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 하락에 미성년자 주식 가치도 ‘와르륵’
  • 이석 기자 (ls@sisajournal.com)
  • 승인 2022.10.25 10:10
  • 호수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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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대 기업 오너 일가 1902명 전수조사 결과
미성년자 주식 부자 1위는 KCC글라스 4세 정한선
에스엘·코리아니켈·화신·고려아연家가 뒤이어

한국 주식시장이 심상치 않다. 한때 3200포인트를 상회했던 코스피지수는 현재 2200포인트대까지 떨어진 상태다. 미국의 급격한 금리 인상이 원인으로 꼽힌다. 원-달러 환율이 심리적 저항선인 1300원을 훌쩍 뛰어넘으면서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가고 있다. 달러를 기준으로 평가해 보면 종합주가지수 하락 폭은 연초 대비 40%에 이른다. 현재 상태라면 코스피 2000을 지켜낼 수 있을지조차 확신할 수 없는 상태다. 주요 기업 총수들의 20세 미만 자녀들이 보유한 주식 가치도 크게 떨어졌다. 이들이 보유한 평가액은 400억900만원으로 전년(482억4800만원) 대비 17.08%나 하락했다.

ⓒ일러스트 신춘성

미성년자 평가액, 연초 대비 17% 하락

이 같은 사실은 시사저널이 기업 분석 연구소 ‘리더스인덱스’에 의뢰해 국내 500대 기업 오너 일가 1902명의 주식 가치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밝혀졌다. 이 중 미성년자 주식 부자는 모두 41명이다. 평균연령은 13.9세로 1인당 평균 자산은 9억7500만원이다. 조사 대상 중에는 10세 미만 초등학생과 유아도 6명이나 포함돼 있었다. 이들의 평가액은 모두 22억6700만원이다.

미성년자 주식 부자 1위는 정몽익 KCC글라스 회장의 아들 정한선군(15)이 차지했다. 한선군은 2017년 말 고(故) 정상영 KCC 명예회장으로부터 KCC와 코리아오토글라스 지분을 증여받았다. 당시 종가 기준으로 30여억원에 달한다. 2020년에는 정몽진 KCC그룹 회장으로부터 KCC글라스 지분 2.03%도 증여받았다. 이 주식들의 평가액이 82억3000만원이다. 최근 증시 약세로 올 초(121억7600만원) 대비 주식 가치가 32%나 하락했지만, 미성년자 주식 부호 순위에서 압도적 1위를 기록했다.

미성년자 주식 부자 2위는 이승훈 에스엘미러텍 사장의 장녀인 이정민양(18)이 차지했다. 에스엘미러텍은 대구에 위치한 자동차 부품기업 에스엘(SL)그룹의 계열사다. 최대주주는 이승훈 사장의 친형인 이성엽 에스엘 사장(25%)이다. 정민양은 현재 에스엘 지분 0.3%를 보유하고 있다. 평가액은 48억1800만원이다. KCC와 달리 에스엘은 최근 1년간 주가가 소폭 상승했다. 때문에 정민양의 평가액도 연초 대비 4.4% 증가했다.

미성년자 주식 부자 3, 4, 5위는 최창영 코리아니켈 회장의 외손자인 이승원군(17)과 자동차 부품업체 화신의 오너 일가인 정지안군(16), 최창걸 고려아연 회장의 손주인 최수연양(14)이 차지했다. 이들 3명의 평가액은 각각 37억8500만원, 21억5500만원, 15억6100만원이다.

시사저널은 2014년부터 관련 조사를 진행했다. 오너 일가의 주식 평가액이 그해 기업의 실적이나 주가의 바로미터가 되기 때문이다. 물론 이때까지만 해도 30대 그룹 오너 일가만 조사 대상이었다. 때문에 그동안 조사에서는 GS와 LS, 효성, 한미약품, 영풍가(家) 미성년자들이 상위권을 독차지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조사 대상을 500대 상장기업으로 확대했다. 그러자 그동안 1위를 유지했던 주요 기업 3세나 4세들의 순위가 대부분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대신 언론에 자주 노출되지 않는 중견기업 오너의 3~4세들이 순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미성년자 주식 부자가 그만큼 많다는 방증이다.

특히 최근 들어 재계는 3세나 4세 체제로 전환을 서두르고 있다. 자녀가 아직 어릴 때 회사의 주식을 증여해 승계 부담을 줄이는 게 재계의 트렌드가 됐다. 이에 따라 ‘부의 양극화’도 가속화되고 있다. 이번 조사에서도 이런 경향이 뚜렷했다. 미성년자 주식 부자 상위 5명의 주식 가치는 205억7100만원이다. 상위 5명의 평가액이 나머지 36명의 평가액을 합한 금액(194억3800만원)보다 높게 나온 것이다.

하락장 이용한 주식 증여도 잇따라

이들이 보유한 주식의 등락에 따라서도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올해 주식 가치가 가장 많이 상승한 인물은 양홍석 대신증권 부회장의 두 딸인 채유양(9)과 채린양(6)이다. 두 사람의 주식 가치는 각각 69%와 73% 급등했다. 양 부회장은 조카인 홍승우군(3)에게 주식을 증여하면서 승우군이 올해 처음으로 미성년자 주식 부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증시 하락장을 이용해 주식을 증여한 것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주식이 쌀 때 증여하면 같은 자금으로 더 많은 지분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증여세 절감 효과는 덤이다.

실제로 양 부회장은 지난 6월 두 딸과 조카에게 자금 증여 방식으로 주식을 증여했다. 채유·채린양과 승우군은 이 돈으로 대신증권 주식을 집중적으로 매입했다. 대신증권 주가가 우하향을 시작했을 때였다. 이후에도 대신증권 주가가 추가로 하락했지만 3세들의 지분 영향력은 연초에 비해 크게 증가했다. 이 밖에도 이순영 세아그룹 회장의 외손주인 허은홍군(17)·허인홍군(10)의 주식 가치가 각각 43%와 49% 상승했고, 구자준 전 LIG손해보험 회장의 손녀로 추정되는 구한주양(17)의 평가액도 32% 증가했다.

효성그룹의 상황은 반대였다. 조현준 회장의 장남 조재현군(10)과 조현상 부회장의 자녀들인 조인희양(13)·조수인양(10)·조재하군(7)의 평가액은 연초 대비 반 토막이 났다. 이들은 지난해와 올해 거액을 투입해 (주)효성과 효성화학, 효성첨단소재 등 핵심 계열사 지분을 매입했다. 하지만 최근 주식 가치가 하락하면서 연초(13억9900만원) 대비 평가액이 50%(7억400만원)나 감소했다. 특히 조 회장의 장녀인 조인서양(나이)의 경우 그동안 공격적인 계열사 주식 매입으로 올 초 평가액이 28억7800만원에 달했다. 전체 순위는 4위였다. 하지만 이후 주식 가치가 46%나 하락하면서 전체 순위는 6위(평가액 15억5400만원)로 밀려났다.

이 밖에도 지난해 김범수 카카오 의장으로부터 주식을 증여받은 김유태군(17·친인척)의 주식 가치도 올해 초 16억8300만원에서 9월말 8억6100만원으로 51% 하락했다. 곽재선 KG그룹 회장의 친인척으로 분류된 이고은양(13)·이주은양(11)과 유경선 유진그룹 회장의 조카로 추정되는 유호성군(18)의 지분 가치가 각각 34%와 31% 떨어졌다. 두산가 4세인 박상은양(19)·박상인양(19)·박상효양(16)의 주식 가치 역시 32% 하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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