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먼의 태극마크가 한국 야구에 불러올 나비효과
  • 김형준 SPOTV 메이저리그 해설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1.14 12:05
  • 호수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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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준급 한국계 메이저리거들, 향후 WBC 국가대표 입성 기대
김하성-에드먼이 펼칠 키스톤콤비 플레이, 세계 최고 수준 평가

이른바 ‘메호대전’이 이번 카타르월드컵에서 메시의 우승으로 막을 내린 후 이제 세계 축구계 최고의 라이벌 대결은 킬리안 음바페와 엘링 홀란드가 이어갈 전망이다. 하지만 이 새로운 라이벌전에는 문제가 있다. 아르헨티나의 리오넬 메시와 포르투갈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국가대표로서도 동등한 대결을 했다면, 프랑스 국적의 음바페와 노르웨이 국적의 홀란드는 그렇지 않다. 세계 최강 프랑스의 음바페가 2018년 월드컵 우승과 2022년 월드컵 득점왕 및 결승전 해트트릭을 통해 국가대표로도 빛나고 있다면, 노르웨이는 유럽 지역 예선을 통과하지 못해 홀란드는 아직 월드컵 무대에 데뷔조차 하지 못했다.

2022년 10월5일 세인트루이스의 에드먼이 피츠버그와의 경기에서 3회 적시타를 친 뒤 더그아웃에서 동료들의 축하를 받고 있다. ⓒAFP 연합

WBC, 본인이나 부모의 출생지·국적 중 국가 선택 가능

하지만 야구 월드컵으로 불리는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지난 대회 미국과 푸에르토리코의 결승전에서 미국의 선발투수로 6이닝 무실점 승리를 기록하고 대회 MVP가 됐던 마커스 스트로먼(시카고 컵스)은 이번 대회에선 푸에르토리코 대표로 참가한다. 이는 WBC의 느슨한 국적 규정 덕분이다. 축구 A매치와는 달리 이벤트 대회에 가까운 WBC는 국가대표 선택에서 부모의 국적이나 출생지 또는 본인의 국적이나 출생지 중 하나를 택할 수 있다. 미국 뉴욕에서 태어나 자란 스트로먼이 푸에르토리코 대표가 될 수 있었던 건 어머니가 푸에르토리코 출신이기 때문이다.

야구 강국이 아닌 이탈리아는 아메리칸리그 사이영 투수인 저스틴 벌랜더(뉴욕 메츠)와 탈삼진 1위 게릿 콜(뉴욕 양키스) 등 이탈리아 혈통을 가진 선수들이 모두 참가하면 우승도 노려볼 수 있을 정도다. 월드컵에서도 WBC 규칙이 적용됐더라면, 홀란드도 자신의 출생지인 잉글랜드 국가대표로 이번 월드컵에서 음바페와 라이벌전을 펼칠 수도 있었던 셈이다.

2006년 WBC 1회 대회 4강과 2009년 2회 대회 준우승으로 야구의 열기에 불을 지폈던 대한민국 대표팀은 2013년 3회 대회와 2017년 4회 대회에서는 뼈아픈 1라운드 탈락을 했다. 월드컵과 마찬가지로 4년마다 열리는 WBC 대회는 당초 2021년 열릴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로 인해 연기됐다. 특히 이스라엘과 네덜란드에 연거푸 패한 지난 4회 대회는 고척돔에서 열렸기 때문에 충격이 더 컸다. WBC의 저조한 성적은 KBO리그 등 국내 야구의 침체로 이어졌던 탓에 이번에 반드시 좋은 결과가 필요한 한국은 새로운 시도에 나선다. 30인 예비 명단에 한국계 선수인 토미 에드먼(세인트루이스)을 포함시킨 것이다.

그동안 한국계 외국인 선수들이 WBC 대표로 참가하지 못한 데는 ‘대한민국 국가대표는 병역을 이행하는 자리’라는 인식과 함께, 한국계 선수들의 출전 의지 역시 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WBC가 스프링캠프가 열리는 3월과 겹치다 보니 메이저리그 선수들은 WBC 출전을 꺼려 왔다. 하지만 2013년 대회에서 ‘야구의 브라질’이라 할 수 있는 도미니카공화국이 종주국인 미국보다 먼저 우승하자, 이에 자극받은 미국이 다음 대회에서 총력전을 펼친 끝에 우승하면서 야구에서는 낯선 국가대항전이 선수들의 흥미를 끌기 시작했다.

특히 이번 대회는 메이저리거의 72%를 보유한 미국이 ‘올 인’이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현역 최고의 타자인 마이크 트라웃(LA 에인절스)과 최고의 투수인 클레이튼 커쇼(LA 다저스)가 포함된 최강의 전력을 구축함으로써 WBC 참가 열기는 정점을 찍었다. 한국 대표팀 참가를 결심한 에드먼 역시 소속팀의 간판선수들이자 미국 대표로 참가하는 폴 골드슈미트, 놀란 아레나도로부터 “아주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어머니가 한국 사람인 에드먼은 2년 연속 30도루를 달성한 수준급 1번 타자로, 2021년 2루수 골드글러브를 수상하고 지난해엔 유격수로 좋은 수비를 선보였다. 유격수 김하성과 2루수 에드먼의 내야 수비는 이번 참가 팀 중 최고 수준이다. 에드먼의 참가가 반가운 점은 현역 은퇴 후의 행보가 주목되는 선수이기 때문이다. 고등학교를 우등으로 졸업하고 스탠퍼드대학에서 수학과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에드먼은 메이저리그 단장이 될 수 있다는 기대를 받고 있다. 에드먼의 친형 또한 미네소타 트윈스의 분석팀에서 일하고 있다.

 

레프스나이더·저지·화이트·더닝 등 한국계 메이저리거 많아

사실 메이저리그에는 에드먼 외에도 많은 한국계 선수가 뛰고 있다. 출전 후보로 거론됐던 롭 레프스나이더는 유일한 한국계 입양아 출신 선수다. 1991년 3월 서울에서 출생했지만 생후 5개월 때 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해 미국으로 건너간 레프스나이더는 양부모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지역 최고의 선수가 됐고, 2012년 뉴욕 양키스의 5라운드 지명을 받았다. 레프스나이더에게는 절친인 1년 후배가 있다. 지난해 62개의 홈런을 때려내고 아메리칸리그 MVP가 된 애런 저지다. 마찬가지로 입양아 출신인 저지에게는 한국에서 입양돼온 형이 있었고, 레프스나이더와 저지는 단짝이 됐다. 레프스나이더는 입양단체를 후원하는 등 한국 입양인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박찬호와 외모가 판박이인 데다 다저스 유니폼을 입고 데뷔하는 바람에 한국 팬들에게 잘 알려진 미치 화이트(토론토)는 이모가 ABC 방송국의 한국계 뉴스 앵커였던 주주 장(장현주)이다. 형 타이슨 로스가 메이저리그 44승을 올리고 동생 조 로스가 26승을 올린 로스 형제는 외할머니가 한국 사람인 쿼터 코리안이다. 아버지가 주한미군이었던 대인 더닝(텍사스)은 이번 WBC 출전을 강력하게 희망했으나 고관절 수술을 받는 바람에 출전이 불발됐다. 2021년 양현종의 텍사스 입단을 크게 반겼던 더닝은 다음 대회에는 반드시 한국 대표로 참가할 것이며 KBO에서도 뛰어보고 싶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한국계 선수의 참가가 반가운 건 전력에 보탬이 된다는 점도 있지만, 한국 야구가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2006년까지만 해도 2년마다 한 번씩 열린 미·일 올스타 시리즈를 통해 메이저리그와 꾸준히 교류했고, 이에 자극받은 선수들이 대거 미국에 진출했다. 반면 지난해 11월 열리기로 했던 미국 올스타 팀의 방문이 취소된 우리로서는 한국계 선수들과의 교류가 메이저리그 야구를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역대 최강 전력의 대표팀이라는 미국, 축구에 버금가는 대표팀을 만들겠다며 2014년에 만든 ‘사무라이 재팬’이 10주년을 앞두고 있는 일본, 미국 못지않게 화려한 메이저리거 멤버를 구성한 도미니카공화국·베네수엘라·푸에르토리코 등 우승 후보들은 WBC 창설 이후 이번에 가장 강력한 전력을 선보일 전망이다. 반면 우리 대표팀의 전력은 박찬호, 김병현, 서재응, 최희섭, 김선우, 류현진, 윤석민 등이 참가했던 1, 2회 대회보다 강하다고 보기 어렵다. 얼마 전에 끝난 월드컵에서 큰 성과를 낸 축구와도 비교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번 WBC에서 한국은 팬들이 납득할 만한 경기력을 보여야 한다. 그리고 처음으로 함께하는 한국계 선수를 통해 메이저리그와의 물리적 거리도 좁힐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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