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SK-팬택C&I-티앤씨재단 삼각 관계…20년 우정인가, 절친 사업 밀어주기인가
  • 박창민 기자 (pcm@sisajournal.com)
  • 승인 2022.10.31 12:05
  • 호수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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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 회장 절친 박병엽 회장, 티앤씨재단에 매년 억대 기부 왜?
팬택C&I, SK하이닉스 협력업체·SK텔레시스 사업 부문 잇따라 인수 뒷말

팬택 창업주인 박병엽 팬택씨앤아이(C&I) 회장이 개인회사를 통해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동거인이 운영하는 티앤씨재단에 매년 억대에 달하는 기부금을 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시사저널이 티앤씨재단의 회계 공시자료를 분석한 결과, 박 회장의 가족회사 피앤에스네트웍스는 2019년 1억원, 2020년 2억원, 2022년 2억원 등 3년 동안 티앤씨재단에 총 5억원의 현금을 출연했다. 티앤씨재단이 설립된 2018년을 제외하고, 매년 억대에 달하는 돈을 박 회장이 기부하고 있는 것이다.

티앤씨재단은 설립 당시 최 회장이 30억원의 사재를 출연해 많은 관심을 받았다. 매년 현금 20억~30억원을 티앤씨재단에 출연해 김희영 티앤씨재단 이사장의 활동에 힘을 실어줬다. 최 회장을 제외하고 매년 재단에 억대의 현금을 기부하는 건 피앤에스네트웍스가 유일하다. 2019년 티앤씨재단에 3억원을 기부한 게 전부인 김 이사장과도 대조되고 있다.

물론 박 회장은 과거 팬택 부회장 시절부터 ‘기부 천사’로 유명하다. 장학사업이나 복지단체 등에 많은 돈을 개인적으로 기부해 왔다. 예술의전당에 5000만원 이상을 기부한 ‘금관 회원’이기도 하다. 회사 차원에서도 유명 작가와의 콜라보레이션 전시회나 휴대폰 경매 이벤트 등을 자주 했다. 이런 행사를 통해 나온 수익금 역시 전액 기부했다. 티앤씨재단에 대한 기부 역시 그 연장선상이 아니겠냐는 게 재계 일각의 시각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왼쪽)과박병엽 팬택C&I 회장 ⓒ연합뉴스
최태원 SK그룹 회장(왼쪽)과박병엽 팬택C&I 회장 ⓒ연합뉴스

티앤씨재단에 매년 억대 기부, 왜?

하지만 SK나 팬택 내부 사정에 정통한 재계 관계자들의 생각은 달랐다. 이들은 최태원 회장과 박병엽 회장의 각별한 인연에 주목한다. 두 사람은 20년 지기 절친이다. 1991년 팬택을 설립한 박 회장은 휴대전화 사업을 확장하면서 최 회장과 인연을 맺었다. 이후 돈독한 관계를 지금까지 유지해 오고 있다. 2017년 박 회장이 모친상을 당했을 때 최 회장이 사흘 내내 빈소를 찾아 상주 노릇을 한 일화는 재계에서 유명하다. 티앤씨재단에 매년 억대의 돈을 기부한 피앤에스네트웍스는 팬택씨앤아이 자회사로 과거 팬택 계열사였다. 2014년 박병엽 회장이 팬택의 경영난으로 회사를 떠나면서 함께 계열 분리됐다.

이 때문에 이들은 최 회장과 각별한 인연이 있는 박 회장이 티앤씨재단에 매년 수억원을 기부한 것으로 보고 있다. SK그룹 사정에 정통한 한 재계 관계자는 “두 사람은 의형제나 마찬가지다. 박 회장은 최 회장보다 두 살 어리지만, 사석에서 ‘형, 동생’이라 부를 만큼 가깝다”면서 “박 회장이 김 이사장과 최 회장이 거주했던 서울 평창동 자택을 매입한 것도 이와 연관이 깊다. 박 회장은 김희영 이사장과도 자주 소통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사업적으로도 두 사람은 밀접하게 얽혀 있다. 개인적 친분을 넘어 ‘비즈니스 혈맹관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SK는 과거 팬택 제품을 가장 많이 사는 주요 고객이었다. 반대 사례도 있다. 2003년 발발한 ‘소버린 사태’로 적대적 인수합병(M&A) 위기에 몰리면서 최태원 회장의 경영권이 위협받았다. 당시 박 회장이 ‘백기사’로 나서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더 돈독해진 것으로 전해진다. 2005년 박 회장은 최 회장과 담판을 짓고 매물로 나온 SK그룹 계열사 SK텔레텍을 3000억원에 인수했다. SK텔레텍은 휴대폰 브랜드 ‘스카이’로 유명한 회사였다. 당시 SK텔레텍 직원 상당수는 팬택이 청산되기 직전까지 남아있었다. SK와 팬택은 피를 나눈 사이인 것이다.

최태원 회장과 박병엽 회장의 혈맹관계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지난해 팬택씨앤아이는 오랜 자본잠식 탓에 SK그룹의 애물단지로 전락한 SK텔레시스의 통신장비 및 통신망 유지·보수 사업을 789억원에 사들였다. 이 덕분에 SK텔레시스는 유동성 리스크를 해소할 실탄을 마련할 수 있게 됐다. SK텔레시스와 팬택씨앤아이의 거래에도 역시 두 회사 총수의 친분 관계가 작용했을 것으로 재계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다른 의견도 나온다. 최근 몇 년 사이 박병엽 회장이 SK하이닉스 일감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협력업체를 인수한 것과 티앤씨재단의 거액 기부가 무관치 않다는 것이다. 재계에서는 SK하이닉스 협력업체를 인수한 박병엽 회장이 우회적으로 티앤씨재단에 자금을 지원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그 중심에는 박 회장이 지난해까지 실질적으로 지배했던 반도체 테스트 전문기업 에이팩트(옛 하이셈)가 있다. 에이팩트는 SK하이닉스의 오랜 협력업체로 반도체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검사하는 상장기업이다. 2007년 반도체 기업 동진세미켐 등 23곳이 자본금 170억원을 출자해 에이팩트를 설립했다. 그로부터 10년 뒤 투자목적회사(SPC) 팬아시아세미컨덕터서비스가 에이팩트 경영권 지분 25.4%를 인수하면서 최대주주가 바뀌었다.

경기도 이천시 SK하이닉스 공장 전경ⓒ시사저널 포토

SK하이닉스 협력업체 ‘엑시트’로 시세차익

팬아시아세미컨덕터서비스의 지배구조를 거슬러 올라가면 최상단에 박병엽 회장의 이름이 있다. 금융감독원 공시에 따르면, 팬아시아세미컨덕터서비스의 최대주주(53.8%)는 피에스이피플래시사모투자합자회사(PSEP)다. PSEP의 최대투자자(64.2%)는 박병엽 회장의 가족회사 피앤에스네트웍스다. 피앤에스네트웍스는 박병엽 회장의 100% 개인회사 팬택씨앤아이(40%)와 두 아들(60%)이 지배하고 있었다.

에이팩트 지배구조를 정리하면 이렇다. 박병엽(100%)→팬택씨앤아이(40%)→피앤에스네트웍(64.2%)→PSEP(53.8%)→팬아시아세미컨덕터서비스(25.4%)→에이팩트로 이어진다. 박 회장이 가족회사와  SPC(특수목적회사) 등을 통해 에이팩트를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박 회장이 실소유했던 에이팩트는 당시 SK하이닉스가 먹여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에이팩트의 전체 매출 90% 이상이 SK하이닉스의 일감을 통해 발생하기 때문이다. 지난 8년간 SK하이닉스가 에이팩트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보면 △2015년 216억원(매출 의존도 79%) △2016년 159억원(81%) △2017년 226억원(81%) △2018년 471억원(92%) △2019년 468억원(94%) △2020년 496억원(95%) △2021년 472억원(97%)으로 해마다 증가했다. 

주목되는 사실은 2017년 에이팩트의 주인이 박 회장으로 바뀌자 SK하이닉스 일감과 실적이 수직 상승했다는 점이다. 2017년 226억원에 머무르던 매출이 2018년 471억원으로 2배가량 뛰었다. 박 회장이 인수한 이후 에이팩트는 매년 매출 470억~490억원대를 유지했다. 이전까지 9% 수준이던 영업이익도 32%로 급증했다. 매출·영업이익 모두 창사 이래 최대치를 기록했다. SK하이닉스의 전폭적인 지원 없이 이 같은 실적은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협력업체 영업이익이 지나치게 높으면 곧바로 협상을 통해 단가를 조정하는 게 재계 관행이다. 이 때문에 일부 회사는 이런 실적을 원청업체에 숨기기 위해 각종 꼼수를 동원하고 있다”면서 “SK하이닉스의 일감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에이팩트의 급성장 배경에 최태원 회장과 박병엽 회장의 친분 관계가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SK그룹 “오너 친분 관계와 사업은 무관”  

여기에 더해 박병엽 회장은 지난해 에이팩트의 경영권을 전량 매각해 큰 차익도 남겼다. 박 회장이 지배하는 팬아시아세미컨덕터서비스는 2017년 2월 에이팩트 최대주주 지분 44만4690주를 153억원(주당 3450원)에 매입해, 2021년 9월 한 사모펀드가 결성한 SPC에 385억원(주당 8643원)에 팔아치웠다. 박 회장은 4년 동안 무려 3배에 달하는 시세차익을 남기고 에이팩트 엑시트(투자금 회수)에 성공한 것이다. SK하이닉스의 일감이 급증하면서, 매출·영업이익이 크게 개선됐기 때문에 에이팩트을 비싸게 팔 수 있었던 것으로 재계는 보고 있다.

SK그룹이 최태원 회장과 절친인 박병엽 회장에게 ‘에이팩트 딜’을 유리하게 밀어줬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IB업계에서 에이팩트를 둘러싼 인수합병을 사실상 SK그룹이 주도했다는 소문이 그동안 파다했다. 에이팩트가 SK하이닉스의 일감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으며, 주요 임원 중 상당수는 SK하이닉스 출신이다. 실제로 2017년 에이팩트가 매물로 나왔을 때 지속적인 수주를 위해 SK하이닉스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곳이 ‘새 주인’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그런 점에서 최태원 회장과 인연이 깊은 박병엽 회장이 에이팩트를 실질적으로 인수했다는 건 의미심장하다.

일각에서는 최 회장이 절친인 박 회장의 재기를 돕고 있다는 시선도 나온다. 박병엽 회장에 대해 잘 알고 있는 한 재계 인사는 “최태원 회장이 물밑에서 박병엽 회장 사업을 많이 도와주고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 “피앤에스네트웍스는 화물사업을 하는데, 여기도 SK하이닉스 일감 비중이 상당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2014년 SK하이닉스 자회사이자 반도체 테스트 업체인 큐알티를 박병엽 회장이 인수하려고 했다”면서 “그런데 최 회장과의 친분관계와 팬택 경영에 실패했다는 뒷말이 많아 결국 큐알티 인수를 포기했다”고 설명했다.

SK그룹 측은 최태원 회장과 박병엽 회장의 이 같은 거래 관계에 대한 과도한 해석을 경계했다. SK그룹의 한 관계자는 “에이팩트는 과거부터 SK하이닉스 일감 비중이 높은 협력사였다”면서 “당시 반도체 산업이 호황이었기 때문에 SK하이닉스 일감이 많아진 것일 뿐 다른 이유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박병엽 회장은 평소 기부를 많이 하는 걸로 알고 있다. 티앤씨재단도 그중 하나일 뿐”이라며 “최태원 회장과 박병엽 회장이 절친한 건 맞지만, 이런 관계 속에서 비즈니스가 이뤄졌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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