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 앞세운 스타 금융인들의 차명 투자 흑역사
  • 박창민 기자 (pcm@sisajournal.com)
  • 승인 2023.01.03 10:05
  • 호수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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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리부터 강방천까지…불법 투자 의혹으로 금감원 철퇴
금융권, 차명 투자 끊이지 않는 이유 “빠져나갈 구멍 많아”

2022년, 연이어 스타 금융인들의 차명 투자 의혹이 불거졌다. 강방천 전 에셋플러스자산운용 회장과 존 리 전 메리츠자산운용 대표, 민은기 한양증권 S전략CIC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사실 금융권 종사자들의 차명 투자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하지만 대중적인 인지도를 자랑하는 금융인들마저 이 같은 문제에 연루된 사실이 드러나면서 파문이 커지고 있다.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금융업계 전체적인 도덕적 해이가 심각하다는 비판이 터져 나왔다. 금융권에서 차명 투자가 끊이지 않는 까닭은 무엇일까. 

ⓒ연합뉴스

유명 금융인들의 불명예 퇴장

한국 자산운용 업계를 이끌어온 강방천 전 회장이 현재 차명 투자 의혹으로 금융 당국의 중징계 처분을 앞두고 있다. 금감원은 2021년 11월 에셋플러스자산운용을 대상으로 한 정기검사에서 강 전 회장이 공유 오피스 업체 원더플러스에 수십억원을 대여해 줬고, 해당 법인이 이를 투자에 활용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원더플러스는 강 전 회장이 대주주이며, 그의 딸이 2대 주주다.

금감원은 본인 명의 회사에 자금을 대여해 법인 명의로 자산을 운용한 행위를 일종의 차명 투자로 봤다. 자기 명의 계좌로 매매를 해야 하는 강 전 회장이 법인 명의 계좌를 사용해 자본시장법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자본시장법상 금융투자업 임직원은 자기 명의로 매매하고 하나의 회사를 선택해 하나의 계좌로 매매해야 한다. 이에 금감원은 2022년 9월 강 전 회장에 대해 ‘직무정지’에 해당하는 중징계 결정을 내렸다.

2022년 7월 강 전 회장이 돌연 에셋플러스자산운용 회장직에서 물러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당시 그는 임시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앞두고 현재 맡고 있는 등기이사와 회장직을 모두 내려놓겠다고 선언했다. 강 회장은 특별 서신을 통해 “지난 23년간 에셋플러스에서 맡았던 제 소임을 다하고 떠나고자 한다”며 “그동안 꿈꿔왔던 끼 있는 투자자의 발굴과 교육, 유능한 펀드매니저 양성 등 사회와 자본시장에 기여할 수 있는 곳에 저의 남은 열정을 쏟고자 한다”고 밝혔다.

당시만 해도 강 전 회장의 차명 투자 의혹은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다. 이런 사실을 몰랐던 금융투자 업계는 강 전 회장의 갑작스러운 은퇴 소식에 적지 않게 당황했다. 하지만 뒤늦게 그가 차명 투자 의혹으로 금감원 검사를 받았으며, 제재 준비 중이라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금융권에서는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강 전 회장이 스스로 경영에서 물러났다는 해석을 내놨다.

쓸쓸한 퇴장이 아닐 수 없다. 강방천 전 회장은 업계를 이끌어온 ‘네임드’ 금융인이다. 한국의 1세대 펀드매니저로 대중에게도 ‘가치투자 1새대’로 잘 알려졌다. 그는 1999년 에셋플러스자산운용의 전신인 에셋플러스자문을 창업해 23년간 금융투자 업계 최전선에 있었다. 외환위기 때 1억원으로 156억원을 번 주식의 대가로 알려져 있고, 영화 《국가부도의 날》에서 배우 유아인이 연기한 펀드매니저 윤정학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강방천 전 회장과 더불어 가치투자 1세대로 알려진 존 리 전 메리츠자산운용 대표도 차명 투자 의혹이 불거지면서 금융업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금감원이 2022년 5월 존 리 전 대표의 차명 투자 의혹을 제보 받고 검사에 나선 것이다. 당시 존 리 전 대표는 불법성이 없다고 반박했지만, 논란이 계속되자 2022년 6월28일 사의를 표명했다. 

ⓒ뉴스뱅크이미지·연합뉴스

금융권에도 후폭풍 미쳐   

존 리 전 대표의 차명 투자 의혹 역시 대중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 그는 뉴욕 월스트리트에서 세계 최초로 한국 기업에 투자하는 ‘코리아펀드’ 신화의 주역으로 유명해졌다. 2014년 메리츠자산운용 대표에 선임된 이후 금융권에서 보기 드문 장수 최고경영자(CEO)로 꼽혔다. 아울러 존 리 전 대표는 각종 방송과 유튜브에 출연해 가치투자와 동학개미 운동을 이끌며, 한국 자본시장 역사에 획을 그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랬던 그가 차명 투자 의혹이 불거지면서, 비판 여론이 끊이지 않았다.

그 후폭풍은 금융권에도 미쳤다. 메리츠금융지주는 존 리 전 대표가 사임한 직후 메리츠자산운용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존 리 전 대표가 차명 투자 의혹으로 금감원 검사를 받게 되면서 메리츠자산운용이 금융소비자 신뢰도에서 큰 타격을 입었다고 봤다. 이 때문에 메리츠금융지주가 시장에서 신뢰를 상실한 메리츠자산운용을 떼어놓으려 하는 게 아니냐는 분석을 내놨다.

한양증권도 스타 임원의 차명 투자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금감원은 민은기 한양증권 S전략CIC 대표가 아내를 앞세워 전환사채(CB)에 투자한 의혹으로 2022년 11월 수시 검사에 나섰다. 민 대표가 아내 명의로 설립한 법인을 통해 부동산 투자전문회사 트리온파트너스가 발행한 45억원 규모 CB를 인수하는 방식으로 차명 투자를 한 의혹이 제기되면서다(시사저널 1727호 ‘[단독] 한양증권도 쉬쉬한 연봉 27억원 ‘40세 스타 임원’의 수상한 차명 투자’ 기사 참조).

민 대표는 2022년 초 금융권을 뜨겁게 달군 지라시의 주인공으로, 업계에서 스타 임원으로 통한다. 부동산 PF(프로젝트파이낸싱) 인수금융 전문가로 뛰어난 사업 수완을 통해 한양증권의 드라마틱한 실적 성장을 견인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82년생인 민 대표가 나이 마흔에 최연소 증권사 임원 타이틀을 거머쥘 수 있었던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그는 2022년 한양증권에서 두 번째로 많은 연봉(27억원)을 받아가면서 금융권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민 대표 역시 차명 투자 의혹이 불거지면서 결국 1월1일부로 임원직에서 퇴임했다. 2022년 12월31일 임원 임기가 만료된 민 대표는 계약 연장이 되지 않았다. 금융권에서는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구설에 오른 임원의 임기를 연장하는 건 회사 입장에서 부담스러울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이처럼 유명 금융인들의 차명 투자 의혹이 잇따라 불거지면서, 금융권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가 도마에 올랐다. 금융사와 금융권 유관기관 임직원의 차명 계좌를 통한 주식거래는 금융실명제법과 자본시장법 위반이다. 금융업계 종사자는 일반 투자자보다 관련 정보 접근성이 더 높다. 내부 정보 및 업무상 알게 된 정보로 투자하게 된다면 자본시장의 공정성을 해칠 우려가 있다. 금융사 임직원들에게 본인 명의로 개설된 증권사 1곳의 계좌 1개를 통해서만 주식 매매를 허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금융권의 차명 투자 파문에 이복현 금감원장까지 으름장을 놨다. 2022년 8월9일 이 원장은 금감원 임원회의에서 “고객의 투자자금을 관리·운용하는 자산운용업은 무엇보다 시장 및 투자자 신뢰가 근간이 돼야 하는 산업”이라며 “옛 속담에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을 고쳐 매지 말라’고 했듯이 경영진 스스로 과거보다 훨씬 높아진 도덕적 잣대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조금이라도 이해상충 소지가 있거나 직무 관련 정보 이용을 의심받을 수 있는 부적절한 행위를 단념하고, 운용 관리자로서 본연의 업무에 충실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런데도 금융인들의 차명 투자가 끊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금융 사건 전문변호사는 이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금융사 임직원들은 전문적인 금융지식을 이용해 어떻게 법망을 피해 가는지 그 누구보다 잘 안다. 금융은 어렵고 복잡하다. 매번 새로운 금융투자 기법과 상품들이 시장에 쏟아진다. 허점도 많다. 금융권 종사자들은 이런 허점을 합법적으로 활용할 줄 안다. 사실 차명 투자가 불법이지만, 법적으로 따졌을 때 다툼의 여지가 정말 많다. 다툼의 여지가 있다는 건 빠져나갈 구멍이 있다는 것이다. 금융권에 차명 투자가 만연한 것도 이 때문이다.”

 

법망 피하기 좋은 차명 투자…처벌도 솜방망이  

솜방망이 처분이 금융인들의 차명 투자를 부추긴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행법은 금융투자업자 등 임직원이 차명 투자를 하다가 적발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이나 1억원 이하의 벌금 △5000만원 이하의 과태료 △해임·정직·경고 등의 신분 제재가 부과된다. 2021년 금융 당국을 관리·감독하는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8~20년까지 금융투자상품 매매 규정 위반에 따른 제재는 97건에 달했지만 이 중 차명 투자 위반으로 제재를 받은 사례는 한 건도 없었다. 차명 투자를 포함해 여러 규정을 위반한 경우에도 대부분 과태료나 신분 제재에 그쳤다.

일각에서는 차명 투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국회 정무위 소속 관계자는 “현행법상 차명 투자도 형사 처벌이 가능하지만, 거의 신분 제재나 과태료로 그친다. 이 때문에 국회에도 차명 투자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의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상정된 상태다”면서 “국융 당국의 실효적인 제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관리·감독을 강화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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