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호수’ 시행착오 딛고 관광객 유치 이끈 시화방조제 [김지나의 문화로 도시읽기]
  • 김지나 도시문화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1.11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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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오염 대명사였던 시화지구, 대부도 관광 문화 이끌고 생태도 회복
대부도와 경기도 시흥시를 잇는 시화방조제 ⓒ안산시청 공보담당관실
대부도와 경기도 시흥시를 잇는 시화방조제 ⓒ안산시청 공보담당관실

대부도는 경기만에서 가장 큰 섬이다. 시화방조제와 탄도방조제를 통해 주변 도시와 연결돼 자동차로 쉽게 갈 수 있는 섬이기도 하다. 그래서 MT나 단체여행으로 대부도를 찾는 사람들도 많다. 10km가 넘는 시화방조제를 따라 바다를 가르며 대부도로 들어갈 때면 낯선 타지로 일탈의 여행을 떠나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이곳은 낚시 포인트로도 유명해서, 평일이든 주말이든 낚시를 즐기려는 이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을 따라 줄짓는 낚시꾼들의 행렬이 문외한의 눈에는 그저 신기하게 보일 따름이다.

시화방조제 건설은 1985년에 발표된 ‘시화지구 간척사업계획'에 따라 이루어졌다. 대부도를 포함한 경기만 일대의 도시와 섬들을 연결해 국토를 확장한다는, 대표적인 수도권 개발 사업이었다. 방조제 건설로 탄생된 시화호를 담수호로 만들겠다는 구상이었지만 환경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시화호는 지독한 환경오염으로 ‘죽음의 호수'란 오명까지 얻었으며, 개발과 성장을 우선시했던 과거의 시행착오를 대표하는 사례가 됐다.

오는 4월 복원될 시화호 옛 뱃길의 대부도 쪽 선착장이 위치한 방아머리해변 ⓒ안산시청 대변인
오는 4월 복원될 시화호 옛 뱃길의 대부도 쪽 선착장이 위치한 방아머리해변 ⓒ안산시청 대변인

포도로 유명한 대부도, 뱃길 복원돼 관광객 몰이 더욱 기대

아이러니하게도 시화지구 개발은 지금의 대부도를 있게 한 데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그 중 하나가 대부도의 대표 농작물인 포도를 알린 계기가 됐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포도 생산지라고 하면 경북 김천, 충북 영동 등 내륙지역이 유명하다. 그런데 시화지구 개발과 함께 대부도 포도가 알려지게 됐고, 1954년에 캠벨 50여 주로 시작된 대부도 포도농사는 이제 전국적인 명성을 자랑한다.

‘섬포도'의 품질은 내륙과 다른 해양성 기후의 영향이다. 시원한 해풍이 불어오고 일교차가 크기 때문에 육지보다 당도와 향이 풍부한 포도를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이 대부도 농민들의 이야기다. 대부도 포도농민들은 영농조합을 만들어 와인 생산에도 도전하고 있으며, 안산시는 1995년부터 ‘대부포도축제'를 개최하면서 포도 홍보와 관광객 유치에 힘을 보탰다.

그런데 지도를 보면 대부도는 안산시와 경계 하나 맞닿지 않은 채 동떨어져 있는 독특한 형세를 이루고 있다. 대부도의 행정구역이 안산시가 된 것 또한 시화방조제 건설의 영향이다. 원래는 옹진군에 속했었는데 경기도와 물리적으로 연결됐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고 한다. 인근의 시흥, 화성도 후보지였지만 주민들의 선택은 안산이었다. 시의 재정상태가 가장 좋다는 이유였으나 방조제 건설 이전까지 뱃길로 연결되며 활발히 교류했던 지역이란 점도 작용했을 테다. 그리고 오는 4월이면 이 뱃길이 복원돼 관광유람선이 운행될 예정이라고 한다. 이로써 시화방조제가 초래한 두 지역의 어색한 동거도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리라 기대가 된다.

대부남동에 위치한 승마장. 대부도는 고려, 조선시대부터 나라에서 말을 훈련시키던 장소였다. ⓒ김지나
대부남동에 위치한 승마장. 대부도는 고려, 조선시대부터 나라에서 말을 훈련시키던 장소였다. ⓒ김지나

방조제로 육지와 연결된 덕에 승마 문화 유지 

대부도와 관련된 재미있는 사실이 한 가지 더 있다. 바로 고려시대 말부터 조선시대까지 나라에서 관리하던 말 목장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를 증명하듯 섬의 남부지역은 ‘말 부흥'이란 옛 지명을 가지고 있다. ‘대부남동'이라 불리게 된 지금도 낚시터나 마을의 이름에서 말 부흥, 혹은 말봉이란 단어가 심심찮게 발견된다. 하지만 승마가 보편적이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여전히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낯선 지명이다.

말을 대신할 수 있는 교통편이 발달하고 승마문화의 대가 끊기면서 이 특별한 역사도 기억에서 사라질 뻔 했다. 그렇지 않았던 이유는 2005년, 이곳에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승마장이 문을 열며 그 명맥을 조금이나마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 이전까지 공공에서 운영하는 곳을 제외하면 민영 승마장은 전국을 통틀어도 15곳밖에 되지 않았다. 그 중 많은 수가 폐업한 지금까지도 대부도 승마장은 여전히 굳건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아름다운 풍광 덕에 예능 프로그램이나 드라마 촬영지로도 종종 활용된다는 모양이다. 이 역시 방조제를 통해 육지와 연결되지 않았으면 불가능했을 일이었다.

경기만 지역은 지도를 바꾸는 개발 사업이 대대적으로 이어지며 수도권 발전에 큰 역할을 했다. 시화지구 간척사업은 비록 환경오염의 대명사로 기억되지만, 대부도 관광과 여가 문화가 꽃피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도 사실이다. 많은 노력 끝에 이제는 천연기념물 철새들이 찾아올 정도로 시화호의 생태환경은 건강을 회복했다. 이제 대부도의 다음 스텝을 결정하는 것은 사람들의 몫일 것이다. 자연이 다시 한 번 준 기회를 바탕으로 대부도가 가진 자산들이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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