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전처’가 밝힌 대우산업개발 한재준의 실체…“이 정도면 리플리 증후군”
  • 이민우 기자 (mwlee@sisajournal.com)
  • 승인 2023.01.02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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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재준, 반론 과정서도 거짓 해명…전처 증빙으로 거짓 드러나
한재준 전 부인 “연애부터 결혼, 그리고 이혼까지 진실이란 없었다”

대우산업개발의 대표이사였던 한재준씨는 과거 대원외고와 미국 UCLA에서 학위를 따고 코카콜라 브랜드 매니저와 맥킨지 수석 컨설턴트라고 주장했지만, 모두 거짓으로 드러났다. 그는 시사저널의 의혹 제기에 ‘코카콜라 홍콩 법인’ ‘맥킨지 이탈리아 법인’에서 일했다고 해명했지만, 이 또한 사실이 아니었다. 한씨와 과거 부부 관계였던 A씨의 등장으로 그의 거짓말은 더이상 통할 수 없게 됐다.

한씨의 거짓말은 아주 오래전부터 시작됐던 것으로 확인됐다. 한씨와 과거 5년여의 법적 부부였던 A씨에 따르면, 한씨는 과거 사소한 사실부터 거짓말을 반복했다. 한씨와 3년 가량 연애 끝에 결혼했던 A씨는 결혼 이후 자신이 속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한국외대 4학년이라고 접근했던 한씨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었다. 재력가 행세를 했던 한씨의 아버지는 택시 운전을 했고, 한씨의 어머니는 공장에 다니고 있었다.

과거에도 한씨는 진실이 드러날 듯 하면 사라졌고, 또 다른 곳에서 거짓으로 새로운 인생을 설계했다. A씨에 따르면, 한씨는 결혼 이후 날조된 이력으로 회사에 취업했지만 오래가진 못했다. 학력이나 경력이 거짓으로 드러날 듯하면 관두고 다른 회사로 옮겨다녔다. 이혼 과정에서도 아파트라도 지켜야 한다며 위장 이혼을 제안한 뒤 5년을 함께 했던 부인에게 ‘빚덩이’만 남긴 채 사라졌다. 거짓말로 점철된 인생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진실이었던 셈이다. A씨는 “지금 빨리 수사를 하지 않으면 또다시 잠적해 어딘가에서 거짓말로 새 인생을 만들어 피해자를 만들 것”이라며 “왜 구속 수사를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한재준씨(왼쪽)가 2021년 대우산업개발 측에 제출한 이력서에는 UCLA 졸업, 맥킨지 근무 등의 이력이 적혀 있다. ⓒ대우산업개발 제공
한재준씨(왼쪽)가 2021년 대우산업개발 측에 제출한 이력서에는 UCLA 졸업, 맥킨지 근무 등의 이력이 적혀 있다. ⓒ대우산업개발 제공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한재준의 ‘거짓 인생’

시사저널은 2022년 12월26일 ‘[단독] 가짜 이력으로 대우산업개발 CEO까지…두 얼굴 한재준의 실체’ 보도를 통해 한씨의 허위 이력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한씨는 자신의 변호인을 통해 ‘코카콜라 본사에서 홍콩으로 파견돼 홍콩에서 근무했다. 그리고 이탈리아에 있는 맥킨지에서 일했다. 명백히 사실이 아니다’라고 답변했다. 또 2일에는 법무법인 평산 이아무개 대표변호사를 통해 기사 삭제와 정정보도를 요청한다며 내용증명을 보내 왔다.

그러나 이 또한 거짓 해명으로 확인됐다. A씨의 제적등본을 보면, 한씨는 1997년 10월 A씨와 결혼한 뒤 2002년12월 협의이혼했다. A씨의 건강보험자격득실확인서를 통해 확인한 결과, 한씨는 이 기간 동안 ‘디케이식품(9개월)’ ‘코카콜라보틀링(3개월)’ ‘코카콜라음료(4개월)’ ‘한컴에듀넷(5개월)’ ‘지앤비네트웍스(6일)’ 등에서 근무한 것으로 확인됐다. 부인이었던 A씨가 한씨의 직장피부양자로 등록돼 확인된 내용이다.

A씨의 진술도 이에 부합했다. A씨는 “결혼 기간 동안 학력 등을 속여 취업에 성공했지만 여러 곳을 전전했다”며 “아무래도 거짓이 탄로날 것 같으면 회사를 관두고 새로운 회사를 찾았던 것 같다”고 밝혔다.

이혼 과정 또한 평범하지 않았다. 회사를 전전하던 한씨는 2001년 10월 주변인들로부터 돈을 끌어모아 ‘머큐리머천다이징’이라는 회사를 차렸다. 그리고 회사는 10개월 만에 부도가 났다. 이후 한씨는 부인 명의의 아파트라도 지키자며 “서류상으로 이혼하자”고 제안했다. 이혼 이후 채권자와 경찰의 눈을 피해 몰래 집에 왔던 그는 “고시원에 나가 숨어있겠다”고 하더니 영원히 숨어버렸다. 그가 사라지자 A씨에게는 아파트 대출, A씨 명의의 인감증명서를 몰래 사용해 남겨진 빚덩이뿐이었다.

A씨의 제적등본(왼쪽)을 통해 한씨와의 혼인 사실과 기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A씨의 건강보험자격득실확인서에는 혼인 기간 A씨가 피부양자로 등록돼 있는 기록을 통해 한씨의 근무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제보자 A씨 제공
A씨의 제적등본(왼쪽)을 통해 한씨와의 혼인 사실과 기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A씨의 건강보험자격득실확인서에는 혼인 기간 A씨가 피부양자로 등록돼 있는 기록을 통해 한씨의 근무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제보자 A씨 제공

한재준의 전 부인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기지 않기 위해 진실 밝혀야”

A씨는 시사저널의 의혹 보도 다음날인 2022년 12월27일 회사를 통해 연락처를 남겼다. 기자와 통화하게 된 A씨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떨리고 있었다. A씨는 “기사의 모든 내용이 사실이고, 제가 증빙할 수 있다”며 “한재준의 모든 것은 거짓말이었고, 여전히 거짓으로 또 다른 피해자를 낳는 것 같아 제보하고자 한다”고 했다. 수차례 통화 이후 기자와 직접 만난 A씨의 손에는 주민등록초본과 제적등본, 건강보험자격득실확인서가 들려 있었다.

한씨의 실체를 드러내기 위해 A씨의 인터뷰 내용을 요약했다. 다만 A씨가 한씨로부터 해코지당할 수 있다는 불안감을 호소해 개인 신상은 모두 감추게 됐다.

 

어떻게 시사저널로 연락을 하게 됐나.

“시사저널 기사를 보고 대우산업개발 직원들 전체가 나같은 피해자가 될 것 같아 연락을 드리게 됐다. 애초부터 거짓을 바로 잡았다면 나와 비슷한 피해자가 나오지 않았을텐데 미안한 마음도 있었다. 거짓이 드러나면 또 숨고 어딘가에서 새로운 거짓 인생으로 더 많은 피해자를 양산할 수 있지 않은가. 수사가 빨리 진행돼 더이상의 피해자를 막기 위해서라도 꼭 진실을 밝히고 싶었다.”

한씨의 허위 이력 관련 기사를 어떻게 접했나.

“과거 한씨와 부부였다는 걸 아는 지인들이 카카오톡으로 전달해 줬다. 사실 한재준이란 이름을 잊고 살았다. 아니 완전히 지우고 싶었다. 저 또한 속아서 결혼했고, 속아서 이혼했다. 그리고 연기처럼 사라진 이름을 기사로 보게 됐다. 시사저널 기사에서 제기했던 허위 경력 의혹 등은 전부 사실이다. 코카콜라에서 영업사원으로 6개월 근무했다. 그전에는 영등포구 문래동에 있는 포드 매장에서 영업사원으로 일했다. 수사를 통해 출입국 기록이라도 확인해보면 명확히 드러나지 않겠나.”

한씨는 언제부터 알게 됐나.

“1994년 11월 쯤, 대학교 3학년이었던 제가 지인으로부터 한씨를 소개 받았다. 처음에는 한국외대 4학년이라고 소개를 했다가 자꾸 의심스러워서 추궁을 하니 나중엔 거짓이었다고 스스로 실토했다. 서울 중곡동의 작은 빌라에서 살고 있었는데, 그 건물이 자신의 것이고 세입자 관리를 위해 살고 있다고 했었다. 역시나 거짓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를 너무 좋아하는 나머지 잘 보이고 싶어서 그러는 거라 여겼다. 근데 결혼 할 때 집을 덜컥 계약해놓고 잔금을 치르지 못해 우리 부모님(처가)께서 급하게 해결해주기도 했다. 거짓말이 드러난 뒤에도 너무 당당하게 거짓말을 해 주변 사람들이 또 속곤 했다.”

결혼 이후에 한씨는 무슨 일을 했나.

“한 회사에 오래 있지 못하고 몇 개월 단위로 옮겨 다녔다. 이력서 위조를 제 앞에서 대놓고 하기도 했다. 아마 그 거짓말이 드러날 것 같으면 관두는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의 모든 사고는 돈으로 점철돼있는 것 같았다. 어느 시점인지 정확히 기억을 안나지만 ‘돈뭉치’를 저에게 갖다 주기도 했는데, 그러고 며칠 뒤에 회사를 관뒀다. 이때에도 뭔가 석연치 않았다.”

 

제보자의 신변 보호를 위해 사진 대신 일러스트로 대체 ⓒ시사저널 양선영
제보자의 신변 보호를 위해 사진 대신 일러스트로 대체 ⓒ시사저널 양선영

그것 때문에 협의 이혼하게 된 것인가.

“아니다. 나중에 자신이 회사를 차렸다. 아파트 담보대출을 한도 상한선까지 받아서 회사를 운영하면서 뚜렷한 매출 없이 이해할 수 없는 부동산 관련 일을 벌이다 회사가 어려워져서 폐업하게 됐다. 그마저도 분양 사기 비슷한 일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렇게 있다가 다 망하겠다 생각하니까 제 명의의 아파트라도 살리자면서 서류상 이혼을 하자고 했다. 이후엔 새벽에 몰래 들어와 옷가지들만 챙겨 나갔다. 그러고도 경찰과 채권자들이 찾아오자 ‘고시원에 나가 살겠다’고 한 뒤 사라졌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아파트 담보대출만 갚으면 되는 줄 알았는데, 몇 년 뒤에 제 인감증명서를 몰래 가져가 보증을 섰던 빚더미까지 저한테 왔다.”

이혼 이후에 한씨 소식은 전혀 듣지 못했나.

“이혼하고 나서 몇 해 뒤에 몽골 사람들 상대로 사기쳤다가 구속됐는데 금방 풀려나서 또 잠적했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러고 2019년 쯤에 건설사 대표를 맡고 있다는 뉴스를 보게 됐다. 가서 따져볼까 생각도 했지만, 시간이 많이 흘러 서로의 삶을 살고 있었기 때문에 그냥 모른척 했다. 그리고 이번에 기사로 또 보게 됐다.”

한씨는 여전히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고 있다.

“제가 기억하는 한재준이란 사람은 ‘리플리 증후군’에 가깝다. 결혼 전부터 사소한 것까지 모두 거짓말을 했다. 그렇게 속여 자신의 이득을 챙겼다. 그렇게 해서 건설사 대표까지 됐으면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가. 지금 수사를 받고 있다고 하는데, 경찰 수사관이나 판사까지도 속일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러고 궁지에 몰리면 숨는 사람이다. 과거 부도 난 이후 집을 나갔을 때 배 타고 해외로 도망쳤다는 소식을 지인에게 들었다. 빨리 잡아서 사소한 거짓말부터 명명백백히 밝혀야 한다. 제 건강보험 서류 하나로 허위 이력이 드러나지 않나. 몽골 사기 사건 수사기록만 찾아봐도 그가 도주한 이력이 나오지 않나. 경찰이 빨리 수사해 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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