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사태’ 일으킨 쿠팡플레이, 결국 고개 숙였다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22.08.22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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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일방 편집한 쿠팡플레이, 정식 사과하고 재발 방지 약속
감독과 스태프 요구대로 6부작 크레딧에서 이름 삭제

온라인동영상서비스 쿠팡플레이의 드라마 《안나》를 둘러싼 뜨거운 논란이 일단락됐다. 《안나》를 6부작으로 일방 편집해 물의를 빚었던 쿠팡플레이가 감독과 스태프들에게 정식으로 사과했다. 일방 편집본의 크레딧에서 이름을 삭제해 달라는 감독과 스태프들의 요구도 수용했다.

《안나》의 극본을 쓰고 연출한 이주영 감독의 법률대리인 법무법인 시우(담당변호사 송영훈)는 21일 “일방적인 《안나》 편집으로 인한 저작인격권 침해 등의 궁극적인 해결을 위해 소송을 준비하던 중, 한국영화감독조합(공동대표 민규동·윤제균 감독)의 중재로 지난 19일 쿠팡플레이와 비공개 회동을 가졌다”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 이주영 감독은 쿠팡플레이의 총괄책임자로부터 이번 사건에 대한 진지하고 정중한 사과와 함께 “다시는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할 것”이라는 약속을 받았다.

쿠팡플레이는 또 국내 플랫폼 뿐 아니라 해외 플랫폼의 6부작 《안나》 크레딧에서 이 감독과 스태프 6명의 이름도 삭제하기로 했다. 이 감독과 뜻을 함께 한 스태프들은 이의태·정희성(촬영), 이재욱(조명), 박범준(그립), 김정훈(편집), 박주강(사운드) 등이다. 편집본 크레딧에서 이름을 삭제하는 데는 1주에서 최대 3주가 걸릴 전망이다.

쿠팡플레이 드라마 《안나》 ⓒ쿠팡플레이
쿠팡플레이 드라마 《안나》 스틸컷 ⓒ쿠팡플레이

쿠팡플레이는 지난 6월24일 《안나》를 공개했다. 《안나》는 사소한 거짓말을 시작으로 완전히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게 된 주인공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다. 높은 몰입도와 긴장감으로 시청자들의 호평을 이끌어내면서 쿠팡플레이의 킬링 콘텐츠로 꼽히기도 했다. 그러나 이 감독은 지난 8월2일 법률대리인을 통해 “공개된 《안나》가 쿠팡플레이의 일방적 편집으로 다른 작품이 됐다”고 주장하며 쿠팡플레이를 상대로 법적 대응을 할 것을 시사했다. 쿠팡플레이가 8부작으로 예정된 작품을 6부작으로 일방적 재편집해 콘텐츠의 본질을 훼손했다는 것이 이 감독의 주장이었다. 당시 이 감독은 쿠팡플레이의 사과와 8부작 감독판 공개, 일방 편집본의 크레딧에서 이름을 삭제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쿠팡플레이는 이 감독의 편집 방향이 당초 협의된 방향과 달랐고, 이 감독에게 수정요청을 전달했으나 감독이 이를 거부했다고 주장했다. 또 “제작사의 동의를 얻었고, 최종적인 작품 편집은 계약에 명시된 권리에 의해 이뤄진 것”이라며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러나 이 감독은 “단 한 번도 수정 요구를 들은 적이 없다”며 쿠팡플레이의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며 맞섰다. 또 쿠팡플레이의 행동이 제작사와의 계약 내용과 별개로 저작인격권(동일성유지권과 성명표시권 등 저작자의 인격적인 이익을 보호하는 권리)에 대한 침해 행위임을 강조했다.

《안나》 작업에 참여한 촬영감독, 조명감독, 편집감독 등도 이 감독을 지지하고 나섰다. 이들은 “쿠팡플레이로부터 전혀 존중받지 못했고, 저희가 피땀 흘려 완성해낸 결과가 쿠팡플레이에 의해 일방적으로 변경됐다”고 지적했다. 또 “감독도, 저희 중 누구도 동의하지 않았다. 제대로 알 수 조차 없었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라며 크레딧에 남아 있는 이름을 내려 달라고 요구했다. 자신들의 퀄리티와 다른, 다른 능력에 의한 알지 못한 결과물에 이름을 사용하는 것은 제작진에 대한 가장 큰 무례라는 것이다. 이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사태의 진행 경과와 훼손된 극의 내용, 쿠팡플레이의 태도에 대해 세세히 전하기도 했다. 이해도 없는 편집으로 작품을 훼손시킨 점, 감독과 창작자들의 의견을 무시하면서도 감독들의 수상 실적을 마케팅에 이용하는 행태 등을 비판하며 “그들의 오만함과 어리석음을 그냥 묻고 넘어갈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한국영화감독협회 등 단체도 움직였다. 한국영화감독협회는 8월11일 “감독의 권리를 능욕하지 말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냈다. 협회는 성명서를 통해 “이주영 감독의 인터뷰를 보고 참담했다. 8부작으로 기획·제작된 작품을 6부작으로 자체 편집하고, 반말을 섞어가며 회의를 진행하는 플랫폼 관계자가 무례를 넘어 ‘왜 모든 장면을 의도를 갖고 찍었느냐’고 하는 데서는 분노를 참기 힘들었다”고 했다. 또 “‘안나 사태’를 좌시하지 않고 지켜볼 것”이라며 쿠팡플레이의 사과와 감독판 공개, 크레딧의 이름 삭제 등을 촉구한 바 있다.

“감독의 편집 방향성을 존중해 시청자들에게 이미 약속한 감독판 8부작을 공개하게 됐다”며 사과 없이 《안나》 감독판 공개를 강행한 쿠팡플레이는 결국 19일 고개를 숙였다. 이주영 감독은 “원만한 해결을 위해 노력해주신 한국영화감독조합 공동대표 민규동 감독님과 윤제균 감독님, 그리고 임필성 감독님께 감사드린다”며 “저와 뜻을 함께 해준 스태프와 배우들께도 깊이 감사드리며, 《안나》에 애정을 가지고 지켜보며 성원해주신 많은 분들의 마음도 잊지 않겠다”고 전했다. 이 감독의 법률대리인은 “이번 사건을 통해 변화하는 국내 영상산업 환경에서 창작자의 저작인격권이 가지는 중요성이 재조명되었다고 본다”며 “앞으로 영상산업계에서 창작자들이 더욱 존중받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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