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봄부터 대규모 공방전 진행될 것”
  • 김현 뉴스1 워싱턴 특파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1.14 10:05
  • 호수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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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의 키 쥐고 있는 워싱턴 정가에서 새해 들어 비관적 전망 잇달아 나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만 1년 가까이 전개되는 가운데, 이른바 ‘우크라이나 전쟁’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특히 러시아-우크라이나 간 협상 테이블을 만들 수 있는 유일한 키를 쥐고 있는 국가가 미국이라는 점에서, 새해 들어 워싱턴 정가에서 잇따라 올해 전쟁의 전망을 매우 비관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점은 눈길을 끈다.

천연가스와 식량 등의 가격 상승을 경험하고 있는 전 세계는 조속히 전쟁이 끝나길 바라지만, 이를 둘러싼 우크라이나와 서방, 러시아 간 정치·군사적 셈법의 차이가 뚜렷해 새해에도 전쟁을 끝내기 위한 평화협상이 진전되기보단 우크라이나·서방과 러시아 간 물러설 수 없는 격전이 벌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대체적이다. 협상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지만, 앞으로 이뤄질 협상에서 주도권을 쥐기 위해서라도 양측은 전황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총력전을 펼칠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022년 12월31일 러시아 남부 군구 사령부를 방문해 군인들을 격려하고 있다. ⓒAP 연합

“푸틴에게 패배는 선택사항이 아니다”

미국 내에선 우크라이나전이 조기 협상 모드에 들어가기보단 이르면 올봄부터 대규모 공방전이 진행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이는 아직까지 어느 한쪽으로 전세가 기울지 않고 있는 데다 2월24일 우크라이나전 발발 1주년을 맞이하는 만큼 양측 모두 정치·군사적 성과가 필요한 상황과 맞물린다. 특히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러시아 입장에선 이 같은 필요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은 오히려 협상을 더욱 멀어지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배리 포센 매사추세츠공대 국제정치학 교수는 1월4일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에 기고한 ‘러시아의 반등(Russia’s Rebound)’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우크라이나가 지난해 9월 하르키우에 이어 11월 헤르손을 탈환한 것을 거론하며 “이것은 단순히 우크라이나에 유리하게 흘러가는 전쟁이 아니다. 오히려 이 전쟁은 어느 한쪽이 이익을 얻으려면 (상대방이)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경쟁인 소모전으로 전환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포센 교수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모두 그것을 피하고 싶도록 만들어야 하지만, 두 나라 모두 협상할 준비가 돼있지 않은 것처럼 보이며, 하물며 합의의 요인을 제공할지 모르는 어려운 타협을 할 준비가 돼있지도 않다”고 지적했다.

제임스 세베니우스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와 마이클 싱 전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중동담당 선임국장도 1월11일 포린어페어스에 공동으로 기고한 글에서 포센 교수와 방점은 다르지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대화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 꾸준히 전장에서 진전을 이루고 있는 우크라이나와 이 같은 현실을 부정하는 러시아 사이에는 어떠한 협상도 가능하지 않다. 오늘 회담을 요구하는 것조차 러시아에 이익이 될 위험이 있다”고 당장의 협상 가능성을 낮게 봤다.

콘돌리자 라이스 전 미 국무장관과 로버트 게이츠 전 국방장관은 1월7일 워싱턴포스트 공동 기고에서 “지금 당장 유일하게 확실한 것은 전투와 파괴가 계속될 것이라는 점”이라며 “푸틴은 우크라이나를 러시아 통제에 두거나 독립국으로서의 그 나라를 파괴하는 데 완전히 전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푸틴에게 패배는 선택사항이 아니다. 우크라이나 동부 4개 지역을 양도하지 않을 것”이라며 “그가 올해 군사적으로 성공하지 못하면, 흑해 연안의 나머지 지역을 장악하고 돈바스 지역 전체를 통제한 다음 서쪽으로 이동하기 위해 새로운 공세를 위한 출발점인 우크라이나 동·남부를 계속 통제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2022년 12월21일 미국 워싱턴DC 사우스론에서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맞고 있다. ⓒEPA 연합

“미국과 서방의 우크라 지원 더 강화해야”

실제 우크라이나 및 서방과 러시아는 전선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이면서도 조만간 있을 총력전에 대비하기 위한 전력 보강 등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다.

우선 러시아에서 올봄 대대적인 공습을 준비하고 있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최근 우크라이나군 당국자들은 지난해 9월 30만 명을 동원했던 러시아가 겨울휴가 기간이 끝나는 1월15일 이후 최대 50만 명의 추가 동원령을 내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러시아는 이를 즉각 부인했지만, 폴리티코는 “지난해 부분 동원령 직전에도 거의 같은 말을 했다”고 추가 동원령 선포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실제 추가 동원령이 선포될 경우, 새로운 징집병들을 훈련시켜 군대를 제대로 정비하는 데 2개월가량 걸리는 것을 감안하면 오는 3월쯤 러시아가 대규모 공격을 감행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러시아는 군 지휘체계도 새롭게 정비했다. 러시아는 1월11일 발레리 게라시모프 러시아군 총참모장을 우크라이나전 통합사령관으로 임명했다. 지난해 10월부터 우크라이나전을 총지휘하던 세르게이 수로비킨 사령관을 3개월 만에 교체한 셈이다. 수로비킨 사령관은 올레그 살류코프 육군 대장과 알렉세이 김 참모차장 등과 함께 통합사령관 대행으로서 게라시모프 총참모장을 보좌한다. 러시아가 이 같은 인사를 단행한 것은 지휘권자의 직급을 높여 더욱 원활하고 효율적으로 군을 지휘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조만간 대규모 공습을 앞둔 지휘체계 정비로 읽힐 수 있는 대목이다.

이에 우크라이나는 미국 등 서방으로부터 충분한 무기를 확보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도 러시아의 대대적인 공습을 예감한 듯 그간 러시아의 반발을 우려해 주저해 왔던 전차 및 장갑차와 패트리엇 미사일 등 무기체계 지원에 적극 나서고 있다. 미국이 이번 주 독일에서 열리는 우크라이나 국방연락그룹 회의 기간을 전후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추가 군사 지원 방안을 발표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스트라이커 장갑차를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폴리티코가 1월9일 보도했다.

폴란드는 1월12일 우크라이나에 독일의 주력 전차인 레오파드 전차 14대를 지원하겠다고 밝혔고, 프랑스도 해당 전차의 지원을 검토하고 있다. 영국도 주력 전차인 첼린저2 탱크 지원을 검토하고 있다. 다만 독일은 레오파드보다는 경량인 마더 장갑차를, 미국도 우선 브래들리 장갑차를 우크라이나에 제공하겠다는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과 독일은 최근 ‘미사일 잡는 미사일’인 패트리엇 방공 미사일 시스템을 제공하기로 했고, 미국은 이르면 이번 주부터 이 시스템을 운용할 90~100명의 우크라이나 장병을 미국에서 교육시킬 예정이다.

이렇듯 소모전이 예상되는 가운데, 전쟁의 장기화는 우크라이나에 부담이라는 전망이 적지 않게 나온다.

워싱턴포스트는 1월8일 “푸틴 대통령이 신년 연설에서 전쟁 장기화에 대비돼 있다”고 강조하고 “러시아군이 현 점령지 사수에 나서고 있어 우크라이나가 지난해보다 더 많은 점령지를 탈환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라고 보도했다. 엘리자베스 쉐클포드 시카고국제문제위원회 연구원은 “2024년엔 미국 대통령선거가 있어 미국의 우크라이나 지원이 지금처럼 이어질 수 있을지 불투명한 만큼 우크라이나가 신속하게 러시아군을 패퇴시키지 못해 전쟁이 길어지면 푸틴 대통령에게 유리할 것”이라고 점쳤다. 라이스·게이츠 전 장관도 “시간은 우크라이나 편이 아니다. 푸틴은 ‘시간은 나의 편’이라고 믿는다. 그는 우크라이나를 꺾을 수 있고, 미국과 유럽의 단결과 지원이 결국 금이 가고 깨질 것으로 본다”고 진단했다.

때문에 이 같은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선 미국 등 서방이 우크라이나에 충분한 군사물자를 제공하고, 대러시아 제재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주장한다. 폴리티코는 “러시아가 전장의 운명 대부분을 자신들 손에 쥐고 있지만, 우크라이나의 운명은 궁극적으로 동맹들에 달려 있다”며 “우크라이나의 승리는 공격 능력을 강화하는 데 필요한 장비 공급으로 귀결된다”고 밝혔다. 나이젤 굴드 데이비스 국제전략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1월1일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미국이 더 이상 우크라이나 지원을 자제하거나 무기 지원을 제한하는 조치를 해선 안 된다”면서 “서방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를 격퇴할 수 있도록 막대한 경제적 우위를 신속하게 동원하고, 가혹한 추가 제재를 부과할 준비가 돼있음을 보여줘야 한다”고 밝혔다.

 

“러시아 붕괴에 대비해야” 주장도 나와

일각에선 러시아가 탄약과 포탄 및 병사들에 대한 훈련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CNN은 최근 미국과 우크라이나 당국자들을 인용해 러시아의 포격이 전시 최고치에 비해 75%까지 급격히 감소했다고 보도했다. 이와 관련, 미군 고위 당국자는 지난해 말 러시아가 신형 탄약 공급이 줄어들면서 40년 된 포탄에 의존하고 있으며, 북한·이란 등으로부터 탄약과 포탄 구매에 나서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폴리티코는 러시아군 장병들의 훈련 부족을 지적하면서 “이를 개선하기란 전쟁 중에 무리한 요구이며, 수개월의 훈련이 필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러시아는 병력 부족으로 인해 민간 용병회사인 ‘와그너그룹’이 러시아 내 교도소를 돌며 죄수들을 모집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전쟁의 장기화는 서방의 경제적 지원을 받는 우크라이나보다 러시아에 장기적으로 적지 않은 충격으로 다가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와 관련해 미국의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이 1월9일 미국과 유럽 등 30개국의 정부·교육기관·비영리단체에서 활동하는 외교·안보 전문가 167명의 설문조사 결과를 통해 발표한 2023년 세계 전망 보고서에서 “향후 10년 안에 러시아가 붕괴하거나 실패한 국가로 전락할 수 있다”고 예측했다. 조사 결과 응답자의 46%가 러시아가 2033년까지 실패 국가로 전락하거나 해체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혁명이나 내전, 정치적 붕괴 등으로 내부적으로 해체될 가능성이 있는 국가’를 묻는 질문에도 40%가 러시아를 꼽았다.

더 나아가 러시아의 붕괴를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알렉산더 모틸 미국 럿거스대 교수는 1월7일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 기고문에서 “러시아가 키이우를 장악하려고 했던 것과 우크라이나를 꼭두각시 정부로 만들려고 했던 시도가 실패한 후 전쟁에서 러시아의 패배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며 “이제는 러시아의 붕괴에 대비할 때”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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