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살게 놔두라” 평화 깨진 ‘여수 밤바다 마을’에 무슨 일이?
  • 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22.08.29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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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당장 중지하라” 여수 만흥택지개발 반대 주민들 3년째 농성
반대 대책위 “해양휴양단지로 개발한다더니, 택지 개발로 변질”
전남 여수시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만흥지구 택지개발사업을 추진하면서 여수 만성리해수욕장을 감싸고 있는 평촌마을의 평화가 깨졌다. 마을 주민들은 지난 2019년 5월, 만흥동 개발 계획이 발표되자 ‘개발을 당장 중지하라’며 마을회관 옆에 천막을 치고 3년 째 농성을 하고 있다. 여수시 만흥동 평촌마을 전경 ⓒ시사저널 정성환
전남 여수시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만흥지구 택지개발사업을 추진하면서 여수 만성리해수욕장을 낀 평촌마을의 평화가 깨졌다. 마을 주민들은 지난 2019년 5월, 만흥동 개발 계획이 발표되자 ‘개발을 당장 중지하라’며 마을회관 옆에 천막을 치고 3년 째 농성을 하고 있다. 여수시 만흥동 평촌마을 전경 ⓒ시사저널 정성환

8월 24일 오후 전남 여수 만성리 해수욕장. 쾌청한 날씨 속에 여름 끝물에 막바지 해수욕을 즐기는 관광객들과 짙푸른 앞바다에 한폭의 수채화처럼 상선과 소형 어선들이 떠 있는 평화스런 해변이었다. 일부 관광객들은 해변가 송림(松林)과 썬비치 아래서 바다를 지켜보며 망중한을 즐기는 모습이었다. 만성리해수욕장은 평균수온 약 25℃로 따뜻해서 남쪽 해수욕장으로 최적지라 불리는 곳이다. 또한 이곳은 우리나라에서 보기드문 검은 모래 해변으로, 여름이면 관광객들이 바닷가를 가득 메운다. 품이 큰 바닷가로 시원스런 경치를 자랑한다. 2012년도에 발매된 버스커버스커의 1집에 수록된 곡이자, 싱어송라이터 장범준이 만든 노래 ‘여수밤바다’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다.

전남 여수시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만흥지구 택지개발사업을 추진하면서 평온했던 여수 만흥동 만성리 평촌마을의 평화가 깨졌다. 마을 주민들은 지난 2019년 5월, 만흥동 개발 계획이 발표되자 ‘개발을 당장 중지하라’며 마을회관 옆에 천막을 치고 3년 째 농성을 하고 있다. 24일 오후 여수 만성리해수욕장 풍경 ⓒ시사저널 정성환
8월 24일 오후 전남 여수 만성리 해수욕장. 쾌청한 날씨 속에 여름 끝물에 막바지 해수욕을 즐기는 관광객들과 짙푸른 앞바다에 한 폭의 수채화처럼 상선과 소형 어선들이 떠 있는 평화스런 해변이었다. 일부 관광객들은 해변가 송림(松林) 그늘과 썬비치 아래서 바다를 지켜보며 망중한을 즐기는 모습이었다. 품이 큰 바닷가로 시원스런 경치를 자랑한다. 2012년도에 발매된 버스커버스커의 1집에 수록된 곡이자, 싱어송라이터 장범준이 만든 노래 ‘여수밤바다’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다. ⓒ시사저널 정성환 
8월 24일 오후 전남 여수 만성리 해수욕장. 쾌청한 날씨 속에 여름 끝물에 막바지 해수욕을 즐기는 관광객들과 짙푸른 앞바다에 한폭 수채화처럼 상선과 소형 어선들이 떠 있는 평화스런 해변이었다. 일부 관광객들은 해변가 송림(松林) 그늘과 썬비치 아래서 바다를 지켜보며 망중한을 즐기는 모습이었다. 품이 큰 바닷가로 시원스런 경치를 자랑한다. 2012년도에 발매된 버스커버스커의 1집에 수록된 곡이자, 싱어송라이터 장범준이 만든 노래 ‘여수밤바다’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품이 큰 바닷가도 방파제를 향하자 곧 평화가 깨졌다. 만성리해수욕장 방파제에 걸린 “여수시는 만성리 관광지를 망치는 개발을 중단하고 재산을 환원하라”는 글귀가 새겨진 현수막ⓒ시사저널 정성환
8월 24일 오후 전남 여수 만성리 해수욕장. 쾌청한 날씨 속에 여름 끝물에 막바지 해수욕을 즐기는 관광객들과 짙푸른 앞바다에 한폭 수채화처럼 상선과 소형 어선들이 떠 있는 평화스런 해변이었다. 일부 관광객들은 해변가 송림(松林) 그늘과 썬비치 아래서 바다를 지켜보며 망중한을 즐기는 모습이었다. 품이 큰 바닷가로 시원스런 경치를 자랑한다. 2012년도에 발매된 버스커버스커의 1집에 수록된 곡이자, 싱어송라이터 장범준이 만든 노래 ‘여수밤바다’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품이 큰 바닷가도 방파제를 향하자 곧 평화가 깨졌다. 만성리해수욕장 방파제에 걸린 “여수시는 만성리 관광지를 망치는 개발을 중단하고 재산을 환원하라”는 글귀가 새겨진 현수막ⓒ시사저널 정성환

3년 넘도록 갈등‧대립…평화롭던 농촌마을 공동체, 분열

그러나 품이 큰 바닷가도 방파제에 이르자 평화를 담지 못했다. 방파제에 걸린 “여수시는 만성리 관광지를 망치는 개발을 중단하고 재산을 환원하라”는 현수막이 바다의 한가로운 풍광을 가로막았다. 이어 해변을 감싸고 있는 마을에 들어서자 분위기는 더 험악했다. 마을 곳곳에 내걸린 “악덕기업 LH, 만흥지구 포기하라 우리는 죽음도 불사하겠다”가 새겨진 현수막에서 살벌한 분위기마저 감돌았다.    

전남 여수시 만흥동 만성리 평촌마을. 바다를 향해 쭉 뻗어 나온 반도에 자리 잡은 마을은 동남쪽 여수 바다를 품고 있었다. 이곳은 130여 가구가 사는 작은 마을로, 주민 대다수가 70~80대인 고령 마을이다. 김철수(63) 만흥지구 개발 비상대책위원장은 마을에서 ‘청년’으로 통한다. 손아래 주민이 두 명 뿐이다. 마을에는 혼자 조용히 농사를 지으며 여생을 보내는 노인들이 많다. 대부분이 1인 가구다.

김 위원장은 “마을 주민들은 수십 년을 서로 의지하며 형제처럼 살아왔다. 먼 곳에 사는 자식보다 정들어서 헤어지고 싶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주민들은 조만간 타의에 의해 이별해야 할 지도 모를 처지에 놓여 있다. 여수시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수년 전부터 이곳에서 택지개발을 하겠다고 나서면서다. 평촌마을 주민들은 반발했다. 지난 2019년 5월 만흥동 개발 계획이 발표되자 개발을 당장 중지하라며 마을회관 부근에 천막을 치고 농성에 들어갔다. 3년이 넘은 지금도 주민들은 죽을 각오로 농성을 지속하고 있다.  

​전남 여수시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만흥지구 택지개발사업을 추진하면서 평온했던 여수 만흥동 만성리 평촌마을의 평화가 깨졌다. 마을 주민들은 지난 2019년 5월, 만흥동 개발 계획이 발표되자 ‘개발을 당장 중지하라’며 마을회관 옆에 천막을 치고 3년 째 농성을 하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전남 여수시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만흥지구 택지개발사업을 추진하면서 평온했던 여수 만흥동 만성리 평촌마을의 평화가 깨졌다. 마을 주민들은 지난 2019년 5월, 만흥동 개발 계획이 발표되자 ‘개발을 당장 중지하라’며 마을회관 옆에 천막을 치고 3년 째 농성을 하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갈등의 불씨가 된 여수 만흥지구 택지개발사업은 LH가 민간임대주택에 관한 특별법에 의해 주관하는 사업이다. 2024년까지 3293억 원의 사업비를 투입해 만흥동 일원 40만6152㎡에 아파트 2758세대와 단독주택 174호, 상업지구 등이 들어선다. 계획인구는 2932세대 6326명 규모다. 지난 2019년 12월 30일 국토부가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 공급 촉진지구로 지정하면서 사업이 본격화됐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지난해 11월 환경영향평가 협의를 마치고 12월 지구계획승인, 2022년 1월 본격적인 공사를 시작해 2024년 사업을 준공한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사업 추진과정에서 주민들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혀 사업 일부가 수정돼 중촌마을이 제외되고 지구계획 승인도 늦춰지는 등 난항을 겪고 있다.  

앞서 여수시는 그동안 만흥지구를 개발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2013년부터 만흥지구를 관광단지로 개발하려 했고 타당성 용역조사 등을 거쳐 전남도로부터 사업 승인까지 받았던 사업은 2016년 12월 여수시가 민간투자자와 만흥 검은모래 해변 배후부지 개발사업 투자협약을 체결하며 본격화하는 듯했다. 그러나 민간사업자가 예치금을 미납, 협약이 해지되면서 무산됐다. 이후 시는 2019년 5월 30일 LH와 만흥지구에 민간임대주택을 조성하는 ‘여수시 지역발전 및 주거 안정을 위한 기본협약’을 체결하면서 만흥동 개발구상을 수면 위로 올렸다.

 

주민들 불안한 나날 “거리에 나앉을까 무서워”

그럼에도 여전히 쉽지 않은 분위기다. 협약 이후 만흥동 주민들은 만흥지구가 애초 계획대로 관광단지로 조성돼야 한다는 것과 처음 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중촌마을이 임대주택조성 구역으로 포함된 점, LH와 협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주민 의견수렴이 없었던 점 등을 들어 임대주택단지로 개발하는 계획에 반대했다.

무엇보다 최대 암초는 대대로 일궈온 생존의 터를 잃게 될 주민들의 강한 반발이다. 평촌 주민들은 밭에서 일하다가 옷에 묻은 흙 툭툭 털고 밥 먹고 그대로 자기도 한다. 그러고 아침 밥숟가락 안 뜨고 부스스 일어나 밭에 나가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곳에서 LH가 난데없이 택지개발을 추진하면서 주민들은 다른 곳으로 밀려나고 외지인들이 마을 주민이 되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 우려되는 상황에 내몰렸다. 

전남 여수시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만흥지구 택지개발사업을 추진하면서 평온했던 여수 만흥동 만성리 평촌마을의 평화가 깨졌다. 마을 주민들은 지난 2019년 5월, 만흥동 개발 계획이 발표되자 ‘개발을 당장 중지하라’며 마을회관 옆에 천막을 치고 돌아가며 3년 째 농성장을 지키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전남 여수시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만흥지구 택지개발사업을 추진하면서 평온했던 여수 만흥동 만성리 평촌마을의 평화가 깨졌다. 마을 주민들은 지난 2019년 5월, 만흥동 개발 계획이 발표되자 ‘개발을 당장 중지하라’며 마을회관 옆에 천막을 치고 돌아가며 3년 째 농성장을 지키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평촌마을 주민들은 설령 LH가 땅을 공짜로 줘도 집 지을 돈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마을 농성장에서 만난 이순희(68·가명)씨는 “쥐꼬리만한 보상금 받아서는 집을 못 짓는다. 이주택지를 조성원가의 80~85%에 준다고 하는데 그런다 해도 집을 짓을 돈이 없다. 이웃사람들이 하루하루는 두렵고 불안한 날의 연속이다. 아니 거리에 나앉을까봐 무서워한다”고 전했다.

김철수 위원장은 “조상 대대로 살아온 내 집 내어주고 남의 집에서 세 살아야 하겠냐. 자식들 다 키우고 조상들 여기서 돌아가신 곳이다. 떠나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나”고 반문한 뒤 “아무리 허름한 집이라도 자기 집이 제일 마음 편하다. 대책위가 제안한 것 중 하나가 행복주택 지을 것 아니냐. 등기는 LH가 하고 죽을 때까지 그냥 살게 하면 된다고 했다. 어르신들이 살면 얼마나 살겠느냐”고 안타까워했다. 

만흥지구 택지개발 사업은 만성리해수욕장의 평온 뿐만 아니라 끈끈했던 농촌마을 공동체도 분열시켰다. 형제처럼 지내던 주민들은 지금 반대와 찬성 양 쪽으로 쪼개졌다. 초기에 찬성 쪽에 섰던 주민들이 반대쪽으로 대부분 돌아섰지만 여전히 토지를 소유한 외지인들과 해변가 일부 상인들은 개발에 적극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개발에 따른 수익이 분열의 촉매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마을 중대사를 결정하면서 편이 갈리고 행정 쪽의 개발논리에 빌미를 제공하는 등 후유증이 속출했다. 김 위원장은 “왜 우리가 그래야 하느냐. 최악의 경우 극단적인 상황까지 갈 수 있다. 나도 장담할 수 없다. 주민들은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겠다고 한다”고 마을 분위기를 전했다.

24일 오후 농성장에서 시사저널과 인터뷰하고 있는 김철수 여수 만흥지구 개발 비상대책위원장 ⓒ시사저널 정성환
24일 오후 농성장에서 시사저널과 인터뷰하고 있는 김철수 여수 만흥지구 개발 비상대책위원장 ⓒ시사저널 정성환

대책위 “여수시·LH, 밀실 추진” vs 여수시 “예정대로 사업 추진”

주민들이 가장 불만을 토로하는 대목은 무엇보다 LH와 여수시의 안하무인식 태도다. LH나 여수시가 주민들의 의견을 한 번도 들어보지 않고 이 사업을 밀실에서 추진했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의 말이다.

“내가 앞장서서 해양휴양단지 개발을 제안하고 주민들의 동의를 받았다. 그런데 우리 주민들은 언론 보도를 통해 택지개발 사실을) 알았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 TV에서나 봤던 일이 내 앞에서 실제로 일어나니 너무나도 황당했다. 애초 관광지 개발을 위한 주민 동의가 택지개발 동의로 둔갑했다. 보다못해 결자해지 차원에서 생업에 바쁘지만 내가 앞장 설 수밖에 없었다. 모든 책임은 LH와 여수시에 있다. 주민들은 여전히 격앙돼 있다. 일방적으로 개발하겠다고 발표하더니 그 후로도 일방적이다. 주민들은 특히 여수시의 태도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다. 진정성 대화를 해 본적이 없다. 되레 주민들을 갈라치기 해 분열시키려고 했다. 도대체 여수시는 누구 편인지 모르겠다.”

실제 2019년 5월 언론 보도를 통해 택지개발 사실을 알게 된 평촌‧중촌마을 주민들은 강력하게 반발했다. 결국 중촌마을은 제척됐지만 평촌마을 주민들은 현재 마을에 천막을 쳐놓고 3년째 매일 돌아가며 농성장을 지키고 있다. LH 측은 이주택지를 조성원가의 80~85%로 주겠다고 했지만 주민들은 빈곤층 원주민을 쫓아내는 것이라며 반발하는 등 진척이 없는 상황이다. 중촌마을이 25층 이상 고층 아파트로 인한 조망권 훼손과 사생활 침해 문제를 지적하자 LH는 토지이용계획을 일부 변경했을 뿐 큰 골격은 변함이 없다.

주민뿐만 아니라 여수시의회도 해양휴양단지로 개발을 요구했던 지역의 의견과 요구가 전혀 반영되지 않은 채 여수시가 중요한 개발행위를 추진하면서 시의회와 전혀 협의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만흥지구 개발협약을 취소하라’고 주장히고 ‘만흥지구 개발 협약 파기 결의안’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여수시는 주민 민원에 개의치 않고 만흥지구 택지개발사업을 예정대로 진행한다는 입장이다. 시 관계자는 “현재 적극적인 협의를 위해 관광‧주거 복합개발 및 중촌마을 제척 등 주민 설득을 통해 민원을 원만히 해결하고 공공지원 민간임대 공급촉진지구로 지정했다”고 밝혔다. 이어 “최근 LH 측이 정기명 시장에게 추진상황을 보고했으며 빠르면 이달 말에 지구계획 승인 등 행정절차를 마무리하고 보상 및 공사 추진과정에서 주민들과 원만히 협의하여 사업추진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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