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약하던 중국 ‘비밀경찰서’에 칼 빼든 유럽
  • 김휘동 유럽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1.07 10:05
  • 호수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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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사무실·가정집·음식점 형태의 ‘서비스 스테이션’ 운영 정황 확인
EU “절대 용납 못 해”

서울 송파구의 한 유명 중식당이 중국 당국이 운영하는 ‘비밀경찰서’ 거점이라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지난 연말 정국을 뜨겁게 달궜다. 급기야 해당 중식당의 중국인 대표가 12월29일 기자회견을 통해 의혹을 부인하고 나섰지만, 파문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그런데 중국이 반체제 인사 탄압 및 강제 소환을 위해 해외 각국에 비밀경찰서를 운영하고 있다는 논란은 지금 한국뿐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도 커지고 있다.

발단은 지난해 9월 스페인의 한 인권단체가 중국 공안 당국의 해외 ‘서비스 스테이션’ 운영 실태와 반체제 인사 탄압 관련 보고서를 폭로하면서였다. 특히 유럽에선 각 정부의 동의를 구하지 않은 중국 공안의 무허가 영사 서비스인 이른바 ‘서비스 스테이션’에 대한 논란이 각국의 조사를 통해 사실로 드러나기 시작했고, 이러한 스테이션들이 사실상 ‘비밀경찰서’로 활용돼 왔다는 정황이 추가로 확인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이번 논란에 대해 유럽 사회는 분개하고 있다. 특히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EU 회원국의 동의 없는 제3국의 ‘국외 관할권’ 행사는 어떤 형태든 용납할 수 없다”며 “이는 각 개별 국가의 주권과 국가안보에 해당하는 이슈이지만, 사안의 중요성을 감안해 EU 회원국 내무장관 회의에서 다뤄지도록 윌바 요한손 내무 담당 집행위원에게 지시했다”고 언급했다.

ⓒ시사저널 임준선·유로뉴스 유튜브 캡쳐
중국이 해외에서 운영하는 ‘비밀경찰서’의 국내 거점으로 지목된 서울의 한 중식당 대표가 2022년 12월29일 의혹과 관련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중국 공안의 자국 활동을 허가한 국가도 있어

이미 몇몇 국가에선 공안 서비스 스테이션의 ‘무허가 영사 업무’에 초점을 둔 선제적 강경 대응이 이뤄지고 있다. 네덜란드·아일랜드·체코 등은 인권단체의 첫 폭로 이후 즉각 정부 차원의 조사를 실시해 비밀경찰서로 의심되는 중국의 서비스 스테이션들을 파악한 상황이다. 파악된 스테이션들의 형태는 모두 제각각이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스테이션은 외부 현판만 달린 일반 사무실의 형태를 띠고 있었고, 로테르담의 스테이션은 공안의 시설임을 유추할 수 없는 일반 가정집 형태였다. 아일랜드 더블린의 스테이션은 중국인이 운영하는 한·중 음식 전문점 내에 위치했다. 체코 프라하에 위치한 두 스테이션의 경우 세부 위치나 형태가 공개되지는 않았다.

해당 국가들이 현지 중국대사관 등에 사실 관계 확인을 요청하자 중국 측은 관련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그러나 왜 영사 업무가 ‘외교관계에 관한 비엔나 협약’에 따른 중국대사관이나 영사관이 아닌 다른 스테이션에서 실시돼야 하는지는 납득할 만한 설명이 나오지 않았다. 유럽의 반응은 싸늘했다. 웜크 훅스트라 네덜란드 외교장관은 “(영사 업무에 대한) 허가를 주재국에 구했어야 하나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면서 “이러한 이유만으로도 폐쇄를 명령할 수 있는 충분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사이먼 코베니 아일랜드 외교장관 또한 “용납 불가” 입장을 밝히며 폐쇄를 명령했다. 이로써 각 당국 조사 시작 직후 몇 달 내 중국 공안 서비스 스테이션 5곳이 문을 닫았다.

물론 모든 EU 회원국에서 네덜란드·아일랜드·체코처럼 적극적인 대응과 함께 스테이션 폐지 등 신속한 조치가 이뤄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세 국가의 경우 “파견국은 접수국의 명시적인 사전 동의 없이는 공관이 설립된 이외의 다른 장소에 공관의 일부를 구성하는 사무소를 설치할 수 없다”고 규정한 비엔나 협약 제12조를 위반한 정황이 정부 조사에 의해 명백히 확인돼 적극적인 대응이 가능한 것으로 풀이된다. 독일의 사정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조사 초기 독일 내무부 대변인이 “독일 연방의 영토 내에서 중국 당국이 행정력을 행사할 권리는 전혀 없다”고 언급하는 등 연방정부의 적극적인 대응이 예상됐다.

다만 독일에서는 한 언론사가 연방정부의 서면질의 답변을 공개하면서 서비스 스테이션의 형태가 다른 유럽 국가와는 사뭇 다른 것으로 밝혀졌다. 독일 연방정부는 답변을 통해 논란이 된 비밀경찰서 존재를 확인했다고 언급하면서, 이러한 비밀경찰서가 단순히 고정 사무실 등 중심 거점을 두고 운영하는 것이 아닌 중국 화교 민간인 중심으로 활동하는 이동식 점조직 형태로 파악되었다고 밝혔다. 중국이 독일 내 ‘지역 담당관’ 5명을 둬 이들이 중국인과 중국계 독일인들에게 법적 자문 및 행정상 도움을 제공해 왔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고정 사무실 폐쇄 등의 물리적 조치는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현재까지 독일 당국의 대응은 중국대사관에 항의서한을 보내는 데 그친 가운데, 독일 현지에서는 조사가 더 길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국가 간 협정을 통해 중국 공안에게 자국에서 활동할 수 있는 권한을 공식적으로 부여한 유럽 국가들도 존재해 방조 논란도 불거졌다. 이탈리아·크로아티아·세르비아 등은 과거 중국과의 협정을 통해 자국 경찰과 중국 공안의 공동 순찰활동을 허가한 바 있다. 이들 국가는 증가하는 중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현지 범죄를 예방하고 테러리즘 등의 위협에 대비한다는 명분으로 중국 공안의 자국 활동을 허가했다. 이에 이들 국가가 반체제 인사 탄압을 위한 중국 공안의 중심 거점이 되도록 해당 정부가 방조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논란이 계속되고 있지만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 정부는 중국과의 협정이 이번 논란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입장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러나 이탈리아 정부는 비판 여론을 의식해서인지 당초 미온적 입장에서 선회하며 이탈리아 경찰과 중국 공안의 이탈리아 주요 관광지 공동 순찰 중단을 발표했다. 마테오 피안태도시 이탈리아 내무부 장관은 “더 이상 이와 같은 형식의 협조는 없을 것이며, 다른 형태로도 대체되지 않을 것이다”고 못 박았다. 특히 이탈리아 내무부의 조사 등 추가적인 정부 차원의 대응이 있을 것임을 시사했다.

ⓒ시사저널 임준선·유로뉴스 유튜브 캡쳐
2022년 10월26일(현지시간) 유로뉴스는 중국이 네덜란드에서 무허가 경찰센터를 운영한 혐의로 세이프가드 디펜더스 등 인권 단체들로부터 비난받고 있다고 방송했다. ⓒ유로뉴스 유튜브 캡쳐

유럽 내 中 반체제 인사 탄압 문제로 번질 수도

이번 중국의 유럽 내 비밀경찰서에 대한 폭로와 유럽 각국의 조사가 단순히 무허가 영사 업무에 대한 항의 및 서비스 스테이션 폐쇄로만 끝나지 않고 반체제 인사 탄압에 대한 인권 문제 등으로 확대되어 EU 차원에서 다뤄질지도 주목되고 있다. 이번 일로 유럽 내 거주하는 반체제 인사들에 대한 보호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독재정권의 탄압을 피해 유럽에 정착한 정치적 난민들에 대해 독재정권이 국가를 초월해 감시활동을 할 수 없도록 반간첩법을 강화하고, 이들을 위한 ‘핫라인’을 개설해야 한다는 등 여러 주장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번 사태를 계기로 중국인 반체제 인사에 대한 중국 공안 당국의 협박 사례가 주목받고 있다. 과거 중국 정부에 대한 비판의 글을 SNS에 게시한 뒤 수배 명단에 오른 후, 해외에서 도피생활을 유지하다 네덜란드 정부로부터 정치적 난민 지위를 인정받고 거주하고 있는 왕징유의 경우다.

그는 중국 공안으로부터 중국 귀국을 종용하는 지속적 협박에 시달리고 있는 점을 네덜란드 현지 언론에 밝혀왔다. 그는 중국 공안 당국이 초기에는 단순한 귀국 설득으로 시작했지만 이후 중국 본토에 거주 중인 그의 부모가 공안에 체포되며 이들을 인질로 협박 강도가 더욱 심해졌다고 밝혔다. 이러한 구체적 사례들은 스페인 인권단체의 폭로와 맞물리며 중국 공안 서비스 스테이션이 사실상 반체제 인사 감시 및 송환을 위한 비밀조직이라는 주장에 유럽 여론의 무게가 기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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