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에서도 시험대 오른 30대 정치인…여성 총리의 ‘파티 스캔들’
  • 김휘동 유럽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8.26 16:00
  • 호수 171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마린 총리의 나이트클럽 파티 영상 유출 파장
“부적절 행실” 비판에 일각 “성차별적 공격” 옹호 여론도

세계 최연소 여성 총리로 신선함을 안겼던 30대 정치인의 파티 영상 유출 사태로 핀란드가 몸살을 앓고 있다. 1985년생 산나 마린 핀란드 총리가 나이트클럽으로 추정되는 장소에서 격렬한 춤을 추는 등 파티에 참석한 영상이 유출된 사건에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언론의 관심이 집중됐다. 인구 553만 명의 작고 조용한 나라 핀란드 총리의 사생활이 “광란의 파티”나 “밀접한 접촉” 등 자극적인 단어로 묘사되며 세계로 뻗어나가자 핀란드 여론은 그녀의 행동을 옹호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으로 양분되는 양상이다.

또한 논란을 넘어 젠더 논쟁 등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분명한 건 차기 총선을 1년도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 터진 이번 스캔들로 인해 최연소 여성 총리인 그녀의 정치력이 다시 한번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는 점이다.

현지시간으로 8월17일부터 SNS엔 한 파티에 참석한 마린 총리의 모습을 담은 동영상이 삽시간에 퍼져 나갔다. 동영상에는 격렬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파티에 심취한 마린의 모습이 담겼다. 동영상은 곧 논란의 중심에 섰다. 동영상 속 다른 파티 참석자가 마약을 뜻하는 은어를 말했다는 이야기도 퍼지며 마린 총리가 ‘광란의 마약 파티’를 벌인 것이 아니냐는 의심까지 생겨났다.

젊은 정치인에 대한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면서 비판이 거셌지만, 일각에선 여전히 마린 총리를 옹호하는 등 핀란드 내 여론은 갈렸다. 옹호하는 이들은 그녀가 고위 공직에 오른 젊은 여성이란 이유로 언론의 성차별적인 공격과 주목을 받는다고 봤다. 그녀가 여느 유럽 여성과 마찬가지로 지인들과 함께 여가를 즐길 줄 아는 평범한 모습을 보여준 것일 뿐이란 주장이다. 남성 정치인이었다면 유출 영상에 격정적 춤사위가 담겼더라도 춤을 잘 추는 정치인 정도로 회자됐을 것이라는 조소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광란의 파티’ 영상으로 논란을 일으킨 산나 마린 핀란드 총리 ⓒ유튜브 캡처

“공직자로서 부적절” vs “춤 잘 추는 멋진 총리”

마린 총리를 옹호하는 이들이 SNS상에 ‘#산나와의연대(Solidaritywithsanna)’라고 해시태그를 다는 행동은 지지 운동으로 퍼져 가고 있다. 특히 핀란드를 비롯한 유럽의 여성들을 중심으로 음주·가무를 즐기는 사진과 함께 마린을 응원하는 SNS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이들은 마린에 대해 “평범한 일반인과 다를 바 없이 여가를 즐길 줄 아는, 춤 잘 추는 멋진 총리”라고 칭찬하며 옹호한다.

그러나 국가 지도자의 행실 문제라는 비판은 계속되고 있다. 대한민국의 ‘국가공무원법’ 제63조(품위 유지의 의무)와 같이 핀란드 또한 국가공무원법(Valtion virkamieslaki) 제14절을 통해 ‘공무원은 자신의 직위와 직무에서 요구하는 대로 행동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특히 마린 총리가 파티를 벌인 8월5일에서 8월7일이 총리의 공식 휴가 일정에 해당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나며 그가 음주와 함께 춤을 추던 새벽 당시, 긴급하게 발생할 수 있는 상황에 대처하는 등 국가 운영에 관해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정신적·육체적 상태였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아울러 이웃 국가인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과 함께 핀란드와 스웨덴의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이 유럽의 주목을 받는 가운데 벌어진 일이어서 논란은 더 컸다. 각 회원국 의회의 비준 동의안 채택 등 다양한 안보 현안이 있음에도 단순히 일과 시간이 아니라는 이유로 이러한 행동을 한다는 것은 일과 삶의 양립을 지향하는 유럽의 사회적 관념에 비추어도 도저히 수긍할 수 없다는 비판이 나온다.

마린 총리는 억울해했다. 그는 8월19일 핀란드 언론과의 기자회견을 통해 해당 동영상이 촬영된 당시 “위법 사항은 없었다”고 밝혔다. 그는 기자회견 참석 당일 오전 자발적으로 마약 검사까지 받았다고 했다. 그녀는 마약 관련 질문에 “살면서 마약을 해본 적이 없다”며 “여태껏 어느 파티 장소 어디서도 마약 사용을 본 적이 없다”고 항변했다. 이날 진행한 검사 결과도 추후 음성으로 발표됐다.

마린 총리는 당시 업무를 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한밤중에 총리 집무실로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 지금껏 한 번도 없었다”면서 “당시 업무를 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긴급한) 상황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총리의 결심이 필요한 상황과 미팅은 항상 사전에 착실히 준비되어 왔고 당시 주말에는 이러한 중요 일정이 계획되어 있지 않았다”며 “만약 그때 상황이 발생했었다면 바로 자리를 떠나 업무를 봤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각에선 마린 총리의 사생활 영상 유출에 대해 특정 목적을 가진 이들의 소행이란 의혹도 제기된다. 마린은 동영상 유출에 관해 언급하며 자신의 지인들이 연루되었다는 추측을 전면 부인하고, 개인 소장을 위한 영상이 대중에게 공개된 것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했다. 다만 동영상 유출의 배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당시 주말 일정이 휴가로 발표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누군가의 실수로 취소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해당 기간에 임시로 직무를 수행할 부총리가 지정되어 있었다”면서 “2022년에는 총리도 친구들과 여가를 즐기는 것이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길 희망한다”고 언급했다.

산나 마린 핀란드 총리가 8월18일(현지시간) 파티 영상 노출 논란과 관련해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REUTERS

불륜 논란에 반라 여성들의 키스 영상까지 올라와

그러나 기자회견 이후에도 마린 총리의 사생활 논란은 계속 추가되고 있다. 마린 총리가 클럽에서 핀란드 가수와 함께 춤추는 모습이 공개되면서 ‘불륜’ 논란으로 번지기도 했다. 여기에 더해 마린 총리의 관저에서 상반신을 노출하고 입맞춤하는 여성 두 명의 사진이 온라인에 공개되기도 했다. 결국 마린 총리는 또다시 “이러한 사진은 촬영되지 않았어야 했다”면서도 “그러나 사진 이외에 특별한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고 해명해야 했다.

마린 총리를 옹호하는 여론도 적지 않지만, 핀란드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있는 만큼 이번 사태로 그의 정치력이 시험대에 올랐다는 관측이 나온다. 마린 총리는 2015년 의회 입성 후 약 4년 만인 2019년 만 34세에 총리가 됐다. 현재 핀란드 사회민주당의 대표이자 총리로서 117석의 연립정부를 이끌고 있다. 이번 사태 전까지 마린 총리에 대한 호평이 많았다. 핀란드의 나토 가입을 추진하고 있는 것에 대해선 ‘역사적인 순간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는 찬사도 나온다.

그녀가 사생활 이슈에 계속 갇히게 된다면 총리직 연임이 힘들어질 가능성이 크다. 마린 총리의 사민당은 2019년 0.2%라는 간발의 차이로 제1당이 돼 연정을 꾸린 불안한 출발이었다. 비록 현재 연정에 대한 지지율이 53%로 야당에 대한 지지율(44%)보다 높다고 하지만 지난 1년여간 이뤄진 여론조사에서 정당 지지율 1위는 줄곧 야당에 속하는 중도우파인 국민연합당이 차지해 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촉발된 총리의 사생활 스캔들은 그 자체로 국민의 여론을 양분시키는 위험성을 안고 있으며, 조속히 해소되지 않는다면 향후 총선과 그 이후의 연정 수립 과정에서 부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