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기의 과유불급] 죄와 사람, 이재명 정국의 키워드
  • 전영기 편집인 (chunyg@sisajournal.com)
  • 승인 2022.10.31 08:05
  • 호수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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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와 경제의 복합 위기, 국난이 예고되고 있다. 분열된 집안은 일어설 수 없기에 정치권의 초당적 대처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런데 여야 간 초당적 협치의 연결점에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놓였다. 이재명 대표는 대선자금 범죄 혐의와 국회에서 협치의 주체라는 이중적 위치에 있다. 그의 속사정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유동규의 회심이 이 대표를 코너로 몰아넣었다. 대장동 일당이 만든 돈이 이재명 캠프의 경선자금에 쓰였다는 게 유동규의 고백이다. 검찰은 수사의 끝을 보고야 말 것이다.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본부장이 24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대장동 개발 사업 로비·특혜 의혹 관련 속행 공판에 출석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을 하지 않고 있다. Ⓒ연합뉴스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본부장이 24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대장동 개발 사업 로비·특혜 의혹 관련 속행 공판에 출석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을 하지 않고 있다. Ⓒ연합뉴스

유동규의 죄와 벌: 죗값은 각자가 지은 만큼 갚자

반면 이재명의 구명을 당의 운명과 동일시하는 민주당의 전체주의적 무드는 윤석열 정부와 협치를 불가능하게 하는 조건이 된다. 한국 정치는 이재명에게 법적 정의를 관철하려 하면 할수록 여야 협치가 어려워지는 구조에 빠졌다. 정의도 실현하고, 협치도 구현해야 하는 관점에 서게 되면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불법에 눈감거나 협치를 포기하는 관점을 취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정의와 협치는 양립불가인가.

유동규의 정의론은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바치라”라는 성경 이야기를 연상시킨다. 유동규가 구치소에서 풀려나 쏟아낸 수많은 말을 한 문장으로 간추리면 ‘내가 지은 죗값은 내가, 이재명이 지은 죗값은 이재명이 갚으라’는 것이다. “내가 지은 죄만큼 벌을 받겠다. 내가 안 한 거는 덮어쓰지 않겠다. 이재명 명령으로 한 거는 이재명이가 써야 할 것이다.” 유동규는 이 발언을 여러 차례 여러 곳에서 반복했다.

원래는 ‘형제의 의리’로 모든 죄를 혼자 뒤집어쓰려 했으나 “의리? 이 세계에는 그런 게 없더라. 내가 착각 속에 살았다”라는 언급에서 보듯 지금의 유동규는 배신감에 치를 떨고 있다. “급할 게 없다. 천천히 말려 죽이겠다”는 섬뜩한 표현엔 구금 상태에서 1년간 곱씹은 생각들이 응축돼 있다. 유동규의 감옥 생활은 본인 표현에 따르면 “천장 쳐다보고, 2개월은 눈물 흘리고, 성경도 읽고, 나중에 우울증이 와서 약 먹고 버틴” 세월이었다. 유동규는 “작은 돌 하나 던지는데 저렇게 안달인데 정말 큰 돌 날아가면 어떡하려고”라며 이재명 대표에게 ‘종말의 시작’을 경고했다. 결론은 두고 볼 일이다. 분명한 것은 이 대표에게서 죄와 벌을 가리는 문제가 정치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다는 점이다. 유동규가 살아있는 한 이재명의 행적은 사법적으로 시시비비를 가려야 할 대상이 되었다.

 

링컨의 협치: 죄는 미워도 사람은 미워하지 않아

그렇다면 협치는 가능한 것일까. 역사상 대표적인 초당적 협치자로 미국의 링컨 대통령이 꼽힌다. 링컨의 협치를 가능케 한 것은 상황과 조건이라기보다 정신이었다. ‘죄만 미워하고 사람은 미워하지 않는다’는 정신이다. 남북전쟁이라는 국민적 위기를 극복하는 데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죄와 사람을 분리할 수 있게 됐다. 공화당원인 링컨은 자기를 무시하고 조롱하기 일쑤였던 민주당 출신을 재무부 장관에 앉혔고, 대선 경선 때 라이벌이었던 사람을 국방부 장관과 국무부 장관에 임명했다. 링컨은 성자가 아니다. 내각을 관리하는 일에 마음고생이 컸다. 그들 중 일부로부터 배신을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죄와 사람을 분리하는 것, 즉 부분과 전체를 분리하는 사고는 링컨의 통치 범위를 넓히고 정치적 선택에서 많은 자유를 부여했다. 이에 따라 불가능할 것 같았던 국민 통합이 일어나고 링컨은 남북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죄와 벌’ ‘죄와 사람의 분리’가 이재명 정국을 푸는 키워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전영기 편집인
전영기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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