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엉킨 보고체계가 컨트롤타워 ‘부재’로…반복된 참사에도 왜 안바뀌나
  • 박나영 기자 (bohena@sisajournal.com)
  • 승인 2022.11.07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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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 다 갖춰도 누가 어떻게 쓰느냐의 문제…안전인지 감수성 가져야”
국가애도기간 종료 후 첫 월요일인 7일 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공간인 이태원역 1번 출구에 꽃들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
국가애도기간 종료 후 첫 월요일인 7일 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공간인 이태원역 1번 출구에 꽃들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

이태원 참사로 인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국가 재난대응시스템의 민낯이 드러났다. 행정안전부의 복잡하고 느슨한 재난 보고·전파 시스템이 이태원 참사 피해를 키웠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보고와 지시가 지연되는 사이 현장 통제가 이뤄지지 않았다. 이로 인해 사실상 컨트롤타워가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반복되는 참사에도 개선되지 않는 정부의 부실 대처에 국민 신뢰가 크게 훼손됐다는 진단이다. 

국가 재난사고시 대통령실은 국가상황실과 국가위기관리센터를 통해 경찰, 소방 등의 동시 보고를 받고 상호 확인을 거쳐 최종지시를 내린다. 그러나 상황실에 근무한 경찰이 안일하게 대처한 데다가, 지휘부 보고마저 늦어지면서 재난 컨트롤타워인 행정안전부의 대처가 늦어졌다. 경찰, 소방, 지방자치단체의 공조도 원활하지 않았다. 

참사 당일 보고는 시간 순으로 보면 윤석열 대통령-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윤희근 경찰청장 순으로 통상적인 보고체계의 역순으로 이뤄졌다. 컨트롤타워도 제 기능을 하지 않았다. 전국에서 발생하는 재난 상황, 소방 출동 상황 등을 파악하고 전파하는 행안부 상황실은 당일 오후 10시48분이 되어서야 소방청 119 상황실로부터 참사를 보고받았다. 오후 6시34분부터 오후 10시11분까지 위험신호를 보내는 신고가 경찰에 11건이나 접수됐는데도, 행안부는 이를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특히 경찰의 보고체계와 속도는 납득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캠핑장'에서 잠들어 있다가 보고를 제때 못 받았고, 용산경찰서장은 차량 이동을 고집하다가 50분 늦게 현장에 도착한 걸로 드러났다. 경찰 기동대 또한 사고 발생 1시간이 훨씬 지난 11시40분에야 처음 현장에 도착했다. 서울소방재난본부가 서울경찰청 상황실에 첫 사고 신고를 받은 지 3분 만인 오후 10시18분 서울경찰청 상황실에 공동 대응을 요청했지만, 서울청은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책임을 통감하고 이태원 압사 참사로 부실이 드러난 현 국가 안전시스템을 대대적으로 손보겠다고 밝혔지만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꼴'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김성호 중앙재난대책안전본부 1본부 총괄조정관 겸 행정안전부 재난안전관리본부장은 7일 중대본 회의에서 "이번 사고는 우리 사회에 안전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일깨워 주는 계기가 됐다"며 "정부는 이번 사고의 대응 과정 전반에서 드러난 문제점들을 찾아내고 개선해 다시는 이러한 안타까운 사고가 생기지 않도록 근본적인 재발 방지 대책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다중 밀집 인파사고 예방 태스크포스(TF)와 112 대응체계 개선 TF 등도 가동 중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7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재난안전관리체계 점검 및 제도 개선책 논의를 위해 열린 국가안전시스템점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7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재난안전관리체계 점검 및 제도 개선책 논의를 위해 열린 국가안전시스템점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과거 세월호 사태를 계기로 1조5000억원을 투입해 지난해 구축을 완료한 재난안전통신망조차 이번 참사 현장에서 제대로 활용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때문에 시스템을 갖추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재난안전통신망은 경찰, 소방, 해양경찰 등이 하나의 통신망으로 소통하는 전국 단일 통신망이다. 버튼을 누르면 통화그룹에 포함된 유관기관이 자동으로 연결돼 함께 통화할 수 있었지만 전혀 활용되지 못했다. 재난 발생시 초기 대응을 얼마나 신속하게 하느냐가 인명 구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을 과거 사례를 통해 확인해놓고도 또 한 번 구멍을 드러낸 것이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제도와 기술, 다 갖춰 놓아도 누가 어떻게 쓰느냐의 문제"라고 짚었다. 그는 "컨트롤 타워 시스템이 갖춰져 있어도 어떤 버튼을 언제 누를지는 사람이 결정한다. 성범죄를 막기 위해 성인지 감수성이 필요한 것처럼, 안전사고를 막기 위해선 안전에 대한 인지가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이어 "공공의 안전과 질서라는 경찰의 가장 기본적인 임무를 지키기 위해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 최고의 시나리오로 준비했어야 한다. 그러나 안전에 대한 인지가 낮아 최상의 시나리오를 생각하면서 최소한의 준비만 한 꼴"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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