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기의 과유불급] 핵보다 무서운 게 사람의 눈빛
  • 전영기 편집인 (chunyg@sisajournal.com)
  • 승인 2023.01.09 08:00
  • 호수 173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사저널의 2023년 신년호 커버스토리를 장식한 김형석 교수의 지난주 인터뷰 기사는 인생 104년의 시간을 거치며 증명된 알토란 같은 얘기들로 넘쳐났다. 어릴 때 하도 몸이 약해 부모님으로부터 “20세까지만이라도 살아달라”는 말을 들었던 김형석 교수이기에 그의 건강 비결은 설득력이 있었다.

김 교수의 인터뷰 가운데 특히 흥미로웠던 대목은 젊은 시절 평양에 살 때 김일성에 의해 북한이 공산화되는 과정을 겪은 후일담이다. 그는 다음과 같은 체험적 진실을 들려줬다.

“북한 정권은 거짓에서 출발했습니다. 몇 달 만에 정직과 진실이라는 가치가 사라졌습니다. 그다음, 옳고 그름이 없어졌습니다. 가치관이 무너진 것이죠. 마지막으로 인간애가 사라집니다. 더 이상 있을 곳이 못 된다 생각해 (1947년) 남한으로 나왔습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연합뉴스

“北 정권은 거짓에서 출발, 옳고 그름·인간애 순서로 사라져”

공동체의 가치관이 정직의 실종→옳고 그름의 혼돈→인간애의 결핍 순서로 붕괴됐다는 통찰이 특별했다. 김성주라는 사람은 김형석 교수와 동향이며 창덕학교 8년 선배였다고 한다. 1945년 해방이 되자 평양 공설운동장에서 김일성 장군 환영대회라는 것이 열렸는데 김성주가 김일성으로 둔갑해 나타나더란 얘기다. ‘거짓에서 출발한 북한 정권’은 이를 두고 한 말이다.

그로부터 김씨 3대가 80년 가까이 공산주의 정권을 구축하면서 거짓의 산을 쌓았으니 정직이나 옳고 그름, 인간애는 끼어들 여지가 없을 것이다. 김정은이 정권 장악 과정에서 고모부 장성택과 이복형 김정남을 잔인하게 처형·살해한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수령과 인민, 민족이라는 추상적 관념을 들이대기만 하면 법도 상식도 인간성도 헌신짝처럼 버려지는 ‘더 이상 있을 곳 못 되는’ 사회가 북한이라는 사실은 한국 사람 누구도 그곳에서 살고 싶어 하지 않는 데서 잘 알 수 있다.

선의로 시작했다고 믿고 싶지만 그동안 김대중·노무현·문재인 대북 정책의 성적표는 북한이 김일성 시대보다 더 못 먹고, 더 못살고, 더 포악해졌다는 점에서 좋은 점수를 줄 수 없다.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은 김정일을 만난 뒤 한결같이 “북한은 핵을 만들 능력도 의사도 없다”고 말했다. 김정일의 거짓에 속은 것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더 능동적으로 김정은의 거짓에 속았다. 그는 평양 능라도 경기장 15만 명 군중 앞에서 “김정은 위원장과 나는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터전을 만들자고 확약했다. 김정은 위원장과 나는 새로운 조국을 만들어 나갈 것(2018년 9월19일)”이라고 흥분했다. 거짓과 공포로 공산주의 3대 세습을 완성한 자와 ‘새로운 조국’을 만들겠다는 문 전 대통령의 연설은 아무리 레토릭이라 해도 곱게 봐줄 수 없다. 피와 땀과 목숨을 바쳐 자유민주주의와 번영을 일궈온 보통 한국인의 마음에 수치와 상처를 안겼다.

 

북핵 대처에서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권 실패

문재인의 발언이 김정은의 배신으로 허무해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미 문 정부 후반기부터 김정은은 딴소리를 해댔다. 급기야 한국인에 대한 선제적 핵무기 공격 가능성까지 공공연히 밝히고 있는 실정이니 김정일·김정은한테 알고도 속고 모르고도 속은 전 정권의 사람들은 국민에게 미안해하고 자숙해야 한다고 본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는 서양 속담처럼 북한 거짓 정권에 농락당한 한국의 대북 유화정책을 잘 설명한 말도 없을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김정은 공산주의 정권의 거짓과 잔인성에 주목해 ‘힘에 의한 평화’라는 현실적 대북 정책을 펴나가는 것은 올바른 방향이다. 핵보다 무서운 게 사람의 눈빛이라고 한다. 여러 이유로 북한과 동급의 핵무장이 쉽지 않다면 한국 단독으로 김정은을 한순간에 살상할 능력과 의지부터 갖춰야 한다.

전영기 편집인
전영기 편집인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