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지중지 키운 벼인데…” 일년 농사 갈아엎는 성난 농민들
  • 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22.08.27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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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쌀값 보장하라” 영암농민들 벼논 갈아엎기 투쟁 현장
영암 농민들 군서면 들판서 논 갈아엎으며 쌀값 대폭락 규탄 시위
산지 쌀값 45년 만에 최대폭 하락, 올해 4만2000원대로 떨어져
전남 영암 농민들은 26일 쌀값 보장 등을 정부에 촉구하며 논 갈아엎기 시위를 벌였다. 영암군 농민단체 소속인 이들은 이날 오전 10시 영암군 군서면 국립종자원 인근 들판에서 쌀값 하락에 항의하며 농민 최치현(48)씨의 900평(약 2970㎡)짜리 논벼를 트랙터 두 대로 갈아엎거나 짓뭉갰다. 이날 영암 농민들이 다 자란 논의 벼를 갈아엎으며 쌀값 폭락에 대한 정부 대책을 촉구한 것은 지난 19일 전북 김제에 이어 전국에서 두 번째다. ⓒ시사저널 정성환
전남 영암 농민들은 26일 쌀값 보장 등을 정부에 촉구하며 논 갈아엎기 시위를 벌였다. 영암군 농민단체 소속인 이들은 이날 오전 10시 영암군 군서면 국립종자원 인근 들판에서 쌀값 하락에 항의하며 농민 최치현(48)씨의 900평(약 2970㎡)짜리 논벼를 트랙터 두 대로 갈아엎거나 짓뭉갰다. 이날 영암 농민들이 다 자란 논의 벼를 갈아엎으며 쌀값 폭락에 대한 정부 대책을 촉구한 것은 지난 19일 전북 김제에 이어 전국에서 두 번째다. ⓒ시사저널 정성환

“자식같이 애지중지 키운 벼를 갈아엎는 심정은 참담하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우리 농민의 심정은 오죽하겠나.” 전남 영암 농민들은 26일 쌀값 보장 등을 정부에 촉구하며 논 갈아엎기 시위를 벌였다. 영암군 농민단체 소속인 이들은 이날 오전 10시 영암군 군서면 국립종자원 인근 들판에서 쌀값 하락에 항의하며 농민 최치현(48)씨의 900평(약 3000㎡)짜리 논벼를 트랙터 두 대로 갈아엎거나 짓뭉갰다. 한여름 햇볕을 받고 튼실하게 자라 이제 막 이삭을 팬 벼가 트랙터 로터리에 휘감겨 논바닥으로 사정없이 파묻히는 모습을 농민들은 착잡한 심정으로 바라봤다. 이날 영암 농민들이 다 자란 논의 벼를 갈아엎으며 쌀값 폭락에 대한 정부 대책을 촉구한 것은 지난 19일 전북 김제에 이어 전국에서 두 번째다.

 

들끓는 農心…“오죽하면 갈아엎겠는가”

한 농민은 “자식 키우는 것과 같은 게 농사다. 애지중지 키운 벼를 갈아엎는 일은 정말 자식을 앞세운 부모 심정처럼 참담함을 이루 말할 수가 없다”며 “이를 바라보는 농민들 중에는 눈물을 흘리는 분들도 있다. 농민운동하면서 이러저런 투쟁도 많이 했지만 최고 힘든 것이 농작물을 갈아엎는 것이다”고 한숨을 쉬었다.

이날 농민들은 현장에서 쌀값 대폭락 규탄 농민 궐기대회를 열고 논 갈아엎기 투쟁을 벌였다. 집회에는 전국농민회총연맹 영암군농민회, 한국후계농업경영인(한농연) 영암군연합회, 전국쌀생산자협회 영암군지부 등 영암지역 농민단체 회원과 농민 300여 명이 참석했다. 들판에는 “나락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개 사료값보다 못한 쌀값! 내가 갈아엎고 말지~” 등 자조 섞인 내용이 새겨진 현수막이 내걸리고, “양곡관리법 개장하라” “구곡 전량 매입하라” ”밥쌀용 수입쌀 방출 전면 중단하라“ 등의 농민요구가 담긴 만장이 나부꼈다. 

전남 영암 농민들은 26일 쌀값 보장 등을 정부에 촉구하며 논 갈아엎기 시위를 벌였다. 영암군 농민단체 소속인 이들은 이날 오전 10시 영암군 군서면 국립종자원 인근 들판에서 쌀값 하락에 항의하며 농민 최치현(48)씨의 900평(약 2970㎡)짜리 논벼를 트랙터 두 대로 갈아엎거나 짓뭉갰다. 이날 영암 농민들이 다 자란 논의 벼를 갈아엎으며 쌀값 폭락에 대한 정부 대책을 촉구한 것은 지난 19일 전북 김제에 이어 전국에서 두 번째다. 들판에는 “나락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개 사료값보다 못한 쌀값! 내가 갈아엎고 말지~” 등 자조 섞인 내용이 새겨진 현수막이 내걸리고, “양곡관리법 개장하라” “구곡 전량 매입하라” ”밥쌀용 수입쌀 방출 전면 중단하라“ 등의 농민요구가 담긴 만장이 나부꼈다. ⓒ시사저널 정성환
전남 영암 농민들은 26일 쌀값 보장 등을 정부에 촉구하며 논 갈아엎기 시위를 벌였다. 영암군 농민단체 소속인 이들은 이날 오전 10시 영암군 군서면 국립종자원 인근 들판에서 쌀값 하락에 항의하며 농민 최치현(48)씨의 900평(약 2970㎡)짜리 논벼를 트랙터 두 대로 갈아엎거나 짓뭉갰다. 들판에는 “나락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개 사료값보다 못한 쌀값! 내가 갈아엎고 말지~” 등 자조 섞인 내용이 새겨진 현수막이 내걸리고, “양곡관리법 개장하라” “구곡 전량 매입하라” ”밥쌀용 수입쌀 방출 전면 중단하라“ 등의 농민요구가 담긴 만장이 나부꼈다. ⓒ시사저널 정성환

농민단체들의 규탄발언은 정부를 향해 쏟아졌다. 연단에 오른 농민들은 45년 만에 최대치로 폭락한 쌀값에 대한 특단의 대책을 촉구했다. 한 농민들은 “정부는 농민들의 생존을 위해 쌀값을 보장해 줘야 하며 쌀값 안정을 위해서는 변동직불제를 부활하고 양곡관리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농민은 “농자재값, 인건비, 이자부담이 늘어가는 상황에서 정부는 무엇을 하느냐”고 반문한 뒤 “들판은 풍년인데 농민들은 흉년보다 못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고 현장 목소리를 전했다. 

그는 “정부가 소비 변화와 수급 문제라는 시장 논리를 내세워 농민들이 마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양 책임을 전가시키고 있다”고 비판하며 “다른 물가는 다 오르는데 쌀값만 떨어져 우리 농가들이 벼랑 끝까지 내몰리고 있다. 제발 정부가 제대로 된 정책을 펼쳤으면 좋겠다”고 울분을 터트렸다. 

이들은 시위를 마친 후 차량 200여대를 몰고 전남도청 앞으로 가 집회를 열고 단체 삭발을 단행했다. 이날 삭발식에는 영암군 관내 한농연 11개 읍면지회장이 참여했다. 도청 앞 집회에서 이형선 한농연 서호면지회장은 “귀농 후 20년 동안 쌀농사를 짓는 동안 올해 같은 쌀값 하락은 처음 겪어 본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해 말부터 본격적으로 하락하기 시작한 쌀값은 45년 만의 최대 낙폭에 현재 농민들은 망연자실한 상태다.

최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15일 기준 산지 쌀값은 20㎏당 4만 2522원을 기록했다. 딱 1년 전 이맘때 5만 5630원보다 무려 23.6%나 폭락했다. 20kg 쌀 포대가 1만3700원 정도 떨어져 80kg 쌀 한 가마로 계산하면 5만 5000원 이상 떨어진 셈이다. 낙폭으로는 45년 만에 최대치다. 가격으로는 2018년 3월 이후 4년 5개월 만에 가장 낮다. 현지 농민들이 체감하는 가격하락은 정부 발표보다 더 커 거의 6~7만 원 넘게 떨어졌다고 보고 있다.

전남 영암 농민들은 26일 오전 10시 영암군 군서면 국립종자원 인근 들판에서 쌀값 하락에 항의하며 농민 최치현(48)씨의 900평(약 2970㎡)짜리 논벼를 트랙터 두 대로 갈아엎었다. 이들 농민들은 시위를 마친 후 차량 200여대를 몰고 전남도청 앞으로 이동해 집회를 열고 단체 삭발을 단행했다. 이날 삭발식에는 영암군 관내 한농연 11개 읍면지회장이 참여했다. ⓒ시사저널 정성환
전남 영암 농민들은 26일 오전 10시 영암군 군서면 국립종자원 인근 들판에서 쌀값 하락에 항의하며 농민 최치현(48)씨의 900평(약 3000㎡)짜리 논벼를 트랙터 두 대로 갈아엎었다. 이들 농민들은 시위를 마친 후 차량 200여대를 몰고 전남도청 앞으로 이동해 집회를 열고 단체 삭발을 단행했다. 이날 삭발식에는 영암군 관내 한농연 11개 읍면지회장이 참여했다. ⓒ시사저널 정성환

애타는 農心…풍년의 역설 “풍년인데도 눈물 난다”

문제는 앞으로의 상황도 별반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올해 벼 작황이 좋은데다 수확 철에 접어드는 등 안팎의 여건을 감안하면 지금으로선 쌀값 반전을 기대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당장 이달 말부터 올해 조생종 벼의 수확이 시작되면서 햅쌀이 출하되고 있다. 다음 달부터는 본격적인 벼 수확이 진행된다. 그런데도 아직 지난해 거둬들여 창고에 쌓아 놓은 재고 쌀이 너무 많다. 

7월 말 기준 전국 농협에서 보유 중인 재고 쌀은 42만 8000톤으로, 전년도의 23만 7000톤보다 무려 80% 이상 늘었다. 게다가 작년에 생산된 쌀 388만 톤 중에서도 아직 10만 톤 규모가 시중에 남아 있다. 쌀값 하락세가 당분간 더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대목이다. 전문가들도 다음 달부터 본격적으로 햅쌀이 나오면 쌀값은 더 떨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영암군 농민회 관계자는 “아직 공식적인 정부 발표(매년 10월 15일)가 있지 않았고, 본격적인 수확 철이 한 달 뒤여서 단정할 수는 없지만 지역 논을 둘러보면 올해 태풍이라든가 큰 자연재해는 없다보니까 농사가 다 잘 됐다”며 “그래서 올해가 작년보다 더 풍년이 들 것이라고 보고 생산량도 작년보다 더 늘어날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그래서 풍년인데도 눈물이 난다”고 했다. 공급 과잉이 쌀값 하락의 직접적인 원인이다 보니, 풍년이 바로 재앙이나 다름없는 셈이다. 문제는 올해도 큰 변수가 없는 한 지난해와 비슷한 규모의 생산량이 예상된다는 점이다. 쌀값 폭락을 넘어 쌀 대란 우려마저 나오는 지경이다. 

 

정부의 안이한 태도 ‘뒤늦은 시장격리’ 폭락 불러
농민단체, 양곡관리법 개정·잔여물량 즉시격리 등 촉구

쌀값이 떨어진 배경은 뭘까. 정부는 지난해 쌀 생산량이 많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국민들 쌀 소비량도 줄었다고 항변한다. 반면, 쌀 수요의 감소세는 갈수록 뚜렷하다. 국민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2000년 93.6kg에서 지난해엔 56.9kg으로 21년 만에 약 40% 가까이 줄었다. 올해는 이보다 더 줄어 50kg대 초반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를 연간 생산량과 비교해 보면 최소 100만 톤 이상의 쌀이 일반 가정 외에서 소비되어야 현재 공급 과잉 상태가 해소된다고 한다.

농민들이 가장 불만을 토로하는 대목은 무엇보다 정부의 안이한 태도다. 농민단체는 “무엇보다 쌀 생산량과 소비량을 충분히 예측해서 수급을 조절하고 가격을 안정시키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지 않느냐”며 ‘그런 역할을 안 했거나 덜 했기 때문이라고 본다”고 반박했다. 특히 비난의 화살은 정부의 ‘뒤늦은 시장 격리’ 조치에 향한다. 현장에서는 농림축산식품부가 지난해 27만 톤이 과잉 생산된 쌀을 제 때에 시장격리조치를 취하지 않아 쌀값 하락을 부추겼다는 지적이다.

시장 격리는 시장에 풀리는 쌀 공급량을 정부가 인위적으로 조절하는 조치다. 한 해의 쌀 수확량이 급증하거나 수요가 급감해 시장에서 쌀 공급 과잉 현상이 심화하면 정부가 시장에서 쌀을 사들여 창고에 보관하며 공급량을 줄이는 것이다. 시장격리 구체적 실시 근거는 양곡관리법에 명시돼 있다. 

전남 영암 농민들은 26일 쌀값 보장 등을 정부에 촉구하며 논 갈아엎기 시위를 벌였다. 영암군 농민단체 소속인 이들은 이날 오전 10시 영암군 군서면 국립종자원 인근 들판에서 쌀값 하락에 항의하며 농민 최치현(48)씨의 900평(약 2970㎡)짜리 논벼를 트랙터 두 대로 갈아엎거나 짓뭉갰다. 벼논 갈아엎기 투쟁에 참가한 농민단체 회원들이 쌀값 보장을 촉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전남 영암 농민들은 26일 쌀값 보장 등을 정부에 촉구하며 논 갈아엎기 시위를 벌였다. 영암군 농민단체 소속인 이들은 이날 오전 10시 영암군 군서면 국립종자원 인근 들판에서 쌀값 하락에 항의하며 농민 최치현(48)씨의 900평(약 2970㎡)짜리 논벼를 트랙터 두 대로 갈아엎거나 짓뭉갰다. 벼논 갈아엎기 투쟁에 참가한 농민단체 회원들이 쌀값 보장을 촉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정부는 올 2월부터 세 차례에 걸쳐 시장격리를 단행했다. 쌀값 하락을 막기 위해서다. 하지만 농민들은 정부가 뒤늦게 시장격리에 나선 데다 최저가 입찰방식의 역공매가 오히려 쌀값 하락을 부채질했다고 주장한다. 현장에선 이미 작년부터 정부에 양곡관리법상 요건에 따라 선제적 시장격리를 요청했으나 정부는 가격 추이를 지켜보겠다는 입장을 고수하다 뒤늦게 세 차례의 시장격리 조치를 취했지만 쌀값 폭락을 막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박웅 영암군 농민회장의 말이다. 

“정부는 지난 2월부터 8월까지 세 차례에 걸쳐서 지난해 수확한 쌀 37만 톤을 사들였다. 이건 효과가 없었다. 왜냐하면 지난해에 발생한 문제이기 때문에 지난해 11월께부터 바로 선제적으로 시장격리 조치를 하고 초과된 생산량을 한꺼번에 적정한 가격으로 매입한다든가 하면 진즉에 해결할 수 있었던 문제였다. 그런데 그것을 차일피일 미루다가 올해 2월부터 시작을 했는데 그것도 한 번에 한 것이 아니라 또 나눠서 여러 차례에 걸쳐서 찔끔찔끔했다. 그러다 보니까 실기(失機)한 것이다.”

그의 이어진 말이다. “정부는 어쨌든 통계청이라든가 농촌경제연구원의 생산량 발표를 기준으로 해서 시장격리를 할 것인지 아니면 정부양곡을 보충해서 늘린다든지 그거 한 가지 수단으로만 하고 있다. 그런데 그것을 바로 시행하는 것도 아니다. 정부는 이런저런 상황을 판단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렇게 미루는 결과가 쌀값을 하락시키는 결과를 불러 온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모든 문제가 발생하면 그 즉시 해결하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인데 이것저것 상황을 고려하고 부처 간에 협의하고 또 이렇게 하다 보면 점점 시간이 가면 갈수록 문제 해결이 더 어려워지는 것이다. 우리가 양곡관리법에 명시된 시장격리 근거 조항을 강행규정으로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현행 양곡관리법에는 시장격리를 ‘해야 한다’라는 의무 규정이 아니라 ‘할 수 있다’라고 돼 있는 점이 논쟁거리다. 의무 규정이 아니다 보니, 이 조항에 근거한 시장 격리 조치의 시행 여부가 오로지 정부 당국자의 판단에 의해 좌우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현재 쌀값 폭락의 가장 큰 원인인 지난해 공급 과잉 물량만 해도 농민들과 농민 단체들은 당시 수확 때부터 즉시 시장 격리 조치를 요청했지만, 정부가 미온적으로 대처해 실기했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농민단체들은 법에 규정된 시장 격리 조건이 충족되면 자동으로 시장에서 쌀을 의무적으로 격리하도록 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농민끼리 경쟁시키는 ‘역공매 최저가 입찰’ 

농민단체는 현재의 역공매 최저가 입찰 방식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한다. 이영형 전 해남군 농민회장의 진단이다. “쌀값을 안정시키기 위해 시장격리를 하는 건데, 시장격리를 했음에도 쌀값은 계속 하락하고 있고 이는 역공매 최저가입찰 방식의 잘못된 시장격리 운영 때문이다. 최저가 입찰 방식은 낮은 가격을 써낸 농민의 것을 먼저 매입을 해 주는 방식이다 보니까 이게 시간이 갈수록 매입가격이 더 낮아져 농민들끼리 경쟁하는 비정상적인 일이 벌어졌다. 처음에 떨어진 사람이 두 번째는 어떻게든지 낙찰 받고 싶어서 더 낮은 가격을 쓰게 돼 있고 그러다 보면 뒤에 눈치 봐가면서 우선 나부터라도 살겠다고 더 낮은 가격을 쓰는 사람이 등장하다 보니까 쌀값을 올려야 되는 시장격리가 오히려 쌀값을 계속 떨어뜨리는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농민들 가지고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농민들끼리 경쟁하게 만드는 이 제도 자체가 잘못됐다고 본다.”

실제 올해 1차, 2차, 3차에 걸쳐서 시장격리를 했는데 1차 평균낙찰가가 6만 3000원대였고  2차 때는 6만 원으로 떨어졌다. 3차 때는 평균 낙찰 가격이 5만 7000원대로 더 떨어졌다. 결과가 말해 주듯이 쌀값을 올리기 위해서 시장격리를 해야 되는데 할 때마다 떨어진 것이다. 따라서 농민들은 제살깎기식 경쟁을 불러 일으켜 쌀값 폭락을 부채질하는 역공매 방식 대신 비축 형태로 매입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전남도 또한 같은 입장이다. 도 관계자는 “공공비축 형태로 매입할 것을 건의했지만, 정부가 최저가 입찰방식의 시장격리를 고집했다”면서 “역공매에서 최저가 입찰방식으로 형성된 쌀값이 그대로 시장에서 통용되는 바람에 수차례에 걸친 시장 격리에도 불구하고 효과를 제대로 내지 못하고 오히려 가격이 떨어지는 왜곡현상이 벌어졌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설상가상으로 농식품부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를 통해 밥쌀용 수입쌀 입찰 판매를 시행한 것으로 드러나 현장의 원성을 사고 있다. 실제 aT는 올해 들어 수차례 밥쌀용 수입쌀의 입찰 판매를 시행했으며, 국내산 쌀과 비슷한 미국산 중립종도 포함 판매한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국내산 쌀보다 가격이 저렴해 쌀값 하락을 부추기는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정된다. 전남에서 쌀을 생산하는 농업인 김민수(58)씨는 “쌀값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밥쌀용 수입쌀 판매는 말이 안 된다. 불난 집에 부채질 하는 것도 아니고 현 상황을 봐가면서 해야지 너무 한다”고 비판했다.

7월 말 기준 전국 농협에서 보유 중인 재고 쌀은 42만 8000톤으로, 전년도의 23만 7000톤보다 무려 80% 이상 늘었다. 게다가 작년에 생산된 쌀 388만 톤 중에서도 아직 10만 톤 규모가 시중에 남아 있다. 쌀값 하락세가 당분간 더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대목이다. 전문가들도 다음 달부터 본격적으로 햅쌀이 나오면 쌀값은 더 떨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전남의 한 민간RPC 창고에 작년산 벼 포대가 빽빽이 쌓여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7월 말 기준 전국 농협에서 보유 중인 재고 쌀은 42만 8000톤으로, 전년도의 23만 7000톤보다 무려 80% 이상 늘었다. 게다가 작년에 생산된 쌀 388만 톤 중에서도 아직 10만 톤 규모가 시중에 남아 있다. 쌀값 하락세가 당분간 더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대목이다. 전문가들도 다음 달부터 본격적으로 햅쌀이 나오면 쌀값은 더 떨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전남의 한 민간RPC 창고에 작년산 벼 포대가 쌓여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정부의 확고한 시장격리 의지 표명이 중요”

정부에서 지금 어떤 대책을 내놓아야 할까. 이영형 전 해남군 농민회장의 말이다. “일단은 정치권에서 법을 개정하겠다고 하고 정부에서는 내년도 생산량을 줄이기 위한 대책을 내놓고 있다. 그런데 당장 중요한 것은 현재 농가에 보유하고 있는 구곡을 정부에서 빨리 시장에서 정리해 줘야 한다. 그래야 올해 작황에 맞춰서 수급조절 예측을 할 텐데 아직까지도 구곡이 농협RPC에도 있고 농가에도 있다. 그 부분들을 정부가 우선적으로 시장에서 격리시켜야 한다.

국내 쌀값은 정부의 미곡 정책에 따라 좌우되는 구조인 만큼 정부의 정책방향이 쌀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시장은 정부의 움직임을 쳐다보고 있다. 그런 상태에서 최저가 역공매와 밥쌀용 수입쌀 입찰 판매는 정부 의도와는 무관하게 시장에 부정적 신호를 줘 쌀값 하락을 부추겼다. 그런 만큼 9~10월 정도에 통계청에서 조사를 하면 10월이면 작황이 어느 정도 생산량이 나오게 된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풍년이 돼서 생산량이 초과될 것 같으면 바로 그 즉시 시장격리가 발동되든지 아니면 추가 매입을 하든지 해서 시장 가격을 안정시키겠다는 정책의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이 전 농민회장은 “2016년 정권교체시기에도 쌀값이 대폭락한 적이 있다. 당시 문재인정부 초대 농림부장관에 오른 김영록 현 전남지사는 그해 9월 농민들과의 대화에서 ‘재고 35만톤 전량+알파(α)’를 매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이후 쌀시장이 움직여 가격이 안정을 찾은 적이 있다”며 “이 시점에서 지난 일을 타산지석으로 한번쯤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고 충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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