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한 줄’이 부른 1기 신도시 재정비 후퇴 논란
  • 허인회 기자 (underdog@sisajournal.com)
  • 승인 2022.08.24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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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지선 주요 공약이 첫 부동산 대책선 ‘한 줄’
주민들 “당선을 위해 이용당하고 팽 당한 느낌”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 23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 23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1기 신도시 재정비 추진을 놓고 논란이 가중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1기 신도시 재정비 사업’이 윤석열 정부 첫 부동산 대책에서 거의 언급되지 않으면서 해당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진 것이다. 이에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뒤늦게 수습에 나서며 추진 의지를 밝혔지만 전문가들은 실현 가능성에 의문 부호를 달고 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23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진행한 취임 100일 기념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1기 신도시 재정비 공약 파기 논란’에 대해 “1기 신도시 재정비 정책을 공약대로 신속히 추진하겠다”면서 “단 하루도 우리(국토부)로 인해 사업 추진이 지체되는 일이 없도록 장관직을 걸고 말씀드린다”고 강조했다.

국토부는 지난 16일 내놓은 윤석열 정부의 첫 주택공급대책인 ‘국민 주거안정 실현방안’에서 1기 신도시 재정비와 관련해 2024년까지 마스터플랜을 수립하겠다는 시간표를 제시한 바 있다.

하지만 이를 두고 1기 신도시 주민들은 ‘총선용 시간끌기’가 아니냐며 반발하고 있다. 성난 민심은 집단 행동으로 이어졌다. 지난 22일 분당 신도시 주민 100여명은 지난 22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의 한 공원에서 “1기 신도시 희롱 말고 재건축 신속히 진행하라”는 구호 등을 외치며 조속한 1기 신도시 재정비를 촉구하는 집회를 열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1기 신도시 재정비’ 사업은 윤석열 대통령 후보 시절부터 우선순위 공약이었다. 제20대 대선 국민의힘 중앙 정책공약집에 따르면 ‘1기 신도시 재정비’는 부동산 정상화 세 번째 공약이었다. 재개발, 재건축 등 재정비 사업이 두 번째 공약이었지만 1기 신도시 재정비는 따로 떼어 공약으로 내세웠다.

윤 대통령 취임 이후 선정한 120대 국정과제에서도 ‘1기 신도시 재정비’는 7번째 국정과제인 ‘주택공급 확대, 시장기능 회복을 통한 주거안정 실현’ 항목에 포함돼있다. ‘1기 신도시 특별법’을 제정해 양질의 10만 호 이상 공급기반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 첫 주택공급대책에서는 “1기 신도시의 경우, 연구용역을 거쳐 도시 재창조 수준의 재정비 마스터플랜을 2024년 중 수립할 예정”이라고 달랑 한 줄로 언급됐다. 주민들의 실망이 커진 이유다.

개발 기대가 사그라들면서 해당 지역 부동산 가격은 하락세다. 부동산R114 조사 결과 1기 신도시 아파트값은 대선 전 0.07%(1.1~3.9)에서 대선 후 0.26%(3.10~4.22)로 오름폭을 3배 이상 키웠다. 하지만 특별법 제정에 계획 수립까지 지지부진하며, 보합(12일 기준)이었던 가격 변동률은 -0.02%(19일 기준) 하락 전환했다.

이를 의식해선인지 윤 대통령은 지난 22일 국무회의에서 “1기 신도시 마스터플랜도 예전 같으면 5년 정도 걸리는 사안을 최대한 단축했는데도 국민에게 제대로 설명되지 못했다”며 “국가의 주요 정책을 발표할 때는 국민 시각에서 판단해달라”고 질타했다.

경기 고양시 일산 신도시 ⓒ연합뉴스
경기 고양시 일산 신도시 ⓒ연합뉴스

대통령실도 “마스터플랜 수립 1년6개월, 물리적으로 가장 빨라”

이에 원 장관도 기자간담회에서 “애초 1기 신도시 대책은 (8·16 대책에서) 큰 방향만 짚고 가자는 계획이다 보니 절박하게 정부 대책을 기다리는 주민들이 보시기에 부족함이 있었다”며 정부 실책을 인정했다. 그러면서 “9월에 마스터플랜 수립을 위한 연구용역을 발주할 예정이다. 연구용역 추진 과정에서도 수립 시기를 2024년 상반기로든, 한 달이든 최대한 당겨달라고 요구하겠다”고 약속했다.

마스터플랜 수립에 속도를 내겠다고 원 장관이 밝혔지만 실제로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서진형 경인여대 교수(공정주택포럼 공동대표)는 “마스터플랜이 마련되려면 용역 결과 등의 최소한의 시간이 요구된다”며 “이후 특별법을 발의하면 국회 동의를 구해야 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 이후에도 지역 간의 형평성 문제 등 여러 의견 수렴 절차를 밟아야 하는데 속도를 낸다 해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측된다”고 밝혔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공약에는 1기 신도시 재정비 사업에 주택 공급 확대가 포함돼 있어 용적률을 높일 수밖에 없다”며 “그렇다면 이격거리, 일조권, 조망권 등은 물론 교통, 상하수도 등 기반시설도 모두 다시 설계해야 하는데 단시간에 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 위원은 “30만 가구의 순차적 이주 등 복잡한 사안이 많아 적절한 접점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대통령실도 비슷한 발언을 내놓은 바 있다. 지난 19일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은 "신도시 같은 도시 재창조 수준의 마스터플랜은 5년 이상 걸리는 게 일반적”이라며 “마스터플랜 수립에 1년6개월 정도 소요되는 게 물리적으로 가장 빠르게 추진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결국 ‘8·16 대책’에서 밝힌 ‘2024년 마스터플랜 수립’이 가장 빠르면서도 현실적이라는 얘기다.

이에 대해 분당 재건축연합회 관계자는 “지난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내세운 공약을 믿고 지지한 주민들은 당선을 위해 이용당하고 팽 당한 느낌”이라며 “보도자료에 달랑 한 줄 언급하면서 2024년까지 조용히 기다리라는 말로밖에 느껴지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사업 규모가 크고 기간이 길다는 점은 주민들도 알고 있다”면서도 “5년의 용역 기간이 어떻게 단축된 것이며 특별법의 윤곽 등 1기 신도시 주민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부연 설명이 전무하다는 점이 주민들의 분노를 키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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