을 맡아 성공적으로 임무를 완수해 전술무기 교관으로서의 자질을 인정받았다”고 밝혔다.

교관 자격을 취득한 지 1년이 흘렀다. 김 소령은 현재 공군사관학교 군사훈련처에 있다. 비행임무는 물론, 후배 양성에 여념이 없다. 무엇보다 후배의 비행 안전에 그는 중점을 두고 있다. 김 소령은 “교육을 마친 지난해에는 비행대대에서 다양한 비행임무를 수행했다”며 “올해부터 공군사관학교 군사훈련처에서 사관생도의 비행훈련 입과 및 관숙비행 관련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후배들에게는 내가 먼저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이려 노력하고 있다”며 “무엇보다도 안전을 가장 강조하는데, 비행에는 정해진 규정과 절차가 있기 때문에 훈련 상황에서는 그 안에서 안전하게 비행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전투기 조종사는 임무 지시사항, 기상 등을 브리핑을 통해 숙지하면서 일과를 시작한다. 비행 후에는 보완점 등 평가가 이어진다. 한 번의 비행을 ‘1소티’라고 부르는데, 통상 비행 전 브리핑부터 비행 후 브리핑까지 다섯 시간이 소요된다고 한다. 김 소령은 “조종사에 따라 하루에 2소티 비행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2소티 비행하면 하루 일과가 끝나기도 한다. 전투기 조종사들의 비행 횟수는 일주일에 평균 4~5번. 비행 뒤 조종사들이 겪는 체력적·정신적 소모가 크다고 알려졌다. 그래서 체력 관리가 필수다.

김 소령 역시 주기적으로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정신적으로는 지금보다 더 힘들었던 순간들을 이겨냈던 경험을 떠올리며, 나를 믿어 주고 응원해 주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극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소령은 어떤 군인으로 남고 싶을까. 그의 말이다. “편안하면서도 믿음직하고 든든한 군인이 되고 싶습니다. 현재 제가 맡은 역할에 충실히 임하고, 언제 어디서든 저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저에게 주어진 일을 충실히 해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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