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민심은 ‘이상민’을 책임자로 지목했다
  • 김종일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22.11.04 14:05
  • 호수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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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민·윤희근 경질 불가피론…與 일각 “‘정치적 책임’은 물론 ‘사법적 책임’도 물어야” 주장
‘경찰 책임론’으로 ‘정부 책임론’ 차단하려는 與…‘국정조사’로 ‘정부 책임론’ 키우려는 野

이태원 참사 당일 경찰이 “압사당할 것 같다”는 112 신고를 다수 받고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윤석열 정부를 향한 책임론이 거세게 이는 양상이다. “지금은 추궁의 시간이 아닌 추모의 시간”(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라며 정부를 엄호하던 여당도 철저한 사태 파악과 책임 추궁이 필요하다는 쪽으로 입장을 선회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11월5일까지인 국가애도기간이 끝난 후 정부·여당이 어떻게 사태 수습책과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주느냐에 따라 국민 여론과 정국이 요동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참사 초기만 해도 정부·여당은 국가애도기간이니만큼 사태 수습과 애도가 우선이라는 입장을 유지하면서 ‘정부 책임론’을 적극 방어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11월1일 공개된 112 신고 녹취록으로 상황이 반전됐다. 참사 4시간 전부터 11건의 신고가 접수됐지만, 4건에 대해서만 출동하는 등 경찰이 초기에 기민하게 대처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경찰은 초기에 “일반적으로 용인할 수 있는 불편신고 정도”(황창선 경찰청 치안상황관리관)로 상황을 오판했다. 이후에도 적극적으로 대처한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국민 여론이 들끓는 이유다.

10월30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열린 ‘이태원 압사 참사’와 관련한 관계 부처 장관들의 브리핑에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오른쪽)이 질문에 답하고 있다.ⓒ연합뉴스

경찰 부실 대응 확인되면서 여권 분위기 바뀌어

이태원 참사에 대한 책임은 ‘누가’ ‘어떻게’ ‘얼마나’ 져야 할까. 이 질문은 이태원 참사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와 직결된다. 그리고 책임의 범위를 ‘어떻게’ 설정하고 ‘누가’ 결정해, 책임의 강도를 ‘얼마나’ 지게 할지를 정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 대통령부터 국무총리, 행정안전부 장관, 경찰청장, 서울시장, 용산구청장, 그리고 실제 현장에서 움직인 하위직 공무원 등까지를 대상으로, 그 권한과 책임을 분명하게 따져서, 구체적으로 책임을 물어야 하기 때문이다. 

당·정·대는 정부를 향한 비판을 일부 통감하면서도 ‘선(先)수습, 후(後)책임’ 기조를 보이고 있다. 그렇게 사과보다는 진상 규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리고 그 진상 규명의 핵심 대상으로는 경찰을 지목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사고 당일 경찰이 112 신고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정황을 보고받고 “한 점 의혹이 없도록 철저히 진상을 밝히라”고 지시했다. 국정 총책임자로서의 사과는 없었다. 대신 10월31일 이후 매일 서울광장에 마련된 합동분향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집권여당을 이끌고 있는 정진석 비대위원장은 “우리는 책임을 어디에도 미루지 않겠다”며 “애도기간이 끝나는 즉시 여야와 정부 및 전문가가 참여하는 ‘이태원 사고조사 특별위원회’를 구성할 것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반면 야당은 국정조사와 특검 가능성까지 열어두며 대대적인 대여(對與) 공세에 나서는 모습이다. 참사 직후부터 초당적 협력을 강조해 왔지만, 112 신고 녹취록을 계기로 ‘정부 책임론’을 강하게 제기하며 강공 모드로 태세를 전환한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책임의 범위를 경찰에 한정 짓지 않고 있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면서 이상민 행안부 장관과 윤희근 경찰청장의 파면을 촉구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에 대해 사퇴도 요구했고,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농담을 하는 등 물의를 빚은 한덕수 국무총리에 대한 비판도 쏟아냈다. 책임의 범위와 강도는 물론 그 결정도 당·정·대가 오로지 주도하게 내버려두지 않고, 여론과 함께 압박을 가하겠다는 전략이다. 

정치권에서는 ‘정부 책임론’을 이중적으로 본다. 먼저 철저한 진상 규명에 따른 책임 소재를 묻는 ‘법적·행정적 책임’이 있다. 당국의 감찰·수사와 행정·사법적 절차에 따라 적잖은 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 반면 ‘정치적 책임’은 이와는 다르다. 고위 공직자로서, 총책임자로서 사태에 무한책임을 진다는 자세로 도의적 책임을 진다. 많은 경우 참사 수준의 재난적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국민 눈높이에 맞는 ‘정치적 책임’이 필요하다. 타이밍이 매우 중요하다. 그렇기에 ‘전격 사퇴’ ‘전격 경질’처럼 빠르게 정치적 결정이 내려지는 경우가 많다. 적절한 정치적 결단이 내려지면, 비로소 정국이 해결될 돌파구가 보인다. 그래서 정치권에서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는 ‘법적·행정적 책임’보다는 ‘정치적 책임’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그렇다면 이번 참사에 대한 정치적 책임은 과연 누가 지게 될까. 정치적 책임은 국민적 눈높이에 맞게 진행돼야 효과가 있다. 정치는 사실의 영역과 인식의 영역이 뒤섞여 있다. 대중은 이슈 자체만큼이나 이슈를 다루는 태도를 중요하게 본다. 이태원 참사에 대한 책임도 마찬가지다. 대중은 참사와 관련 있는 주요 관계자들이 참사 이후 이슈를 어떻게 다뤘는지를 유심히 지켜본 후 그에 따른 ‘책임 요구’를 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관건은 리더십과 정치력이다. 자신을 향한 위기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위기는 기회가 될 수도 있고, 정반대로 나락으로 떨어지는 마지막 한 방이 될 수도 있다. 

112 녹취 공개 이후 ‘이상민’ 검색량, ‘윤석열’보다 두 배로

‘정부 책임론’도 결국은 민심의 향배에 따라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지금 민심의 흐름은 과연 어떨까. ‘온라인 민심’을 보면 이태원 참사에 대한 ‘정부 책임론’이 어느 방향을 향하고 있는지 엿볼 수 있다. 지금 참사에 책임이 있다고 지목받고 있는 주요 관계자들을 검색어로 해서 지난 한 달간(10월1일~11월1일) 검색어 트렌드를 ‘네이버 데이터랩’으로 조사해 봤다. 네이버 데이터랩은 네이버 통합검색에서 검색어가 얼마나 조회되었는지를 보여주는데, 그래프는 네이버에서 해당 검색어가 검색된 횟수를 일별로 합산하고 조회 기간 내 최다 검색량을 100으로 설정했을 때 상대적 변화를 나타낸다.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10월29일 ‘윤석열’과 ‘이상민’의 검색량은 각각 21과 7이었다. 전날에는 26과 4였고, 29일까지 지난 한 달여 동안 이상민 장관의 검색량이 두 자릿수였던 적은 없었다. 하지만 참사 소식이 본격적으로 알려진 30일부터는 검색 흐름이 요동친다. 30일 두 사람의 검색량은 급격히 늘어나고(윤석열 88, 이상민 41), 31일에는 검색량이 역전된다(이상민 89, 윤석열 55). 112 신고 녹취록이 공개된 11월1일에는 역전된 검색량 격차가 더욱 벌어진다(이상민 100, 윤석열 46). 

이런 추세는 어떤 의미를 지닐까. 대통령과 행안부 장관 두 사람에 대한 여론의 관심, 특히 부정적 인식이 높아졌다는 해석과 함께, 윤 대통령보다 이 장관에 대한 국민 여론이 더 좋지 않았다는 풀이가 가능하다. 빅데이터 분석 플랫폼 ‘썸트렌드’를 이용해 조사해 보면, 참사 직후(10월29~11월1일) SNS에서 이상민 장관에 대한 부정어 비율은 72%로 윤 대통령(71%)만큼 좋지 않았다. 주무부처 장관이라고 하지만, 여론이 국정 총책임자와 비슷한 비율로 부정적 의견을 피력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이에 대해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소장은 “인명피해가 이렇게 많은 참사가 났는데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여론의 흐름”이라고 설명했다. 엄 소장은 “지금 국민은 애도를 해야 한다는 마음과 화가 나는 마음 두 가지를 동시에 갖고 있는데, 책임을 회피하는 듯한 이 장관의 말이 여론에 불을 붙였다”고 설명했다. 이 장관은 참사 직후 “경찰과 소방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다. 

참사 직후 ‘오세훈’ ‘이상민’ 검색량 극적 반전

실제 온라인 여론은 참사 직후 주요 관계자들의 대처에 따라 요동치는 모습을 보였다. 이번 참사의 주요 책임자로 거론되는 이상민 장관과 함께 한덕수 총리, 오세훈 서울시장, 윤희근 경찰청장, 박희영 용산구청장의 최근 한 달간 검색량을 조사해 봤다. 참사 당일 5명 모두에 대한 검색은 이상민 6, 오세훈 2, 한덕수 1, 박희영 0, 윤희근 0으로 많지 않았다. 하지만 다음 날인 10월30일에는 오 시장에 대한 검색량(100)이 폭증했다. 이상민(36)과 박희영(33)에 대한 검색은 상대적으로 많았고, 한덕수(10)와 윤희근(1)에 대한 검색은 적었다. 참사 직후 여론은 오 시장에게 집중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10월30일 유럽 순방에서 중도 귀국한 오 시장은 ‘서울시 책임론’에 대해 “좀 더 경위를 파악해 보고 말씀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10월31일 여론의 관심은 오 시장에서 이 장관에게로 빠르게 이동한다. 검색량은 이상민(78), 박희영(35), 오세훈(24), 한덕수(5), 윤희근(2)으로 변했다. 하루 만에 검색량이 이상민은 36→78로 두 배 이상 늘어나고, 오세훈은 100에서 24로 4분의 1까지 줄어든 것이다. 

이런 급격한 검색량 변화는 오 시장이 특별히 어떤 대처를 잘했다기보다는 이 장관의 발언이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장관은 10월30일 오후 문제가 됐던 “경찰과 소방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는 발언을 했다. 발언이 논란이 됐지만 31일에도 “(경찰이나 소방의 대응으로) 사고를 막기에 불가능했다는 게 아니라 과연 그것이 원인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라며 경찰력 배치에는 문제가 없었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그리고 11월1일 여론을 급반전시킨 112 녹취록이 공개됐다. 참사 주요 관계자들이 이날 모두 사과를 했지만, 대중은 주로 이상민(87)을 검색했고, 박희영(55), 오세훈(35) 등은 상대적으로 적게 검색했다. 

이 장관을 향한 들끓는 온라인 여론을 인지한 듯 여당에서도 ‘이상민 경질’에 대한 목소리가 ‘정부 책임론’의 핵심으로 터져 나오고 있다. 유승민 전 의원이 이 장관의 파면을 공개 요구한 데 이어, 당권 주자인 안철수 의원도 “112 신고 녹취록을 보면 조금도 변명할 여지가 없다”며 “윤희근 경찰청장은 즉시 경질하고, 사고 수습 후 이상민 장관은 자진 사퇴해야 한다”고 공개 주장했다. 정진석 비대위원장과 주호영 원내대표도 철저한 원인 조사와 상응하는 책임 추궁에 대해 강경한 목소리를 내 사실상 이 장관에 대한 경질 요구에 나섰다는 해석이 나왔다. 여권 일각에선 윤 청장과 이 장관의 경우 단순히 직에서 물러나는 차원에서 끝나지 않고 ‘업무상 과실치사’ 등의 혐의로 구속을 염두에 둔 수사를 받을 가능성도 제기했다. 

대통령실도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 장관 책임론에 대해 “감찰과 수사 진행 상황을 지켜볼 것”이라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여권의 고위 관계자는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이 장관은 윤 대통령이 각별히 신임하는 사람”이라면서 “경질까지 곧바로 결정할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한다”고 했다. 정치권에서는 윤 대통령이 서울광장 앞 합동분향소를 조문할 때 계속 이 장관을 동행시키는 것을 두고 “윤 대통령이 이 장관에 대한 신뢰를 보여준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오른쪽)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이태원 참사 엿새째인 11월3일 서울광장에 마련된 합동분향소에서 조문하고 있다.ⓒ연합뉴스

오바마, 재난 참사 장례식을 국민통합 계기로 만들어

전문가들은 ‘타이밍’과 ‘강도’라는 두 차원에서 여권의 쇄신책을 지켜봐야 하며, 그에 따라 정국이 ‘대반전’될 수도 있고 ‘대위기’가 찾아올 수도 있다고 했다. 의제와 전략그룹 더모아의 유태곤 정치분석실장은 “참사 초반 정부·여당의 대응은 나쁘지 않았다. 결국 참사로 인한 국민의 감정을 추스르고 위로하는 게 필요했는데, 이상민 장관이 국민 여론에 불을 붙이는 ‘트리거’(방아쇠)를 당겨 버렸다”면서 이 장관 경질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봤다. 아울러 윤 실장은 “국가애도기간까지는 윤 대통령이 대국민 접촉을 피하며 숨을 수 있었지만, 그 이후에는 사태를 수습할 확실한 대책을 제시해야 한다”며 “그러지 못한다면 야당의 거센 반발과 공세는 물론 여론의 더 큰 반작용이 쏟아질 수 있다”도 했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장은 “재난에는 단계가 있다. 대형 재난이 지나면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민심이 좋아지거나 나빠진다”면서 “재난 이후 제때 분명하게 책임 소재를 묻고, 집단적 트라우마를 위로하고 격려할 국민적 메시지가 나와야만 국론이 뭉치고 중도층이 여권에 우호적으로 반응한다”고 했다. 특히 최 소장은 “초대형 재난이었던 만큼 주무부처 장관 경질만으로는 국민적 분노가 가라앉지 않을 수도 있다. 대통령이 직접 국민 앞에 고개 숙이고 진정성 있게 사과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내놔야 한다”면서 “그 과정이 국민적 공감과 동의를 불러일으키면 오히려 지지율에 ‘대반전’이 올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돌이킬 수 없는 ‘대위기’를 맞을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사회적 갈등이 첨예한 상황에서, 양극단의 목소리가 너무 커 도저히 하나가 되지 못할 것 같은 상황에서도 정치는 꽃을 피워냈다. 2015년 인종청소를 하겠다는 망상에 사로잡힌 한 미국 백인 청년이 흑인 교회에 들어가 총기를 난사해 8명의 생명을 앗아갔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희생자들의 장례식에서 추모 연설 도중 잠시 침묵하다가 찬송가 《어메이징 그레이스》(놀라운 은총)를 불렀다. 대통령이 전하려 했던 위로와 치유, 통합의 메시지는 추모객을 넘어 미국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분노와 좌절, 슬픔이 용서와 화해로 반전되는 한 편의 드라마였다. 지금 우리에게도 이런 정치가, 이런 지도자가, 이런 메시지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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